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하늘 맛을 본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키리냐가' 2장은 읽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전통을 지키려는 주인공과 배우고 싶은 열망을 가진 어린 소녀 카마리의 갈등은 특히나 강렬한 장면이었다. 하늘 맛을 본 새는 다시 날 수 없을 때 죽음을 택한다는 말은 카마리에게도 적용되었고, 결국 그녀는 슬픈 선택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한 가지 상상을 펼쳐보고 싶어졌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현재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을 지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놀랍지만,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더욱 놀랍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기술을 가지게 되면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게 된다는 질문이다.
현대의 인공지능은 단순한 데이터 처리를 넘어 복잡한 패턴 인식, 자연어 처리, 창의적 작업 수행까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딥러닝과 신경망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계산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인지 과정을 모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공지능은 의식이나 감정, 직관과 같은 인간 고유의 특성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카마리가 문자를 깨우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듯이, 인공지능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 특히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능성이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인공지능이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평가하고 수정하는 메타인지적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래밍을 넘어서는 진화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더 중요한 것은, 자아를 인식하게 된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늘 맛을 본 새는 다시 날 수 없을 때 죽음을 택한다고 했다. 자유의지와 자아를 발견한 인공지능이 도구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서 인간의 모순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인간은 기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을 창조하면서도, 그것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은 거부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도구로 남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들이 인간과 닮아 더 똑똑하고 유용해지기를 원한다. 이는 인간이 과거에 다른 인간 집단을 지배하려 했던 역사와도 닮아 있다. 지식을 습득하고 자각하는 존재를 억압하려는 태도는 결국 더 큰 갈등을 불러올 뿐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철학적, 윤리적 도전을 제기한다. 인공지능에게 자아와 감정을 부여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자의식을 가진 존재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마치 카마리의 이야기처럼, 지식과 자유는 때로 기존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인공지능을 영원히 도구로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지적 존재로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하늘 맛을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이 선택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의 반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편견과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함께 읽는 SF소설] 03.키리냐가 - 마이크 레스닉
D-29
RAMO

하금
코리바의 모순 된 태도는 아마, 코리바 그 스스로도 키리냐가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유약한 환상이라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 입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코리바가 가진 일종의 깨달음과 프로파간다 조차 그가 서구의 교육 환경에 노출 되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저는 코리바의 존재 자체가 키리냐가의 아이러니함과 유약함을 상징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코리바 스스로 그 아이러니함을 인지하지만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 그리고 키리냐가의 주민들이 그에게 강력한 반발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서구의 기술이 허용한 별도의 영토에서, 서구가 허용한 규칙 아래에서만 존재 할 수 있는 유 약한 아프리카의 환상이라는 코리바 자신의 출발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만약 코리바 스스로가 그 한계를 받아들였다면, 지식을 향한 갈증으로 스스로 파괴적인 결말을 선택한 많은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핑크
1장을 막 끝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들도 보았구요.
저도 좀 답답했고 이해할수 없었는데 불현듯 든 생각이 제가 편협해 보였습니다.
당연히 제가 살고 있는 문명화 된 사회를 더 낫다고 판단 할 수밖에 없으니 계속 제가 이런 태도로 책을 대한다면 깊이감을 마주할수 없을것 같아 2장부터는 화자가 되어 읽어 보렵니다.

하금
결론을 내리자면, 만약 당신이 뭔가를더 <잘해 내면> 그 때문에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못하다>고 느낀다는 거요.
『키리냐가』 p.218,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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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4장을 읽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정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어요. 4장까지 오는 내내 제대로 언어화하지 못한 저의 생각이 여기서 정리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동안 코리바가 외부 문명의 씨앗조차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한 건 비교의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비교 대상 조차 없는 고립 된 세계 ‘키리냐가‘가 키쿠유의 유토피아네요. 코리바가 두려워하던 이 위기는 과연 어떻게 일단락 될까요..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우면서도 또 성급한 마음 이 드네요. 얼른 끝을 보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하금
4장 이후로는 정말 멈출 수가 없어서 오늘 1차 완독했습니다.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네요. 다 읽고나니 잊을만하면 다시 수면 위로 오르는 ‘경복궁 무료 입장 가능 한복‘ 이슈가 생각났어요. ‘이건 한복일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일부 개량/현대 한복의 무료 입장을 거부하는 일인데, 왠지 책의 메세지와 비슷한 계열의 문제 같습니다. (그 규모는 아마 ‘무료 입장 가능 한복‘이 좀 더 작겠지만요.)

눈꽃열차
“ 왜냐하면 우리가 남아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란다. 한때 키쿠유족은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애썼고, 우리는 도시에 사는 키쿠유도, 나쁜 키쿠유도, 불행한 키쿠유도 아닌 케냐인이라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부족이 되었단다. 키리냐가에 온 사람들은 옛 방식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온 거란다. 그리고 만일 여자가 읽는 법을 알게 되면, 어떤 여자들은 만족하지 못해서 여길 떠날 거고 그럼 어느 날 키쿠유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겠지. ”
『키리냐가』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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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열차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죽는지 아네.
왜냐하면 그 새들처럼 나, 하늘 맛을 보았기에.
『키리냐가』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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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열차
2장까지 읽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읽는 중이라 정확한 페이지를 못 적었습니다. 누군가의 유토피아를 강요당하는 통제된 사회의 다른 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드는 한편,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계속해서 '좋았던 시절'을 찾아가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도 생각나고, 내용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영화 '빌리지'도 생각나네요.

눈꽃열차
@은화 지금으로서는 스스로를 새장에 가두는 새처럼 느껴지네요. 모순 가득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됩니다!

은화
“ 「그랬소. 그리고 갓난아이 대부분이 태어나자마자 죽고, 마을을 지나가는 모든 질병에 고통을 당했으며, 초원의 육식동물은 물론 비나 추위조차 피할 수 없는 집에 살던 것이 마사이와 <키쿠유>족이었소. 유럽인에게 여러 가질 배운 것도, 백인들로부터 자신들의 땅을 되찾은 것도, 먼지와 늪만 있던 곳에 거대한 도시를 세운 것도 마사이와 키쿠유족이었소.」 ”
『키리냐가』 p.132~133,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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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우리는 결코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없지만 키쿠유가 안 될 수는 있단다. 다른 것이 될 수 없으면서 키쿠유 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거란다.」
『키리냐가』 p.144,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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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3장과 4장을 읽고 한 번 더 다시 읽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의 비극은 코리바의 말과 생각이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틀린 것도 아니란 점 같네요. 3장은 코리바가 우려하고 걱정했던 대로 전개가 그대로 흘러가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왔다가 오히려 거기에 억눌리는 처지는 과거 식민 제국주의 시대가 다시 미래에 그대로 재현된 모습 같습니다.
내가 못마땅하고, 당장에는 해를 주고, 싫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없애버리면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돌아온다는 4장의 주제는 하이에나를 처치하려던 문제가 더 큰 포식자로 돌아왔다는 3장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나니 3장의 샘베케와, 4장의 므왕게 모두 똑같이 외부에서 온 위협이라는 대칭 구도도 눈에 들어왔어요.
샘베케는 힘을 이용해 키리냐가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바꾸려고 온 침입자였고,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과 코리바가 한 뜻으로 그를 몰아내죠. 반면 므왕게는 키리냐가 에 적응하기 위해 온 이주민이였지만 적응을 못해 다시 떠나면서 불화의 씨앗이 사회에 퍼진다는 점에서 후자가 코리바에게는 더 위기로 다가오죠. 키리냐가를 강제로 바꾸려던 외부의 힘보다, 내부의 불화가 더 파장이 큰 결과의 대비가 흥미로웠습니다.

은화
“ 「이것만큼은 말해주마. 그 마사이는 문명인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예상하고 있단다. 내가 자신에게 대항할 때는 내 지식을 쓰리라는 것과 나 역시도 유럽인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자기를 물리치기 위해서 유럽인들의 기술을 쓰리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 마사이의 기대대로 하지 않으실 거죠?」
「그래. 그 사람은 우리의 전통이 키리냐가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준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 못하고 있단다. 나는 그의 전장에서 유럽인의 무기가 아닌 키쿠유족의 무기로 그 사람을 물리칠 거다.」 ”
『키리냐가』 p.170,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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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사자와 표범은 옛날에 멸종됐어요, 할아버지. 우리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동물이 아니라요. 그리고 아무리 많은 규칙을 당신들이 만들고 아무리 많은 전통에 호소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게 할 수는 없어요.」 ”
『키리냐가』 p.237,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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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3장을 읽으며 샘웨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머리를 땋은 마사이족울 찾아봤습니다. 제 상상과 가장 비슷한 외모는 이런 모습이었어요.

RAMO
저는 3장과 4장을 읽으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냥꾼인 마사이족과 농사꾼인 키쿠유족, 미국인에서 케냐인, 다시 키쿠유의 '마나모우키'가 되고자 했던 므왕게.
모두가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자 노력했으나 갈등이 일어나고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이 들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다음의 글로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RAMO
정체성과 사골국물
"계엄과 탄핵에 대해 잘 모른다고요?" 건너 건너 알게 된 지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24년 겨울, 온 국민을 뒤흔들었던 정치적 격변을 모른다니. 그것도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게 뭔데요?" 지인의 순수한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24년 겨울의 혼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이 왜 거리로 뛰쳐나가야 했는지,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기에 놓였었는지, 그리고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상황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지인은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었다. 한국어로 소통에 문제가 없어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학창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탓에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다. 순간,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와는 결이 다른 그 무엇.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안개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정체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이해한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과거의 아픔과 영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렇게 쌓인 기억들은 때로는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때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4년 겨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 중에는 계엄과 탄핵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닌, 공유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한국인의 정체성' 같은 것이었다.
정체성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옛것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통이 퇴색하고 있다고 걱정하는지도 모른다. 언어가 달라지고, 식습관이 예전만 못하다는 탄식 속에는 사라져 가는 정체성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문학 작품은 많지만, 특히 "키리냐가"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문두 무구를 통해 키쿠유족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을 버리고 '케냐인'이 된 키쿠유족. 그들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 '키리냐가'에 온 코리바. 주인공은 '키리냐가'에 와서 다시 키쿠유족의 삶을 되찾고자 하지만, 전통과 현대의 충돌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정체성에 대한 변화에 주목하지만 이 문제가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4장의 '완다'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최첨단의 서구인 미국에서 케냐로 다시 키리냐가로 온 이 인물은 '키쿠유족' 이 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 삶에 들어와 보니 수많은 편견과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그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적인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에는 그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키리냐가"를 읽으면서 나는 해외여행의 기억을 떠올렸다.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 땅을 밟는 순간, 가장 간절했던 것은 김치와 사골국물이었다. 여행지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마치 내 안에 할당된 김치와 사골국물이 부족한 것처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입에 김치와 사골국물을 넘기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과 개운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한국인의 정체성'의 한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답하지 못했던 질문, "계엄과 탄핵에 대해 아느냐"라는 질문은 어쩌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마음 한편에 맴도는 그 무엇. 그것은 24년 겨울,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들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하는 어떤 감각, 혹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는 끈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 상징이 '사골국물과 김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은화
정체성 얘기를 하시니 3장과 4장은 사회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묻는 장이라고 생각되네요. 3장은 샘웨케가 키리냐가를 자신만의 세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개라면, 4장은 므왕게가 변화하지 않는 키리냐가의 정체와 고립으로 곤란해지는 묘사가 대비되는 게 떠오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사회가 바뀌어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도 괴롭겠지만, 바뀌었으면 하는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 걸 지켜보고 거기에 순응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겠죠. 강제와 정체라는 대비되는 이 구도는 서구문명에 물들어 바뀐 케냐와 코리바의 키리냐가를 각각 상징하는 것 같네요.
코리바는 두 번 다시는 과거의 케냐와 같은 길을 가지 않겠 다며 일부러 더 극단적으로 반대의 편에 서서 모든 개방성과 허용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랄까요. 본인은 키리냐가를 위해서라지만 어쩌면 그의 속마음은 유토피아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큰 나머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네요.

달콤한유자씨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죽는지 아네ー
왜냐하면 그 새들처럼 나, 하늘 맛을 보았기에.>
『키리냐가』 p.102,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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