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 2월 『폴란드인』 함께 읽어요

D-29
그는 그들이 내세에 만날 수 없는 건 내세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천국에서 떠도는 동안, 운명이 그를 지하에 넘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해보았을까?
폴란드인 208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그녀는 자기를 사랑했던 남자가 그 사랑, 그 에너지, 그 에로스를 이용하여 그가 한 것보다 더 좋은 삶으로 데려다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폴란드인 206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여든네 편의 시가 든 폴더는 책상의 맨 밑 서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시들은 맨 밑 서랍에서도 잊히기를 거부한다. 그것들은 거기에서 서서히 타고 있다.
폴란드인 185,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사랑의 역설 : 우리는 죽게 되어 있는 몸과 불멸의 영혼을 동시에 사랑한다. 몸의 끌림이 없다면 연인은 영혼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연인에게는 욕망의 대상인 몸이 영혼이다.
폴란드인 189,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클라라 베이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폴란드인의 첫째이자 최고인 독자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두 번째다. 그리고 그녀는 뒤에서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가엾은 세 번째다.
폴란드인 p. 201,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남자가 여자에게 남긴 여든 네 편의 시. "답은 이렇다. 그는 그의 시들을 통해서 무덤 너머에서 그녀에게 얘기하고 싶은 거다. 그녀에게 얘기하고 그녀에게 구애해서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그녀의 가슴에 그를 살아있게 하고 싶은 거다. p186"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 (211~223쪽)
베아트리스는 번역된 비톨트의 시를 읽고 난 뒤 비톨트에게 두 통의 편지를 씁니다. 그가 대체 어떤 시를 썼을까 궁금했는데 스페인어로 번역된 시가 6장에 나오더라고요. 음.. 잘 모르겠더라고요.. 둘은 살아있을 때도 온전하게 소통하지 못했는데 비톨트는 죽음을 앞두고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시를 씀으로 비톨트는 그가 말했듯 베아트리스의 이름을 입술에 머금고 죽었네요. 그리고 베아트리스는 죽은 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베아트리스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비톨트를 향한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알면서도 모르겠는 게 그녀는 왜 편지를 쓰고 그를 침실로 오게했냐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았더라면 좋아했을"텐데 그렇지 못해서였는지 어째서인지 알기가 어려웠어요~ 책 뒷면에 "애수 어린 러브 스토리"라고 나와있는데요, 책을 읽을 처음부터 서로 주고받는 사랑일거라고만 생각하며 책을 읽은 게 이 책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어려운 점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다시 편지를 쓴다면 베아트리스는 어떤 내용을 쓰게 될 지 무척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어요 .
나는 이 시를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어요.
폴란드인 223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추신: 다시 쓸게요.
폴란드인 223쪽,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이 마지막 문장이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이 사랑 이야기의 요체, 즉 이 이야기가 풀어내는 사랑이 완성되리라는 '가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이라고 보였거든요. 비톨드의 시를 통해 비로소 그를 '듣게 되면서' 그의 부재에서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존재케 하는 베아트리스가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그려집니다. 이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로한 사랑을 시작했음을 짐작하게 되네요. 달리 말해, "그녀만이 뗄 수 있는 걸음, 노에서 예스로 가는 걸음"(25쪽)을 시작한 것이죠. 그들 사랑의 어긋난 시차때문에 "애수 어린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어긋남이 만남을 가능하게 하므로, 어쩌면 이것이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치스러운 것은 그녀에게 아무도 아니고 비톨트에게 아무도 아닌 클라라 베이스가 비톨트의 영혼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거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베아트리스를 위해 시들이 쓰였는데 그녀보다 더 분명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 클라라 베이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폴란드인의 첫째이자 최고인 독자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두 번째다. 그리고 그녀는 뒤에서 절뚝거리며 따라가는 가엾은 세 번째다.
폴란드인 201,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비톨트에게 보내는 베아트리스의 편지 "그녀는 자기를 사랑했던 남자가 그 사랑, 그 에너지, 그 에로스를 이용하여 그가 한 것보다 더 좋은 삶으로 데려다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p206"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읽고 나서
어제 읽은 후에 정리가 안되어 역자의 말을 읽었는데도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확연히 와닿는 점이 없더라고요.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라도 소통이라는 건 머나먼 걸까, 배경과 언어와 삶의 차이로 개와 고양이가 오해하듯 남녀(비톨트와 베아트리스)는 허상 속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건가 싶고요. 그러다 ‘나는 솔로’를 봤는데 옥순바라기인 영식을 보니 비톨트를 바라보는 베아트리스가 진짜 연민이었을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그저 ‘착해서(맨처음 강조했듯)’ 다 받아줬나, 남편이 있어도 경배받는 게 필요했던걸까 싶고… 결국 언어의 괴리가 있을 땐 음악이나 침묵(말없는 행위, 영혼보다 몸)이 관계에서 더 중요한걸 이야기 하나 싶고…여전히 혼란한 가운데 이영광 시인의 ‘시의 말’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어 덧붙여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비톨트가 몸의 존재가 아닌 상태가 되니 베아트리스는 언어(긴 편지)로 소통을 시도하는 듯 해 보이네요. 비톨트의 떠남 자체가 그녀를 그리만든건지, 비톨트가 남긴 시가 자극제가 된건지 모를일이예요.
제가 예상했던 전개가 아니었고 결말도 뭔가 석연치 않아서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의도가 뭐였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남녀 주인공들이 즉흥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가다 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웠고, 심지어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제대로 파악이 안 돼서 읽는 내내 좀 답답했어요. 사실 이성 간에 호감이란 게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는 건 비톨트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의 영어 수준을 계속 문제 삼는 베아트리스의 태도에서 비톨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진심을 찾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베아트리스는 그저 자신을 이유 없이 죽을 때까지 추종하며 그녀가 이해할 수도 없는 모국어로 시를 써댄 비톨트의 심리를 궁금해했던 것 같고 사랑에 대한 화답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자 오히려 좋아란 느낌으로 지루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감행하려고 그에게 일방적인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아닐까요? 혹은 뭇남성의 호감을 받을 일이 그리 흔치 않은 시기에 있는 한 여인이 예상치 못하게 그의 과분한 사랑으로 자존감을 높이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닌 자신의 추종자로만 기억될 그 남자가 마치 살아있는 양 선심 쓰듯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 우월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자 했나 싶기도 한데.. 쿳시는 이런 모호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요.? ㅜ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 쿳시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가히 <폴란드인>을 제 최애 도서 목록 상위에 올리는 데에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예술과 사랑의 교집합되는 지점이 저에게는 충분히 납득이 되어 일종의 고양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충만함이 저를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리라 믿습니다. 말하는나무, 그믐 그리고 읽는사람, 모두 감사합니다.
완독하였습니다. 처음 책을 펼쳐 1장을 읽을 때에는 아니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과 같은 '열정적인 (불륜) 사랑에 대해 얘기하려나'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구요. 2장 - 4장까지는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메세지를 모르겠어서 그저 생각없이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답답함도 조금 느꼈구요 ㅋㅋㅋ.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러한 답답함이 어쩌면 상호적인 감정 교류 없이 언어적 장벽과 사랑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인해 사랑이 이뤄지지 않아서 인가 싶더라구요. 다른 소설들에서는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다 던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이 책에서는 한 쪽(비톨트)만 열렬히 사랑에 빠졌고 상대방(베아트리스)은 그런 상대에게 당황스럽고, 그가 사랑을 전하고자 한 시도 역시 모두 베아트리스의 공감과 마음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신선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전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잔잔하게 고민해본 소설이었습니다. 보내주신 책 덕분에 좋은 독서 경험을 했습니다.
<폴란드인>을 두 번 읽었습니다. 쿳시의 책은 처음이었고, 단테와 쇼팽의 이야기까지 겹쳐있어 낯설기도 했고 조금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두 번 읽으니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네요. 한 번 더 읽어도 좋을 정도로 좋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시를 좋아하는데 이 책 전체가 시처럼 다가왔어요~ 시가 어렵게 느껴져도 여러번 읽어나가고 읽다보면 어느덧 마음에 와닿고 하는 게 있듯 이 책 역시 그랬습니다. <폴란드인>이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처럼 다가오기도 했지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쿳시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것 같아요. 처음 읽을 때는 1장의 1번 문장부터 잘 와닿지 않아서 읽다가 계속 이 부분으로 돌아가 읽었는데 여자와 남자는 쿳시에게 찾아온 베아트리스와 비톨트라는 두 명의 인물이라는 것을, 작가가 앞으로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해설에 나와있듯 '낯선 서두'였네요. 두 번째 읽을 때는 '내가 베아트리스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제가 베아트리스가 되어보고자 애썼어요~ 어느 날 느닷없이 자신에게 평화와 사랑을 준다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떨까, 그가 하는 말도 제스처도 잘 이해하기 어렵고, 음악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그 연주도 내 마음에 안들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주지 않고, 알아듣기 힘든 폴란드어로 시를 써서 자신에게 남긴 사람.. 이런 사람이 내게도 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하며 읽으니 진짜 제가 베아트리스가 된듯 그녀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의 사랑은 죽은 뒤 시가 되어 그녀에게 가닿았고, 그녀는 시를 통해 그를 들여다보면서 그가 바라봤던 그녀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비톨트의 사랑은 베아트리스가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을 열어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죽은)비톨트에게 혹은 살아있는 '시'에게 혹은 베아트리스 자신에게 계속 편지를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추신: 다시 쓸게요"라는 문장과 @지혜 님이 하신 말씀이 팍팍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게 해준 쿳시와 '말하는 나무', '읽는 사람', '그믐', 함께 책을 읽은 분들, 쇼팽 그리고 베아트리스와 비톨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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