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어느 시점에 그가, 그들이 이미 그토록, 하지만 그토록 여러 번 본 사진의 주인공이자 그들이 그토록, 하지만 그토록 많이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에 그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를 환영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그가 마침내 열차에서 하차할 것이라면 어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것이었으니-그것은 그 거창한 질문과 관련하여 시민 전부가 총론적으로는 당연시했으되 각론만이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모호한 채로 남았기 때문이므로-남작이 무엇을 먼저 시작할지, 즉 얼마시 저택을 개축할지, 성을 재건할지, 아니면 오랜 숙원이던 쾨뢰시강 제방의 작은 분수를 먼저 설치할지, 호텔 일곱 곳을 먼저 건설할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이 목록은 이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들어온 뒤로 도시 전역에서 회자되었는데, 끊임없이 확대되고 개작되었으며 도시 주민들은 침실에서 이발소에서까지, 상점에서 사무실에서까지 오만가지 경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으며 심지어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이 문제로 토론했으니 그야말로 언제나 어디서나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일어날지만 이야기했으며 이제 그들이 생각하기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더는 근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기차가 다가오면서 그것, 말하자면 남작의 도착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으로,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니, 말하자면 기차가 도착하고 있었고,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에 이 사건의 축에서 도착하고 있었고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294-295,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펌/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 남작이 귀향하기 전에 그를 맞을 준비를 성대하게 하고 있는 헝가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들 남작의 재산을 기대하기 때문이죠.. 머리커의 서사가 흥미롭네요. 근데 기억도 잘 못하고 제대로 연애를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수십년 후 갑자기 설레어하는 머리커가 이해가 잘 안되네요. 머리커도 돈 때문일까요..? 기차역에는 인파가 넘치고 드디어 기차가 도착해요. 하지만 이렇게 유난을 떠는 헝가리의 모습에서 폭풍의 전야같은 분위기가 보이기도 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저도 오늘로 <펌/그가 내게 편지를 썼다>까지 완독했습니다! 위에 옮긴 문장이 이 소설 전반이 흘러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사건의 진실이나 핵심 자체보다는(그런 게 딱히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도시 전역에서 회자"되는대로 말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어지는.... 도대체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이 '앎'에 있어서 더 우위에 있는 이가 없어서인지 서장이건 관장이건 일개 직원이건 간에 모두가 공평하게 '우당탕탕!'인 모습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 말하자면 '남작은 도착할 수밖에 없다, 기차를 탔으므로...'라는 사실만을 분명한 사실로 입수한 채... 그것 주변에서 헛돌고 떠돌고 미끄러지고 부풀려지는 말의 흐름 속에 내내 내던져진 상태가 이 소설을 읽는 주된 기분이자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에서 있는 것은 '기다림' 자체 뿐이라는 생각인 거지요. 물론 400여쪽이 더 남았지만.... 아무튼 무엇인가가 닥칠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는 그것을 향해 말들이 증폭하다 못해 거의 폭발하는 수준에 이를 때, 그때 이상한 희열 같은 것을 전달하는 게 문학의 특기 같기도 하고요. 소문으로만 무성한 남작의 정체와 이동 경로, 남작과 머리커 두 사람의 진짜 '접촉'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서사, '손님'을 기다리며 허우적대는 마을 주민들의 헛발질... 말의 거품, 혹은 주변부로 내쳐진 말의 찌꺼기들이 이렇게 풍부하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저도 많은 분들이 짚어주신 것처럼 크게 세 가지 장면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한 편의 시트콤 같다는 인상평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페리윙클 님의 말씀처럼 "마술적 사실주의"와 같은 장면들이 있었죠.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풍경. @금정연 선생님께서 '코즈믹 호러'라고 정리를 해주셨는데요. 저도 그 부분에서 어떤 압도적인 경이감과 공포, 두려움과 나아가 무력감? 같은 것을 전달 받을 수 있어서 놀라웠어요. 그것과 대비되는 것이, 역시 몇몇 분들이 말씀해주신 머리커와 남작의 서사, 더 정확히는 머리커(마리에타)의 내면의 풍경 묘사 같은 것이었는데... 저도 이 소설 전반부의 진짜 주인공은 머리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금정연 선생님 말씀처럼 그의 1인칭으로 시작되는 초반부의 영향력도 큰 것 같고요. 머리커가 3인칭으로 묘사될 때도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감각적으로 너무 잘 와닿아서 몰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료 님이 머리커의 기대감이 남작의 도착과 함께 보상 받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할 것에 대한 우려를 전해주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머리커가 자신의 '늙음'과 시간의 변화를 계속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이 행운, 운명, 젊음 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이 배반될 미래와 함께 읽히면서 더 애틋해지는 것도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혹은 도대체 영문을 좀 알기 위해서 방구석에서 모두 뛰쳐 나온 날. 그 수많은 인파의 기대감, 실망감, 냉소 등이 뒤범벅된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역장이 그것을 한껏 의식하고, 기차의 도착을 알리지/알리지 않는 모습. 역장의 미묘한 뉘앙스에 반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거국적인 손흔들기"에 동참하게 되는 모습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저도 그 군중들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400쪽이 남았네요...많은 일이 더 일어나고도 남겠죠? 곧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서사의 주인공이 교수일 때와, 벵크하임 남작일 때의 톤이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벵크하임 남작에 대한 묘사가 무척이나 기이해서 만화 캐릭터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읽다보니 점점 쉼표가 마침표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만화 캐릭터 같다는 말씀이 딱인 것 같아요. 교수는 블랙 코미디 혹은 스릴러 영화의 등장인물 같았는데요. 저도 방금 읽으면서 쉼표가 마침표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건 눈이 가물가물해서 그런 거지만요...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내게 말했으므로] 기관사의 묘사로 시작되는 도착역의 거대한 실패는 마치 영화 같아요. 꽃으로 장식한 사두마차에, 군모를 쓰고 가죽옷을 입은 오토바이족에, 나부끼는 깃발 아래의 여성 합창단까지. 다시 보니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생각났어요. 각 인물들은 나름 심각하고 무거운 감정을 갖고 있지만 영화에선 아름답고 코믹하게 그려지듯이, 이 엉망진창인 도착 장면은 소리를 싹 제거하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깔면 좋을 것 같아요. 오토바이의 경적이 들리지 않아도 그들이 서로 눈치를깔릴 것 같단 말이죠.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은 여기저기 뿌려둔 떡밥을 끝내 회수하지 않아요. 이 세상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거나, 속시원한 결말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작가의 신념을 내포한 구성일까요.
오토바이의 경적이 들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선율을 배경으로 경적을 누를까말까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본 것처럼 눈에 그려집니다 라는 글이 어떻게 저렇게 올라갔을까요😅
남작의 엉망진창인 도착 장면이 웨스 앤더슨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말씀해주시니 정말 정말 그렇게 느껴지고! 더욱 재밌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웨스 앤더슨 영화를 떠올리진 않았는데, 말씀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런 느낌도 나네요!
"오직 나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이니 자네 악사들은 내 조율에 맞춰 연주해야 하며 단언컨대 경험상 말하노니 내게 저항해봐야 아무 소용도, 어떤 의미도 없으며" <경고> 장에서 악장이 한 말을 읽고 이 소설이 전체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난민이 유입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현실로 인한 과거에 대한 향수-'카다르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와 빵을 줬습니다만, 그 시절이 다시 와야한다는 뭐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그때는 없는 게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바'라고 뱅크하임의 귀향 열차의 승무원 헝가리인 차장은 생각합니다. 찾아보니 카다르 아노시는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사회노동당 서기장 겸 장관회의 주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역임한 인물이네요- 이런 상황에서 전체주의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기 충분하겠죠. 마침 <잘난 당신을 쓰러뜨리고 말겠어> 장에서 교수가 '작은별'을 죽인 다음 머릿속에서 맴돈 문장이 '나치 돼지들, 너희는 결코 나를 못 이겨, 너희는 결코 나를 못 이겨'라는 문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작은별'이 속한 오토바이족, 자칭 타칭 '향토방위군'으로 불리는 이들은 '질서'를 중요시하고 '정직과 이상'이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경찰서장과 결탁한 자경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신뢰하고 기다리는 분이 바로 뱅크하임 남작입니다. 이는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장에서 헝가리인 차장이 카다르 아노시를 그리워하는 것과 겹칩니다. 뱅크하임 남작은 네오나치들이 표면에 내세우는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인물인 셈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틀을 만들고 소설을 읽으니 사실 좀 맥이 풀립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뱅크하임 남작이 아르헨티나에서 귀향을 하고 귀향을 하면서 46년 전 사랑했던 마리에타를 생각하고 마리에타에게 편지를 쓰고 그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에 굉장히 몰입했고 뱅크하임의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기까지 했는데 제가 만든 틀에 갖히는 순간 시시해져 버렸거든요. 다시 틀을 거두고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머릿속이 어지럽네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니 저는 더 재미있네요. 역시 함께 읽으니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읽었다면 이런 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을듯요. 처음에는 심하게 지루해던 책이 조금씩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그렇게 본다면 남작이 '아르헨티나'에서 귀향했다는 것도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전범(나치)들이 남미라 도주했고, 그중 아르헨티나에 가장 많은 나치들이 숨어 지냈다고 하죠(아이히만 포함). 그런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어느 한 틀에 가둬지기를 거부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을 때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데요. 화이팅입니다!
마리에타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약간 우스꽝스러운데, 그건 그거대로 잘 어울리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마리에타의 행동은 제외하고 벵크하임 남작의 행동은 이해가 가요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었는데도 돌아가고 싶은, 그 때의 향수가 부활하다니 끔찍한거죠...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헝가리가 저질렀던, 독일보다 더 잔인한, 만행이 생각나네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유럽 소설은 더 흥미진진한거 같습니다
확실히 문화나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생각하면서 보면 소설이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소설은 다르게 읽을 여지가 훨씬 더 많은 것 같고요.
400. 그의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 의자를 좀 더 가까이 당겼으며 추위에 몸을 떨었으나 움직이지는 않고서 빈 의자 옆에 앉은 채 쾨뢰시강 강둑에서 잎을 모조리 떨군 버드나무들을 테라스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얼마 지나자 그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람이 버드나무의 길고 촘촘하고 헐벗은 가지를 흔들리게, 앞뒤로 흔들리게, 강의 얼음장 같은 물 위로 차갑게 하늘거리게 하는 광경뿐이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누구라도 기차에서 선뜻 내리지 못했을, 정신없던 환영식이었습니다. 요란하고 소란한 중에 주인공은 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남작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빈 의자를 곁에 두고 앉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저도 한숨 돌립니다. 한 번에 읽어지는 페이지가 늘어나네요. 이쯤되니 마침표 없이도 전혀 숨이 차지 않고요🤣.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챕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확실히 읽어나가면서 속도가 붙는 소설 같습니다. 저도 점점 더 읽는 속도가 빨라지네요.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 이는 개탄할 만한 일이니 그들이 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한 발 더 내디디는 용기,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었으니 그들은 비난받았으며 어쩌면 오늘날에도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바,(...)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용기였으니 그들은 비겁했고 이날까지도 여전히 비겁하며 참된 무신론자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쨌든 저 측은한 거렁뱅이들, 어제와 오늘의 무신론자들, 그들은 거창한 문장을 내뱉었고 자신들의 말 때문에 즉시 바지를 적시고 말았으나 그들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그 중요성을, 자신들이 방금 발견한 것의 놀라운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기 때문이며ㅡ(후락)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481,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유럽권 독자들에게 별점이 높다는 것이나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 혼자 읽었다면 몰랐을텐데 뜻밖이에요. 오해로 비롯되는 한바탕의 상황들이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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