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두 비슷해요. 저도 책상 북스탠드에 올려놓고, 새벽, 조용한 시간에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D-29

오구오구

Alice2023
진도를 못 따라갈 걸 알면서도 이번에도 참여 신청을 해버린 1인입니다. 행동, 호라이즌에 이어 큐레이션이 너무 뛰어나니 이렇게 몇장이라도 읽겠지 하는 생각이에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침대에서 나가기 전에 1장씩 읽고 있습니다.
독립의 선언이 곧 독립의 현실을 구성한다는 믿음이 3.1운동의 비밀이라는 1장
서로 타협하여 복수의 임시정부라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피하고 자발적 대표구성이 가능한 비결은 봉기 대중이라는
2장 , 제가 막연 히 생각한 3.1 운동과는 너무나도 다르네요. 계속 따라가볼께요.

YG
@Alice2023 아, 아침에 침대에서 한 장씩 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꼭 일정대로 완주하실 필요는 없으니 앞으로도 원래 호흡대로 천천히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stella15
“ 예로부터 봉화 올려 나라의 급변을 알리는 '봉화고변'의 예를 따라 산에 오른 농민들은 화톳불을 피우고 밤새 정상을 지켰다. "산허리를 단단히 지켜라. 돌들을 준비하였다가, 수상한 놈이 있거든, 돌로 때려 죽여라. 총도 무서울 것이 없다. 죽을 놈을 죽이면 그만 아니냐! "라며 진압 기능성에 살기둥을 대비하기도 했다. 막상 산상 봉화시위에 대해서까지 탄압의 손길이 미치는 일은 드물어서, "나무가 없을 때까지, 불이 다 탈 때까지,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그들은산허리에서 버티다가, 결국은 마을로 내려오고야 말았다." 봉화는 장관이었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59,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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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우리나라 사람들 근성은 알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목에서 피가 나도록 부르짖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진작 왜 이 일을 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압제 당하는 민족인데 까짓 거 대한독립 만세나 목청껏 부르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말 봉화고변은 장관일 것 같습니다.

오구오구
아.. 저도 이부분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계엄 이후 집회에서 응원봉을 사용하는 것까지 연결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역사성이 있구나 생각했구요!

stella15
반면 3.1 운동은 근 10년간 일체의 정치ㆍ사회적 조직이 금지된 상황을 뚫고 나온 봉기였으며, '민족대표 33인'은 대표를 성공하는데 성공한 사실상 최초의 사례였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62,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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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그냥 물결이 소용돌이를 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거 아닙니까? 그때까지 외국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는데 우리나라만 성공했다는 것!

stella15
이때 당시 유행어가 '민족자결'이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네요. 요즘 유행하는 말들을 생각하면..?! ㅋ 요즘엔 극우가 나데서 이러다 민족자결이란 말이 다시 등판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쳐... 농담입니다.ㅋ

오구오구
그러게요 ㅎㅎ 극우가 태극기를 선점? 독점? 한 탓에 태극기 사용이 꺼려지는 심리적 상태가 문제라는 글을 어디서 본적이 있어요. 민족자결은 지금도 너무 중요한데... 극우님들 집회에서 미국기, 이스라엘국기까지 날리는 것을 보니.. 뭔가... 혼란스럽습니다 ㅎ

연해
아... 저도 이 말씀 정말 공감해요. 사실 태극기를 생각하면 가장 좋았던 기억은 저 초등학생 때, 2002월드컵인데요. 그때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해요. 다들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말이죠.
요즘은 길에서 그렇게 다니시는 분들 보면 솔직히 무섭습니다. 자꾸 그분들의 표정을 보게 돼요. 어쩌다가 태극기가 이런 이미지가 되어버린 건지. 자랑스러운 우리 국기인데, 속상합니다.
aida
“ 이들은 의회제도나 대표의 정치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들의 생활영역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궁핍과 억압과 차별에 대한 분노, 안전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하여 ‘혼돈의 개방성(chaotic openness)’속에 뛰어듦으로써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를 형성했다.
의회제도 자체부터 이런 직접 봉기(immediate uprising)의 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변형됐다고 할 수 있으리라.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은 이같은 직접성-즉각성(immediacy)이 유례없을 정도로 고양된 시기였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79,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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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2장중에서는 “대표와 인민 사이 - 유토피아적 직접성의 논리” 이부분이 시간이 들고 검색도 많이 하게 되네요.
프랑스 혁명, 아이티 혁명, 세포이 항쟁과 같은 공통점을 찾은 단락이고 처음 알게된 시각이어요. “직접성”이라는 표현은 와 닿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직접한다. 맡기지 않고 내가 한다.
일제강점기 10년차이고 무단통치는 제게 일본 헌병의 이미지부터 떠오릅니다;
현재의 이익집단과는 달리 독립이라는 목적이 같은 단체들이 생겨나더라도 억압의 시대이니 체제가 있기도 어려웠을때, 독립선언은 독립이다. 현실이 될수도 있다. 내가 외치자.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을지.
지금의 숱한 단체들이 우리/그들의 성격이 강하다면,
당시는 모든 사람 마음에 억압과 차별의 무게가 넘칠듯 차올랐기에 우리/우리 의 성격이 강했을 것 같고, 자발적 대표들은 누구라도 성공해라, 내가 잡혀간다 그런 맘이었을 것 같기도 하구요.
직접성의 힘으로 유토피아와 멸망 사이의 선택을 하는 레닌은 독재의 위험을 보지 못했고, (검색해서 찾아본) 이상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도 결국 독일사민당 우파에게 죽는군요.
그래도 3.1운동의 힘으로 임의의 민족대표 33인에서 여럿 단체가 의회와 선거제도를 경유하지 않고도 임시정부로 이어졌다는 놀라는 결과로 2장이 마무리되어 좋네요.

YG
2장 읽으면서 '대표'라는 개념을 둘러싼 아주 다양한 관점을 접하면서 새삼 고민이 깊어진 분도 있으셨죠?
제가 좋아하는 정치학자 가운데 데이비드 런시먼이 있어요. 이 분이 대표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민주주의와 어떻게 결합했고, 또 어떤 갈등을 빚었는지를 상세하게 논한 책을 한 권 펴낸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도 소개가 되어 있어요. 이참에 한 번 메모해 뒀다가 나중에 관심이 생기면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런시먼은 (국내에서는 아니고 미국에서는 화제였던) 뜬금없는 책에서도 이름이 등장합니다. 혹시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읽어보신 분 있으신가요? 모르몬교 광신도 아버지, 어머니와 그런 부모에게 동조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로부터 벗어나서 공부를 통해서 자기만의 자유를 찾는 여성 타라의 이야기입니다. 이 타라가 영국으로 가서 공부하게 되는데, 그 지도 교수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런시먼이더군요. :)

대표 - 역사, 논리, 정치대표 개념의 고대 로마적 기원에서 출발해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 그것이 수행한 역할을 통해 대표 개념의 역사적 뿌리를 검토하며, 정치학은 물론이고 법학과 연극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하는 대표 개념의 여러 변형태들을 검토한다.

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타라 웨스트오버의 첫 저술이자, 회고록이다. 아이다호주 벅스피크의 유년 시절부터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기까지 남다른 배움을 여정을 다룬다. 2018년 2월 출간되자마자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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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배움의 발견‘ 읽었는데, 이런 뜬금없는 책에 나오는 슬쩍 지나가는 이름도 바로 알아보시네요! 👍
윌슨의 아시아/아프리카에 대한 관점(민족국가의 존재를 감당할 자아가 아니라니!)을 보니 바로 전에 ‘호라이즌‘을 읽은 사람으로서 아주 가소롭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내일 3월 7일 금요일에는 계획대로 3장 '깃발'을 읽습니다.
이 3장에 3월 1일에 깃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물, 그러니까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 즉 비인간이 3월 1일에 했던 역할까지 샅샅이 훑은 게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자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요. 깃발의 역할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뜻밖이었던 건, 이 깃발이 우리가 아는 태극기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재미있게 읽고서 여러 얘기 나눠요.

오구오구
옛왕조를 민족으 상징으로 승인하는 심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1운동을 통해 그런 심리는 민족의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0,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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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태극기=대한제국의 국기라는 연상에 대한 모종의 경계심이 작용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09,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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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 31운동기에 '독립만세'로써 보충된 태극기는 바로 그런 일련의 변형을 상기시키는 바 있다. 대한제국에 빚지고 대한제국을 기억하면서도 그 못지않게 강렬하게 신생에의 열망을 품고있는 '만세 태극기'라면 말이다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110, 권보드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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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태극기가 아닌 깃발이 휘날렸을 1919년을 상상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계엄이후 집회에 2-3번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휘날리는 깃발들에 가슴 뭉클해졌었거든요.
제가 깃발을 사랑하게 된 순간이 있는데, 몇년전 락페스티발에서 퇴!사!라고 장엄하게 쓰여진 검고 드높은 깃발이 보였고, 잔나비 노래에 맞추어 젊은이들과 퇴사 깃발 아래서 둥글게둥글게, 강강술래 같은 모형으로 함께 뛰던 그날이었어요. 남녀노소 할거 없이 깃발아래 신나게 뛰며, 눈물나게 해방의 감정을 느꼈거든요.
1919년 깃발과 비교할수 없겠지만 (죄송 ㅠ) 저의 그 퇴!사! 깃발 ..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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