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발트 읽기] 『자연을 따라 기초시』 같이 읽어요

D-29
에세이 『공중전과 문학』에 이어서, 시집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읽습니다. ※ 책은 '알프스의 눈과 같이', '그리고 내가 바다 끝에 가서 머물지라도', '어두운 밤이 전진한다'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 내용을 세 시기로 나눠서 얘기합니다. 한 시기는 9일이며, 총 27일간 진행할게요. ※ 한 시기 넘어갈 때마다 게으를 수 있도록 하루 텀을 두겠습니다. ※ 한 시기가 끝나면 간략히 [#소감] 말머리를 달고 제 짧은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안 읽고 얘기하셔도 좋고 아는 척 하셔도 좋고 생판 딴 얘기해도 좋습니다. 독서와 장기와 뒷담은 원래 훈수 두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11/22에 시작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차 시기 시작]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11월 30일까지 '알프스의 눈과 같이'를 읽습니다. 분량 자체는 매우 짧습니다. 또 아무도 없이 혼자 떠들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ㅠㅠ) 그냥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책은 이틀 전에 사놨고 잠깐 읽어본 페이지들이 흥미로웠어요. 제발트,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이번 책이 처음인데요. 이전에 <공중전과 문학>으로 모임을 진행하셨다니 russist 님은 그래도 저자에 대해 익숙하실 것 같아요. 어떤 매력을 지닌 저자인지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시작하려 합니다...!
와 책까지 사셨다니! 제발트가 취향을 타는 스타일인 모양인지 이전에 열었던 두 번의 모임은 애석하게도 저혼자 말하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저 또한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저자에 대해서 익숙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매번 새롭거든요. 재밌는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반가워요:)
ㅎㅎㅎ읽고 나니 왜 취향을 타는지 알겠군요...사람에 따라서는 읽던 책을 집어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본문 34쪽부터 38쪽까지 묘사되는 그림은 그뤼네발트의 ⟨성 안토니오의 고뇌⟩입니다. 읽고 나서 아래 출처의 그림을 한번 보시기를. https://ko.m.wikipedia.org/wiki/파일:Matthias_Grünewald_-_Visit_of_St_Anthony_to_St_Paul_and_Temptation_of_St_Anthony_-_WGA10771.jpg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조금 더 생생하게 읽었어요 :)
‘알프스의 눈과 같이’까지 읽었어요. 한 번 읽고 한 번 더 읽었는데요. 두 번째 읽을 때는 정보나 인물간 관계 등에 더 익숙해진 채로 읽어서 문장의 리듬이나 글이 그려내는 장면의 느낌에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TMI지만, 배수아 역자(이자 작가)님이 옮기신 책들이 대체로 저의 취향이더라고요. 역자가 옮긴 책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한지 서너 달 정도 되었고, 이 책을 읽기로 한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인도 바로 역자 때문이었어요. 번역 대상으로 선정하시는 텍스트들이 하나같이 다 흥미롭더라고요. 다르게 말하면 호불호를 많이 탄다는 얘기이고요ㅎㅎ 배수아 역자의 역서들에서는 텍스트와의 충돌을 겪을 수 있어서 온몸이 깨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도 그런 것 같고요. 익숙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대하면 반드시 길을 잃게 되어 있어서, 텍스트라는 것을 생전 처음 대하듯이 읽어나갈 때 더 나은 독서 경험이 가능한 책인 듯 해요.
저도 배수아 님이 번역하는 책들을 거의 다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톤의 글을 번역하실 때 역자로서 주파수가 맞는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 같은 책이 특히 좋았고, 로베르트 발저는 임홍배 역자님의 번역이 더 좋았습니다. 전 아직도 한번씩 꺼내서 읽어보고 있어요.
맞아요, 배수아 역자님이 번역할 때 빛을 발하는 텍스트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아이는 왜 폴렌타에서 끓는가>가 참 좋았어요. 시에 가까운 소설인데 개인적으로 좋게 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이렇게 또 읽을 책이······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에 '현기증/감정들'로 제발트를 시작했는데요, 뭐라는 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읽으면서도 이건 다른 소설들과 결이 다르고 전혀 다른 독법으로 접근할 것 같은 위화감(?)은 내내 느꼈습니다. 첨엔 익숙한 해석밥 자체를 근원적으로 막아버리는 그런 인상이었어요. 그 와중에 문장들은 정말 좋아서, 잘 모르는 이국의 고유명사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꾸역꾸역 읽었더랬죠. 나중에는 정말 좋아하게 됐지만요:) 아마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접근할 것 같은→접근해야 할 것 같은 / 해석밥→해석법 입니다.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오타가 ㅠ
말씀을 들으니 제발트의 다른 저서들도 궁금해지네요. 일단 이 책부터 읽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요 :)
일단은 겨울에 읽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생뚱맞은가요?ㅎㅎ이 책을 봄이나 여름에 읽었다면 책에의 몰입도가 떨어졌을 것 같아요.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는... 옮긴이의 말부터 읽고 시작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2008년 늦가을,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로 시작, 제단화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 후 ’회색빛과 보랏빛이 섞인 해질녘이었다.‘로 이어지는 북독일의 차가운 저녁 풍경이 책으로 진입하기 적당한 무드를 훌륭하게 형성해 주었어요. 그렇게 읽기 시작한 1부 ’알프스의 눈과 같이‘는 제가 다른 어떤 텍스트에서도 경험한 적 없는 톤 앤 매너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종교적이면서 음울하고 고통스럽고 허망하기도 한 느낌... 의미나 해설을 딱히 덧붙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묘사들, 그림과 풍경과 인물에 관한. 오래된 종교 벽화를 한참 동안 보고 있는 듯하달까요.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계속 읽게 되는데 정확히 왜 계속 읽게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무엇인지 모르면서 계속 읽게 되는 건 텍스트가 가진 힘이 있어서라고 생각됩니다. 매혹적인 텍스트임은 분명해요. 읽는 이를 매혹하는 힘이 있어요. 책 날개에 적힌 작가의 이력을 봤는데, 어떻게 이런 심상을 내면에 갖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되진 않았습니다. 생존 시기를 보면 더 의아해집니다. 그렇게까지 먼 옛날 사람도 아니어서요.
형식적 측면에서는 저한텐 서사시 같았어요. 역사적 사실을 시로 옮겨놓은 듯한, 다만 함축적인 의미나 은유나 상징이 복잡하게 들어가 있진 않은. 역사적 사건, 일어났던 일을 장면으로 그려내는 시. @russist 님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
저는 그 장르는 그 장르여야만 하는 이유를 작품이 내적으로 설명해야한다고 봐요. 그래서 영화로 더 잘 표현될 수 있는 소설이라거나 산문으로 표현될 수 있는 시는 기본적으로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같은 기준을 적용해보면, 기존에 제발트가 써 오면 평론이나 에세이가 아닌 서사시인 이유가 있다고 봤어요. 시에는 일반적인 산문형 줄글에서는 볼 수 없는 행갈이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제발트가 이 사실을 더 첨예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시를 쓰지 않았나 추측해 보았어요. 게다가 내용상으로도 회화 작품을 주로 다루잖아요. 그렇다면 문장의 호흡을 적절히 끊어서 '회화'의 부분부분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보여줄 수 있는 시가 적절하지 않나 싶어요. 근데 하나 더 재밌는 점은, 기존의 서사시가 영웅의 모험을 다룬다는 점이었어요. 영웅의 업적이나 그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한 노랫말이 서사시였잖아요. 근데 제발트는 영웅적인 인물을 다루지 않고, 외려 반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예술적 이방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게 이 책의 묘한 부분이죠. 서사시라는 오래된 형식과 서사시가 다루는 대상 간의 불일치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 내용상으로도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군요 :) 화자가 등장하지 않고, 또 진술이나 설명도 따라붙지 않으려면 소설보다는 시라는 형태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성경을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성경에서 어떤 사건을 얘기하면서 그에 대한 해석을 일일히 붙이지 않는 것처럼요. 성경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 이야기의 화자는 예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어떤 등장인물의 시점도 취하지 않고, 3인칭 시점도 전지적 시점도 아닌 위치에 있는데... 그러면서도 모든 사건들이 어떻게 진행됐고 끝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서술할 때 나올 수 있는 문장들로 성경이 이루어져 있잖아요. 1부의 문장들이 저한텐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 문장을 쓴 사람의 위치, 시점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말씀하신대로 작품에서 화자의 위치가 전지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서사시라는 특성 때문인 듯해요. 오래간만에 집에 있는 성경을 펼쳐봤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알 것도 같네요. 짚어주신 부분이 제발트의 작품에 나오는 화자의 전반적인 특징 같아요. 이 책에서는 잘 안드러나지만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 되게 신기했던 부분인데요, 1인칭으로 쓰여져 있고 굳이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데 '나'가 교묘하게 지워져 있어서 전지적인 시점 같이 읽힙니다. 그런데 또 재밌게도 한번씩 '나'가 등장해서, 그걸 보고나서야 '맞다, 이게 1인칭으로 돼 있었지' 하고 뒤늦게 알게 되곤 했지요. 역사나 과거 쪽으로 치우쳐 있는 화자라서 더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1차 시기 ⟨알프스의 눈과 같이⟩ 소감, ~49쪽] 오늘은 일찌감치 일을 끝마치고 ⟨알프스의 눈과 같이⟩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서사에 치중된 시이다 보니, 구체적인 표현법보다는 전체적인 글의 짜임새에 더 신경을 쓰면서 읽었습니다. 작품에서 화자가 말하듯이 그뤼네발트 폰 아샤펜부르크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화자는 그뤼네발트의 그림을 주관적으로 묘사한다거나 그를 언급한 다른 이들의 책을 참조하면서 얘기를 꾸려가는 형식입니다. 찾아보니 그뤼네발트는 삼련제단화라고 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 폭 짜리 연작 그림을 그린 작가라고 하네요. 이 책의 전체 구성이 3편의 장시로 이뤄져 있고, 가장 첫 번째 시로 그뤼네발트를 다룬다는 점이 퍽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네요. "워낙에도 극단적인 세계관에 / 마음이 끌리던 것이 분명한 그뤼네발트는 / 이미 삶의 구원이란 / 삶으로부터 구원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구절에서도 보듯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편이고, 그림 속 인물들은 다들 저마다 사연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았던 시대의 비극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작품은 멜랑콜리합니다. 프랑크하우젠 전투에서 농민군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뤼네발트가 몇 주 동안 눈에 검은 천을 두르고 있었다는 대목이 인상깊었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몇 대목 인용해보겠습니다.
사막의 거주지에 있는 성인 안토니우스에게 부리로 음식을 물어다준 검은 새는 아마도 지금 우리를 향해서 점점 더 가까이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투명한 심장을 가진 그 새에 대해서 종말을 예언한 또다른 성인의 말처럼, 새는 바다에 배설물을 쌀 것이다. 그리하여 바다는 끓어넘치고, 그리하여 대지는 진동하며, 철탑이 서 있는 대도시는 화염에 휩싸이리라. 교황은 쪽배에 몸을 숨기며 암흑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그곳, 검은 성채가 무너진 곳에 누런 회색의 흙먼지가 일어 땅을 뒤덮으리라. ⏤본문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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