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브와나를 읽으며 코리바가 떠올리는 유토피아를 알 것 같기도 했는데, 4장의 므왕카 이야기에선 계속 의문이 들었어요. 과연 유토피아인가?
지난 장에서 카마리의 상황들에서도 그렇지만 할례의 경우에 유독…잔인함이 느껴지네요.
의문 가득한 이야기들과 혼란들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갈지 궁금함게 계속 읽게됩니다!
달콤한유자씨
“ 평생 땔감을 나르느라 등이 굽고, 세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을 낳느라 배는 축 늘어졌으며, 치아는 아홉 개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어릴 때 앓았던 병 때문에 다리가 굽은, 이제 겨우 서른네 번의 긴 우기를 지낸 보리는 잠시 내 앞이 서 있었다.
「그 여자는 정말로 <마녀>예요, 코리바 할아버지. 한눈에 아실 거예요.」 ”
『키리냐가』 p.215-216,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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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 「법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는 여기서 살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는 있지만, 말도 안 되는 관습 때문에 저를 불구로 만들 수는 없어요.」
므왕게가 말했다.
「우리의 전통이 없다면 우리는 키쿠유가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케냐인일 뿐이오.」
내가 지적했다. ”
『키리냐가』 p.237,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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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유자씨
「전통과 정체는 서로 다른 거예요, 할아버지. 만약 할아버지께서 전자의 이름으로 취향과 행동의 변화를 제약한다 면 단지 후자를 택하는 것일 뿐이에요.」
므왕게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키리냐가』 p.237,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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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인지하지만 인정하지 않은 그 '서구와의 접점'이라는 한계가 결국 키리냐가와 코리바의 몰락을 가져왔죠. 결국 코리바가 멸종 된 코끼리와 함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버려진 땅으로 사라진 결말을 지켜보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진공 상태에서 보존하려는 극도의 보수적인 태도는 결국 대중에게 버림 받고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뻔하지만 강력한 메세지를 느꼈어요. 그럼 도대체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행동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전통을 수호한다는 것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아님을 계속 되새겨야 할 것 같아요. 또, 전통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잘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구요. 우리의 전통적 삶과 그 가치가 누군가를 해치고 있지 않았을까? 외부의 시선을 통해서만 그 고통을 볼 수 있다면, 고통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하기 보다는 우리가 누구를 외면했는지 직시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전통 문화 보전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으로 <키리냐가>를 읽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은 우리 나라를 향한 안타까움 같기도 하네요.
은화
* 결말의 내용이 일부 적혀 있어서 해당 댓글은 스포일러로 지정했습니다. 아직 읽으면서 중간 중간 그믐에 들어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저도 오늘부로 결말까지 다 읽긴 했습니다.)
이 책은 여러 주제를 마치 코리바가 말하는 우화처럼, 우리에게 직접 어떻게 하자는 의도를 전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을 계속 던지네요. 여러 주제 중 한 가지는 <어디까지가 적절한 변화이고, 어디까지가 적당한 전통인지를 구분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같습니다. 인간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명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힘이 작용하여 변화가 일어나죠.
코리바라는 인물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의 걱정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봐요. 코리바가 자신의 방에 둔 컴퓨터로 인해 일어난 일들.. 우연히 시작된 외부의 방문객들에서 시작한 일들.. 이것들이 점점 키리냐가를 바꾸어가는 모습은 처음에는 개인이나 집단이 변화를 몰고 오지만, 어느 변곡점부터는 변화가 사회를 몰고 가는 역전을 일으키죠. 그러기에 코리바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고자 더 완고하고 고집불통이 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애초에 유토피아는 사람마다 정의도 다르고, 고정시킬 수 없는 개념이듯 전통도 시대가 지나면서 바뀌는데 '무엇이 전통이고, 어디까지가 전통이 아닌가'를 계속 고민하게 되네요. 변화에 맞춰가며 전통도 변해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닌 것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정체되어 동떨어진 삶은 과연 전통인가.. 그렇다면 전통이란 것은 결국 유토피아처럼 그저 우리 머리 속의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여러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무네요.
하금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스포일러 지정 기능도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장과 4장을 걸치며 심화 되는 키리냐가의 갈등은, 은화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애초에 유토피아는 사랆마다 정의도 다르고 고정시킬 수 없는 개념>이라 발생한 것 같아요. 유토피아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코리바는 ‘키쿠유가 키쿠유답게 사는 것‘이라는 답을, 그 답에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키큐유 선조의 지혜만을 따르며 사는 것‘이라는 조건을 달아두었죠. 다만, 그 합의가 전 세대에 거쳐 이루어지지 못했고 키리냐가의 시초가 되는 사람들의 키리냐가의 전통을 향한 욕망 역시 전통 그 자체를 향한 애정보다는 ‘유럽/서구를 향한 증 오‘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코리바조차 봉합 할 수 없는 갈등이 계속 발행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생각을 글로 정리하다보니 정말 필요했던 것은 시민간의 합의였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통과 문화유산의 보존 방법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해요. 저는 유형의 문화유산은 남아있는 형태를, 무형의 문화유산은 직업의 형태로 전환하여 보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무형의 문화유산만 따지고보자면) 자본주의 사회에 맞춰 전통 보존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방식의 전통문화 보존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말 어렵네요.
하금
「그리고 아무리 많은 규칙을 당신들이 만들고 아무리 많은 전통에 호소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게 할 수는 없어요. 」
『키리냐가』 p.237,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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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 그러곤 보리만이 남았다. 평생 땔감을 나르느라 등이 굽고, 세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을 낳느라 배는 축 늘어졌으며, 치아는 아홉 개 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어릴 때 앓았던 병 때문에 다리가 굽은, 이제 겨우 서른네 번의 긴 우기를 지낸 보리는 잠시 내 앞에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