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borumis 저는 강력 추천합니다!
borumis님의 대화: 실은 지금 제가 예술과 뇌과학 관련 책인 '통찰의 시대'를 읽고 있어서 통찰과 직관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봤는데요. 우선, 뇌과학에서는 통찰(insight)과 직관(intuition)을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직관은 좀 더 즉각적인 반면 통찰은 직관보다 좀더 한참 후에 이루어지고 좀더 복잡한 듯합니다. (어쩌면 커너먼의 fast와 slow system에 각자 해당되는 걸지도요) 그러나 직관을 섣부른 판단이나 편견으로 단정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은 얘기하고 이런 직관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네. 직관이 효율적이고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건 대부분의 뇌과학자가 동의하는 것 같지만 현대의 행동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편견의 불합리함과 비효율을 강조하느라 직관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긴 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통찰과 직관은 다른 개념이죠. 그런데 어떤 직관은 통찰이 체화돼서 대니얼 카너먼식으로 얘기하자면 시스템2가 아니라 시스템1에 편입돼 즉각적으로 반영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카너먼도 그런 사례를 보고한 바 있고요. 그러니까 통찰과 직관에는 교집합이 있다고나 할까요. 포수가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서 공의 움직임을 계산하지 않고도 공을 잡아낸다거나, 사격선수가 풍향과 풍속을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도 바람을 읽어내는 것 같은. 저는 '무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이 또 '접대 고양이'이기도 했어요. 녀석은 낯을 가리지 않고 손님 무릎 위에 냅다 앉아 버리거나 손님 앞에 엉덩이를 들이대곤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녀석을 쓰다듬거나 궁디팡팡을 해주곤 했는데 그러면 저는 꼭 녀석한테 물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해줬어요. 실제로 열에 여덟 정도는 그러다가 녀석의 앙칼진 경고 소리를 듣거나 물리거든요. 저는 녀석이 더 이상의 스킨십을 원하지 않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타이밍을 놓쳐서 물려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그 타이밍을 말로 설명하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지가 먼저 들이대도 어느 순간 문다...고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죠. 그 타이밍을 아는 건 물론 무의식적인 본능은 아니고, 녀석과의 상호작용 경험에서 얻은 직관이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서 통찰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한데 고양이 행동학 전문 수의사가 방송에서 고양이가 싫다고 보내는 행동 메시지 해석하는 것 보니 아 내가 그동안 저런 몸짓들을 읽고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죠. 어떤 패턴을 잘 알아차리는 능력(직관)과 그것을 분석하고 언어화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둘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요즘 같은 마케팅 시대엔 대체로 자기가 알아낸 패턴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잘 팔리니 첫 번째 능력 못지않게 두 번째 능력도 잘 연마해야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저는 후자가 서툴지만 전자가 기막히게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그들이 해낸 작업들에 경의를 느낄 때가 많아요.
YG님의 대화: 오늘 2월 12일 수요일 읽을 분량에 나오는 그릴리 탐험대의 여정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지도 참고하세요. 어휴, 저는 탐험과는 거리가 멀어서 지도만 봐도 아찔하네요. 빨간색 표시한 곳(포트 콩거)에서 맨 아래 파란색 표시한 곳(핌 섬의 세이빈 곶)까지 내려와서 일곱 명 남겨 두고 사망; (일곱 명 가운데는 그릴리가 포함돼 있었답니다.)
축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보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말예요. 하긴 몇 백 미터 안 되는 산에서도 길을 잃으니...
소피아님의 대화: 저는 베리 로페즈 , 이 분 매우매우 예민하고 어나더 레벨의 감수성 소유자인 것 같은데, 일상 생활은 원할하게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글쓰는 자아와 일상의 자아는 다르려나요?
저는 저자가 느끼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이 책 중간중간에서 읽었어요. 가령 이런 문장에서. '또 일방적으로 걸려오는 전화, 경찰의 무작위적 사찰, 공공장소에서 귀를 침범하는 ‘이지 리스닝’ 음악, 검문소의 불필요한 조사, 빅 데이터로 가능해진 정치 및 상업의 마이크로 타기팅 프로그램을 달가운 침입으로 받아들이는 말을 들을 때도.'
YG님의 대화: @소피아 수양 딸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또 온갖 여행지에 만나는 사람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걸 보면 상당한 사교성도 보유하고 계시는 게 아닐지?
확신의 내향형이었을 거 같지만 개방적이고, 우호적이고, 섬세한 만큼 눈치 빠르고 배려심도 있는 분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좀 신경증적이었을 거 같습니다...
YG님의 대화: @장맥주 작가님 말씀대로, 『호라이즌』도 천천히 따라 읽으면서 묘하게 힐링이 되네요.
맞아요. 힐링이 되네요. 작가를 따라가면서 지도를 찾아가며 올려주신 사진과 음악을 즐기면서 제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YG님의 대화: @새벽서가 @borumis 20일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게 뭐라고. :)
공개하시는 날이 마침 제 월급날이라 일주일 기다렸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결제하겠어요. ㅎㅎ
오호~~~ 감사해요!!!
YG님의 대화: @장맥주 @siouxsie 제가 벽돌 책 함께 읽기를 꾸준히 하는 이유 중에 하나예요. 연말에 썼던 어느 글에서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을 언급하기 전에 한 가지 장면을 소개합니다. 2024년 2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휑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었어요. 딱히 약속이 없으면 점심을 거르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렇게 조용한 사무실에서 습관처럼 아주 두꺼운 벽돌 책을 펼쳤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은 1915년에 독일에서 태어나서 나치 저항 운동을 하다가 10대에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파시즘과 맞서면서 수많은 사람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탈출시키는 활동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다, 자기도 미국에 망명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하죠. 전쟁이 끝나도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아요. 결혼을 해서 가정까지 꾸렸는데 하는 일마다 누군가 일부러 훼방을 놓듯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는 간절히 ‘포르투나(행운)’를 바라고 있었죠. 책을 읽으면서 그를 응원하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올해 저도 아주 힘든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그는 바로 1915년에 태어나서 2012년에 세상을 뜬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입니다. 2020년에 나온 『앨버트 허시먼』(부키)을 벽돌 책 함께 읽기 모임 때문에 다시 읽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로서는 책 읽기의 효능을 체험한 경험이어서 이 책을 꼭 언급하고 싶었어요.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인용문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르투는 다른 누군가의 포르투나가 된다.”
정말 다정하신 @YG 님 항상 방을 열어 주셔서 벽돌책의 장벽을 허물어 주시고 책소개며 백과사전 같은 정보 제공까지 감탄의 연속인데, 감동까지 장착하고 계시네요. 너무 완벽한 거 아닙니까?! '호라이즌' 같은 스타일의 책도 처음 읽어 봅니다. 덕분입니다~감사합니다^^
내 친구들은 역동적인 사건 안에 자신들을 집어넣었고, 또한 그 사건에서 즉각적으로 의미를 해석해 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들의 접근법은 그 사건이 계속 전개되도록 둔 채 모든 것을 알아차리면서, 거기 있는 의미가 무엇이든 알맞은 때에 그 의미가 드러나도록 두는 것이다.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2월 13일 목요일부터는 3장 '푸에르토아요라'를 주말까지 세 번에 걸쳐 나눠서 읽습니다. 일단 오늘은 한국어판 종이책 기준 392쪽까지 읽습니다. 알다시피, 북극권에서 적도로 왔어요. 푸에르토아요라는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의 산타크루스 섬 남쪽 해안에 자리 잡은 1만 명 정도가 사는 도시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장 서사의 기반이 되는 갈라파고스 제도 여행이 정확히 언제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아요. 대략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으로 짐작해 봅니다만, 사실 여러 번에 걸친 갈라파고스 제도 방문의 감상이 섞여 있어서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혹시 정확한 방문 연도를 확인하신 분들은 첨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역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여러 가지 이슈를 저자의 사유를 따라서 짚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태계 보존을 둘러싼 자연과 인간의 갈등 같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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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탕화면을 MS사에서 주기적으로 바꿔주는데 오늘 이 사진이 떴네요. 그린란드에서 찍은 백곰이랍니다. 저는 이미 더운 갈라파고스 파트로 넘어갔지만 바로 전에 읽었던 추운 스크랠링 섬이 바로 그린란드 이웃이었다는 것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페로 데 프레사, 너무 무섭게 생김요 ㅠ
겁에 질린 자신의 모습을 비웃어대는 보코 하람 단원들에게서 달아나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여학생들에게, 남수단에서 잔자위드 기병들에게 짓밟히는 가난한 기독교인들에게, 알아사드가 도시 광장에 떨어뜨린 드럼통 폭탄으로 산산조각 난 가족들에게, 16세기는 여전히 현재다.
호라이즌 4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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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님의 문장 수집: "겁에 질린 자신의 모습을 비웃어대는 보코 하람 단원들에게서 달아나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여학생들에게, 남수단에서 잔자위드 기병들에게 짓밟히는 가난한 기독교인들에게, 알아사드가 도시 광장에 떨어뜨린 드럼통 폭탄으로 산산조각 난 가족들에게, 16세기는 여전히 현재다."
16세기는 여전히 현재다.... 어쩜 영원히...
이 동전은 나와 더 가까운 시대인 몇 세기 후의 인물로, 라켄의 호젓한 시골 궁전에 틀어박힌 채 부하들을 움직여 1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거나 살해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제거하며 콩고 분지에서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약탈하고 피를 뽑아갔던 벨기에의 레오폴 2세의 정신을 대변한다. 또 1961년 벨기에 정보국 및 미국 CIA와 공조하여, 콩고에서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를 암살한 군부 폭력배 조제프데지레 모부투도 떠올리게 한다. 사 년 뒤 모부투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콩고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콩고의 국호를 자이르로 개명해 삼십 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며, 사담 후세인만큼이나 인간의 고통과 비참함에 개의치 않는 냉혹한 정책들을 시행했고, 모부투 세세 세코라는 새 이름으로 약 40억 달러의 사적 재산을 축적했다
호라이즌 40%,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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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님의 문장 수집: "이 동전은 나와 더 가까운 시대인 몇 세기 후의 인물로, 라켄의 호젓한 시골 궁전에 틀어박힌 채 부하들을 움직여 1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거나 살해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제거하며 콩고 분지에서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약탈하고 피를 뽑아갔던 벨기에의 레오폴 2세의 정신을 대변한다. 또 1961년 벨기에 정보국 및 미국 CIA와 공조하여, 콩고에서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를 암살한 군부 폭력배 조제프데지레 모부투도 떠올리게 한다. 사 년 뒤 모부투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콩고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콩고의 국호를 자이르로 개명해 삼십 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며, 사담 후세인만큼이나 인간의 고통과 비참함에 개의치 않는 냉혹한 정책들을 시행했고, 모부투 세세 세코라는 새 이름으로 약 40억 달러의 사적 재산을 축적했다 "
바바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 바이블을 읽으며 콩고를 조금 알게된 기억이 있어요~ 콩고는 지금 또 테러와 전쟁이 시작된거 같은데... 너무 불쌍한 국민들입니다.
포이즌우드 바이블미국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대학교 문학 과정 필독서로 널리 알려진 바버라 킹솔버의 작품. 20세기 콩고의 실제 역사인 정치적 대변동 시대를 시작으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지는 한 가족의 비극, 그리고 놀라운 재건의 서스펜스 넘치는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바다이구아나...별자리와 함께 문신으로 새겨져 있을 것을 상상해 봅니다.
갈라파고스 사회의 현상을 더욱 깊이 파고들수록, 경제적 기회와 정치적 부정이 ‘발전’을 추동하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여기서도 평범한 삶을 오염시키는 도둑질과 불공정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호라이즌 42%,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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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님의 문장 수집: "갈라파고스 사회의 현상을 더욱 깊이 파고들수록, 경제적 기회와 정치적 부정이 ‘발전’을 추동하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여기서도 평범한 삶을 오염시키는 도둑질과 불공정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
몇일 전 외상의학하는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사기꾼 의사들만 남았고 이제 우리나라 의료는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셨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평범한 삶을 오염시키는 도둑질과 불공정이 갈라파고스에도 있다니... 책 초반을 읽으며 느껴던 저자의 비관주의적 입장이 많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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