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건 할아버지세요.」
말하는 아이의 잘생긴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저보고 생각하기를 그만두게 하실 건가요? 단지 할아버지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요?」 ”
『키리냐가』 p.34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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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자유 의지이든 아니든 간에 일단 제가 지식을 얻었으며, 제 마음을 텅 비우고 그 지식을 잊어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라고요. 사자는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요.」
아이는 한참 동안 말을 멈췄다.
「더구나 저는 제 지식을 잊고 <싶지 않아요>. 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지 이미 배운 것을 잊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
『키리냐가』 p.350,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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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나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네덜란드 사내아이 같았다. 유럽인의 생각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둑을 손가락으로 막자마자 다른 곳이 터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인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은데미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줬을 리가 없는 새로운 생각들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저절로 싹튼 것이다. ”
『키리냐가』 p.353,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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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진정한 유토피아가 그것을 발견한 세대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또한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아무리 그 가치가 신성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아니면, 키리냐가는 <결코> 유토피아였던 적이 없었으며, 우리는 어찌 어찌해서 우리 자신을 속이고는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어 버린 것은 아닐까? ”
『키리냐가』 p.355-35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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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응가이께서 얼마나 더 오래 우리들의 신으로 계시리라 생각하세요?」
「영원히란다.」
아이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내가 답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응가이께서 단지 <음토토>이셨을 때는 우리들의 신이 아니셨어요, 그분께서는 젊고 힘이 있으셨을 때 늙은 신들을 죽여야만 했을 거예요. 하자미나 이제 그분은 오랫동안 신으로 존재하셨고, 이제 누군가가 그분을 죽여야만 할 거예요. 아마 새로운 신은 우리 아버지께 응가이보다 더 자비를 베푸시겠죠.」 ”
『키리냐가』 p.365,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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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쏘
아마도 지금이 어떤 전통은 없애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네요. 여자 하나가 전통을 무시했다고 해서 온 세상을 벌하기보다는요.
『키리냐가』 전자책 기준 P.521,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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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시기란 아주 잠깐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한 사회가 완전해지면 그 사회는 변화하지 않아야만 유토피아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은 사회의 본능이었다. 나는 키리냐가가 유토피아가 되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순간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키리냐가』 p.443,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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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난 돌아가지 않을 거요.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히 말이오. 아흐메드와 나는 둘 다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요. 우리가 더이상 이해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한 자리가 없는 세상을 떠나 이곳에서 남은 생을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카마우는 산을 바라보았다.
「당신과 그 코끼리는 영혼이 연결되 어 있군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오.」 ”
『키리냐가』 p.447,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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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데의짐승
할아버지는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계세요. 제가 원하는 건 마사이족이 아니라 도전이라고요!
『키리냐가』 p29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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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데의짐승
그것은 균형의 문제요. 무절제한 성장은 결국 끝없는 굶주림을 가져오는 거요. 당신은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보지 못했지만. <나>는 보았소.
『키리냐가』 p38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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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깃털이 갓 난 새가 날개를 시험해 보는 게 유익하듯이, 젊은이가 권위에 도전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일도 유익한 것이다.
『키리냐가』 p.322,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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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키리냐가는 완전히 다른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는 부류와 우리가 힘들여 만든 사회로부터 멀어지기만 하는 생각을 해내는 부류로. 상상력이 없는 쪽은 결코 우화를 만들 수가 없었으며, 상상력이 있는 쪽은 키리냐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채 외래의 생각을 수용하는 자신들만의 우화를 만들었다. ”
『키리냐가』 p.355,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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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키리냐가는 성장이 <필요하지> 않소! 당신들이 유토피아를 얻었을 때 <내일은 또 뭘 바꿀까?>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요.」
『키리냐가』 p.392,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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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곳 키리냐가를 키쿠유족을 위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오!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내 정의가 당신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오. 왜 <당신>이 떠나지 않는 거요, 코리바?」 ”
『키리냐가』 p.394,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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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유럽인은 사바나를 보며 도시를 상상하지만 키쿠유는 같은 사바나를 보면서 샴바를 생각하오. 또 유럽인은 코끼리를 보며 상아로 만든 장신구를 생각하지만, 키쿠유는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물로 또는 작물의 피해를 생각하오. 그럼에도 그 둘은 같은 땅과 동물을 보고 있는 것이오.」 ”
『키리냐가』 p.340,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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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일정대로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7장, 8장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에필로그와 결말까지 포함하는 관계로 혹시 책을 아직 읽고 계신 분들은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 전에 유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 남는 일정은 감상의 시간이긴 하나 완독하신 분들은 먼저 느낀 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올리셔도 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전 도서관 대출기한이 오늘까지여서 책을 반납했습니다. 그저께부터 반납하기 전까지 7,8장과 에필로그를 다시 한 번 읽었어요. 3,4장이 외부에서 온 위기를 다루었고, 5,6장이 내부에서 싹트는 불화였다면 7,8장은 코리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세운 사회에게 배반 당하면서 몰락하는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8장보다는 7장이 더 인상 깊었는데요. 8장은 키리냐가 사회가 속속들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묘사하는 장으로서 코리바의 일방적인 좌절감, 실패를 느낄 수 있는데 비해 7장은 코리바와 은데미의 첨예한 갈등과 생각의 차이 때문에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7장은 특히 거짓과 허구에 기반을 둔 우화의 진실과, 역사와 사건에 기반을 둔 정보로서의 사실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묻는 장이라고 느꼈어요.
1)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은데미와 코리바의 견해 중 어느 쪽에 더 공감, 찬성하거나 반대하시나요. 또는 둘 모두 맞거나 틀렸다고 생각하시나요.
-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깨닫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보로서의 '사실'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 코리바
- 거짓과 허구에 기반을 둔 '진실'은 아무리 값지더라도 결국 가짜에 불과하다고 보는 은데미
2) 8장에서 코리바는 키리냐가를 떠나기 전에 키만티에게 자신이 마을에 어떤 존재로 기억될 지를 묻습니다. 코리바는 키리냐가에 필요악이었을까요? 사회를 망가뜨리고 발전을 막은 장애물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우려처럼 무너지는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한 마지막 키쿠유였을까요?
3) 에필로그의 결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코리바는 진정한 유토피아를 찾아낸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현실로부터 도피한 것일까요.
엘데의짐승
1. 저는 둘 다 모두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맞았기 때문에 실패했고 둘 다 틀렸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실패한 걸로 저는 보았습니다. 둘 다 자신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가져간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2. 결과적으로는 장애물이자, 숨은 악?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코리바가 그간 해 왔던 모든 행동이 부정되어버리고 더 이상 이 마을에 필요없는 존재라고 인식해 버린 것 같아서요.
3. 위에도 썼지만 결국 가장 불행한 사람은 코리바였어요... 행복한 삶의 마감이 되길 응원했습니다.
책을 읽고 느낀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저는
1. 유토피아라는 것이 과연 존재 할까? 라는 질문에 그것은 계속 변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팽창하고 변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계속 그 이상향은 변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모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요. 그 과정에서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코리바는 오로지 자신의 지식과 신념으로만 키리냐가를 만들어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최근 우리사회를 많이 떠올리게 한 부분은 역시 리더십입니다. 한가지 신념에 매몰된 사람이 독재적 리더십을 고수할 때의 위험성, 융통성 없고 타협없는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사회발전의 필요성을 가진 세력과의 충돌은 결국 고립과 내부 갈등으로 치닫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전통의 보존과 발전, 리더십, 타협, 이해, 진실, 공존... 이런 단어로 이 책을 마무리 합니다.
바빠서 단원별로 깊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네요. 그래도 좋은 책 소개 받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은화
1번 물음에 대해 전 코리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은데미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갑니다. 코리바의 주장은 수면 아래에 <키리냐가 주민들은 정보를 접하고 올바로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 오히려 왜곡된 하찮은 정보만 알게 될 뿐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마치 7장 초반의 말을 잃게 된 동물들의 우화처럼 그는 주민들이 생각하는 힘이 없다고 보고 정보를 접할 기회 자체를 막았죠.
그런데 오히려 주민들을 그런 상태로 만든 것은 코리바 본인이라고 봅니다. 코리바는 은데미와 사람들이 사실을 통해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끌어내 '이해하기를' 원했죠. 주민들이 서구문명의 기술적 편리함만 보지 말고 그것들이 나중에 불러올 다른 사회 문제들을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코리바 자신도 서구사회에서 먼저 지식을 배우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서구인과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접한 뒤에 자기판단력, 생각과 주관을 형성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진실과 사실이 항상 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분리할 수도 없죠. 정보로서의 '사실'을 접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주민들이 자신처럼 진실을 깨닫기를 원하는 건 모순이라고 느꼈어요.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생각을 할 능력도 없기에 마을 주민들은 여러 사회변화의 문제가 닥쳤을 때 역설적으로 코리바의 바람과 다른 결정들을 이어가죠. 이는 코리바 스스로 자신이 우려한 바를 자초한 아이러니라고 봅니다.
은화
2번 물음의 경우, 코리바는 '한때는 필요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불필요해진 것들'의 상징적 존재로 느꼈어요. 사회가 시대가 흐르면 어떤 관습이나 문화는 과거에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 사멸하듯, 코리바는 키리냐가가 과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필요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스스로도, 키리냐가도 그 변화의 흐름이 얼마나 빨리 다가올지는 몰랐을 뿐이죠.
멸종한 과거의 생물들 중에는 공룡처럼 자연의 사건에 의해 사라지는 것들도 있지만 인간 때문에 멸종하는 것들도 있죠.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인위적인 변화도 큰 틀에서는 시대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코리바의 능력이나 지혜가 전혀 쓸모없거나, 그의 주장이 마냥 근거 없지는 않다는 점이 작중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외부에서의 침입자가 독재자로 군림하던 일화나 에필로그에서 온갖 부정과 환경오염, 생명경시의 문제를 보여주는 케냐가 그렇죠. 하지만 코리바와 응가이, 그리고 과거 키리냐가의 삶의 방식조차도 변화하는 우주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사라지는 전통들 중에는 악습이나 사회에 오히려 해가 되는 가치들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여전히 인류에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매번 골라가며 변화를 통제할 수는 없죠. 코리바 스스로도 자주 강조하듯 자연의 모든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엮여있듯이 전통도 그 안에는 빛과 그림자가 섞여있고 때론 경계가 불분명한 지점들이 있기에 어느 것을 쉽사리 취사선택 할 수 없으니까요.
코리바는 문두무구로서 마을에 필요하던 때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름에도 변화를 거부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음으로서 어느 순간부터 장애물이 되어 마을과 자신 모두에게 힘든 시간을 더 연장한 것이라고 봅니다.
결말의 경우 그가 케냐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아들 에드워드의 평가처럼 처음에는 패배한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인들의 기술력으로 기후를 조절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키리냐가는 서구사회와 분리되어 살겠다면서도 여전히 근본적으로는 유럽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모순이 있었죠. 코리바의 선택은 응가이를 케냐의 키리냐가에서 다른 키리냐가로 옮겨 놓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미 신이 떠나간 자리를 우주로 옮겨봐야 그곳에 응가이가 있을 리 없죠.
하지만 멸종한 아흐메드가 되살아 날 수 있다면 키쿠유와 코리바 자신도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는 보존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신과 전통이 떠나간 자리에 남아 서로에게 고통을 주기 보다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봤어요. 어찌 보면 5장의 뭄비에게 노인은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정작 스스로는 지키지 않다가 자신도 받아들이고 미련을 털어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