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푹 빠져서 쭈욱 읽다보니 어느덧 2부까지 끝냈습니다. 중간에 생각의 흐름이 끊길까봐 나중에 다시 찾아볼 부분을 포스트 플래그로 붙여가며 읽었더니 벌써 책이 플래그 무더기가 되버렸네요? 그런데 왜 책등은 벌써 갈라지는 걸까요? 이건 아니잖아요? ㅠㅠ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3.1운동을 바라보게 되어서 읽을 수록 생각이 많아지네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일반 대중이 세계 흐름과 발맞춰 논의의 장을 펼친 첫 번째 사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 전개의 공간이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세계 시민 정체성이 만들어진 최초의 사건이기도 한 것 같구요. 1차 세계대전 후 이상주의와 세계주의를 흡수하며 한중일 3국이 (신해혁명, 다이쇼 데모크라시 등)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저자분 이 책으로 비난도 꽤나 받으셨을 듯 하네요.
생전 처음으로 우드로 윌슨의 14개 조항 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아저씨, 본인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약소국 국민에게 쉽게 깨질 꿈과 희망을 풍선 불 듯 불어 넣으셨다고 원망해야 할지, 그나마 동유럽 국가들은 독립했으니 다행이라고 보아야 할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소피아

연해
저도 이 부분이 참 조심스럽습니다. 친일파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기는 한데요.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실리를 악착같이 챙길 만큼 사리에 밝은 편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할 정도로 용감하게 앞장서는 사람도 아니라서, 그 중간 어디쯤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사람. 그러다 엉망진창인 현실을 견디다 못해 홀로 조용히 자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회사에도 비슷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 같은데요. 가끔 뭔가가 불꽃처럼 솟아오르려다가도, 현실에 다시 안주합니다. 사회 초년생 때는 불의를 보면 이리저리 부딪치기도 하고, 남들처럼 조용히(가만히) 좀 살면 안 되겠냐고 엄마에게 핀잔도 자주 듣곤 했더랬죠. 전 직장도 비슷한 이유로 과감하게(?) 그만뒀고,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때랑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현실적인 부분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고, 이상주의가 지나치면 얼마나 독인지도 알 것 같고(언행일치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럭저럭 제 한 몸 건사하는 사회인 1 정도가 되어가는 중.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화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서 극중 형의 모습처럼,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면(영화에서는 살아있었다는 게 반전이었지만, 어쨌든) 친일파든 독립운동이든, 어느 쪽으로든 확실히 돌아설 것 같아요. 제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처단(?)하는 방향으로요. 좀 지독한가요?
이래저래 고단한 세상살이, 하지만 책 읽는 건 좋아요. 한 줄기 빛이랄까(헷).

borumis
아뇨. 실제로 전쟁에서 몸을 던져서 총알을 받고 싸우는 군인들도 실은 이데올로기나 어떤 나라나 원대한 어떤 것에 대한 충정보다는 같은 전장에서 함께 하던 전우들을 위해 싸우는 일들이 더 많다고 하니까요. 멀고 추상적인 국가보다는 가까운 동지나 가족의 고통이 더 와닿을 것입니다.

소피아
@YG 링크해주신 책들 목차 훑어보았는데.. 제 취향이 맞는 거 같습니다. ㅎㅎㅎ 우선 <독립운동 열전 1>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3월 1일의 밤>과 <이완용 평전>을 완독한 후에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권 모두 전자책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borumis
그러게 말입니다. 도서관에도 없네요.. YG님이 추천해주시는 책들 중 논픽션 벽돌책들은 도서관에 없을 때가 많은 듯.. ㅜㅜ

진공상태5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띈 책입니다. 이 그믐방이 아니었다면 눈에 띄었을지 모르겠어요.

한국인은 참지 않아 - 10대가 알아야 할, 우리가 바꾼 역사임진의병, 동학 농민 운동, 항일 의병, 3·1 운동, 광주 학생 독립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그리고 촛불 집회를 통해 ‘참지 않는’ 한국인이 저항의 기술을 숙달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 본다. 참지 않는 우리 한국인들은 그동안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맞서 싸워 왔을까?
책장 바로가기
밥심
“ <2장 대표: 자발성의 기적>
63쪽
33인중 상당수가 2월말에야 독립선언서 서명을 제안받았고 그중 일부는 선언서를 일독해본 일도 없이 서명에 동의했지만 그런 비체계성과 즉흥성에도 불구하고 ‘민족대표‘로서의 자기 결의 자체가 전국적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79쪽
이들은 부정확한, 그러나 현재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강렬하게 실어나르는 소문에 의해 스스로를 일으켰고 그럼으로써 현실을 바꾸는 동력을 만들었다.
84쪽
지금껏 계승되고 있는 ‘민족 대표’라는 명칭, 이것은 ’대표’ 개념 자체가 해체 재구성되고 있던 세계적 상황에서 일어난 숱한 실험 중 하나가 성공한 결과였으며, 그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은 봉기 대중이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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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선언서를 일독해보지도 않았다는 문구에 하루 전 읽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떠올랐습니다. 독특한 책이었고 몽테뉴가 자신이 쓴 글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끝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마지막 파트인 ‘대처요령’은 설렁설렁 넘어갔습니다. 처음엔 쉬어보였는데 의외로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부정확한 소문에 따라, 나쁘게 말하면 부하뇌동했다는 뜻도 되어 최근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태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ㅠㅠ
영화나 소설을 통해 범죄나 혁명이 굉장히 계획적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현실에서도 그러리라 짐작하지만 어쩌면 제대로된 계획이 없거나 감정적으로 즉흥적으로 발생, 진행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보는 모습 같거든요.
3월 1일의 밤, 이 책은 마치 소설 같이 읽힙니다. 그러기 쉽지 않은 내용인데 재밌게 잘 쓴 것 같아요. 참, 33인의 대표 중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곰곰히 떠올려봤는데 딱 두명 손병희, 한용운만 생각났고, 최남선도 있지 않았나 했는데 없네요.

YG
@밥심 네, 실제 역사는 우연이 아 주 많은 영향을 끼쳤죠. 최남선은 독립 선언서 초안을 쓴 걸로 유명합니다. 당대의 천재 문인이었다니까요. 요즘으로 따지면 누구랑 비유할 만할까요? :)

YG
최남선을 포함해서 3월 1일에 일제에 저항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나섰던 이들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는 처지라서,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합니다. 한때 저렇게 독립과 대의에 앞장섰던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또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무려 20년 넘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한 명 한 명씩 좌절하고 결국 사익을 좇아가는 모습. (사실, 저도 그때로 돌아가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밥심
친일파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 매몰되어 그냥 살아가지 않을까요. 적극적인 사람들 중 일부가 친일파가 되고 일부는 독립파가 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그냥저냥 살게 되겠죠. 그러다가 뭔가 세계 정세가 전과 다르게 흘러가고, 때마침 응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역사 흐름의 큰 줄기가 바뀌는 것 아닐까요.

소피아
저도 딱 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당시에 살았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YG 님은 친일파가 되었을 거 같다고 하시는데, 저는 천성적으로 굼뜨고 느려서, 기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여 친일파가 되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친일파는 아무나 하나~) 그렇다고 10%도 되지 않는 만세운동의 물결에 동참해서 공원으로 시장으로 혹은 산으로 올라가지도 (3부에 야밤에 산상 만세를 부르는 무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너무 무서워~) 않았을 것 같아요. 가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는 이회영이나, 조국 독립을 위해 볼셰비키 혁명주의자가 된 김알렉산드라나,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 던진 윤봉길 같은 인물은 어림도 없구요. 그냥저냥 갑남일녀, 장삼이사, 필부필부, 무명씨 1로 살았을 확률이 가장 높았을 겁니다. 솔직히 거의 대부분 이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다룬 모든 담론은 한쪽은 친일파 다른 한 쪽은 독립운동가 이야기만 합니다. 친일파의 선택을 숙고해보기 전에 무조건 때려 잡아야할 악마 족속으로 치부해버리고, 독립 운동가나 3.1운동 참여자와 자신을 고민없이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광복 80주년이라는 지금에도 많이 부족한 것같습니다. 일제강점기동안 무명씨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기 십상이구요.
그래서 <3월 1일의 밤> 1부의 정신산란함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손에손에 태극기를 쥐고,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에 밀물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일사분란하게 외쳤다는 3.1운동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었는데, 1부의 풍경이 훨씬 더 타당하고 실제성있게 여겨집니다.

borumis
심지어 '대한독립만세' 보다는 '조선독립만세'가 더 많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당연히 대한독립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당시에는 그들을 버렸던 대한제국을 생각하니 오히려 조선을 부른 게 많았다는 점도 놀라웠어요. 게다가 뒷 장에서도 나오지만 '만세'라는 말 자체가 그리 쓰인 지 얼마 안 되었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데다 대한제국 또는 천황에 대한 말로 3.1운동 전에는 강요(?)했던 말이라는 게 인상 깊네요. '대한'이란 단어처럼 '만세'라는 말의 의미나 연상되는 것도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고 새로 거듭난 것 같네요.

borumis
안그래도 33인의 독립선언서나 운동방식도 좀 소극적으로 보였고 오히려 더 확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던 사람들은 당시 맨 먼저 앞장섰던 사람들도 엘리트 지식인들도 아니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일반인들 중 총격에 희생당했거나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지원했던 사람들일 것 같아요. 어쩌면 그들은 그런 좇아갈 만한 사익조차도 없었고 오직 이 극한상황에서 벗어나기 급급하지 않았을까 해요. 요즘 '낯선 삼일운동'을 읽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행적이나 이름들은 역사에서 묻히거나 잊혀지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낯선 삼일운동 - 많 은 인민을 이길 수 없다저자는 엘리트가 남긴 사료 중심으로 연구, 서술되는 역사를 비판한다. 삼일운동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이 공동 주최했던 삼일운동 100주년 특별 전시회뿐 아니라 전국에서 열린 삼일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모두 ‘엘리트 중심의 전시’였음을 분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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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이름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만 거론하면 안 될 듯 하여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ㅎㅎ

YG
@밥심 아니요. 젊은 분 중에서. 당시 최남선의 나이가 만 29세였어요. :) (젊은 분을 떠올리셨다면 죄송;)

소피아
29세 최남선 이야기를 하시니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제가 애국심 투철한 사람도 완전 아니고, 태극기보면 울컥하고 뭐 이런 일도 절대 없고.. 아무튼 그런데요,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나 헤이그 이준열사 기념관같은 그런 독립운동과 관련있는 이러저러한 장소를 들른 적이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다크 역사 투어같은 거 종종 했습니다 ㅎㅎ). 그럴때마다 해당 장소에 있는 자료나 사진들을 유심히 보곤 했는데요, 빛바랜 액자 사진 속에 담겨 있는 너무 앳되고 마알간 얼굴에 흠칫 놀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맙소사! 이 얼굴이 그 일을 했다고? 이 청춘을 대체 어쩐단 말이냐? 뭐 이렇게 장탄식 하기도 했구요.

borumis
자체적 다크 역사 투어..ㅎㅎㅎㅎ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stella15
그렇죠.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에 참여한 때가 20세가 채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 그러고 보면 참 조숙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시대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진봉인가? 38세에 며느리를 봤다지 않습니까? 14,5만되어도 혼담이 오고간 때니. 지금 갓 스물은 정말 꽃봉오리들이죠. 근데 80년 대 2, 30대들은 굉장히 성숙했던 것 같아요. 그들도 그 어려운 시대를 격지 않았다면 편하게 아니 좀 다른 방식으로 보냈겠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건 맞는 말 같습니다. 이준 열사도 독립이 아니었으면 다른 일을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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