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바르와 페퀴셰에 대한 옹호] 플로베르의 미완성 소설이자 유작인 ⟪부바르와 페퀴셰⟫의 가치를 보르헤스 나름으로 옹호하는 글입니다. 이 소설은 플로베르가 죽은 이듬해인 1881년에 출간되었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구상 자체는 약 10년 전부터 해왔으나, 글쓰기가 고통스러워서 집필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지만 끝끝내 완성에 이르지는 못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부바르와 페퀴셰라는 두 필경사가 농사가 실패한 원일을 알아보려고 책을 펼쳤다가, 책에 빠져서 책으로만 세상을 배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보르헤스의 글에서 보듯, 당시 반응은 석연치 않았습니다. 소설은 두 바보의 무용한 노력으로 점철돼 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플로베르의 노력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위해서 농학, 교육학, 의학, 물리학, 형이상학을 다룬 1500여 편의 연구물을 읽었다고 합니다. 플로베르의 이전 작품들에서 보듯, 그는 세상에 대한 호오가 뚜렷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인간형을 조롱하고 멸시하려고 등장인물로 내세웠지만, 끝끝내 그 혐오해 마지않는 인간 유형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바르와 페퀴셰⟫도 마찬가지고요. 보르헤스는 이를 '꿈꾸는 자가 현재 자기가 꿈을 꾸고 있으며, 자기 꿈의 형식들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보르헤스는 훗날 단편 ⟨원형의 폐허⟩나 ⟨칼의 형상⟩에서 이런 순간들을 재현하기에 이릅니다.
소설이 지적 활동의 무용함을 직접적으로 조준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식인이 대다수였던 당시 평단의 반응은 날이 서 있습니다. 혹자는 부바르와 페퀴셰라는 두 바보의 실패를 인류 지성사에 등장했던 거인들의 실패와 대등하게 보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부바르와 페퀴셰⟫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쓰여졌음'을 첫 문장에서부터 강조하며, 플로베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바르와 페퀴셰가 바보이기 때문에 바보들의 실패는 '바보들만의 실패'로 끝나게 될 거라는 비판은 가당치 않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두 인물이라는 전제를 비판함으로써 소설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작품에 내재한 '논리'를 비판하는 것인데, 이는 플로베르의 소설이 본디 '미학적인 것'임을 간과하고 있기에 그릇되다고 말합니다. 플로베르가 살았던 19세기는 과학적 진리가 인류를 증진하고 구원해주리라고 믿었던 시대였고, 그는 당대의 희망을 자신의 소설로써 의심했습니다. 여기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에는 무용하게도 끝이 없을 것이라는 플로베르의 인식도 한몫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과학적 진리에 대한 희망은 잠정적인 '결론'에 대한 환상이며, 그것이야말로 "광기 중에서 가장 무익하고 치명적인 광기"라는 것이 플로베르의 생각이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과학은 무한한 공간에서 팽창하는 유한한 구체(esfera)'이며, 확장될 때마다 미지를 더 넓게 포괄하나, 미지는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고요. 나아가 예술은 필연적으로 상징이며, '가장 거대한 구체조차 무한 속에서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고요. 공교롭게도 보르헤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물리학자 존 휠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무지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산다. 우리 지식의 섬이 넓어지면 무지의 해변 또한 넓어진다." 그리하여 플로베르가 만년에 두 바보를 내세워 이뤄낸 성취란 다름다닌 사실주의 소설의 죽음이라고, 보르헤스는 적습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볼테르와 스위프트와 동양의 우화를 뒷배경으로 둔 채, 곧 도래할 카프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한편, 보르헤스의 마지막 단락은 약간 모호하게 읽힙니다. 어쩌면 플로베르가 내세운 두 바보는 존 휠러의 말을 자신들의 구체적인 행위로써, 그 실패로써 한 발 앞서 예증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두 바보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고, 플로베르의 소설은 미완으로 끝남으로써 잠정적으로 완성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완성으로 마무리 된 카프카의 ⟪성⟫처럼요.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두 바보의 실패는 플로베르가 전달하고자 한 바가 적확하게 전달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실패함으로써 성공한 소설은 성서의 불완전한 필사본이 되고 있습니다. 소설은 현실은 대속함으로써 현실을 구원합니다. 이 구원은 은밀하고 투명해서 아무도 스스로 구원된 줄을 모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다음 글인 ⟨플로베르와 본보기가 된 운명⟩으로 이어집니다.

[세트] 부바르와 페퀴셰 1~2 - 전2권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실재란 무엇인가 - 양자물리학의 의미를 밝히는 끝없는 여정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기이한 효과를 왜 일상에서는 보지 못할까? 저자는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한편, ‘실재’를 둘러싼 쟁점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코펜하겐 해석’에 맞서 소신을 굽히지 않은 데이비드 봄, 휴 에버렛, 존 스튜어트 벨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일화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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