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소설에 음악이 나오는 부분을 항상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마치 베이스 드럼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뜻 끄덕거렸으나 음악은 어디에도 없었고 기억뿐이었던바"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더 놀라운 건 등에 용 문신을 생긴 야쿠자 워너비인 이들이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13살짜리 소년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가요? 어쩐지 이상우 소설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특히 중간까지) 근데 해피 하드코어라니,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장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있군요. 들어봐야겠어요.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금정연

금정연
“ ...그가 다시 동료들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들은 택시 운전사 특유의 무한한 인내심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그에게 귀를 기울인 채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의 해설이 썩 흥미로워서라기보다는 누구든 무슨 얘기든 해주는 게 고마워서였으니 그에게 귀를 기울일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갔으므로 무슨 이야기인지는 상관없이 그저 계속 이야기만 흘러나오면 되었기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자에 더욱 깊숙이 퍼더앉아, 계속해봐, 얼리커, 그만두지 말고, 자네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82-383,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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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한 챕터에 평균 26번 내외로 마침표가 찍히는데요 그래서 그럴까요? 언제부턴가 이 소설에서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데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이가 하는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가 이야기를 멈추지 않도록 독려하는 장면이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산머루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에 이어서 3인칭 대명사 ‘그’로 소제목을 지었는데,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는 머리커 입장에서 벵크하임과의 사랑을 기억 저 너머에서 현실로 끄집어내는 부분이었다면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에서는 벵크하임의 입장에서 마리에타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환영식 이후 벵크하임은 고향을 떠난 40여 년동안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마리에타의 사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벵크하임은 마리에타를 찾아가고 머리커에게 자신의 삶의 존재 이유가 마리에타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머리커가 마리에타임을 알아보지 못한 벵크하임은 단테에게 ‘카지노’에 갈 것을 요구합니다. 도박을 좋아해서 전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진 벵크하임은 사실 ‘카지노’에 가고 싶었을 뿐이며(물론 도박인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머커리의 회상에 의하면 ‘카지노’는 한 번도 입맞춤을 해보지 못한 벵크하임이 머리커와 처음으로 입맞춤한, 쾨뢰시강이 내려다보이는 평범한 과자점 이름이었습니다. 그곳 테라스에는 마리에타와 벵크하임, 둘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당구장으로 변한 그곳 테라스에서 그때처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아 쾨뢰시강을 내려다 봅니다. 그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는데 좀 더 가까이 당깁니다.
벵크하임은 어쩌면 머리커가 마리에타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와 헤어져 있었던 46년동안 그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오직 마리에타였으니까요. 그가 귀향하여 처음으로 갈 곳은 ‘카지노’였고 같이 갈 사람은 ‘마리에타’였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의 머리커는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마리에타’는 아니었습니다. 머리커를 만난 후에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초점 없는 퀭한 눈으로 있었던 벵크하임이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카지노뿐’이라고 말함으로써 현실의 머리커와 자신의 마음속 마리에타를 등치시키는 것을 포기합니다. 설명하자면 구차해질 것 같은 남작의 이 헛헛한 마음에 읽는 동안 한없이 몰입돼있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온갖 인물이 등장하고 조금은 엉뚱한 각자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풀어 놓아 바깥으로 끊임없이 이끌어가려고 하지만 언제나 마리에타와 벵크하임의 사랑 이야기에 묶여있어 조금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슬픈 사랑이라니요.

금정연
자세한 정리 감사합니다. 남작이 마리에타를 알아봤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만약 그렇다면 '카지노'에 간 남작의 모습이 더욱 씁쓸하게(여러모로) 느껴지네요...

내가그린기린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더 슬퍼지네요 세상에...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오늘은 '펌/ 무한한 어려움'을 읽는 첫날인데요, 다들 어떠셨나요?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틀 정도 책을 읽지 못하다 오늘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부분을 읽었는데요, 그래서 교수가 재등장한다는 '무한한 어려움' 부분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오늘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읽으며 제 의식에 떠오른 생각들을 몇 개 공유해봅니다.
이번 장은 사물을 주어의 자리에 놓고 시작하는 게 특이했어요. 작가는 서술의 초점을 옮겨 가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관점과 입장을 보여주는데요, 이제는 정차해야 하는 선로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어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덜커덩거리는 기관차까지 등장하다니!
환영회에서 재산을 기부하라고 종용하는 시장과 서장의 말은 충격적이었는데요, 그보다 더 큰 충격은 갑자기 시장이 기자들에게 "하지만 그의 역량으로 보건대 오늘부터 그가 이곳의 영주이자 주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라면서 더이상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통치'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어요. 왜? 귀족이라서? 돈이 많아서? 후덜덜...
오토바이족의 구호가 "깔끔한 마당, 단정한 주택, 질서가 있으리로다"라는 건 웃기면서도 어딘가 오싹했고요.
@강보원 평론가님이 남작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머리커는 남작을 회상하며 처음에는 자기보다 한두 살 어렸다고 하더니 얼마 후에는 자기보다 한 살이 많았다고 하죠. 그런데 머리커가 67살이니 남작은 65~68세인 셈이에요. 남작은 자신의 나이도 이제 65살이 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런데 시장은 남작이 64세라고 이야기하네요. 기억의 오류, 혼동, 오해... 뭐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이것이 본문 첫 장에 등장했던, 정확한 시간에 집착했던 교수의 강박과 대조되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몇 시 몇 분인지 매번 꼼꼼하게 따지는 교수(혹은 교수 부분을 서술할 떄의 작가)와 몇 년의 오차가 있는 남작의 나이. 두 캐릭터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말씀해주신 씁쓸한 재회도 안타까웠(던 동시에 의아했)고, 재등장한 사기꾼 단테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이제 중국인이 운영하는 당구장이 된 '카지노'에 간 남작이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놓고 앉아 "바람이 버드나무의 길고 촘촘하고 헐벗은 가지를 흔들리게, 앞뒤로 흔들리게, 강의 얼음장 같은 물 위로 차갑게 하늘거리게 하는 광경"을 보는 장면이었네요.
(여러분, 근데 혹시 그거 아시나요? 제가 5일 전에 이미 남작이 도박으로 패가 망신한 이유가 그가 머리커가 같던 과자점 이름이 '카지노'여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는 걸요. 이렇게 썼네요.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머리커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둘이 첫키스를 한 곳이 '카지노'라고 불리던 과자점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말년의 남작은 머리커를 잊지 못해 '카지노'(그런데 이번엔 진짜)를 들락거리다 패가망신 한 걸까요?"
소름...)
이제 내일은 '무한한 어려움'을 읽는 두 번째 날인데요, 장 제목과 달리 소설을 읽는 우리들이 느끼는 것은 '무한한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얼른 쫓아갈게요!
깜주
계속 일정이 밀려 저는 이제 무한한 어려움 부분을 읽고 있네요.
처음에는 끔찍했던 무한한 만연체. 이제는 쉼표를 마침표로 생각하고 읽고 있습니다. 그냥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써놓은 느낌이라 저도 부담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활자를 읽고 있습니다. 대신 머리에 남는 게 거의 없긴 해요. 똥개와 교수, 뱅크하임 남작과의 연관성이 궁금하네요. 교수는 진짜로 미친인간임에 틀림없고 남작은 덜떨어진 인간 같아요.
처음에 읽었을 땐 의식의 흐름인 것이 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푸르스트가 생각났고(1도 안읽었으나 그런 책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미친 교수가 마음속으로 안절부절하고 호들갑 떠는 것 보고 카프카가 떠올랐습니다. 카프카의 성과 소송을 읽었는데 단편 말고 장편에서는 꼭 주변에서 호들갑떨고 정신 사납게 하는 머저리들이 나오더라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인 것은,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의식의 흐름대로 읽으면 된다는 것이며 비록 머리에 남는 것은 없으나 페이지는 넘어가는 것이 신기한 바, 나름 꾸역꾸역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며, 아쉬운 바는 과연 기간 내에 이 책을 마칠 수 있을지가 의문이며 거의 한 달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있다는 점이며,이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알게 된건 교수는 미친놈이며 딸이 있으며 미쳐서 총알이나 쏘는 인간이며 똥개한테 츤데레라는 점이며, 남작은 덜떨어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고집하는 늙은이라는 것이다.

금정연
말씀하신 것처럼 프루스트, 카프카 같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TV, 스마트폰 같은 현대적인 기기들이 등장하는 게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읽고 있는데, 머리에 남는 건 없지만 그 문장들을 읽어나간 감각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것 또한 좋은 독서가 아닐까요? 라슬로 풍으로 짧지만 강렬한 인물평을 해주셨는데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똥개... 행복했으면...

고벽돌
극단적인 만연체에서 늘 느끼는 점이기는 한데, 제게 이 소설은 단지 긴 나열에 지나지 않아 보였어요. 사탄 탱고 하나면 이미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빠져들지 못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miamia
사탄탱고를 읽으셨군요. 궁금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나중으로 미뤄두었어요.

띠됴샐러드
그동안 바빠서 이 두꺼운 책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지난 주말 다시 속도내어 읽기 시작했어요.
아직 다른 분들 진도를 따라잡으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꽤나 묵직한 위치에 가름끈이 꽂히니 나름 성취감이 있는 독서네요 ㅎㅎ
이제 만연체에는 꽤나 적응된 것 같고요. 역시 읽는 사람을 배려하거나, 내용이 잘 이해되거나, 문학적으로 굉장히 수려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요.. 확실히 새롭고 독창적이긴 합니다.
굳이 뇌에 힘주지 않고 모든 내용을 잘 기억할 필요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후루룩 리듬 타며 읽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조금씩 이야기도 전개되는 것 같고요, 힘내서 마저 읽어보려고요.
월요일 파이팅입니다!
Paterson
‘펌/ 무한한 어려움‘까지 읽었습니다! 교수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옮긴 부분은 책의 문체와 특히 잘 어울리네요. 비록 무슨 말인지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교수가 죽었다고 간주되는 시점인 챕터 마지막 부분에서야 그런 생각을 전하는 대상이 생긴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무려 따라다니던 개...인 것도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교수와 남작의 서사가 과연 합쳐지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올려주시는 코멘트들도 너무 흥미롭게 잘 읽고 있어요!
랙돌
여행 덕분에 뒤늦게 읽기 시작합니다.. 두께가 살짝 두렵긴하지만, 재밌게 읽어보겠습니다 :)

수수몽
더디게 읽어 나가고 있어요..워낙 정독하는 느리게 읽는 독자로 진도 따라가기는 무척 버거우나 여기 올려진 많은 분들 이야기들 평론가님들 말씀해주시는 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 다행이에요 ㅎㅎ읽었으나 읽지 않은 것 같은 이 느낌들..책 읽다말고 그믐부터 읽고 있는 저도 함께 읽고 있긴 하겠죠?^^
별그니
만연체 소설을 원래도 기피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장난없네요.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앞에 대화를 읽어보니 조금은 힘이 납니다. 이달에 읽어야할 책을 다 읽었으니 이번주는 이 책 을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고양이라니
근래에 이상우 작가의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책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미장센과 더불어 오토바이 타고 스쳐지나가는 현대인 삶의 속도로 읽어야지, 단어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고 이럼 안되는구나, 오토바이에 내려서 자세히 들여다 보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구나, 나중에 집에 가서 누워서 다시, 아니면 어느 날 문득 다시 생각해봐야하는구나를 느꼈는데, 이 책도 비슷하게 느껴져요. 눈을 감고 귀를 열고 들리는 많은 소리 중에서 어떤 것은 의미가 되지 못한 채 흩어지고 어떤 것은 모아 의미를 구성할텐데 모든 소리를 듣되, 흘려 들으며 낚아야하는거 같네요.
miamia
이상우 작가의 광장 한편을 읽었을 뿐인데, 고양이라니 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겠어요. 화자, 문법을 넘어 길 위를 그저 흘러가는 영상 보듯 했거든요. 그럼에도 강렬했고요. 잠깐만 서보라고, 하나하나 붙잡고 의미를 두고 곱씹고 그러지 말고 함께 흘러가야 하는 것이었군요.

금정연
많은 부분에서 다르긴 하지만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며 종종 제가 ‘이상우적 모먼트’라고 부르는 순간을 마주하게 돼요. 저는 이상우의 소설이 특유의 리듬 속에서 4K 카메라로 세상을 비추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요, 말씀해주신 오토바이의 속도에 대한 부분과 “모든 소리를 듣되, 흘려 들으며 낚아야“하는 것 같다는 부분이 특히 공감 됩니다.
AAA
남작과 머리커가 어쩌면 서로에게 가장 큰 ‘오해’이자 ‘위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소설이 말하는 진짜 구원은 무엇일지,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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