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D-29
마광수가 자기에게 맘에 드는 소설에 대해 뭐라고 평하는지 들어보자. 내게 맘에 드는 소설이 내 눈에 띄면 나도 한번 읽어보고, 우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읽어보자.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역시 여자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니까 한국에서도 늙은 작가들이 여자에 대해 파는 거 아니겠나.
이순원이나 박범신 같은 경우도 늙으막에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글에 넣었다. 아마도 남잔 역시 나이가 들어, 아니 나이가 들수록 더 여자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까 그것에 대해 쓰는 것 아니겠나.
사회적 이목 때문에 양다리 걸치는 소설이 많은데 그런 양념이 아니라 중간에 진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듣는 게 훨씬 낫다. 욕 안 먹으려고 양념으로 넣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 글은 제목보단 더 야하다. 그리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보다도 더 내용이 파격적이다. 그러나 제목이 그래서 단속이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인간들은 그냥 제목만 보고 책 내용을 평가한다.
사회에서 저지르는 살인이나 전쟁을 상상으로 미리하고 그걸 예방하자는 말도 마광수는 하는 것 같다. 미리 상상속에서 대리배설을 하면 현실에선 안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해결책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 그걸 어떻게 하면 활용하고 불행을 막을 수 있나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이 본질 때문에 혹시 지구에서 인구 문제 등이 해결되며 이 지구가 유지된 것은 아닌지.
인간 개조는 가능한가? 아무리 떠들어도 해결책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파고 그걸 어떻게 하면 활용하고 전쟁, 기후 위기 같은 불행을 막을 수 있나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이 본질(본성, 폭력성) 때문에 혹시 지구에서 인구 문제 등이 해결되며 이 지구가 유지되어 온 건 아닌지.
작가의 속뜻 사회적 이목 때문에 양다리 걸치는 글이 많은데 그런 양념이 아니라 중간에 진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듣는 게 훨씬 낫다. 너무 나간다 싶으면 현실과 타협을 보고자 이상적인 이념 같은 걸 양념으로 넣는다. 욕 안 먹으려고 양념으로 넣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 작가만의 소릴 듣고자 책을 펴들었는데 흔한 작가들이 하는 소리를 되풀이해서 들으면 실망하고 짜증 날 것이다. 이런 게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냥 아무것도 안 재고 써 재끼는 것에서 날 것 그대로의 소릴 하는데, 그래서 이때가 더 명작이 많고 나이 들어선 지도층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아 파격적인 것을 쓰더라도 그런 것이 아니라 하면서 교훈적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실은 이 ‘그런 게’에서 그런 게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독자는 양념 섞인 내용이 아니라 진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캐치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산 공부 “무식하면 용감하다.” 요즘 내란 수괴처럼 무식하면 용감하고, 책을 한 권만 읽어 한가지 신념에만 빠지면 나라 전체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전에 많이 회자(膾炙) 되던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여기서 더닝 쿠르거 효과도 끌어낼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덜 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안다고 생각해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학설이다. 이러니 공부할 필요성이 점점 커진다.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실행하는 게 더 쉽다. “아, 좋아! 날아갈 것 같아.” 단체 등산에서 이 산이 몇 미터이고 이 산에 있는 절은 언제 지어졌으며 무슨 전설이 있다는 둥 지식만 나열하는 중년 남자들이 아는 척하며 (특히, 여자가 있으면 더 큰소리로) 늘어놓는데, 한쪽에서 모처럼 야외로 나온 여자들은 맑은 공기와 꽃내음을 맡으며 “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마치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기분이야.”하고 감탄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듣기 좋은가? 여기까지 자연을 벗 삼아 놀러 온 거지, 지리, 역사 공부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중에 돌아와 그 산에 대한 내력을 알아야 할 때, 그때 서야 등산 경험은 산 지식이 될 것이다. “누가 불렀는지 모르지만, 이 구절 참 좋아!”하며 흥얼거리는 게 낫지, 사전에 그 노래에 대해 전부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이러면 자기 입장만 고수했지 정작 그 분야에서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다. 또한 그게 하기 싫은 공부가 되어 오히려 노래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추락할지도 모른다. 좋아하던 것도 막상 공부나 직업이 되는 순간,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을 얻나니.” 이 말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냥 욕심을 부리지 말자, 이렇게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실생활에서 사실 출세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비면 주변에서 오히려 거부 반응이 일어나 승진에서 자기만 누락될 수도 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승진도 따라오는 거 아니겠나. 오히려 이런 사람이 소리소문없이 승진한다. 잔뜩 기대했는데 안 되는 것하고, 기대도 안 했는데 된 것하고 그 기쁨에서 어느 게 더 클까. 그리고 이성과 썸탈 때도 뭔가 좋아하는 티를 내면 상대방은 부담스러워 멀리할 것이다. 그냥 무심한 척 툭 던지는 말투로 작은 변화 같은 걸 알아주면 상대가 내게 관심 가져줄지도 모른다. 이성이 아니라 여자(남자) 사람 친구 대하듯이 하는 것이다. 생활하고 사색하면서 그런 가운데 깨닫고 통찰하다 보면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이거로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될 때가 있다. 이런 게 산 지식이고 공부 아닐까. 불교에서도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마음을 비워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色]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얻는 게 없다고[空] 말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속담이나 관용구 같은 걸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보다 생활하면서 통찰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다른 누군가가 이전에 한 말을 접하고 나는 이미 생활과 사색과 독서를 통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기존 지식을 미리 달달 외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활에서 스스로 깨닫는 게 진정한 공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냥 세월만 보내면 이런 좋은 경구들의 진정한 뜻을 모른 채 죽는 것 또한 당연하다. 세상에 떠도는 금언(金言)들을 너무나 진부한, 지당하신 말씀 정도로만 알다가 어느 정도 생활에 연륜이 쌓이면 그 아포리즘(Aphorism)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될 때가 온다. 내 앞을 앞서간 사람들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그들도 살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그런 철학을 양산한 것이다. 공감도 안 되고 잘 이해도 가지 않는, 그런 말들을 남발하기 이전에 조급하지 말고 체험을 맘껏 하고 조용한 가운데 사색하면 자연스럽게 그 뜻을 깨닫게 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게 많으면 책을 한 권만 읽은 인간처럼 뚜렷한 신념을 갖기 어렵다. 세상은 항상 상대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이념 같은 건 다 소용없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게 최고인 삶이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순수한 예술로서의 문학을 가장 높게 마광수는 치는 것 같다.
자기에 대한 근거없는 나르시시즘을 갖고 마구 써대는 글이 실은 좋은 글이라는 것이다.
꿈이 없는 잠은 잠도 아니라고 하는데 실은 꿈도 없이 자는 잠이 푹 자는 잠이다.
작가도 늙고 병들어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여자를 그리워하는 진한 연앨 꿈꾸는 글을 대개는 쓴다. 아마도 종족 본능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현실 도피를 위해서도 글을 쓴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가장 잘 사는 비결은 자기도 즐기면서 어쩌면 남에게도 좀 도움을 주는 작업이다.
역시 마광수는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에서부터 다르다.
허무주의 책을 찾는 것은 그 책에 물들어서가 아니라 일단은 그런 게 좀 있어서 찾는 것이다.
인간은 이 감정이 중요하다. 종교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때문에 서로 죽이는 전쟁도 일어나는 것이다. 천재지변에 의한 것보다 이 전쟁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 인간의 이 감정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마광수는 약속 이행 정신을 높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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