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말하자면 1900년대에 조선이 맞닥뜨린 세계는 문명론적 위계로 분할된 세계였다.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경계에 따라 엄격한 구분이 적용되는 대신 각 집단 내부는 균질한 단일체처럼 가상되는 것이 그 세계의 특징이다. 개인이나 민족 단위는 속까지 환히 비치는 투명체로되 민족국가 사이는 짙은 색 구분선이 뚜렷한 그런 지구의를 떠올려 보아도 좋겠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0쪽, 권보드래 지음
민족의 독립과 자강을 염원한다는 점에서 1900년대와 1910년대의 민족주의는 마찬가지지만, 1900년대의 '대한제국만세'가 진화론적, 문명론적 믿음에 기초해 있었다면 1910년대의 '독립만세'는 그 믿음을 회의하고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는 가운데 자라났던 것이다. (...) 여기서 '독립만세'를 부르짖기까지는 적어도 두 가지 변화를 겪어야 했다. 하나는 식민지라는 차별과 수탈의 구조를 뼈저리게 경험하는 것, 또 하나는 진화론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고와 감성의 체계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1-212쪽, 권보드래 지음
인류적 이상과 민족적 가치 사이에 일종의 전도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 평균적이며 전형적인 양태는 "우리도 세계 사람과 무슨 교섭을 짓자. 인류의 문명을 위하여 무슨 공헌을 하자"고 요청함으로써 민족의 존재 의의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5쪽, 권보드래 지음
일본의 경우,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달리 제1차 세계대전 시 이룩한 비약적인 경제,사회적 발전이 다이쇼 사상의 근거였다. 발전하는 사회의 작관적인 사유에 힘입어 신칸트학파가 대표하는 인도주의, 이상주의가 적극 수용될 수 있었으며 유소년 인구가 장노년을 압도하는 독특한 사회 구조 속에서 자아와 내면에 대한 관심 또한 본격화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런 자신감 혹은 낙관성이 정치로부터의 이탈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주목해둘 만하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6쪽, 권보드래 지음
19세기 이래 서양 사상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참조해내고 '세계'와 '인류'라는 계기를 발견했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의 문제의식은 같을 수 없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 일본 청년들이 반발했다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가 허락될 수 없다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다이쇼기 일본 청년의 비정치성이 정치적 경험을 포식한 뒤에 온 것이라면, 조선 청년들에게 있어 정치성의 탈피란 패배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8쪽, 권보드래 지음
식민지 청년들에게 정치는 포기된 것이 아니라 금지된 것이었기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8쪽, 권보드래 지음
저는 너무 열심히 읽나 봅니다. 읽다보면 뒤쳐질 것 같아 오늘은 3부 1장을 읽고 있는데 289 페이지에 원각사지 10층석탑 일명 '백탑(白塔)'에 관한 얘기가 나오네요.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그밖에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과 백동수 등이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교유했다는 '백탑파' 이야기. 아시다시피 그 백탑파가 오늘 날 탑골공원인 건 다들 아시죠? 근데 이걸 보는데 괜히 제가 좋아하는 김탁환 작가가 생각나네요. 그 유명한 백탑파 시리즈. 이분은 도무지 읽는 것을 쫓아 갈 수 없는 작간데 암튼 재밌다는 거죠. 한동안 못 읽었는데 올핸 다시 불을 짚혀 봐야겠습니다.
방각본 살인 사건 2우리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기 중 하나인 18세기 말, 정조 치세를 배경으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젊은 실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리 소설 형식의 흥미로운 작품을 내놨다.
방각본 살인 사건 1우리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기 중 하나인 18세기 말, 정조 치세를 배경으로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 젊은 실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리 소설 형식의 흥미로운 작품을 내놨다.
3·1운동의 초기 국면이었던 1919년 3월 8일 윤치호가 「조선인을 위하여 비애」라는 글을 발표했을 때 그는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늘 일기에 쓰던 대로 그는 "약자는 항상 종순(從順)하여야만 강자에게 애호심을 기(起)케 하여" 평화의 기초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역설했다. 충실하고 모범적인 노예가 됨으로써 강자의 호감과 신뢰를 사고, 그럼으로써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는[相和相愛]' 세계를 이루자는 제안이었다. 문명국의 기준을 초과할 만큼 문명화됨으로써 강국을 감복(感服)시키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윤치호나 백대진의 입장을 약자의 현실주의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 198, 권보드래 지음
저는 이 순종적인 문장이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어요. 폭력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를 더 자극하지 않아야 덜 맞을 수 있다는 걸 철저히 알고 있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는듯한. 쓰면서도 아프네요.
시대는 다르지만 충실하고 모범적인 노예비스무리로 현실과 타협한 적이 많아서일까요? 저같은 범인의 현실주의 같기도 해서 저도 많이 쓰리네요;;
식민지가 되면 다 죽고 추방당하고 재산을 빼앗길 것이라 생각한데 비기면, 나라 잃은 후에도 일상은 뜻밖에 어제와 비슷했다. 여기서 '독립만세'를 부르짖기까지는 적어도 두 가지 변화를 겪어야했다. 하나는 식민지라는 차별과 수탈의 구조를 뼈저리게 경험하는 것, 또 하나는 진화론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고와 감성의 체계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212, 권보드래 지음
식민지 조선에서 '인류'와 '세계'는 결코 민족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 개인이 민족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인류나 세계와 조우한다는 사상의 전통은 한반도에서 실로 희귀하다. 민족을 거부하는 개인, 아일랜드인이면서도 아일랜드어를 거부하고 "아일랜드는 제가 낳은 새끼를 잡아먹는 암퇘지다" 같은 통렬할 독설을 날리는 청년도 거의 키워낸 바 없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p.219, 권보드래 지음
유관순의 애국은 가혹한 대가를 가져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날 목숨을 잃었고, 감옥에서 "저년이 너무 잘난 체하다가 제 부모도 잡아먹고 (···) 저년 하나 때문에 몇 고을이 쑥대밭이 되고 (···) 아이고 요년!" 같은 동리 아낙의 악다구니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도 열여섯 살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관순은 애달픈 목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간수들이 달려가도 개의치 않고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를 외쳤다. 간수가 감방문을 열고 구타하여 그 소리를 잠재운 후에도 관순의 흐느낌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나는 이제 아무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그런 내용이 나오나요? 그런 말 나오고도 남죠. 어디 유관순 뿐이겠습까?
순응하고 어리석은 듯 보였던 사람들은 3.1운동을 통해 새로운 주체로 거듭났다. 특히 1910년대에 자라난 젊은 세대가 그러하였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63, 권보드래 지음
성실히 노동하여 사사화되고, 가정화된 개인의 영역을 공고히 한 후, 여가에는 건전한 쾌락을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는 공익심.자선심을 견지함으로써 성공적인 타협을 이루는 것이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모범적 처세술의 요약본이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71, 권보드래 지음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양 사상가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참조해내고, ‘세계’와 ‘인류’라는 계기를 발견했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의 문제의식은 같을 수 없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은 데 일본 청년들이 반발했다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국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가 허락될 수 없다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218, 권보드래 지음
@오구오구 @롱기누스 @stella15 우리는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위선을 낮춰 보고 심지어 잘 못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저는 위선이야말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요. 예를 들어, 한참 전(2019년)에 냈던 책(『과학의 품격』)에서 이런 얘길 쓴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니면 말고 식의 가설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든 타인을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는 30퍼센트와 그런 마음 따위는 없는 30퍼센트 그리고 그 양극단 사이의 40퍼센트로 구성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남을 도울 마음 따위는 없는 30퍼센트마저도 평판이 나빠질 위험이 생기면 기꺼이 타인을 배려하는 척이라도 한다. 이것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비밀이다. 설사 그것이 자발적이지 않더라도 알 게 뭔가? 어차피 사람 속은 알 도리가 없는데." (71쪽) * 주말에 읽던 책에서 그런 주장과 공명하는 비슷한 프랑스 격언구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 뭐예요. 사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나 사회의 현실의 최고 목표는 '우아한 위선'이 대세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추세가 꺾였다는 게(그게 '정직한 야만'이든 '생야만'이든) 지금 한국 사회 또 전 세계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덕이 미덕에 마치는 경의'라는 표현은 17세기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작가 라 로슈푸코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명한 격언구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경의다”를 연상하게 한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214쪽,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YG 위선의 패르소나.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라는 표현은 사실은 제가 한 말은 아니고, 서울대학교 이문영 교수님께서 방송에서 하신 말씀인데요, 트럼프 2.0 시대가 등장과 함께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대해 이렇게 표혆하셨던 것 같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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