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트 휘트먼에 관한 노트] 앞서 ⟨또 다른 휘트먼⟩에서 보르헤스는 시인 휘트먼이 미국을 집약한 상징이라고 치켜올린 바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휘트먼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시인으로서 휘트먼의 위대함이란, "지적 유기체"로서 '풀잎' 같은 인물로 자신을 창조해낸 것이라고 보르헤스는 적고 있습니다. 즉 휘트먼은 비범해지기보다는 범상해지려고 노력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위대해졌다는 것인데요, 윌리엄 베크포드나 폴 발레리가 자신의 작품 안에서 내세운 낭만적인 영웅과는 달리, 휘트먼은 시 속에서 또 다른 등장인물로서 '휘트먼'을 창조해냈으며, 뭇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모든 이와 같아지려고 노력했다는 것이죠. 발자크는 "천재는 모든 사람과 비슷하지만 천재와 비슷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서 영감을 얻을 정도로 범상함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그란 사람은 대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발자크의 천재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아마 휘트먼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생각은 굉장한 자유를 줍니다. 생각해보세요. 남들과 한사코 다르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남들처럼 '다름'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몰개성하게 개성만 추구한다고도 표현합니다.) 반면, 휘트먼은 "다른 모든 인간들과 비슷해지기를"(167쪽) 원합니다. 이런 면에서 휘트먼의 ⟪풀잎⟫은 모든 존재가 하나의 통일된 신성의 일부라는 범신론과도 이어지며, 모든 것이 본디 하나이며 각각은 모든 것이라는 생각으로 흘러갑니다. 이때 헤라이클레이토스의 67번째 구절에서도 보듯, 모순되는 것은 한데 있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신은 낮이자 밤이고, 겨울이자 여름이며, 전쟁이자 평화이고, 풍족함이자 배고픔이라”). 범신론적인 세계관 안에서 보르헤스는 휘트먼과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 페르시아의 신비주의자 아타르의 사례를 연결짓고 있는 것인데요, 제가 보기에 이러한 사고관은 훗날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곳"인 알레프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과연 휘트먼은 알레프적인 영웅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즈음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범상함 없이는 비범함도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플루언서가 넘칩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는 '유명한 걸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우스개에는 날카로운 진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분명 오늘날 유명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꼭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비범함이 늘어났는지는 의문입니다. 모두 몰개성하게 개성을 탐닉하는 곳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다들 밋밋하게 보입니다. 격자형으로 구획된 인스타그램의 추천 피드 속 화려함처럼요. 인스타그램 광고나 틱톡의 영상들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인 것 같지만, 다 보고 나면 공허하고 기분이 옹졸해지는 걸 피할 길이 없습니다. 피상적인 차별점만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필연적으로 '자아 장사'로 이어지곤 합니다. 자아 장사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첫째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추구해야 할 결론을 선취해서 전제로 삼으라고 권하고 있기에 애초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언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며, '나'를 모르고 '인생'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은폐하기에 유해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봤을 때 자신을 알아간다고 했을 때의 '앎'은 단언하고 결론내리는 앎이 아닙니다. 결론을 충분히 유예하면서 시간을 쏟는 그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 관한 한,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며, 이를 보르헤스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더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원칙을 도서관에서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경험에 적용하는 경우에서다.” 보르헤스가 말하는 휘트먼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스스로 범상해짐으로써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헨리 밀러의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스 기행 : 마루시의 거상은행나무 위대한 생각 12권. 영미문학사상 가장 문제적인 작가 헨리 밀러가 남긴 기행문학. 헨리 밀러는 소설 작품들 외에도 서구 문명, 특히 미국 문화를 신랄히 비판한 무수한 산문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저작이 <그리스 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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