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하료 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본 작품은 헝가리어가 아닌 영어 번역을 중역한 것인데요, 끝날듯 끝나지 않는 한국어 문장을 읽다가 문득 영어로 읽는다면 전혀 다른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결어미와 연결어미를 구분하는 한국어와 달리, 영어에서는 많은 경우 쉼표 부분에 마침표를 찍어도 별로 상관이 없잖아요. 말하자면 마침표 대신 쉼표를 쓴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코스모스> 같은 느낌인 거죠.
"이제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괴상스러운 모험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땀, 푹스가 걷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나, 바짓가랑이, 구두굽, 모래, 우리는 발을 질질 끌며 걷고 있다, 걷고 또 걷는다, 토양, 바퀴 자국, 유리알처럼 빛나는 조약돌, 광채, 폭염의 웅웅거림, 이글대는 열기, 태양 아래 사방이 온통 시커멓다, 작은 집과 담당 들, 평야, 나무, 이 도로, 저 행렬, 어디서 왔는지, 무슨 목적인지, 할 말은 많지만, 솔직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아니 실은 가족 탓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나는..."
아무래도 연결어미로 이어진 문장이 계속되면 구어적인 느낌, 노래 같은 느낌, 예스러운 느낌 같은 게 들잖아요. 그리고 그건 헝가리어는 몰라도 영어 독자들이 받는 감상하고는 조금 다를 테고요. 그래서 만약 연결어미를 쓰지 않고 그냥 종결어미를 써서 번역을 했다면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해졌는데요, 우연히 그런 식의 개인 번역을 해서 블로그에 올려주신 글을 발견했어요! 때마침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이어서, 여기에 옮겨 봅니다. (32쪽 밑에서 다섯 번째 줄부터 비교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와 기자들 사이에 어떤 대화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까진 서로 그렇게 많이 대화를 한 것도 아니긴 했다. 다만 어젯밤 짧은 첫 번째 인터뷰가 있었고, 그리고 오늘 아침-어젯밤 따로따로 차를 타고 도착하고, 어떻게 이 일이 전개될지 그냥 모니터링하고 있던 그 센세이션과는 대조적으로-오늘 아침, 더욱 짧은, 두 번째 인터뷰가 있긴 있었다. 교수는 자신 오두막의 넝마들과 빗장들을 지나 다가오는 차 소리를 명확하게 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후로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여자애에게 질문을 해대지만 얻는 게 없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양 행동했다. 그래서 기껏해야-당분간-도시의 거주자들이 진척 보고들로 신이 날 만한 그런 일은 없었다. 기자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그들 편집자에게 십 분마다 전화를 넣었다. 저 소녀는 교수의 오두막을 마주하고 여기 서 있고, 교수는 밖을 내다보고 있고, 그녀는 같은 말이 적힌 피켓을 높이 치고 들고 있다. 그게 기자들이 그날 아침 이후 죽 보고할 수 있던 전부였다. 그것도 그리 많지도 않았다. 왜냐면 새로운 일은 없었기 때문에, 사실 거의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터져 나오는 스캔들에 관련한 새로운 정보를 닦달해대는 그런 축의 대중들이-한편 편집자들의 말을 빌면,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뉴스 항목들에 이끌렸다-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두개 텔레비전 방송국내 그리고 두 개 편집장 사무실에서 소위 ‘배경 자료’라도 보내라 고함을 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그런 자료를 얻으란 말인가. 기자들은 역정을 내며 응수를 했다. 여기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바깥 가시나무 덤불 꼭 한가운데, 얼어붙는 바람 속이다. 거기 소녀는 오늘 아침 공개적으로 했던 말에서 더 이상 한 마디도 더 뱉지 않고 있고, 그러니 진짜 아무 뉴스도 없다. 오직 그녀가 거기 어떻게 서 있는지 뉴스 밖에 없다. 그 자리에 뿌리 박혀, 때때로 경멸적으로 그녀의 “양귀비처럼 붉게 타오르는 신묘한 입술을” 삐죽 내밀고, 한편으로 피켓을 들어 올리고 있다, 그리고 헝가로셀 판이 교수 오두막에서 제자리에 벗어나는 항상 그 순간에 정확하게 그런다." (출처: https://susanyung.tistory.com/310)
와우, 정말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요. 저도 어설픈 솜씨나마 몇 권 번역을 했지만, 번역은 정말 어렵고 매력적인 일 같습니다.

코스모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5권. 전위적인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장편 소설.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라 칭송했던 곰브로비치가 남긴 네 편의 장편 소설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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