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다가 놀레켄스는 작풍이 상당히 단단하고 윤곽이 뚜렷하다. 그의 작품에는 첸트리에 못잖은 사실성과 개성이 있지만 우아한 매력이나 명료한 부드러움은 없다. 하지만 있는 그래도의 수수함과 순도 높은 충실성은 놀레켄스의 작품에 더 많이 담겨 있다. 그의 인품이 그런 것 같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20,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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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말하기 좀 그렇지만, 미술가들은 열에 아홉 장수하는 부류가 아니다(불쌍한 자들!). (중략) 반면에 예술원 회원은 확실히 다르다. 그는 빚쟁이나 비평가나 후원자가 “꺾을 수 없는 불사신“이다. 화가들의 사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그는 평생 명성에 따르는 특권을 차지한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p.25-26,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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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누구나 처음에는 퓨젤리에게서 기은 인상을 받겠지만 더 자주 보고 싶은 사람은 노스코트일 것이다. 퓨젤리의 화법은 대체로 겁이 없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 노스코트처럼 마무리가 섬세하거나 어조가 부드럽지 않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40,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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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가령 그가 가진 미술품 견본들과 취미로 모은 골동품들이 어둑하고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으며, 많은 것들이 상상력을 요구하고 (지나치게 공을 들여 세련되지만 하찮고 현대화된 다른 이들의 수집품과는 얼마나 다른가!),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한 복제화들은 표면이 갈라지고 손상되어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의 나라에 들어온 기분을 주었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46,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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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상상력이 그를 지배했고, 그 효과가 얼마나 선명했던지 상상 안에 이미 진품이 내포되어 있었다. 좋은 느낌을 주는 것과 진실한 것은 그에게 동일한 것이었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47,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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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코즈웨이에게서 그 모든 허물과 어리석은 언행을 발견한다 해도 우리는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왜 이러한 인물들이 죽어야 하는가?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50, 미술가의 노년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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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사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자신이 과거에 이러저러한 사람이었다고 상상하다가, 교묘한 잔꾀나 기묘한 망상으로 그간 상상하던 사람이 되고 싶고, 급기야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p.59-60,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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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경험에서 끌어낸 의견은 ‘혼합 양식‘으로, 유일하게 진실하고, 대체로 가장 호감을 준다. 우리의 삶은 추악하기만 하거나 관념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며, 세상에 결함이 없는 괴물 같은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77,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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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우리가 삶에 애착하는 이유는 삶에 자체나 행복과 관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살아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없다면 행동이고 뭐고 없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84,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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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삶을 애착하는 마음은 우리가 삶을 얼마나 흥미로워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황량한 허무보다는 수많은 희망과 두려움으로 동요되고, 가지각색의 기쁨과 슬픔으로 다채로우며, 움직임이 있고 번잡한 이 삶이라는 풍경에 더 많은 흥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88,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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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게다가 그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행복을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한 안에 있는 수단으로 본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91,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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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패션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게 아니다.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와 장식으 로서 패션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허영일 뿐, 패션은 아무런 상징도 아니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99, 패션에 관하여 ,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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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천부적 평등이라는 사상과 맨체스터 증기 기관차는 두 줄로 나란히 선 대포들처럼 의류 패션의 높은 탑과 인공 구조물을 쓸어 버렸다. 그리고 비싼 실크와 새틴에 비교되는 거친 교직물을 입던 여주인과 하녀는 이제 똑같이 흰 모슬린 드레스를 입는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107, 패션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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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진정한 교양과 진정한 고상함을 제외하면 모든 게 다 똑같다. 외양의 모든 면에서 그들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똑같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109, 패션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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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사실 진정한 미덕이나 아름다움 또는 이해심은 ‘신분이 높건 낮건‘ 똑같다. 이 세 요소들과 관련하여, 외모에서 보잘것도 없는 성취를 이루었다는 상류 계층의 거짓 우월성에서 나오는 태도와 매력은 하층 계급이라도 엄두를 내기만 하면 쉽게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것이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110, 패션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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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제왕은 선천적이면서 인위적인 불평등의 극단에서 자신의 허식적인 내면이 표면적인 우월성과 일치한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찾기를 바랄 뿐이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p.111, 패션에 관하여 ,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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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2023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를 읽으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날카롭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처럼 정확하지 않은 것도 없고 꺠어 있는 동안 계속 쓰는 감각도 없는데 그래서 더 왜곡된다고 해야 할까요.
장소와 사물이 멀리 있을수록 좋아 보이는 이유는 아무도 그것들을 비방하지 않기 떄문이지만
사람은 반대로 가까이 있어야 친근감을 느끼고 호감을 준다는 관점이 매우 새로웠습니다.
소문이나 추측으로 전해지는 편견과 악의는 과장되며 누군가를 괴물이나 유령으로 만들지만
우리가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도 알고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요즘 인터넷으로 누군가 마녀사냥을 하고 그걸 죄책감없이 퍼나르는 세태와 너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Alice2023
“ 청소년기에는 어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열심히 바라보느라 눈을 혹사하고,
인생의 무대를 떠날 때가 가까워지면 무심했던 어린 시절에 기쁨을 주었던 장난감이나 꽃 같은 것들을 그러모으려 그렇게 애를 쓴다. ”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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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ng
두 번째 에세이까지 읽은 시점의 저의 견해는 여기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해즐릿의 날카롭고 이성적인 비판의 시각과는 아주 반대되는 의견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해즐릿을 격찬하는 이유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Stream of Consciousness에 따라 생각을 줄줄 흘러가는대로 쓰고 있는 거 같거든요 크게 무엇인가를 주장하려고 쓴 글은 아니라고 저는 읽히거든요 해즐릿 인생 프로필에 나오는 강한 사상과 굽히지 않는 의지가 제가 읽은 두 편의 에세이에서 보이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끝까지 더 읽어보고 다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delispace
'의식의 흐름'이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는 솔직히 잘 몰라서 조심스러운데요. 전작과 이 책 모두 읽다보면 서술이 중간에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휙 튀는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 소견으로는 이게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기보다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아닐까 나름 생각합니다. 먼저 이 에세이들이 대부분 신문, 잡지 등의 기고문들을 선별하고 모아서 다듬은 것이라면(이게 맞나요? 번역가님께 여쭙고 싶 네요.), 정해진 짧은 기간에 쓴 문장들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또 해즐릿 스타일 자체가 워낙 박식다식하고 일필휘지로 쓰는 스타일이라 그 천재적 창의성 탓에 여기저기 생각들을 거침없이 써낸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게다가 이 양반의 성격을 미루어 보건대 한번 쓴 글을 퇴고도 잘 안했을 거 같습니다. ㅎ 물론 제 취향입니다만, 뭔가 정제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문체가 날카롭고 격정적이고 때로는 반항적인 풍모마저 드러나서 흥미진진하고 속이 후련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