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어제까지의 파트였던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를 조금 전에 다 읽었는데요,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머리커와 남작의 재회 장면도 그렇고,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이나 초반에 총을 팔던 농부가 피 흘리며 신음하는 장면, 교수의 집을 습격한 작은별이 총을 맞는 장면 등 만연체에 특히 잘 어울리는 장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금정연
TerryJ
오늘 파트인 <펌/무한한 어려움>을 읽어나가겠습니다. 이 파트에서 교수가 다시 등장하는 것 같은데 과연 교수는 그 사건 이후로 어떤 삶을 이어갈 지 궁금합니다.

심은
글을 읽어나가는 시간 속에서 이 작품이 글로 이루어진 세밀화를 보는 듯 합니다.

금정연
글로 이루어진 세밀화라니 멋진 표현이네요. 제게 이 글을 읽어나가는 시간은 무한히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숭덩숭덩 넘어가기도 하고 여러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는가 싶더니 뒤로 앞으로 뒤죽박죽 하기도 한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호디에
(펌 / 무한한 어려움)
이번 장은 도망다니는 교수와 그를 쫓는 오토바이족의 긴박한 상황을 서술합니다. 교수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형이상학적입니다. 교수가 전달하려는 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손에 딱 잡히지 않는 느낌입니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무한과 추상의 형상화, 실재, 정신, 탐구, 경험적 증거, 사물의 유한성, 일어나는 것으로써 이룩되는 현존, 그리고 두뇌와 앞서 언급한 것들을 통한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한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시선 정도로 납득하고 있는데요, 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혹은 뿌리가 되는 것)은 '두려움'이며, 여타 감정들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확장이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이해했습니다.
이 소설은 귀향하는 벵크하임 남작과 은신하고 있는 교수, 두 개의 서사가 별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읽을 때 이 두 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었는데요, 다시 읽으면서 저는 후작은 상징성을, 교수는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쓰려니 말끔하게 써지지가 않는데요, 읽으면서 차차 글을 정리해봐야겠습니다.

금정연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어서 오늘에야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읽었는데, 읽으며 교수가 언제나 나오나 했는데 '무한한 어려움'에 나오는 군요! 늘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희귀동물
[펌 -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남작이 도착했지만 폭망해버린 환영식, 머리커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작, 단테의 등장 등 갑자기 이야기가 급물살을 탄듯 전개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몇 분들이 언급해주신 것처럼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빌어서 다양한 유럽의 사회 문제(난민 문제, 경제적 위기감, 네오 나치 혹은 극우주의의 확산 등)를 언급하지만 작가의 입장(혹은 관점)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주인공으로 여길만한 남작은 '백치'로 그려지고 초점 잃은 눈으로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남작은 그저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에 머물러 있기 원하고 추억을 향수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서두에 자신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악장이라며 '경고' 했지만 실은 독자들에게 이런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목소리를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하고싶어하니까요 ㅎㅎ.
그리고 [펌 - 무한한 어려움]의 도입부에서 교수의 목소리는 굉장히 형이상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치광이의 내면의 소리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위에서 헝가리어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씀을 하신 분이 계셨는데, 저는 이 소설이 전체 악기의 음표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총보를 펼쳐 놓고 음과 쉼표를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총보를 보면서 보이고 들리는 부분이 더욱 많아지겠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지루하기 짝이 없는) 의미 없는 음표와 기호의 나열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좀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읽어보자는 다짐을 해보곤 합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작가가 헝가리어로 썼을 때의 글말의 리듬감과 운율이 어땠을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작가는 분명히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금정연
멋진 정리 감사합니다! 작가의 '경고'에 역설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해요. "이 소설이 전체 악기의 음표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총보를 펼쳐 놓고 음과 쉼표를 하나하나 읽어나가고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는 말씀은 너무 멋져서 제가 훔쳐서 나중에 다른 데 쓰고 싶네요. 확실히 이 작가라면 말씀하신 것처럼 글말과 리듬감과 운율을 너무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을 것 같아요. 그게 어떤 느낌일지는 영영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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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은
오늘로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를 다 읽었습니다. 역시나 소설의 전개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게 읽혔는데, 많은 분들이 독서 중에 써주신 이야기들을 읽으며 소설을 곱씹어보니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산머루 님께서 중후반부의 내용을 언급해주시면서 맨앞 <경고>를 '전체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고로 읽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 수록 모호했던 <경고>에 대한 독해가 제 나름대로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전환되고는 있었는데(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요!) 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읽어주셨지만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신 것 같아요. 저도 작가가 인간들이 집단화되어 가는 과정, 질서를 중시하는 비장함 등에 주목하고 그것이 얼마나 우습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탁월한 작가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아무래도 저도 이 장에서 가장 '사건'이라 할 만한 점은 두 가지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마리에타(머리커)와 남작의 만남, 그리고 실종 상태에 있었던 단테(콘트라)와의 만남이요. 둘다 기대와는 다른 것들만 남겨준 만남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처럼 화려했던 환영식에도 불구하고 남작의 귀향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낙차 때문인 것 같고요.
저는 마리에타에게 이입을 좀 했더니 너무 너무 슬프기도 하고... 너무 웃기기도 해서...ㅋㅋ @고양이라니 님이 말씀해주신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마리에타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보는 관점), 그렇게 읽어도 확실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남작이 그리움과 노스탤지어적 정서에 빠져 실체는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헝가리와 마리에타가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덜 아프기도 하고...ㅎㅎ
그럼에도 @sophia80 님 말씀처럼 저에게는 마리에타의 "큰 고통"이 크게 다가왔는데요. 특히나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 그러니까 머리커는 남작을 알아보고 남작은 머리커를 마리에타의 할머니 정도로 생각하며... 아니 근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진짜 너도 늙었잖아... 아무튼 그런데 머리커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작을 감당해야 하고요. 말을 해줄 순 없고 저도 절대 절대 말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입술을 과하게 오므리며 커피를 홀짝대는데, 작가도 너무하네요 그걸 포착해서 집요하게...
남작이 그 집에서 나오기 직전 둘의 침묵 속 대치 상황은 (이번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는데) 남작도 그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단테도 알고보니 이 마을에서 유명한 사기꾼이었던 거죠. 심지어 경찰서장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이고요. 얼 빠진 남작과 단테가 어쩌다보니 경찰서장으로부터 도주 중인 상황이 된 것인데, 두 빈털터리가 어떤 (끔찍한) 일들을 맞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소란스러웠는데요. 여전히 압도적인 속도감과 화려한 문체, 선명한 캐릭터성 등등 작가의 농락(?)에 기분 좋게 말려들면서요. 라슬로는 우리의 하루 중 가장 짧은 순간, 가장 작은 장면을 크게 늘리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 같아요. 길게 늘린다고 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게. 태블릿에 크게 펼쳐진 화면이 있다면 그중 아무곳에서 두 손을 대고 한 점을 죽죽 늘여 보이는...그런 것에 비유할 수 있달까요. 두 사람이 커피 마시는 장면만 해도 그 자체로 엄청나게 세밀하거나 미묘한, 혹은 민감한 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오직 문장만으로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데, 그렇다고 시간을 무한화하는 언어의 장엄함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우리 모두가 함께 읽으며 발견한 것처럼 소설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은 비장하고 엄숙한데, 어투는 가볍고 냉소적이기도 하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그 동일한 기법을 통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종 수준으로 집단화했다가,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인 층위로 끌어내리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많은 분들이 짚어주신 환영식이나 오토바이 무리, 경찰 서장, 시장 등을 묘사할 때는 개인성이 제거되고(캐릭터성은 부각되는 데 반해) 인간의 전형적이고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모습들이 조명되고, 이렌과 머리커, 머리커와 남작, 단테와 남작(심지어 단테와 택시운전사)에게서는 정말이지 개인적인 의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조명되잖아요. 인간에 대한 이런 양가적인 모습들이 작가가 헝가리를 바라보는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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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저도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까지 읽고, <펌/무한한 어려움>을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소설이 길기도 하고 정신 없는 면도 있지만 그 틈에 캐릭터들을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금정연 작가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여담'으로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렇고요. 남작 캐릭터도 저는 참 재밌다고 생각했는데요, 소설 속 남작은 '자신의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의 전형이죠. 괴수와 히어로의 싸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화인 <원펀맨>에 보면 '킹'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사실 싸움은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킹'은 어떤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서 그 세계에서 히어로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히어로 랭킹 1위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리인데... 사실 '킹'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속임수를 쓴 것도 아니고, 1위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사실 히어로와 전혀 맞지 않게 겁이 엄청나가 많은 인물이거든요. 그런데 만화적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계속 괴수를 무찌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인물이에요. 자신의 지위에 전혀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그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부담스러울 뿐이고 돈도 없지만 사람들은 마을을 구원해줄 구세주처럼 여기고 있는 남작이 딱 그런 인물 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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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사실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이 '남작'이라는 자리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아이러니가 우스꽝스럽고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다는 느낌이네요. 남작은, 실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 인간들을 두려워하고요. 남작에게는 삶이 너무 거추장스럽기만 한 것처럼 보여요. 남작이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고 해서 왜 그랬을까 궁금했었는데, 이번 장에서 남작은 단지 '카지노'라는 공간에 앉아 있고 싶었을 뿐이고 카지노에서 나올 수 없도록 하는 수작에 계속 당해서 그냥 모든 재산을 탕진할 때까지 거기 그렇게 슬롯머신과 포커를 하며 앉아 있었다는 설명이 나왔는데 그게 참 재밌었어요. 그는 자신의 '마리에타'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지만 사실은 그 마음을 진정한 것으로 유지할 역량조차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고요. 그가 다른 모든 세계를 배척하며 그 대신이라고 할 것처럼 간직해온 어떤 순정...마저도 정작 머리커를 마주하고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에서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작가는 이에 대해 풍자도 연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마 풍자도 연민도 인간을 대상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이 비인간으로서의 남작이 제게는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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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머리커도 재미있는 인물인 것 같아요. 마을사람들처럼 드러내놓고 속물적인 건 아니지만 머리커에게도 기본적으로 허영이 있는데요, 금정연 작가님이 지적해주신 대로[머리커는 사실 편지를 받고도 벵크하임(벨러)를 기억하지 못했고 겨우 기억을 더듬은 끝에 "그래, 그녀가 고등학교 다니면서 도보시 아담과 깊은 관계였을 때였는데, 그때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남자애와 몇 번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죠.] 벨러 남작이 원래 머리커에게 그렇게 대단한 인상을 준 사람은 아니었죠... <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 부분을 보면 본인 말로도 아담에게 푹 빠져 있던 시기였고, 벨러에 대해서는 뭔가 나이도 헷갈리는 것 같아요. 211쪽에 보면 "난 열일곱인가였고 그는, 즉 벨러는, 그러니까 그는 분명히 좀 더 어렸어, 열다섯쯤, 아니면 열여 섯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사실 기억이 안 나"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조금 지나 216페이지에서는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를, 그러니까 벨러를, 역에서 나오는 그를 다시 만났어, .... , 그 순간 깨달았지, 그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그도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그에겐 뭔가가 있었어"라고 나이를 헷갈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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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늘 어떤 다른 세계를 꿈꾸고, 더 높은 무엇인가를 꿈꾸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머리커의 그런 마음은 말하자면 세계와의 대면 속에서 일종의 패배를 겪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적어도 겉으로는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죠. 그러다 갑자기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요. 스쳐지나갔던 인연을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이었던 것으로 바꾸어 기억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이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게다가 할머니가 된 머리커에게 아주 깊은 곳에 불씨처럼 남아 있던 허영은 또 젊을 때와 같을 수도 없고요. 저는 머리커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머리커가 세상에 잘 녹아들고,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실망에 익숙해지면서도, 남작처럼 세상(혹은 삶 자체)를 완전히 등져버리거나 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완전히 버려버리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 지금의 머리커에게 껍데기 같은 남작은 앞으로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머리커를 봐서라도 둘이 어쨌든 잘 됐으면 좋겠지만 이 상태의 남작과 잘 되는 게 머리커에게 좋은 게 맞긴 할지도 걱정이 되면서... 소설의 뒷부분이 참 궁금해지네요...

Henry
고백하건데, '이 계절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그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씸 좋은 분들의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이상하게도 등가에 수렴합니다. 어떻게 읽고 반응할지, 마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미스터리 스릴러 연재물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금정연
이 계절의 소설 겨울과 가을에는 모임 시작 전에 제가 먼저 책을 읽고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동시에 읽어나가니 또 전혀 새로운 느낌이네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 진도를 못 따라갔을 때면 올려주신 내용들을 보고 다음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이런 게 함께 읽기의 즐거움인 것 같아요!

금정연
“ ...그녀의 안마법은 자기만의 즉흥적 수법이어서, 남편이 안마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늘 이렇게 말하길 그럴게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즉흥적 수법으로 하는 것밖에 몰라요, 그러고는 어깨에서 시작하여 승모근을 타고 목으로 가서 목덜미까지 올라갓으나 사실 이 부위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으로, 남편의 몸에서 이 부위는 좋아하지 않았으며 물론 결코 그에게 말하지는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목덜미뿐 아니라 머리 뒷부분 전부가 싫었으나 남편은 늘 목부터 정수리까지 이 부위를 안마받고 싶어 했으며 물론 그녀가 싫어한 것은 그의 대머리 머리통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차라리 머리통 전부가 대머리였으면 더 나았을 것이고 그녀는 개의치 않았을 테지만 이렇게 정수리 앞쪽은 벗어졌으되 뒤통수 아래쪽부터 목까지는 아직도 털이 조금 남아 있었고 그 아래로는 뻣뻣한 센턱이 되었던바, 글쎄, 이건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녀가 여기에 익숙해지지 못했다고 잘라 말하진 않았을 것이, 30년이면 무엇에든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만 좋 아한다고 묻는다면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61~362,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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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너무 상세하고 사실적인(현상이 아니라 심상의 차원에서) 묘사라 읽으면서 한참 웃은 장면이에요.

내가그린기린
딱 과하기 직전의 선까지 닿은 상세한 묘사에 저도 온몸을 배배 꼬면서 읽었습니다.

금정연
전체적으로는 쉽지 않은 독서였지만, 중간중간 이렇게 생생한 부분들이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금정연
“ ...옆에 놓인 콘크리트 슬래브로 터덜터덜 돌아가 한참 동안 코를 풀며 고개를 끄덕거리되 마치 어디선가 음악이 연주되기라도 하는 듯, 마치 베이스 드럼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듯 끄덕거렸으나 음악은 어디에도 없었고 기억뿐이었던바 그것은 '해피 하드코어' 음악으로, 이따금 시설의 인터컴 시스템에서 흘러나왔는데, 그들에게는 오로지 힉시였기 때문으 로, 아아아니, 개머뿐이지, 그래, 좋아, 그들은 이렇게 합의했는데, 하지만 최고는 스코티 브라운이지, 무슨 응원가처럼 그들이 말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실제로 응원가여서 이따금 그들은 저 이름들을 되뇌면서 다리로 박자를 맞췄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말하자면 앉아 있을 때면 계속 다리를 흔들었다는 것으로, 이젠 할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76-377,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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