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의 경우 내용이 조금 어렵기도 했고, 챕터의 주제인 무엇을 추구해야하는지에 대한 가닥을 잡기가 어려워 특정 대목을 뽑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4부의 특정 대목을 찾기보다는 이 책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이 챕터가 이전까지 이야기했던처럼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본인만의 올바른 관점이 필요하고 그것을 사물이나 상황 등 외적인 것을 바라보는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같은 내면을 바라보는데도 사용하라는 면에서 책 전체의 큰 줄기가 완성되는 것 같아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책 증정] Beyond Bookclub 11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D-29
colre
옐로우잡채
저는 모든 챕터가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14 챕터부터 기록해 볼게요.
<14. 아름다움을 내 안에서 찾아라>에서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153p)를 보면서 아름다움이 결코 고정돼 있지 않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갔고.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는 말(155p)에서 '아,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 아름다움은 사람의 감정에 있다고 하였는데(156p) 제가 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심리학으로 전향한 배경에도, 나는 감정이 없는 자연과학적 대상 보다 감정이 있는 인간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선택한 배경에도, 나는 감정이 있는 것을 많이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구나, 하는 자기 이해를 한 번 더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살면 집단주의나 전통주의 하위요소들을 강요받는 순간이 상당히 많은데 그럼에도 그 환경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쫓고 있는 저의 사상, '인간은 모두 개별 경험과 배경을 갖는다.(161p)' 개별성, 개인화, 개인존중주의에 칸트 역시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故 이어령 교수가 한 말,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에서 천재성을 갖는다."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옐로우잡채
<15. 사심을 버려라>챕터에서는 사심이 없다는 첫 문장의 의미가 뭘까 하는, 아리송한 마음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미적 판단을 규정하는 만족은 일체의 사심이 없다."
(165p) 예술 작품이 경매장에 오르면 그 순간 그 작품은 더 이상 미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 아니라 교환 가치만을 지닌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 또한 미적 가치를 느끼는 행위라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는 서술에서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운 좋게 구매한 소유자는, 그가 느낄 쾌감은, 더 이상 미적 쾌감이 아니라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수익에 대한 짜릿한 쾌감일 것이라는 점도 매우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혹여나 그 작품 구매자가 다시는, 그 작품을 판매할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게 되면 다시 또 교환 가치의 대상이 되어버려서, 다시 미적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결말까지 인상깊었습니다. 그래서 어쨌건 169p의 내용처럼, 길가의 들꽃 한 송이, 해 질 녘 서쪽 바다로 넘어가는 태양, 시골에서 바라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구나. 결코 값을 지불하고 소유할 수 없으니, 우리는 비로소 한 톨의 사심이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즐기면 된다, 하는 것이였죠. 그러면서 문득, 나의 남편을 나는 미적 가치로? 교환 가치로? ㅋㅋ 말이 이상하지만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적어도 이 사람 만큼은 배우자로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한의, 유일한 가치로서 바라보고 선택을 했구나. 그러나 배우자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보는가? 내가 사람을 고용한다면 사심이 없을 수 있는가? 상품에 해당하는 연예인? 배우들은? 그들은 더 이상 미적 가치를 지닐 수 없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서 아니다, 배우들이 가진 직업은 직업 특성상 상품성을 띄는 것일 뿐이다, 고용자들은 그들은 직업시장에서만 그냥 교환 가치가 생길 뿐이다, 그것은 그냥 우리 인간들의 한 국면일 뿐이다. 전체의 한 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고유의 미적 가치를 지닌다. 하는 식으로 생각이 흐르면서, 그럼 결국 인간은 미적 가치와 교환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존재이구나. 하는 잠정적 결말을 내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제가 미적인 무언가를 향유할 때는, 그것을 교환 가치로 바라보려는 잣대가, 어느 틈을 타고 들어오려고 할 때, 예끼 이놈, 하고 물리쳐봐야지 하는 수상한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옐로우잡채
<17. 마음을 공유하라>에서는 한나 아렌트가 했던 말이 끌렸습니다.
나의 감정이 자신을 즐겁게 하는지 혹은 불쾌하게 하는지를 선택하는 결정 기준은 상상력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하는 소통 가능성이라는 것. 소통 가능성이라. 새로운 데? 하면서.
곱씹고, 혹여나 반박할 여지가 있을까 돌려봤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맞는 말이네.' 싶었습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서 윤리를 찾는다는 말, 을 그래서, 접수하였습니다.
옐로우잡채
<18. 타인을 사랑하라> 에서는 우선 강지은 작가님이 실수를 하신 게 조금 거슬렸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가 아니거든요.(191p) 햄릿,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 이렇게가 4대 비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상당히 민감한 저에게는,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 가장 고차원의 숭고미(192p)단락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래 숭고한 것은 알겠어. 하지만 그 시간들을 사는 건 사실 너무 힘들어.' 하는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제가 죽고 나면, '옐로우잡채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자신의 안락함과 쾌적함을 뛰어넘어,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는 그 영혼에 있었지. 그것은 오직 인간의 숭고한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아룸다움이었어.'라고 추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막상 이 가장 고차원의 숭고미를 뿜어내며 삶을 살았던, 살고 있는,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가슴에 수많은 비수들을 꽂아가며, 또는 세상과 맞서 써우며, 또는 처음부터 이상적일 수 없은 현실 논리에 주저 앉으며, 마치, 예수님이 될 수 없지만 단단히, 예수님의 뒤를 이을 사람인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기어 오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확신을 떠올렸습니다.

하금
공통감은 어떻게 가능한가, 파트에서 제일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책에서 짚어준대로 우리 사회는 공통감으로 (사실 그 감각에 중독 된 것처럼 그 감각을 거의 유일한 원동력으로 삼고) 움직이고 있는데, 칸트가 제시한 세 가지 준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중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라‘가 가장 어려운 준칙 같습니다. 미디어가 우리의 시각을 통해 사고를 지배하는 듯 하니까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2번과 3번은 거의 지켜질 수 없는 명제처럼 느껴집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고 나의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겠어요. 결국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의 회복이 모든 갈등을 바로잡는 시작점이겠거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빛개츠비
4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름다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찾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외적인 기준이나 사회의 시선에서 판단하곤 하잖아요.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결국 진짜 아름다움은 ‘내가 얼마나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저에겐 단순한 미적 기준을 넘어서, 삶의 방향성에 대한 통찰로 다가왔어요.
또 ‘사심 없이 감상하라’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들꽃 하나, 해질녘의 태양,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소유할 수 없기에 오히려 순수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말. 무언가를 ‘가져야’ 의미 있는 것이 되는 이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같았어요. 저는 이걸 인간관계에도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Alice2023
결국 저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아름다움이었군요. 다만 보기에 예쁜 심미적 아름다움이 아니고
사심이나 사욕은 없으되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름다운 영혼을 보려고 하는 숭고미를 추구하자는 모습이 마치 불교와도 통하는 것 같았어요. 인문학이 사람의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더니 뭔가 오랜만에 따뜻한 결론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4부에 소개된 초발심이라는 개념도 불교에 있는 개념이라는데 역시 모든 학문과 종교의 끝은 하나인가 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10대의 미성숙한 전두엽으로 광기에 이른 풋풋한 첫사랑이지만 그들이 만약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았다면 40대에도 뜨거운 사랑을 해고 있을까요 ^^

아린
저는 숭고미 부분을 읽고 조금 제 자신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항상 손에 쥐고 사는 게 익숙한 저에게 손에 쥐고 있는 힘을 좀 내려 놓으라는 말이 말이예요.
사실 어제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듣고는 이 부분을 읽게 되어 더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쥐고 있으면 본인이 더 잘 가지고 있을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인이 좀 더 자유로워지려면 양손의 힘을 좀 풀어내라라는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랍
칸트의 미적 가치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ㅇ{술품에서는 사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미술품은 사용가치는 크게 없는물건입니다. 그런데 예술, 디자인 이라는 것이 이런 사용가치가 없는 것들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건물은 예술과 사용성이 혼재된 사례입니다. 사심 없이 아름답다고 할 수있는 건물은 대개 사용가치는 좋 지 못합니다. 왜 이리 건물들이 네모모양 일색이냐고 한다면 그게 가장 사용하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건물들은 짓기도 어렵거니와 그 사용성도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건축주는 어떤 관점을 더 우선시해야할까? 칸트가 말한대로 이 기준도 건축주 자신에게 있을 것 입니다.
팥앙금
아름다움의 기준점을 정말 내면이 장악할 수 있는지 4부를 읽으며 고민했습니다. 봐야 인지하고 관점이 생기는데 먼저 내 안에서 정립하고 밖을 보고 판단하는게 가능한지에 대해서요. 이제는 여행조차 sns핫플을 즐겨찾기로 추가해 좌표 찍듯이 완수하는 시대에 인간의 개별화가 꽃피울 수 있으려면 무엇을 먼저 거절해야하는지 역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비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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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잡채
인간은 모두 개별 경험과 배경을 갖는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 학』 160~161p,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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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잡채
어떤 사람에게는 더 없이 못생긴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수 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161p,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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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잡채
진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짚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짚신이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 아름다움의 세계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161p,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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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re
“ 얼굴이 예쁘고 몸이 날씬하다고 해서 아름다운게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 그러니 아름다움의 기준을 타인에게 두지 말자. 나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진정 아름다울 수 있다. ”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p.155,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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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잡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번아웃에 지쳐 갈 때도, 위기에 빠져 좌절하고 있는 순간에도 가상의 공간 속 친구가 눌러 준 '좋아요'는 삶을 버티게 한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187p,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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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잡채
SNS 속 가상의 친구와 주고받는 공감은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나부터 먼저 실천하는 용기로 현실의 주변인들과 공통감을 나눠 보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187p,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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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아름다움이란 법칙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다. 미적 대상을 만나는 순간 나의 상상력과 지성이 자유롭게 유희하다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 나에게 아름다움의 감정을 주는 것이다. (중략) 아름다움은 황금 비율도 아니고 금빛으로 번쩍이는 후광도 아니다. 그저 나의 상상력과 지성이 유희하다 내려진 반성적 판단력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p.160, 다양한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세상,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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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가치를 측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것이 바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주관적이고 미적인 판단이다. 이는 미적 대상에 대해 진심으로 사심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p.167, 사심 없는 마음 , 강지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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