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기려 그 작품을 분석하는데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욕만 하는 것 같다.
삐딱하게 보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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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때론 무겁게
세상을,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교차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강력한 생각이다.
나는 직장이, 인생이 그렇게 무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무겁다.
뭔가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래 매일 고맙다고 책에 절을 세 번씩 한다.
아마도 내가 쓰는 글에 대해-내 책 단 한 줄도
안 읽은 주제에- 뭔지 좆도 모르면서
난도질해대는 인간이 있으면 나는 그 새끼를 그 자리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 없이 목을
면도칼로 그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현실과 인생, 직장이 가볍고 그래야
심각하지 않게 굴러가고 즉 충격을 덜 받는다고 보는 것이다.
너무 믿지 않는 것이다.
무겁고 너무 진지하게 접근했다가는 다 망하는 수가 있다.
바로 내가 마음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라
너무 희망과 기대가 크면 좌절을 떠나 생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그게 당연한데도, 사회는
내 너무나도 중요한 생각이 전혀 안 먹힌다.
화가 치밀어 가만히 앉아서 죽지 않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보다.
세상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화풀이할 수도 있다.
내 노력이나 능력으로 어떻게 안 되는 게 세상이고
현실이고 직장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비해 이상으로의 책은 내가 노력하고
꾸준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
한 것에 비례해 성과가 따라오는 것이다.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고 솔직하다.
농사짓는 것이나 운동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다.
배신하지 않고 결과가 반드시 오기 때문에 나는
현실인 세상을 가볍게, 이상인 책을 무겁게 생각하고
내 남은 생을, 오늘도 이렇게 꾸려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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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어금니 틈으로 들어가 썩는 것 같다. 이빨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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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역적으로 하고 하나하나 검증해 가는 것이다. 마광수는서양 철학보단 동양 철학을 더 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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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는 두꺼운 책에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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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글도 그가 일부러 비난을 피하기 위해 빙빙 돌려 말을 해도 궁극적으로 그가 진짜 하는 말만 제대로 알면 그 글의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가 진보냐 보수냐를 먼저 알고 그가 쓴 글을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래 그 글쓴이와 그 배경을 미리 아는 것은 글읽기에 너무나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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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는 형이하학보단 형이상작적인 표현을 더 처주는 것 같고 다른 글에선 안 그랬는데, 그리고 본질에 대한 것은 절대적으로 많이 처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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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현실적
현실이 못마땅하고 그래도
그래서 이상만 좇고 살아간다고 해도 인간의 한계 때문에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적당히 현실적이면서 더 큰 비중을 이상에 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현실을 꾸려나가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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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두 가지
하나는 내가 인간을 볼 때 그런 것 같고,
하나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차원인데.
누가 이미 발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것은
누구나 개인적이고 사회적 편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인데 바로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계속 끊임없이
관찰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이고
이건 자기 사회보다 자기 사회를 더 잘 아는
외국인은 없다는 것에서 편견은 잉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의 것은 별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나로선 그렇다는 것이다.
문학이 개인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면 남의 댓글로
칭찬을 포함 상처를 받느니 그냥 나를 누가 안 알아주어도
혼자만의 깊이를 알 수 없게 속으로 파고 들어간
나만의 진리를 계속 탐색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 난 댓글도 안 보고 며칠이 지나면 자유게시판에
그 글을, 바로 다음 글을 올린 후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냥 나에게서 내부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주체적으로-깨달은 것만 적어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외부 자극에 의한 것보다 내 스스로의 기질적 추진으로
내 글은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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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처럼 쓰는 이유
나는 시(Poem)를 잘 읽지 않는다.
나도 시 비슷한 것을 쓰지만 일단 선입견이
시는 너무 어렵다는 것 때문이다.
시에 어떤 의미 없음이 보다 순수한 시라고 주장하면서
“감히 내 시 세계를 이해하려고? 어디 해봐.”
이런 식으로 단순히 단어의 나열을 뒤섞어 놓은 시도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뒤에 오는 문학평론가의
시평(詩評)을 봐도 그 비평(批評) 자체도 어렵거니와
(어느 때는 해설이 시보다 더 어렵다.
시는 짧게 어렵지만, 비평은 길게 어렵다는 차이뿐이다.
“내가 어디 모자란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걸 읽고 있으면 지금까지 읽은 시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읽어도 시간만 뺏기는 것 같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데 누가 시를 읽으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시 형식(단을 자주 나눔)으로 쓰지만
가능하면 쉽게 쓰려고 한다.
내가 이러는 건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고,
내용은 쉬우면서 시간 없는 독자에게도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뜻에서
시 형식을 빌려 글을 쓴다.
쉬운 산문시처럼 쓰는 것이다.
참고로 소설은 작가의 대외적 주장을 들어보기 위함이고,
수필(Miscellany)은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기 위함이다.
소설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배경을 그의 수필로 살핀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소설(Novel)은 약간 작가와 동떨어져 있고,
수필은 작가와 긴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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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때 전에 읽은 것을 또 읽을 때 그 내용은 생각이 나지만 용어 같은 건 생각이 안 난다. 아마도 연상작 용이 없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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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결국 현세나 저승에서나 결국 바라는 게 권력의 획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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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족은 여자를 못 도망가게 자유를 억압한 게 아니라 일을 안 해도 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런 거라고 한다. 중국은 그래서 남자들이 살림을 한다. 사실이 이렇게 관점에 따라 180도 다르다. 인간이 하는 말과 생각은 그래서 항상 의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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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에 나오는 아프리카 토인처럼 남자도 화장하고 장신구로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은 안 되어 그래서 여자보다 더 일찍 죽는 거라 한다. 말도 그렇고 의지하고 뭔가를 자꾸 표출을 못하니까 일찍 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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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결국 동물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동양에선 일본 같은 나라는
자기 언어 외 타국어를 잘 모른다.
자기가 힘이 있어 약소국에서 알아서 배우니 힘들여서
안 배워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도 크게 전체적으로 보면 동물의 세계와
하등 다를 게 없다.
하긴 인간도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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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는 만능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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