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월요일 잘 보내셨나요? 저는 4시간 전까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만연체처럼 끝날듯 끝나지 않는 이삿짐 정리를 겨우 마무리하고(마침표는 아니고 말줄임표 정도로요...) 겨우 밀린 분량을 따라 읽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기만 했는데도 어쩐지 숨이 차는 기분인데요. 일단 읽으면서 떠오른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어요.
이틀 만에 책을 다시 읽으며 처음으로 한 생각은 어라, 엄청 잘 읽히네? 어쩌면 '경고'는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일부러 약간 질리게 만들고 겁도 조금 줘서 이어지는 본문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작가의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이사하는 동안 책은 한 글자도 읽지 않았지만, 끝나지 않은 만연체와도 같은 시간을 살았기에 저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일 수도...
그러면서 현대 스릴러 소설을 서사시로 개작한 느낌, 혹은 최신 K-Pop을 판소리 '수궁가' 스타일로 리믹스한 느낌도 받았는데, 그런 생각으로 읽다가 '트르르르……/ 잘난 당신을 쓰러뜨리고 말겠어'의 후반부, 그러니까 교수가 킹콩과 작은별 들에게 죽도록 얻어 맞은 농부를 찾아가 그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문체와 내용이 너무 절묘하게 잘 어울려서 깜짝 놀라기도 했네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익숙한 노래를 전혀 다른 장르와 스타일로 편곡한 것을 듣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이게 이렇게 어울릴 일이야?' 하는 순간 같은 거요.
특히 농부의 경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인 뒤 밖으로 나가 은닉처로 돌아가서는 알라딘을 열고 처음으로 눈에 띈 무기를 꺼내어 (무기 더미에서 맨 처음 손에 잡힌) 탄약 주머니를 걸치고 코트 밑에 쑤셔넣지도 않은 채 그냥 손에 들고서 멜빵을 덜렁거리며 농장을 떠나 가시덤불땅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97-98)는 장면은 마치 리암 니슨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듯... (118쪽에서 홀로 교수를 치러 온 작은별을 교수가 물리치는 장면에서도요.)
98쪽에 등장하는 딸이 만든 단체 '무언가 해야 한다' 줄여서 '무해한'을 보면서 참 기가막힌 번역이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원문이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누구의 시점인지 나중에 밝히는 지연하는 서술 방식이 인상적이라는 말이 나왔었는데, 비단 시점 뿐만 아니라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무엇 때문에 벌어진 상황인지 등장인물의 이름은 무엇이고 지역적 배경은 어디이고 시대적 배경은 언제인지, 심지어 제목에 나온 남작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짧게는 몇 문장 뒤에 길게는 수백쪽 뒤에 이야기하는 소설의 서술 구조가 일종의 도치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 소설 전체를 거대한 도치법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요.
'럼/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에서는 드디어 남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요, 흔히 소설에서 기대하는(이 소설에 흔한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 같긴 하지만) 것과 달리 주변 인물들을 통해 남작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아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174쪽부터 여섯 페이지 동안 등장하는 사진가와 아이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어요. 그 자체만으로도 단편 소설 하나를 쓰고도 남을 듯한 캐릭터와 설정인데, 이걸 여기서 이렇게 끼워 넣는다고? 몇 페이지 뒤에 등장하는, 전투적으로 만원 열차를 밀고 들어와 자리를 쟁취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저는 소설에서 서사의 큰 줄기와 상관없이 등장하는 이런 식의 여담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네요.
187쪽부터 197쪽까지 등장하는, 객차에서 남작을 만났던 사람들의 서술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능수능란하게 시점을 전환하고 여담과 꼭 필요한 설명의 완급조절을 기막히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 현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그러는 동안에도 마침표가 몇 개인지 계속 세어보고 있었는데요, 189쪽에는 기차를 타고 가며 철로를 세는 남작을 보자("남작은 계속해서 창밖을 둘러보며 철로 개수를 세기 시작했지만 스물에서 멈춘 것은") 앞에서 교수가 총탄을 세던 모습이 겹치면서("탄피를 장바구니에 던져넣을 때마다 하나씩 정확하게 개수를 헤아렸으니 그 자신의 계산에 따르면 자신이 사용한 도합 225개 중에서 207개를 헤아렸을 때"(64쪽)) 약간 뜨끔한 동시에 '트르르르……/ 잘난 당신을 쓰러뜨리고 말겠어'에 마침표 29개, '럼/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에 마침표가 28개 있었으니 어쩌면 이 책 전체에는 225개의 마침표가 있는 게 아닐까? 그중 207번째 마침표가 찍힌 문장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편집증적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봄이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눈이 오네요. 매서운 꽃샘추위가 두렵지 않은 것은 우리에겐 아직 흥미진진한 500여 페이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겠죠, 라고 하면 조금 억지이겠으나 그래도 정말 책을 읽는 지난 몇 시간 동안은 추위도 잊고 푹 빠져서 읽었어요. 오늘 내일 이틀 동안은 '펌/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를 읽을 차례인데요, 과연 누가 누구에게 편지를 썼다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대를 하게 됩니다. 눈길 조심하시고요, 오늘도 많은 감상과 밑줄과 질문과 기타 등등 기다릴게요!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sunflower
독자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한 챕터 안에서 시점이 수시로 바뀌게 하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이 책은 참...기존의 문법을 뒤집어 엎는군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면서 읽었고 이해도 어려웠는데 읽다보니 또 이해도 그럭저럭 되고 읽히는게 참...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요. 시점이 동일한 챕터 내에서 마구 바뀌니 혼란스러우면서도 나름 재미가 있네요.

이룬
저도 이번 챕터를 마치고 나서, 사진가와 아이 이야기 부분이 영상을 본 것처럼 내내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지나가는 게 조금 아쉽기까지 하면서요.
소설의 주인공이 분명 존재하지만, 주변의 이야기들을 차마 흘려보낼 수 없어 더 분주한 기분이에요. 긴 문장들과 넘쳐나는 쉼표에 비해 손에 꼽히는 마침표 때문에 숨이 차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사실 더 많은 사람들의 세상이기도 해서 상상이상으로 바쁘고 정신없게 느껴지는 걸까 하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분주함과 그렇게 닿아있는게 아닐까 해요. 어느새 조금은 적응이 되어 그러련히 하기도 하는 것까지요.
네,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 읽는 덕분인 것 같아요.

감동쟁이
방금 트르르르를 다 읽었는데 다른 장면보다 처참하게 얻어 맞아서 망가진 농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계속 나오는 피를 닦아주며 이야기를 듣는 교수의 모습이 가장 인상 적이네요 아무래도 그나마 보이듯 묘사를 잘 한 부분인듯 싶어서 그런듯 합니다.
딸의 행보는 무슨 베짱이지 싶네요... 정말 야생같은 곳에서 험하게 자란듯 싶습니다
그리고 결국 교수가 제대로 일을 치네요...
남작님은 다음 챕터부터 만날듯 싶은데 어떤 분일지 궁금합니다

피오나지니
“ 난 낭만적인 사람이란다, 부인하지는 않겠어, 머리커가 관광 안내소 신입 직원에게 말하길 난 촛불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대저택 정원에서의 긴 산책, 세련된 감정, 그런 온갖 것이 좋아, 부인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그가 날 마리에타라고 부른 건 놀라웠단다, 난 한 번도 마리에타였던 적이 없거든, 누구에게도 그렇게 불린 기억이 없어, 그가 날 그렇게 부를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가 날 마리에타라고 부를 수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그가 날 이렇게 불렀다는 사실이 너무나 뜻밖이어서 처음에는 편지가 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1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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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지니
오늘 분량은 좀 수월하게 잘 읽히네요 ㅎㅎ 다른 분들도 그러신가요? 함께 읽다보니 이 두꺼운 책이 조금씩 편해집니다^^
김쑤
소전문화재단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받아서 올려주신 일정에 맞추어서 읽고 있어요. 이렇게 같이 읽어가는 건 처음이라 설레고 기대되는데,,, 만만치 않은 책이라서 같이 읽어나간다는게 또 얼마나 다행인지...ㅎㅎ 열심히 눈팅하면서 읽고 있어요.
곽두팔
소전문화재단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두꺼운 책을 어떻게 읽나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믐에서 이렇게 다같이 분량을 정해서 읽고 서로 소감을 나누니 좋네요! 서둘러서 오늘의 분량을 읽어야겠어요~

최가은
“ 기차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음을 아주 느리게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그가 여행 가방을 놓고 작은 테이블에서도 손을 뗀 것은 그들을 보고 싶다면 계속 몸을 돌려야 했기 때문으로, 그는 정말로 그들을 보고 싶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 어린아이와 여인을 보고 싶었으나 테이블에서 손을 떼도 허사였고 몸을 돌려도 허사였던 것은 그들이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기 때문이며 어차피 그가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은 그의 눈이 눈물로 가득했기 때문이나 기차가 시커먼 배차실 앞을 지날 때 그는 눈에서 눈물을 닦고 아까만큼 힘주어 쥐어 짜지는 않았어도 다시 한번 여행 가방과 작은 테이블을 움켜쥔 채 창밖을 내다보지 않은 것은 실내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그는 더럽고 번들거리는 바닥을, 바닥에 붙박여 있으려는 악어가죽 구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179-18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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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디에
“ 이 도시가 어떻게 됐 는지 말씀 좀 해보세요, 어디나 지긋지긋한 쓰레기 더미, 가로등마다 전구를 도둑맞아서 거리는 온통 깜깜해요, 어딜 가나 비닐봉지 수만 장이 끊임없이 바람에 날아다니죠, 저 알바니아 부랑자들, 마피아 밑에서 일하는 거지 아이들, 다들 알지만 아무도 입도 벙긋 안 해요, 시장이 있고 경찰서장도 있지만 그 둘은, 그녀가 입꼬리를 뒤틀며, 그들이 분주한 건 남작을 위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뭐든 남작을 위해서예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머리커 이모, 더는 무엇도 바라지 않았요, 남작이 여기 올 수 있다고 해도, 심지어 왕이 올 수 있다고 해도 여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그럴 것만 같아요, (후략)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74,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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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er
남작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장면이 좀 더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그려지고 스토리도 재밌어져 읽는 데 속도가 붙네요. 머리 속으로 1970-1980년대를 그리며 읽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공산국가 시대에는 남작이 맘대로 귀향할 수 없었을 것 같네요) 갑자기 스마트폰이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함부로 추측하거나 넘겨짚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우와아... 여러분들 모두 너무 열정적이신 것 아닙니까... 뭔가 자꾸 뒤쳐지는 열등생이 된 기분이네요ㅜ.ㅜ
저는 어제까지 분량이었던 <럼/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을 오늘 다 읽었는데요. 어떤 분이 "벽돌"이라고도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정말 재미있지만 벽돌 무게인 건 사실이기에... 책을 가지고 돌아다니지 못해서 일정을 다 마치고 잠에 들기 전에만 읽을 수 있었어요.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으니 저는 확실히 이 책과 궁합이 맞는가 봅니다...!
여러 분들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우선 @지니00 님께서 말씀해주셨듯 저도 남작-비서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반전 님의 말씀처럼, 비서는 (그의 성정으로 보아) 빈털터리인 남작의 진짜 사정을 알고 나면 분개한 후 그를 버릴 것이 뻔한데, 그럼에도 둘의 케미가 좀 독특하게 재밌달까요? 기대되는 면이 있어요. 둘이서 '단테'를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장면이 너무 웃겼던지라 두 사람의 동행이 얼마나 지속될지, 지속된다면 어떤 모양으로 지속될지 기대가 됩니다. 물론 @심은 님 말씀처럼 그들과 궁극적으로 '교수'는 어떻게 마주치게 될지가 가장 궁금하고요.
@금정연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부분들 중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저도 이 소설의 여담들이 너무나 재미있어요. 소설의 특이한 문체가 어떤 실효성을 갖는가, 하는 의문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소설의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율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솔직히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어렵겠지만...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 바로 그 비효율성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러니까 산만하게 펼쳐지는 여담들, 프레임 바깥에서 멀뚱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던 이들의 모습이 우연히 미끄러진 카메라 렌즈에 담겨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상하고 마법 같은 순간들. 금정연 선생님과 @이룬 님의 말씀처럼 저도 사진가-아이의 장면이 상당히 난데 없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들의 모습도 그들의 모습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던 남작의 모습이 묘사되는 장면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껴졌거든요. 아래 문장수집 부분에 따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외에도 두 명의 차장들이었던가요, 남작의 '하인'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차장들이 어쩔줄 몰라하며 남작을 대하는 모습도 그 자체로 잘 만든 코미디 같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 모든 여담들을 모아 @호디에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는 사회 문제나 문화와 같은 것을 포함한 '거대한 헝가리'를 스케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조금은 냉소적으로, 또 때로는 매우 노스탤지어적으로 헝가리를 언급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헝가리의 역사와 문화, 오늘날의 모습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오늘부터는 <펌,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를 읽게 되는데요. 여러분들의 정열적인 읽기를 동력이자 위안으로 삼아 저도 열심히 읽어오도록 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호디에
(펌 /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
남작이 온다고 온갖 수선을 다 피우면서 그가 오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으며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것을 비롯해 머리커와 형제 지간인 도러의 아빠는 남작이 전 재산을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누이에게 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남작이 보낸 편지 때문에 TV에 나오게 된 머리커는 자신의 유명세를 떠벌리고 다닙니다. 도러는 이러고 있는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벵크하임'이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중세나 근대도 아닌데 한 가문의 이름만으로도 마을 전체가 이럴 수 있다는 게 의아합니다. 더구나 21세기에! 이번 장章은 그야말로 시트콤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호디에
(펌 / 그가 도착할 것이다...)
아수라장같았던 환영 인파를 지나 호텔에 머물고 있는 남작은 자신을 찾아온 이렌의 하소연을 듣고 머리커(마리에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남작은 마리에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애초에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귀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젊은 시절 마리에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미소만이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을 살게 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결국 사진을 쥐고 그녀의 집을 나오는데, 아마도 남작은 젊은 시절의 마리에타만을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무척 쓸쓸하게 느껴지고 서글펐습니다. 남작은 과거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잡히지 않는 혹은 잡을 수 없는 것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오늘은 '펌/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를 절반 가량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특히 잘 읽히는 장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다짜고짜 "난 낭만적인 사람이란다"라며 일인칭으로 시작해서 조금 놀랐는데요, 설마 남작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건가 했지만 그건 아니고 남작의 첫사랑인 머리커의 목소리네요. 그러고 보니 187쪽에서도 객차에서 남작을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보안 기술 회사를 다니는 세일즈맨 같은 사람의 일인칭이 잠깐 나왔었는데, 비록 간접화법이긴 하지만 '나'라는 주어를 쓰는 게 200페이지가 넘도록 머리커와 딘역이라고 해야 하 세일즈맨 둘 뿐이라는 게 조금 재밌었어요. 기준이 뭘까요?
창백하고 기억도 흐릿한 남작과 대조되는 머리커의 이야기는 무척 생생하고 또 활기가 넘칩니다. 남작은 그때도 옷맵시가 형편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요.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머리커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둘이 첫키스를 한 곳이 '카지노'라고 불리던 과자점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말년의 남작은 머리커를 잊지 못해 '카지노'(그런데 이번엔 진짜)를 들락거리다 패가망신 한 걸까요?
비서(남작의 비서를 자처한 단테와 시장의 비서가 된 도러), 축구선수(단테와 러요시), 신문기사(교수와 남작과 과거의 머리커), 소문(교수와 남작과 머리커), 친척(남작과 머리커)... 같은 요소들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러나 반복되며 등장한다는 점도 재밌는 부분인 것 같아요.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여태까지는 소설의 타임라인이 선형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처음 머리커의 이야기는 남작에게 편지를 받은 시점 이후에 머리커가 조카에게 남작과의 기억을 늘어놓는 내용인데, 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남작이 아직 첫 번째 편지를 붙잡고 있다가 그걸 마무리하지 않고 두 번째 편지로 넘어간다는 서술이 나와요.
그리고 남작이 도시에 온다는 사실이 다소 와전되어 알려지면서 시장이 성대한 환영회를 준비하고, 머리커가 편지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며 일어나는 소동들이 그려지는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 이런 내용이 네 번째 문단, 혹은 문장까지 이어지다가 갑자기 다섯 번째 문단에서 '나'가 아닌 '그녀'라는 지칭으로 편지를 읽은 머리커의 이야기가 다른 버전으로 나옵니다. 머리커는 사실 편지를 받고도 벵크하임(벨러)를 기억하지 못했고 겨우 기억을 더듬은 끝에 "그래, 그녀가 고등학교 다니면서 도보시 아담과 깊은 관계였을 때였는데, 그때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남자애와 몇 번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죠. 아마 이쪽이 진실에 더 가까울 텐데요, 아마 머리커는 남작의 편지를 받고 기억 속 "무척 신기했고 도저히 입지 못할 옷을 입은 데다가 입냄새도 고약했"던 그 아이를 떠올린 후 약간의 윤색과 과장을 통해 느지막이 찾아온 '운명적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머리커가 그 계획을 실행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준 것은, 일종의 반전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계속 읽으면 다른 이유가 나올 수도 있겠죠.
정말 읽을수록 빠져드는 소설인 것 같아요. 과연 '펌/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의 남은 절반 동안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척 궁금한데요. 모쪼록 꽃샘 추위 조심하시고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최가은 평론가님이 '소설의 특이한 문체가 어떤 실효성을 갖는가, 하는 의문들'에 대해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요, 마침 오늘 읽은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의 <물듦>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그리고 자유간접화법을 통해 '상호감염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책인데요, 자세히 내용을 설명하려면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해당 부분만 옮겨볼게요.
"직접화법에는 감염이란 게 있을 수 없어요. 전달자는 그저 "철수가 이렇게 말햇어요"라고 한 다음에 "내가 진석이 새끼한테 기어드느니 차라리 뒈지고 말지"라는 철수의 말을 그대로 이어서 말할 뿐입니다. 전달자와 발화자의 말은 서로 어떤 영향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그저 차례로 등장할 뿐이죠. 앞서 말씀드렸듯, 둘 사이에는 굉장히 위생적인 분리가 있어요. (중략) 이처럼 감염의 가능성을 차단하고는 있지만, 직접화법의 예술은 무엇보다 주제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중략)
대신, 직접화법의 예술은 화법 자체를 주제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예술에 도입합니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초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감행한 위대한 전환이에요. 전통적인 주제 개념을 따르면, "철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진석이 새끼한테 기어드느니 차라리 뒈지고 말지"라는 직접화법과 철수는 진석에게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했어요"라는 간접화법은 주제적으로 동일합니다. 화법은 달라졌지만 이른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앗다고 보는 거죠. 전통적 주제 개념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면 어느 화법으로 말하든 결국 철수가 진석이를 싫어하는 거 아니냐고 하겠죠. 하지만 직접화법과 더불어 도입된 새로운 예술 개념을 따르면, 화법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주제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중략)
사실 음악은 이런 주제 개념을 일찍부터 알고 잇었습니다. 동일한 악보에 딸느 연주라 해도 각각의 연주는 매번 다른 주제를 산출한다는 것을 말이죠. 주법이 달라진다는 것은 곧 주제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27-28쪽)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직접화법이 아닌 간접화법과 자유간접화법이 뒤섞인 채 만연체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체의 소설이고, 직접화법과 단문으로는 말할 수 없는 주제를 전달하는 것(그게 뭔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만요...)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뜻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이 소설을 가리켜 "이전 소설의 카덴차"라고 표현하며 차례와 서술에 음악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없겠죠.
특히 <물듦>에서는 상호감염의 미학으로서의 자유간접화법에 주목하는데요, 마침 자유간접화법이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는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니, 혹시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굉장히 짧은 책이고,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듦 - 상호감염의 미학자유간접화법을 단순한 기법이 아닌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으로 탐색하는 책이다.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던 자유간접화법이라는 개념을 영화와 미술, 그리고 여러 폭넓은 예술 실천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새로운 방법이 도출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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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디에
책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관심이 가네요.

금정연
얇지만 생각할 게 많은 책이에요!
책스칩
난 늘 이런 식이었어. 그녀가 곧잘 이렌에게 말하길 마음 속에 정말로 무언가 있는 것 같아. 그러면 내 안의 작은 악마가 나를 걷게 해,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43,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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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스칩
우선 300페이지까지 읽어낸 저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분들께도 박수를...👍
300페이지까지 읽으면서
(분명히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남작', '아이폰(교수에 이야기에서는 휴대폰 등장)' '편지' 등의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할 때 이질감이 느껴지는데요.
아마 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그렇겠죠. 근데 시간을 맞춰보며 읽는 재미도 있는듯 합니다.
남작이 등장한 후 기차와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등장을 대단하게 여기면서도 무언가를 바라고 얻어내고자 하는 행동들과 남작과 머리커의 이야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모습에서도 이질감을 느낀 것 같네요.
266~ 272페이지를 보면
호송대와 남작의 등장을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버릴 정도로 표현하였는데 과거의 남작은 어땠을지 궁금하고 초반에 나오던 오토바이 군단들(작은별 등).. 이들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그리고 남작의 등장에 이어 교수는 이제 또 언제 나오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분량도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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