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감정선 따라 읽기] 3. 내 여자의 열매

D-29
어떤 까닭이었든 이제 베란다에 남은 것은 메마른 흙이 채워진 직사각형의 화분들뿐이었다. 그 죽은 화초와 채소 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창틀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차가운 빗속에 손을 적셔보곤 하던 날 들은, 젊었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23, 한강 지음
허기와 피로 때문에, 밥 떠먹을 깨끗한 숟가락 하나도 남김없이 싱크대의 개수통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식기들 때문에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먼 곳에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 때문에, 긴 비행 시간 동안 겪은 소소한 일들과 이역의 기차에서 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곤해?' 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괜찮아' 라고 강인하고 참을성 있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다. 외로움 때문에 화가 났다. 내 몸이 보잘것없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에게 엉겨붙지 않는 듯한 느낌, 어떤 옷으로도 가릴수 없는 한기, 무엇으로도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용케 스스로에게 숨겨왔을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났다. 언제 어디에서나 혼자이며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미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28, 한강 지음
존재의완성님의 대화: 문장 수집 기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듯.
그래도 나중에 모아볼 수 있어서 좋답니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해질녘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항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핥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43, 한강 지음
아이가 개들을 만난 것은 오후 두 시경의 일이었다. 하지만 해질녘이 되면 그 개들도 흰 흙펄에 비친 석양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이를 에워싸고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는 대신 잠자코 아이와 함께 걸어가지 않을까? 일렬로 바다쪽을 향해 앉아 꼼짝 않고 일몰을 지켜보지 않을까? 이맘때가 되면 언제나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47, 한강 지음
다시 해가 진다. 아이는 겹쳐놓은 베개들 위로 올라간다.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다. 세상은 차츰 어두워질 것 같지만, 그렇게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해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는 깜짝 놀랄 만큼 환해진다. 마치 꿈속같이, 그 순간만큼 세상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49, 한강 지음
엄마가 얘기해준 과수원은 다른 곳에 있는 거라고 아이는 생각했다. 내일이라도 거기를 찾아간다면 복사꽃들이 만발하고 햇살이 찬연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엄마를 찾아내지 못한 건 그 진짜 과수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배꽃 환한 그늘 아래 앉아서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릴 거라고, 그 가슴팍에서 향긋하고 끈끈한 과즙 냄새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55, 한강 지음
꼬리별님의 대화: [1.27 - 1.29 / 파트 A / 내 여자의 열매 -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A-1.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이 책을 읽고난 후 무엇을 얻게 되길 기대하시나요?
이정도 두께의 다른 책은 한숨을 한 번 쉬었겠지만.. 이책은 손에 쥔 순간 부자가된 기분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의 씨앗과 잘 대면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ㅎ
GoHo님의 대화: 이정도 두께의 다른 책은 한숨을 한 번 쉬었겠지만.. 이책은 손에 쥔 순간 부자가된 기분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의 씨앗과 잘 대면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ㅎ
반갑습니다 😁 설날에 여유롭게 읽어보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A-3. <내 여자의 열매>에서 결국 여자는 어떻게 된 걸까요?
이 글에 달린 댓글 3개 보기
화제로 지정된 대화
A-4.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태련이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 달린 댓글 5개 보기
꼬리별님의 대화: [1.27 - 1.29 / 파트 A / 내 여자의 열매 -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A-1.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이 책을 읽고난 후 무엇을 얻게 되길 기대하시나요?
한강작가의 이야기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요
la님의 대화: 한강작가의 이야기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 연휴동안 잘 읽고 한강 작가에 더 가까워지시길 바랍니다.
꼬리별님의 대화: A-3. <내 여자의 열매>에서 결국 여자는 어떻게 된 걸까요?
결국 죽음이 아닐까요. 사실 열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여자는 말라 죽었을 것 같아요.
꼬리별님의 대화: A-4.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태련이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할 것 같습니다........만 태련이가 빨리 독립했으면 좋겠네요. 학교라도 다녔으면 좀 더 도움을 요청하기 쉬웠을 텐데, 아쉬워요.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91, 한강 지음
어쩌면 그동안 아빠는 아이보다도 더 무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줄곧 무서움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더욱 무서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 여자의 열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99, 한강 지음
꼬리별님의 대화: A-3. <내 여자의 열매>에서 결국 여자는 어떻게 된 걸까요?
@꼬리별 삭막한 도시, 외로운 아파트, 무심한 남편으로 인해 시들어 결국 식물이 되어버린 걸까요? 죽음을 이렇게 식물이 된 것으로 표현한 것일까요?
꼬리별님의 대화: A-4.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태련이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꼬리별 결국은 아빠를 또한 떠나버린 엄마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가며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요? 아니 성장해가며 이해해가는 게 아닐까요?
@꼬리별 태련이가 아빠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 먹는 장면, 이어서 급히 토하게 하는 장면이 무슨 뜻이었는 지 이제야 이해했어요. 앞의 장면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게 그랬군요. 이걸 겪고나서 태련이도 훅 변해버렸군요.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증정] 조선판 다크 판타지 어떤데👀『암행』 정명섭 작가가 풀어주는 조선 괴담[북다] 《정원에 대하여(달달북다08)》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책 증정] Beyond Bookclub 10기 <오늘도 뇌 마음대로 하는 중>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 여러분의 처방책이 필요합니다.
결혼하는 같은회사 직원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주세요.수험생이 시집이 읽고 싶대요. 스무살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을 추천해주세요.[책처방] 5.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추천받고 싶어요.
독서모임에선 책만 읽는다? 댓츠 노노!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2월 8일(토) 달오름극장에서 만나요.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2월 26일(수), 함께 낭독해요 🎤
[그믐밤X그믐클래식] 32. 달밤에 낭독, <일리아스>
2월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이달의 고전] 2월 『제5도살장』 함께 읽어요[이달의 고전] 2월 『양철북』 함께 읽어요[그믐밤X그믐클래식] 32. 달밤에 낭독, <일리아스>
책도 벽돌, 독자들의 대화도 벽돌!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작품 말고 작가가 더 궁금할 때!
[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
illef의 깊이 읽기
AI 교과서(AIDT)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왕의 목을 친 남자 - 사형집행인 샤를 앙리 상송의 이야기
매달 만나는 젊은 작가의 달달한 로맨스 🧁
[북다] 《정원에 대하여(달달북다08)》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달달북다07)》 함께 읽어요! (1/23 라이브 채팅!)[북다] 《지나가는 것들(달달북다06)》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빛처럼 비지처럼(달달북다05)》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달달북다04)》
📩 닫히지 않는 편지 가게 글월
편지가게 글월 / 백승연 지음 (2024 런던 국제 도서전 화제작)[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편지 가게 글월] 서로 꿈을 이야기하며 안부를 전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SF 어렵지 않아요! 함께 읽는다면
[함께 읽는 SF소설] 03.키리냐가 - 마이크 레스닉[함께 읽는 SF소설] 02.민들레 와인 - 레이 브래드버리[함께 읽는 SF소설] 01.별을 위한 시간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