머리로는 분명 현대가 배경이라는 걸 아는데도 저 역시 스마트폰이나 문자 메시지 등이 나올 때면 놀라게 되네요. 단순히 남작의 돈을 탐내는 걸 넘어서 환영회에서 숫제 재산을 기부하라고 종용하는 장면이나 시장이 기자들에게 '그의 일정은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것이다 여러분은 민주주의에 익숙해져 있어서 낯설겠지만 그는 영주나 다름 없고 그가 하는 건 통치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어요.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금정연

projection
하지만 하긴 우리 모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잖아, (p.440)
쫓아가면서 읽고 있는데 어쩐지 이 문장이 마음에 박히네요. 정말 스쳐 지나가는,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는 문장도 아닌 짧은 푸념일 뿐인데도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른 문장이에요.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이 위태롭고 불안한 작중 사람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금정연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인데 인용해주신 문장을 보며 과연 어떤 상황에서 누가 한 말인지 상상해보게 되네요. 이런 것도 함께 읽기의 재미인 것 같아요.
알맹
아, 이제 좀 읽기 좋네, 싶다가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아, 의식의 흐름!이란 생각을 하며 머리를 비우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다가 다시 혼란스럽고. 익숙해질만하면 낯설어지고 낯설다가도 쉬워지는 소설이에요.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

금정연
저도 정확히 같은 느낌이네요. 765쪽이나 되는데 만만하면 재미 없었을 것 같아요!

고양이라니
이 시대는 한편으로 기세등등하고 한편으로 괴멸적이고 한편으로 의기양양한데-깊이 들여다 보면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 말로 언제나 결여된 것이었으니(...) 481p
유럽의 가장 큰 고민이지 않나 싶네요 EU로 묶여 있긴 하지만 예전의 종교처럼 그들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어줄 강력한 무엇인가가 나타나지 않는한 유럽 내에서도 디아스포라를 계솟 느끼려나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종교없이 스스로 선택할 용기, 책임질 용기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불안만 야기되는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2.0시대라 그런지 더더욱..

금정연
며칠 정신없어서 그믐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오늘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400쪽) 몰아서 읽고 확인하고 있는데, 제가 아직 읽지 못한, 인용해주신 문장들을 보고 있으려니 아니 이 소설에 저런 문장이 나온다고? 하게 되네요. 과연 무슨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두근... 그리고 말씀해주신 부분 또한 공감이 됩니다. 유럽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전세계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Henry
오늘까지 겨우겨우 진도는 따라 잡았습니다. 위에 어느 분인가 써놓으신대로, 만연체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정신없이 흘러흘러 이제막 어느 낯선 무인도에 표류한 느낌으로 한숨 돌립니다. 헝가리어로 읽으면 또 다른 뉘앙스가 있을테지만, 꿈도 꾸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이런 격랑의 만연체 소설을 번역해내신 번역가님께 무한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금정연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진짜 이런 소설을 번역하는 건 과연 어떤 경험일지, 무척 궁금하지만 다른 한편 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요...

Henry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파도를 즐기고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

최가은
“ 그러고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식기장의 위쪽 보관함을 열어 설탕 단지를 꺼내서는 거실로 돌아와 소파베드에 앉았으나 남작은 그녀가 가져온 설탕 단지에 손을 뻗지 않았으며 그가 손을 뻗지 않은 것은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어서 머리커는 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저항할 도리가 없었으니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소파베드에 다시 기대어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동안 남작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서 그녀를 하도 유심히 들여다보는 통에 머리커는 그의 눈길을 견딜 수 없어 천천히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으나 남작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거니와 그저 보고 또 보았으며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입을 열지 않다가-할 말이 없었으므로-남작은 커피 잔을 앞에 놓인 칵테일 테이블에 천천히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베드에서 사진을 집어들고는 몽유병자처럼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고 집 밖 복도에 발을 내디뎠다.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37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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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yJ
어제까지의 파트였던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를 다 읽었습니다. 이 파트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난 느낌이었습니다. 남작의 이동, 단테의 사라짐과 다시 등장, 남작과 머리커의 재회 등 여러 사건들이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전개를 더욱 궁금하게 도 하였습니다.
353페이지에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설명하는 부분을 시장이 언급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먼 행동을 하는 시장의 모습(남작 환영을 위해 머리커 참석 강요, 아내에게 마사지 받는 모습 등)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358페이지부터 나온 머리커와 남작의 재회는 만연체이기에 남작 방문으로 인한 머리커의 설렘, 자신을 못 알아보는 남작으로 인한 머리커의 혼란 등이 더 잘(더 상세하게) 설명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금정연
저도 어제까지의 파트였던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를 조금 전에 다 읽었는데요,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머리커와 남작의 재회 장면도 그렇고,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이나 초반에 총을 팔던 농부가 피 흘리며 신음하는 장면, 교수의 집을 습격한 작은별이 총을 맞는 장면 등 만연체에 특히 잘 어울리는 장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TerryJ
오늘 파트인 <펌/무한한 어려움>을 읽어나가겠습니다. 이 파트에서 교수가 다시 등장하는 것 같은데 과연 교수는 그 사건 이후로 어떤 삶을 이어갈 지 궁금합니다.

심은
글을 읽어나가는 시간 속에서 이 작품이 글로 이루어진 세밀화를 보는 듯 합니다.

금정연
글로 이루어진 세밀화라니 멋진 표현이네요. 제게 이 글을 읽어나가는 시간은 무한히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숭덩숭덩 넘어가기도 하고 여러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가 싶더니 뒤로 앞으로 뒤죽박죽 하기도 한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호디에
(펌 / 무한한 어려움)
이번 장은 도망다니는 교수와 그를 쫓는 오토바이족의 긴박한 상황을 서술합니다. 교수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형이상학적입니다. 교수가 전달하려는 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손에 딱 잡히지 않는 느낌입니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무한과 추상의 형상화, 실재, 정신, 탐구, 경험적 증거, 사물의 유한성, 일어나는 것으로써 이룩되는 현존, 그리고 두뇌와 앞서 언급한 것들을 통한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한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시선 정도로 납득하고 있는데요, 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혹은 뿌리가 되는 것)은 '두려움'이며, 여타 감정들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확장이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이해했습니다.
이 소설은 귀향하는 벵크하임 남작과 은신하고 있는 교수, 두 개의 서사가 별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읽을 때 이 두 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었는데요, 다시 읽으면서 저는 후작은 상징성을, 교수는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쓰려니 말끔하게 써지지가 않는데요, 읽으면서 차차 글을 정리해봐야겠습니다.

금정연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어서 오늘에야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읽었는데, 읽으며 교수가 언제나 나오나 했는데 '무한한 어려움'에 나오는 군요! 늘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희귀동물
[펌 -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남작이 도착했지만 폭망해버린 환영식, 머리커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작, 단테의 등장 등 갑자기 이야기가 급물살을 탄듯 전개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몇 분들이 언급해주신 것처럼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빌어서 다양한 유럽의 사회 문제(난민 문제, 경제적 위기감, 네오 나치 혹은 극우주의의 확산 등)를 언급하지만 작가의 입장(혹은 관점)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주인공으로 여길만한 남작은 '백치'로 그려지고 초점 잃은 눈으로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남작은 그저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에 머물러 있기 원하고 추억을 향수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서두에 자신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악장이라며 '경고' 했지만 실은 독자들에게 이런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목소리를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하고싶어하니까요 ㅎㅎ.
그리고 [펌 - 무한한 어려움]의 도입부에서 교수의 목소리는 굉장히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치광이의 내면의 소리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위에서 헝가리어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씀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저는 이 소설이 전체 악기의 음표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총보를 펼쳐 놓고 음과 쉼표를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총보를 보면서 보이고 들리는 부분이 더욱 많아지겠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지루하기 짝이 없는) 의미 없는 음표와 기호의 나열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좀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읽어보자는 다짐을 해보곤 합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작가가 헝가리어로 썼을 때의 글말의 리듬감과 운율이 어땠을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작가는 분명히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금정연
멋진 정리 감사합니다! 작가의 '경고'에 역설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해요. "이 소설이 전체 악기의 음표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총보를 펼쳐 놓고 음과 쉼표를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는 말씀은 너무 멋져서 제가 훔쳐서 나중에 다른 데 쓰고 싶네요. 확실히 이 작가라면 말씀하신 것처럼 글말과 리듬감과 운율을 너무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을 것 같아요. 그게 어떤 느낌일지는 영영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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