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보르헤스 읽기] 『영원성의 역사』 1부 같이 읽어요

D-29
2025년에도 이어서 읽는 보르헤스의 일곱 번째 책입니다. 민음사 논픽션 전집판으로는 두 번째 책을 읽습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영원성의 역사』는 총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이 모임에서는 1부에 수록된 20편의 글을 먼저 읽습니다. 하루나 이틀에 걸쳐 한 편의 글을 읽는 모임입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1부] ⏤ 서문 13 ⏤ 가우초 시 15 ⏤ 종말 직전 단계의 현실에 대한 견해 56 ⏤ 독자의 미신적인 윤리 64 ⏤ 또 다른 휘트먼 71 ⏤ 카발라에 대한 옹호 77 ⏤ 가짜 바실리데스에 대한 옹호 84 ⏤ 문학에서 상정하는 현실 93 ⏤ 영화 평 104 ⏤ 서사 기법과 주술 112 ⏤ 폴 그루삭 127 ⏤ 지옥의 존속 132 ⏤ 호메로스 서사시의 번역본 141 ⏤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영원한 경주 153 ⏤ 월트 휘트먼에 관한 노트 163 ⏤ 거북의 변모 175 ⏤ 『부바르와 페퀴셰』에 대한 옹호 187 ⏤ 플로베르와 본보기가 된 운명 196 ⏤ 아르헨티나 작가와 전통 204 ⏤ 평론 220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글꼭지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참여 인원이 없어도 25/2/11에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이야기 나눌수 있으면 좋겠네요!
네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문 & 가우초 시] 서문은 별 말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넘기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가우초 문학이 계승되고 발전된 역사를, 나아가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의 걸출함 다룹니다. 이전에 한번 가우초를 한번 언급한 적이 있으니 간단히만 말하자면, 남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활동하던 목동으로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보여주는 독특한 집단입니다. 가우초들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민족의 정신적 선조라고 할 만하며, 그런 만큼 문학으로도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민족주의와 토착적인 것을 말할 때 빼놓고 언급하는 것이 드넓은 팜파스와 가우초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르헤스의 주장에 따르면, 가우초 문학은 가우초에 의해서 쓰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발사였던 바르톨로메 이달고가 아메리카에 가우초 문학을 최초로 들여온 '아담'이라는 겁니다. 이후, 보르헤스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를 논합니다. 델 캄포 역시 군인이었고 지방의 고위 관료이자 작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역시 가우초가 아니었지만 가우초 문학을 계승했던 인물로 일컬어집니다. 흥미롭게도 이때부터 가우초 문학은 역설적으로 '가우초'에서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당대 비평가들이 ⟪파우스토⟫에 나오는 수많은 세부사항이 가우초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무지와 오류"로 점철돼 있다고 비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경주마가 분홍색털로 물들었다고 묘사한 부분을 두고 당시 크리오요 기병은 분홍색 말을 타지 않는다거나, 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방식이라고 반박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이런 비평가들의 지적이 "지방색에 관한 논쟁"이라고 일축합니다. 제 생각에, 보르헤스는 ⟪파우스토⟫로 촉발된 논쟁을 지켜보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지방색'과 '고유함'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추측컨대, 현 아메리카 대륙의 언어부터가 이미 자신의 선조를 죽인 정복자의 언어와 떼려야 뗄 수 없으며, 그리하여 자신들의 역사부터가 이미 '고유함'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한다면, “시 속의 즐거움과 우정을 고찰하는 것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지방색에 관한 논쟁은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보르헤스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원본-가본', '진품-모방품', '원작-패러디'의 관계는 그가 나고자란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다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에서, 보르헤스는 가우초 문학에서 ⟪마르틴 피에로⟫가 왜 중요한지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가우초 문학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서 민족주의적 가치를 지지해주는 근거였겠지만, ⟪마르틴 피에로⟫에 이르러서는 민족주의가 쇠퇴해가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마르틴 피에로⟫를 단테의 ⟪신곡⟫과 비교하며 그 성취를 서사시의 성취로 보는 주장에 반박합니다. ⟪마르틴 피에로⟫는 유럽적인 서사시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유엘라에 따르면 이 성취는 민족적인 것도 아니고 인종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지난 세기의 쇠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마르틴 피에로⟫에서는 "지방적 색채가 처음으로 사라지는 우리 시대의 전환기"(48쪽)가 담겨 있단 겁니다. 그리하여 ⟪마르틴 피에로⟫는 고유함과 지방색에 천착하는 과거로의 복권이 아니라, "화자의 소멸이고, 그에 대한 현재 시점의 노스텔지어"(49쪽)인 것이죠. 요약하자면, 보르헤스는 ⟪마르틴 피에로⟫에서 서사시라는 장르로 '회귀'를 본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로의 '이행'을 보았습니다. 마르틴 피에로는 도스토옙스키, 졸라, 버틀러, 플로베르, 모파상의 세기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아스카수비의 작품 속 인물들이 무덤덤한 모습, 순수함과 강인함, 모험을 좋아하면서도 결코 놀라지 않는 영웅적 여행객의 면모를 보였다면,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에서는 전자와 구분되는, 뻔뻔스럽고 악덕스럽고 개인적으로 고뇌하는 면모가 드러납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이런 인물의 특성은 소설적 조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우초 시학의 모든 영웅 중에서 피에로가 가장 전통에 부합하지 않은 개인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예술은 항상 개인적이고 구체적이기를 선호한다. 예술은 플라토닉한 것이 아니다.
영원성의 역사 1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마르틴 피에로⟫의 경우는 민족적인 것도 인종적인 것도 아니며, 결코 민중으로서 우리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성립된 국가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세기의 마지막 30년간은 쇠퇴의 시기로, 이런 형태의 지방적 색채가 처음으로 사라지는 우리 시대의 전환기였다. 이 작품은 당시 자신을 절멸시키는 사회적 분위기 앞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가우초의 고난에 가득 찬 삶을 다루고 있다.”
영원성의 역사 4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나는 소설에 대해 언급하였다. 오래된 서사시는 소설 이전의 형태를 의미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의 작품을 원시적인 형태로 분류하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방식으로 이 작품을 고갈시키는 태도이며, 연구의 모든 가능성을 무화시키려는 시도일 뿐이다 주인공의 영웅적인 면모, 신에 대한 봉헌, 영웅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들어 서사시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맞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로 소설적 조건이다.
영원성의 역사 5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종말 직전 단계의 현실에 대한 견해] 보르헤스는 여러 학자와 사상가의 주장을 빌려, 그들이 인간이야말로 "시간의 유일한 거주자이자 예견자인 동시에 역사적인 존재"라고 했던 것을 먼저 살펴봅니다. 폴란드의 논리학자인 코르지브스키(Alfrred Korzybski)는 우리 삶이 길이와 넓이와 깊이라는 삼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식물이 일차원적 길이의 삶을, 동물이 이차원적 넓이의 삶을 산다면, 인간은 삼차원적 깊이의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다가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베르나데스는 살을 붙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식물의 정태적 생존과 동물의 동태적 생존을 넘어선다"면서, 인간은 에너지를 독차지하는 동식물과 비교하면 시간을 독차지했다는 겁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이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며, 그는 인간이 자의식을 지닌 시간의 주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형이상학자 가스파르 마르틴 역시 인간이 공간을 확장하려하기보다는 깊어지기를 바라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이 "시간을 축적하는 자신의 고유한 과업"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일련의 주장들을 두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잘라 말합니다. 왜냐면 공간과 시간은 서로 비교가 불가능한 두 가지 개념이기 때문이죠. 보르헤스가 보기에 공간은 "시간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공간은 시간 안에 속해 있는 것"(61쪽)입니다. 인간이 공간을 축적해온 것은 시간을 축적해온 것과 다른 일이 아니며, 공간의 축적이야말로 시간을 축적하고자 했던 인간 고유의 과업을 실현할 한 방도라는 겁니다. 따라서 공간을 버리고 시간을 축적하며, 시간 안에서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이 글의 제목이 말하는 "종말 직전 단계의 현실"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요. 보르헤스는 이렇듯 다른 모든 것과 유리된 공간 속에서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재앙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유령과 다름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간접 인용하면서 글을 끝맺습니다. 잠시 해당 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I could be bounded in a nutshell and count myself a king of infinite space—were it not that I have bad dreams." 번역하면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 공간의 왕으로 생각할 수 있다네⏤내가 악몽을 꾸지만 않는다면 말야" 정도가 될 겁니다. 이 대사는 정말 너무 유명해서, 대중매체와 예술작품을 가리지 않고 숱하게 인용되었습니다.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인간 정신의 자유로움을 행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대사는 섬세하게 읽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앞쪽의 '무한 공간의 왕'을 말하는 부분이 아니라, 대쉬 이후에 나오는 조건부의 가정형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보르헤스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그 부분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한공간의 왕 - 도널드 콕세터, 기하학을 구한 사나이<무한 공간의 왕>은 대칭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으로 20세기의 위대한 기하학자, 도널드 콕세터의 전기이다. 도널드 콕세터는 20세기 최고의 기하학자로, 반시각적 부르바키 운동에 대응하여 기하학을 지키기 위해 애써왔으며, 고전기하학과 현대기하학을 결합시킨 선구자이자 개혁자였다.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오로지 청각이나 촉각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상상해 보자. 시각, 촉각, 미각을 인지하는 능력과 이러한 감각이 규정되는 공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이에 따른 필연적인 전개로, 나머지 감각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더 섬세하게 인지하는 어떤 감각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재앙을 상상하면 상상 속의 인간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유령이나 다를 바 없이 느껴지지만, 이들은 여전히 역사를 만들어 가려고 애쓸 것이다. 인류는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것이다. 앞도 보이지 않고 육신도 없는 그런 삶도 지금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열정적이고 또 절실할 것이다. 나는 우리만큼 의욕적이고 다정하며 즉흥적일 가상의 인류가 저 유명한 호두 껍데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가상의 인류는 모든 공간의 밖에 있으며 어느 공간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영원성의 역사 62-6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자의 미신적인 윤리] 문체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신적인 윤리를 짚어보는 글입니다. 문체란 단순히 가독성의 유무로 판단되는 것도 아니고, 간결성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며, 명사와 형용사가 결합되어서 놀라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글의 구조적 효과보다는 구성 요소의 배치에만 관심을 쏟는"(65쪽) 것인데, "문체에 대한 이 자부심은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더 한심한 자부심으로 부풀려지기 마련"(67쪽)이라는 것이 보르헤스의 생각입니다. 이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이란, 플로베르의 소위 '일물일어설'과 비슷한 주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너무 유명한 말입니다만, 플로베르는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다 무너지는 글'의 중요성을 역설했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많은 작가가 인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퇴고의 역할이 스틱스 강물이 아킬레우스의 몸에 미친 영향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플로베르가 말한,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다 무너지는 글'은 완벽함의 증거가 아니라 되레 "가장 위태로운 글"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설명에서는 해방감마저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은 완벽함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반영하며, 완벽함이란 불가능한 완벽을 갈망하는 인간의 강박을 되비추는 왜곡된 거울상이 아닐까 합니다. 보르헤스는 이 글의 말미에서, 다 쓰고 나서 자기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다는 익히 알려진 방법도 그다지 옹호하지 않습니다. 이미 문학이란 묵독의 시대를 예언하고 있었으며, 자기 고유의 장점과 싸우며, 심지어는 그 자신의 소멸을 사랑할 뿐 아니라, 종말마저 자초하는 예술이라는 겁니다. 비슷하지만 좀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보르헤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류 시인은 최고로 잘 쓴 시만 모아서 시집을 출간하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 이 말은 전체 음악을 조율하는 '템포'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옷 입는 걸 정말 좋아해서, 영화를 볼 때도 인물들이 뭘 입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유심히 봅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 ⟪리플리⟫는 멋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텍스트이며, 영화에서 최고로 멋진 사람은 아래위 피스로 빼 입은 맷 데이먼이 아니라 다 풀어 헤치고 나오는 주드로라는 겁니다. 칼처럼 빼 입은 사람은 아무리 잘 차려 입어도 2등이라는 거죠. 일본의 야스쿠니가 아닌 와비사비(わびさび) 정신이고, 20세기 리바이스 정신을 계승하는 오사카 파이브의 빈티지 파이브 포켓 셀비지 데님인 겁니다. 군더더기와 우연함과 불완전함을, 아킬레우스의 뒤꿈치를 재현하고 있는 겁니다.
리플리호텔보이이자 피아노 연주로 생활하는 톰 리플리 (맷 데이먼). 어느날 대학 재킷을 빌려입고 피아노 연주 대역을 하다 선박 부호 그린리프의 제의를 받는다. 이태리에서 빈둥대는 아들 디키 그린리프 (주 드로)를 데려오면 천달러를 주겠다는 것. 디키가 좋아하는 재즈도 공부하면서 연구한 톰은 이태리로 가 디키를 만나는데 상류사회의 화려함과 디키의 연인 마지 (기네스 팰트로)에게도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계약기간은 점차 만료되어 가는데...
아무리 이름 없고 변변찮은 시인일지라도, 완벽한 소네트를 조각하려고 시도하지 않은 시인은 없을 것이다. 남들 눈에는 시시하게 보일지라도 시인은 불후의 명성을 보장해 주고 세월의 풍상도 경의를 표하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소네트 말이다. 보통 이런 소네트는 불필요한 단어를 삽입하지 않지만, 실은 시 전체가 불필요한 단어다. 바꿔 말해서 찌꺼기 같은 작품, 쓸모없는 작품이다.
영원성의 역사 6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또 다른 휘트먼] 보르헤스가 시인 휘트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드러낸 글입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한 "두 바다 사이에 있는 나라"는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놓인, 거대한 칠면조 다리 형상의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할 겁니다. 역사로 보나 문화로 보나 아메리카는 '만들어진' 나라이며 '수입된 것'들로 넘쳐나는 곳입니다. 그곳은 본토임과 동시에 유럽적인 것들의 부산물로 쌓아올린 성입니다. 그 '본디 있던 것'들과 '만들어지고 수입된 것'들이 한 데 뒤섞인 형태에서 오는 특유의 역동성이 휘트먼과 같은 강인함을 만들어냅니다. 숲이 바다처럼 우연하고 무한한 듯이 펼쳐져 있는 광대한 나라. 미국과 그런 미국을 집약한 상징인 휘트먼에 대한 옹호는 보르헤스 자신이 몸담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일 겁니다. 한편, 보르헤스는 휘트먼이 "열거가 가장 오래된 시작법"임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참 좋은 시에는 매력적인 열거가 있고, 그 열거는 사물 전체를 '등'으로 퉁치지 않고 하나씩 명명하려는 섬세함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산문에도 이러한 열거가 있습니다. 조르주 페렉은 시도 산문도 아닌 글을 쓰면서, 자신이 왜 열거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공간의 종류들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 조르주 페렉 선집 6권. 1974년에 페렉이 ‘생전에’ 출간한 유일한 에세이로, ‘공간’에 관한 진진한 질문과 명상이 담긴 책이다. 평생 여러 공간을 떠돌며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겹의 공간을 목록화하고 마비된 일상의 사유에 새로운 질문들로 지각의 문을 연다.
이따금씩, 어쩌면 조금은 체계적인 관심을 갖고 거리를 관찰하기. (···) 보고 있는 것을 기록하기. 일어나고 있는 것 중 주목할 만한 것. 우리는 주목할 만한 것을 볼 줄 아는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는가? 아무것도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다. 우리는 보는 법을 모른다. 거의 어리석을 정도로, 더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흥미롭지 않은 것, 가장 분명한 것, 가장 평범한 것,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찍기 위해 노력하기. (···) 카페들. 카페가 몇 개나 있을까? 하나, 둘, 셋, 넷. 왜 이 카페를 선택했을까? 내가 이곳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햇빛이 비치기 때문이고, 담뱃가게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상점들: 골동품가게, 옷가게, 하이파이오디오가게 등. ‘등’이라고 말하지도, 쓰지도 않기. 그로테스크하거나 쓸데없거나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주제를 고갈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고, 오래전부터 알아봐왔던 것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더 평범하게 보도록 다짐하기.
공간의 종류들 83쪽,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카발레에 대한 옹호] 잘 몰라서 카발라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만, 맥이 잡히는 설명이 잘 없어서 일단 제가 이해한대로 써 보겠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카발라는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으로서, 히브리어 ‘카발(קבל)’에서 명칭이 유래합니다. 그 의미는 '구전 토라(구약성서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의 신비, 곧 입에서 입으로 전래된 비밀스러운 지혜와 믿음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유대교 신비주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확한 설명이 없어서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앞서 설명에서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 '문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후세에 전한 것'이라는 의미가 카발라에는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는 그 특유의 과장법으로 '쿠란의 원본'은 "언어 이전, 창조 이전의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합니다.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으로서 이러한 카발라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 역시 '성령'을 언급하는 순간 우리는 '신비'를 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구술한 존재는 일반적인 신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라는 것인데, 비록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삼위일체를 미신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바로 여기에서 '신비'가 비롯되기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위격이 수레바퀴의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기에 예수는 단순한 '사건'이나 역사의 뭇 '위인'들과 구별되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한편, 카발라주의자들은 창세기의 신성성을 믿었다고 하는데요, 이 신성성은 일체의 우연성을 배제하려는 시도 속에서 얻어졌다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여기서부터 설명이 매우 흥미로운데요, 저널리즘의 글쓰기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글은 '의미'를 중시합니다. 그렇기에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단의 길이'나 '소리' 따위의 무수한 우연이 끼어들도록 허용하게 됩니다. 운문도 처지는 마찬가집니다. 운문에서는 오히려 '소리'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에 우연함이 끼어들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쪽이든 우연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보르헤스는 성경과 코란을 기술한 저자들을 상상하는데요, 그들은 일체의 우연을 배제하려고 했으며 그리하여 하느님께 근접하고자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카발라주의자는 "하느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자 한 자 불러주어 받아적었다고" 전제하고 상상했기에 오늘날 성경은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며, 그곳에 우연이 끼어들 여지는 산술적으로 0"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개념과는 별개로 하나로 된 세 가지 위격이라는 특성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삼위일체를 믿음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하면 근본적인 신비는 풀리지 않지만 그 의도와 용도는 드러난다. 삼위일체(적어도 이위일체)를 포기하면 예수는 우리의 기도를 영원히, 끊임없이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시적인 대리인, 역사적 사건이 되어 버린다. 만약 성자와 성부가 아니라면, 구원은 하느님이 직접 행한 역사(役事)가 아니다. 성자가 영원하지 않다면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힌 희생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제레미 테일러는 "무한한 시대에 걸쳐 타락한 영혼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탁월함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삼위일체의 교리는 정당화될 수 있다.
영원성의 역사 79-8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문학에서 상정하는 현실] 문학이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소위 '핍진함'을 구현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보르헤스는 그러기 위해서 작가적 원형을 낭만주의자와 고전주의자로 구분한 뒤에, 각각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고전주의자들은 도리어 표현을 배제하려고 한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설명입니다. 이를테면, 뭇역사가의 서술에서도 보듯, 고전주의자들은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상화하고 일반화"합니다. 여기서 글에 생동감을 부여해야 하는 쪽은 오히려 독자이며, 이런 글은 표현적(expressive)이지 않습니다. "현실을 기록할 뿐 재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이것이 일종의 "부정확함"에 기대는 것이며, 여기서 역설적이게도 핍진함이 얻어집니다. 이 부정확함이야말로 "우리가 복잡한 상태를 즉시 개념으로 단순화"할 때 일어나는 것이며, 지극히 인간된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의 전능함과 대비되는 것이기에 인간에 관한 문학을 다룰 때 오히려 핍진함이 됩니다. 문학에서 화자가 이런저런 세부사항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요, 그에 따라서 핍진함을 얻거나 잃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일 한 인물이 연인에게서 "너 어제 뭐했길래 전화도 안 받았어"라며, 어제 행적을 추궁받는다고 해봅시다. 그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잤어"라고 하는 대신에 과도하게 디테일을 남발하면서 삼거리 포차에 늘어선 상호의 세세한 위치와 배열과 그날 술자리에서 있었던 테이블의 광경과 대화 내용을 줄줄이 열거한다면, 상대는 아마 부아가 치밀 겁니다. 극중의 핍진함도 잃을 거고요. 거기에는 '술을 마시고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잠을 자는' 인간된 망각, 불완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주의자들은 이렇듯 인간된 '부정확함'이 역설적이게도 핍진함으로 역전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보르헤스는 그런 고전주의자들의 경향성을 보면서 "침묵의 지배"라는 비유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문학이 지나치게 개성에 함몰된 나머지, 개성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조차 '개성적이 되는' 교묘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98쪽)는 것이 보르헤스의 설명입니다. 결과적으로 고전주의자가 현실을 상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번째는 “포괄적으로 전달”(general notification/notificación general)하는 것으로서, 앞서 말한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서술을 뜻합니다. 세르반테스의 글이 좋은 예시죠. 두번째는 보다 복잡한 현실을 암시한 뒤에, 그로 인해 파생된 결과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앨프리드 테니슨의 영웅시 ⟨아서왕의 죽음⟩의 도입부가 가장 좋은 예시입니다. 이는 언어적 기교를 활용하는 것이어서 문학이라는 장르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보르헤스가 가장 어렵고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정황의 창조", 즉 “함축적인 의미를 띤 간결한 세부 사항을 늘어놓는 전개”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세번째 방법은 웰스와 디포의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이 세번째 방법이 훌륭하기는 하나 타 장르에서도 가능하단 점에서 ‘문학적 엄격성은 비교적 떨어진다’(less strictly literary/menos estrictamente literario)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세번째 방법의 예시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견 흐름과 무관해보이지만 흐름에 교묘한 방식으로 일조하는 세부사항을 삽입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우드는 문학적 세부사항을 다음처럼 우아하게 표현했습니다.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제임스 우드는 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이다. 이 책은 그의 네번째 책으로 소설 애호가와 작가 지망생을 위한 세심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는 유려한 글솜씨, 센스 있는 논평, 해박한 문학적 지식 등으로 영미와 유럽의 수많은 고전과 당대 소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픽션의 작동 원리를 친절하고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문학과 삶의 차이는 삶이 두루뭉술하게 세부사항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우리를 그 세부사항에 주목하도록 거의 이끌지 않는 반면, 문학은 우리에게 세부사항을 알아차리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나에게 키스하기 직전 당신 입술을 닦으시는 모습, 디젤엔진이 맥없이 공회전하고 있을 때 런던 택시가 드르륵거리는 소리, 오래된 가죽 재킷에 고기 조각의 지방 줄무늬 같은 흰 줄이 가 있는 모양, 갓 내린 눈이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느낌, 아기의 팔이 너무도 통통해서 끈으로 묶어놓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 등을 알아차리는 법을 문학은 가르쳐준다. 이 지도과정은 변증법적이다. 문학이 우리를 좀더 삶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삶 자체에서 실습하게 되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를 문학의 세부사항을 좀더 잘 읽는 독자로 만들면, 그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삶을 좀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76쪽, 제임스 우드 지음, 설준규.설연지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영화 평] 말 그대로 1932년 즈음에 보르헤스가 보았던 영화에 대한 짤막한 평입니다. 관련 영화들의 원문을 구글링해보시면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린 영상을 찾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 내용을 유추해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킹 비더의 가장 최근작은 한때 표현주의를 추구하던 엘마 라이스가 쓴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거리의 풍경⟩이라는 작품인데, '표준'처럼 보이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열정 하나로 만든 영화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지나치게 간략해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예를 들어 고상한 주인공이 있는데, 악당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낭만적인 커플이 있는데 법률적, 종교적으로 결합이 금지되어 있다. 과하게 원기 왕성한 허풍쟁이 이탈리아인이 있는데, 작품에서 담당한 양념 역할이 지나쳐서 다른 배우도 비현실성에 물든다. 진짜처럼 보이는 인물도 있고, 가짜처럼 보이는 인물도 있다. 본질적으로 사실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실패하거나 어정쩡한 낭만주의 작품인 것이다.
영원성의 역사 11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북다/책 나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함께 읽기기후위기 얘기 좀 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 3월 28일(금) 그믐달이 뜨면 만나요
[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모두를 위한 그림책 🎨
[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 혼자 읽기 방, 참여도 가능합니다![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3월의 고전
<고전 않고 고전 읽기> 1. 돈키호테 1[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이달의 고전] 3월 『오이디푸스 왕』 함께 읽어요
도서관 vs 미술관
[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꿈꾸는 도서관> [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오늘의 하이쿠
한 수두 수세 수
내가 하는 독서 모임은 왜 잘 안 될까?
잘 되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위한 꿀팁 1. 적당한 모집 기간 잘 되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위한 꿀팁 2. 모집글 쓰는 요령 잘 되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위한 꿀팁 3. 독서 모임을 활성화를 위한 비법은 이것!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SF 어렵지 않아요! 함께 읽는다면
[함께 읽는 SF소설] 0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함께 읽는 SF소설] 03.키리냐가 - 마이크 레스닉[함께 읽는 SF소설] 02.민들레 와인 - 레이 브래드버리[함께 읽는 SF소설] 01.별을 위한 시간
원작을 읽어요.
[밀리의 서재로 📙 읽기] 20. 콘클라베[북킹톡킹 독서모임]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25년 3월 메인책영화 <로기완>을 기다리며 <로기완을 만났다>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
AI가 대체 뭔데!
[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AI 2045 인공지능 미래보고서』 혼자 읽기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