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한 배경과 비슷한 세계관, 비슷한 야망을 가진, 그리고 불행히도 비슷한 사각지대를 가진 소수의 케트놀로지 리더들을 말한다. (중략) 이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탱크나 로켓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회랑에 접할 수 있고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p.57 ,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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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다람쥐
아이 낳고 키우면서 벽돌책 완독이 쉽지 않은데 날짜가 좀 지난 것 같기는 하지만 여기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책은 산지 좀 되었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환영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금방 따라오실 수 있습니다!
루나84
“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에게 파놉티콘은 산업 사회의 핵심인 억압적 감시의 상징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파놉티콘은 도처에 편재한 사회 통제수단으로 그려진다.(p.12)
새로운 기계는 노동자들을 단순한 부품으로 전락시켰다.(p.14)
생산성 밴드왜건이 상정하는 인과관계 사슬의 첫 번째 고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선택이 내려지느냐에 달려 있다. 가용한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 모두가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해 인간 노동력이 불필요해지게 만들거나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을 향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p.38)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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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84
글이 생각보다 읽기 쉽게 잘 씌여져 있어서 부담없이 읽으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막연히 무엇인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명쾌하게 짚어주는 글이 었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네 저도 공감합니다. 위에도 썼지만 @루나84 님이 문장모음 하신 부분이 저는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오늘은 1라운드 3일차입니다. 1라운드 중간지점까지 왔는데 다들 재밌게 읽고 계신가요?
이제 1장까지 읽으신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1장은 책 전체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틀이 앞으로 다른 장에서 만나게 될 여러 실증사례를 분석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한 가지 키워드로 1장까지의 내용을 압축한다면 그것은 ‘선택’일 것입니다. 기술 진보의 혜택은 자동적으로 사회 전반으로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분배 방식의 “선택”에 따라 소수 지배층에게 집중될 수도 있고 모두에게 공유될 수도 있다고 저자들은 반복해서 주장합니다. 이후 장에서 다루게 될 기술 진보의 사례들을 통해 당시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존르카레라이스
기술 진보에 의한 공유된 번영이 자동적이지 않다고 구호처럼 주장하는 대신, 왜 그런지 경제적 메커니즘을 통해 분석하는 부분이 저에게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경제학자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룬다고 할 때 기대하는 바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기술 진보가 공유된 번영으로 이어지리라는 낙관은 ‘생산성 밴드왜건’ 이라는 개념에 기초합니다. 도식적으로 보면 생산성 밴드왜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술 진보 → 생산성 향상 → 1) 노동 수요 증가 → 2) 임금 상승
저자들은 이 인과적 연쇄 중 뒷 두 단계가 특정 조건 하에서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1) 노동 수요 증가 : 한계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 때 (새로운 업무 창출이 한계생산성을 높인다.)
2) 임금 상승 : 노동주와 고용자의 관계가 억압적이거나, 다른 고용주와의 경쟁이 없거나, 노동자의 협상력이 발휘되지 않을 때.
이러한 분석 끝에 저자는 “공유된 번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테크놀로지의 이득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분배될 수 있어야만 가능”하고, 이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존르카레라이스
제작년에 의료 인공지능을 다룬 <딥 메디슨>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은 현재 의료 시스템을 빠르고 얕은 의료로 진단한 후 미래의 의료 인공지능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당시에도 기술이 좋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그믐 블로그에 책 후기를 남기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의 전망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분석에 따라 도출되는 결론이라기 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의료의 기술적 측면에만 기반한 낙관론이자 그래야 한다는 규범적 이상이다.
나는 단순한 이유에서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것 같지 않다는 쪽이다. 이미 IT기술에 힘입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겪은 다른 산업군을 보면 그러하다. 대개 자동화는 인원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존에 의사나 간호사들이 하던 일이 자동화되는 상황에서 병원이 비싼 임금을 들여 이들을 고용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 이미 거대한 산업이 되었는데 의료 분야라 해서 다른 분야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생각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집어내지 못했는데, <권력과 진보>의 생산성 밴드왜건과 관련한 부분을 읽으면서 좀 더 이해가 깊어진 것 같습니다.
(<딥 메디슨> 에 대한 당시의 감상을 그믐 블로그에 적은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gmeum.com/blog/curry/1398 )
딥메디슨 - 인공지능, 의료의 인간화를 꿈꾸다저자는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던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40여 년을 돌이켜보며 눈부신 의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치료 성적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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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Ho
블로그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책 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의술 대신 기술이 진료하는 시대..
의사는 진료시간을 확대할까.. 진료인원을 확대할까.. 하는 물음이 생겼습니다..ㅎ
링크 꼬리에 ) 괄호가 붙어서 연결되지 않습니다.. 지워주시면.. ^^;
존르카레라이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권력과 진보>의 저자들은 아마 <딥 메디슨>을 테크노-낙관주의로 치부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의료라는 구체적인 분야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현재 어느 단계에 왔는지, 빠른 시일 내에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GoHo 님께서 가지신 의문이 <권력과 진보> 의 저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물음일텐데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고 있네요. 게다가 기업화된 대형병원이라면 의사조차도 의사결정권이 없을 것 같네요.
링크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교동들고양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인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모건 하우절 좋아합니다. 지난 달에 읽고 매 연말마다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권력과 진보>도 함께 즐겁게 읽어요!
밥심
“ <2장 운하의 비전>
101 쪽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그리는 진보의 방향이 무엇인지와 무엇을 감당 가능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102 쪽
비전이 없으면 테크놀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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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그리는 진보의 방향이 무엇인지와 무엇을 감당 가능한 비용이라고 생각하지에 달려있다. 또한 우리가 실수와 현장에서 나오는 증거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도 달려 있다.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p.101 (2장 운하의 비전),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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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하지만 비전은 가시 범위를 제한하는 왜곡된 렌즈이기도 하다.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p.102 (2장 운하의 비전),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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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다른 이들의 목소리, 특히 그의 비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았을까? 답은 사회적 권력과, 또한 정말로 우리가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잇는지와 관련이 있다.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p.104 (2장 운하의 비전),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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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역할에 부여되는 의무를 행하고 있는지 묻는걸까? 궁금해져서 구글에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보았어요. '공화국의 시민'의 의무는 무엇이 있을까? 라고 물어봤을 때 스스로 답을 잘 내놓지 못하겠더라구요. 투표권 행사, 말고는 명확히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 부끄러웠네요.
미국의 주 정부,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정부 공식 페이지에서 '시민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카테고리로 시민의 의무를 나열하거나 예시를 들어준 내용도 확인하고 기타 페이지 사용자들이 '시민의 의무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달아준 답도 읽어봤는데 하나같이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우려 사항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것', 그리고 '정보를 놓치지 말기(*주변 사회 상황을 인지하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이 문장들 만으로도 2장을 마무리하며 작가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것 같네요. 이미 거대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사람의 비뚫어진 비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공화국 시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내용이 이어질 것 같은데, 어떤 예시들과 이야기로 이 내용을 부드럽게 풀어줄지 기대 됩니다.
존르카레라이스
저도 궁금했었는데 찾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롭네요.
루나84
“ 생산성 증가가 필연적, 자동적으로 폭넓게 공유되
는 번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공유된 번영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테크놀로지의 이득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분배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41,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