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D-29
제가 위에 너무 길어서 문장수집을 못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다고 했던 부분이 여기였어요. 두페이지 가득 올라오는 질문들 보면서 난 세상 헛살고 있나? 이런 질문을 내게 던져본 적이 언제였지? 이럴거면 책은 왜 읽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걸 저번에 읽은 '행동'에서도 생각해보면 약간 사회문화적 맥락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질문을 잘 못 하더라구요. (ㅋㅋㅋ 맥락맥락맥락..;;)이게 Collectivist culture와도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학회 강연 후 Q&A 시간이나 북클럽을 할 때도 질문보다는 뭔가 요약 정리 또는 내가 좋았던 부분 짚어가기 정도로 끝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그 부분을 질문이 아닌 비판으로 읽었어요. ‘파울웨더곶에서 나는 나의 정신으로부터 분석하는 마음을 비워내고, 끊임없이 분석하며 핵심을 찾으려는 욕망을 유보한 채 몇 시간씩 보냈는데, 그럴 때면 윌리엄 브레이크가 말한, 모래 한 알 속에 우리를 위한 온 세상이 갖춰져 있다는 불멸의 은유를 수시로 실감했다.' '여러 해에 걸쳐 내 안에서 종교를 대체하게 (혹은 어쩌면 강화하게) 된 믿음 체계 속에는, 생명이 없는 어떤 대상에는 그 질감이나 색채만큼 실질적인 영적 차원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인간의 안락과 이득을 위해 자연 세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어떻게 협력해야 언젠가 자연 세계 안에서 우리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적합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이런 글을 쓰는,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있죠. '우리'의 범위가 유난히 확장돼 있어서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고, 연민의 대상도 광범위하고, 자연의 경이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고는 하죠.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절박감’을 느끼고, 그걸 자주 이야기하곤 하죠. 저는 그런 영적인 면에선 대충 중간 정도의 사람인 것 같은데 이런 면에서 한쪽 끝에 있는 사람은 다른 쪽 끝에 있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고, 서로가 서로를 몹시 싫어하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해한 존재인 것만 같았어요. 산 바로 아래 아파트, 꼭대기에서 한 칸 내려간 층이라 완벽한 마운틴뷰에서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가 집자랑을 하면서 그러더라고요. 사람들 참 바보라고, 이렇게 조용하고 공기도 좋은 거 모르고 다들 시끄러운 대로변 아파트를 찾는다고. 그래서 제가 친구에게 얘기했죠. 그 사람들이 여기 전망이 더 좋고, 공기도 더 깨끗하고, 조용한 거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지금 그들에겐 전망이나 공기나 소음보다 버스 정류장이나 편의점이 가까운 게 더 중요한 거라고. 그들은 당신보다 전자에 덜 민감하고 후자에 더 민감한 거라고. 대로변 아파트가 좋은가, 가장 구석진 안쪽 아파트가 좋은가 하는 단순한 취향 문제에도 이런 오해와 단절(?)이 있는데 더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더 민감한 가치관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싶네요. 다른 이들의 고통에 더 민감한 사람이 있죠. 그들 눈에는 자기만큼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심하고 게으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걸 느끼는 것도 능력일 수 있겠죠. 어쩌면 ‘폭군들, 과두정치 지배자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들’도 다양한 인간의 모습 중의 하나일텐데, 바로 앞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두려워하면 ‘우리 스스로 자신의 치명적 숙적이 될 가능성만 더욱 커질 뿐’이라고 말하던 로페즈 자신도 폭군과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들을 호명할 때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우리가 그 어둠’이자 ‘빛’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 어둠은 타자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누나미우트족의 전통이나 통찰은 서구에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기에 아마도 너무 비주류 문화고, 소수자의 문화겠죠.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로페즈도 충분히 알 것 같은데, 이게 질문이라면 참 공허한 질문을 던지는구나 싶었어요. 그보다는 ‘삶의 곤경에 대한 그들의 통찰’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책의 뒷부분에서 나올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는 사실 이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기대했거든요. @새벽서가 님의 질문에 짧게 몇 마디 대답한다는 게 쓰다 보니 너무 장황한 독후감이 되어버렸네요. ^^;;
비판이 섞인 질문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질문들에 대한 멤버님들 의견이 어떠신지 궁금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는 몇개의 질문에만 답을 할 수가 있었거든요. 이런 독후감(?) 너무 좋습니다. 올려주신 글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정말 작가가 설명한 그대로네요.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과 자꾸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의 양가감정이 느껴져요.
감사해요~ 저 홈페이지에서 찾다가 어지러워서 누군가 올려주셨을거야! 하고 들어왔답니다. 이 분 처음들어보는 화가인데 그림이 참 좋네요. 색체예술가라는 표현이 딱 맞네요.
우와... 감사해요.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림이랑 함께 보면서 다시 읽으니까 문장 하나하나가 더 생생하게 와닿는 것 같아요. 새벽서가님 말씀처럼 그림도 너무 좋습니다. 뭔가 아련한데, 또 새로운 시작 같기도 하네요. "이는 떠남에 관한 그림인 만큼 공간에 관한 그림이기도 하며, 내가 본 모든 그림 가운데 작별이 한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촉발하는지를 이만큼 통렬하게 이야기하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떠나는 일의 곤란-떠나고 싶은 너무나 강력한 욕망, 그러나 동시에 어떤 틈이 벌어지고 결속이 단절된다는 느낌, 그리고 그 틈과 단절은 오직 돌아오는 것으로만 복구될 수 있다는 느낌-속으로 순식간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 벌어진 틈의 저편에서 어떻게든 떠남을 정당화할 경험을 발견할 수 있을까?
호라이즌 <들어가며>,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그림을 보고 나니까, 이 문장도 다시 보이네요. 저도 @borumis 님 말씀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과 자꾸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의 양가감정이 느껴져요. 꼭 여행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하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같이 붙어있으면 강렬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다가도, 혼자의 적막에 또 누군가의 온기를 찾게 되는. 그래서 하나가 좋다는 건지 둘이 좋다는 건지 그 이상을 바라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요(하하). 혼자 사는 건 편안하지만 가끔 집으로 향할 때, 복작복작 불 켜진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올려주신 그림들을 보니 저는 엄유정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들이 떠오르네요. 아이슬란드의 설산을 그린 white mountain이라는 시리즈의 그림들이 있거든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른 아침-생막심도. https://eomyujeong.com/p_2014iceland https://www.christies.com/en/stories/david-hockneys-early-morning-sainte-maxime-5245e14eda9a488f9d40e1bd5647a710
감사해요. (그림 찾다가 잘 안되서 '그믐에 있겠지..'하고 접속했습니다. 역시 ㅎㅎ)
오,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보다 실제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들어요! 그림 링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쯔강을 따라 충칭에서 우한으로 가던 저자가 야시장에 들러서 목도한 풍경을 보면서 Pieter Aertsen 의 그림을 떠올렸는데, 아마 이 그림이었지 싶습니다. 벨롯해협은 어딘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저는 관심분야여서 지리에 꽤 밝은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이젠 어디 가서 지리에 밝단 말 하지 말아야겠어요. 저자 덕분에 몰랐던 곳들을 여행하는듯해서 오랜만에 비소설책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
이 양쯔강 - 우한에서 나온 양쯔강 돌고래.. ㅜㅜ SF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의 'Last Chance to See'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의 에필로그에서 보면 이제 멸종했을지도 모른 그 희귀한 양쯔강 돌고래를 요리로 내놓았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안그래도 예전부터 이렇게 우한 수산물 시장에서 팔던 각종 멸종위기 동물들이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의 발원지가 아니어도 다른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에 대한 떡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 히치하이커와 동물학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 프로젝트SF라는 장르가 생소하더라도 제목을 들으면 누구나 ‘아!’하고 익숙하게 반응할 코믹 SF 장르의 고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 자신의 최고 베스트셀러에서 지구를 파괴하고 우주여행에 나섰던 그가 이번에는 지구를 여행한다.
맞아요 저도 그부분 떠올렸어요. 신기하네요. 각자 모두 책을 읽고 있는데,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비슷한 것을 보니 보편사고라는게 있나봅니다 ㅎ
살아 있는 원숭이와 고슴도치를 비롯한 작은 포유동물들이 철망이 쳐진 금속 우리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노점에서는 광주리에 죽은 귀뚜라미와 애벌레를 더미로 쌓아두었고, 그 위에 빨랫줄처럼 쳐둔 줄에는 참새 비슷한 새 수십 마리를 발을 묶어 매달아두었다. 이것은 16세기 화가 피터르 아에르천(1508~1575)이 그린 중세 정육 시장의 풍경이 단순히 세월을 뛰어넘어 재현되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마지막 남은 생물들까지 다 죽이고 소비하기 시작할 때,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였다.
호라이즌 62쪽,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저는 이 대목 읽고서 섬뜩했어요. 2019년에 이 책이 나온 걸 염두에 두면 우한발 펜데믹을 예언하는 묵시록적인 구절이라서요. 2020년에 저자가 팬데믹 한복판에서 세상을 뜨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듯해요.
안그래도 이부분 읽으면서 저도 이 저자가 팬데믹 때 돌아가시지 않았었나?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참, 1979년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인 누나미우트족의 작은 마을을 처음 방문한 후에 그가 던지는 질문들을 하이라이트했는데, 2 페이지가 넘어 문장수집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Cardita megastropha 세상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네요. 요즘 사는게 좀 재미없고 식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이 책이 식상하고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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