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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 작가의 [툰드라]
D-29
도우리
Nina
[오백 마일]
500 miles 는 1938년 Hedy West가 작곡한 것을 1962년 Peter,Paul & Mary가 데뷔 앨범에 넣은 곡입니다. 대공황 시절 직장이 날아가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 헤메는 날품팔이의 고단함을 노래한,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곡입니다.
인영은 광저우에서 한어 고급반 수업을 듣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고려물산의 중국 직원들에게는 한국어를 한국 직원에게는 중국어를 가르치며 지내는 시간 교사입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일상을 중국 차문화를 곁들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 오는 사람 맞고 가는 사람 떠나보내며 무심히 게스트 하우스 주인으로 늙어가는 것. 젊은 인영은 여행지에서 느닷없이 그런 상상을 했다. 아무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되고 싶다고. 속세의 절간 같은 상상의 게스트 하우스 이름은 '인연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짓자.
- 한국 엄마라면 식당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다. 하나부터 다섯까지 모성이 강요된 사회, 여자 스스로도 거의 강박관념처럼 모성에 매이는 사회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참을 터이다.
- 도서관과 인생 사이의 백팔번뇌를 오르내리며 인영은 자기만의 이십 세를 보냈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과 이혼. 다른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속했을, 아니 죽을 때까지 끈을 놓지 않았을 가정이란 삶의 방식을 짧은 시간에 매듭짓고 지금은 낯선 이국에 와 있다.
- 아이도 사랑도 포기하고 빈 몸으로 떠났건만 가방까지 잃어버리다니. 내게 더 잃어버릴 게 있는지, 더 버려야 할 거나 있는지, 땅에 딛고 있는 두 발도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데..... 머릿속으론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인영은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 이 모든 문장에서의 공통점은 아마도 세상에서 이어진 모든 인연과 제도를 거부하고 싶은 작가의 내면일 것 같습니다. 거부하고 싶어 끊임 없이 밀어내면서고 끊어내지는 못하는 갈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작가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상,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렇다치고 과연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제도로만 존재할까요. 아이를 키운 제 입장에서 보면 그건 저의 선택이었고 선택이 만들어낸 책임이었으며 언제나 새로 솟는 기쁨의 옹달샘입니다.
스스로 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평온을 찾지 못하고 늘 불완전함과 불안을 드러내는 인영은 자신의 더 깊은 속내를 스스로 들여다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 오열할 수 있을 만큼 한마음으로 뭉친 파티. 인영은 진정한 축제에 참여해본 적이 있었던가.
>> 라면서 말이죠.
[오백 마일]의 가사에 나오는 날품팔이는 괴롭고 어려운 현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집을 그리워하는 입장이고 소설 속의 정황으로 볼 때, 인영의 현 위치는 인영이 선택한 것입니다. 인영 또한 주변 환경이 고단해 떠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오백 마일의 날품팔이들의 삶과 견줄만한 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 뱀발
1마일은 1.6킬로미터입니다.
오백 마일은 805킬로미터입니다.
인영이 있는 광저우와 서울의 거리는 2,069킬로미터로 마일로는 1,286 마일입니다.
제가 가장 멀리 간 곳은 베트남 호치민으로 집에서 11,909 킬로미터, 마일로는 7,40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다른 이들이 가장 멀리 간 곳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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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여덟 개의 단편소설 중 여섯 개를 읽었습니다.
그 동안 읽어왔던 내용들로 보아 앞으로 남은 소설 두 개의 주인공도 다리 하나가 짧은 의자처럼 삐딱하고 불안정하고 외롭고 그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작가들은 두 가지 이유로 소설의 주인공을 빚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게 과거든 현재든 거울을 보듯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처나 아픔이나 기쁨을 기록합니다. 둘째는, 역시 그게 과거든 현재든 작가가 살아온 혹은 누군가가 살아온 시대의 인간상을 수집해 나열하거나 이어 붙이거나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더럽히거나.... 입니다. 강석경 작가의 소설쓰기 목적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는 관점에서, 주인공 관은 염세주의자입니다. 그저 누군가에 혹은 무언가에 끌려다닐 뿐 주체적으로 일을 벌이거나 관계를(육체적이든 인간적 교류든) 맺는 일은 드뭅니다. 서른 중반 즈음일 그가 소설 속에서 내뱉거나 떠올리는 모든 것에 깃들인 무관심과 그것이 불러온 결과들에 독자인 저는 살짝 신물이 납니다. '그럼 도대체 왜?'라는 물음으로 그의 뇌를 두드리고 싶어집니다. 이유 없이 끌려 다니는,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할 처절함이라니.....
- 관과 오가 식탁에서 마주 앉지 않은 것은 얼굴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관은 꿈에서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관은 앞을 바라보며 감상 없이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두 번의 밤을 함께 보낸 것은 너와 내가 사랑한 영화 때문이었다고, 좋은 영화의 여운이 두 방랑자를 뒤따라왔다고.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라고. 너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좋아했다 말할 수도 없다고. 다소 위악적이지만 위선보다는 위악이 진실에 가까운 법이다.
>> 관의 인생이 어떻게 끌려 다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모든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또 너를 끌어 패대기 치는 무언가의 탓이라는 그의 무책임한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 달갑지 않은 소리였으나 관은 그러십시오, 했다. '당신이 싫다'고 직선적으로 말한다면 오히려 관답지 않은 짓이었다.
- 미성년자도 아니고 배에 군살이 붙기 시작한 남녀가 합의하에 성인의 잠을 누렸건만 강아지처럼 끌려가 결혼이란 족쇄를 차라는 말씀이지. 너의 아버지를 왜 만나야 하지?
>>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아기를 밴 오와 결혼식을 하기로 한 관의 속내는 아래의 문장들로 드러납니다.
- 굶어도 평화롭게 허기를 음미하고 싶어.
-"딸을 사랑하게 됐는데 전에 그 엄마하고 악수하듯 의미 없이 잔 적이 있다고 사랑을 포기해야 하니?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야. 성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실수하고 죄도 지을 수 있어. 경박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과거 때문에 미래까지 저당 잡혀야 하나?"
- 관에게 결여된 것은 맹목이 아닌가. 무모했을지언정 맹목적이 된 적이 없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결사적으로 매달려본 적이.
>> 매순간 끌려 다니기만 하는 관의 인생에서 과연 무언가에 매달릴 기회를 갖게 될까 행여 그런 기회가 눈 앞에 닥친들 과연 매달릴 수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 관은 때때로 생각 없는 아이처럼 자신의 행위에서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행위와 그 사이에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 역시나 관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 이 멀리까지 와서 사람 하나 쏘아 죽인들 무엇이 바뀌랴.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도 안 된다는 걸 알았을 것 같아. 이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 존재가 하찮다는 걸 알게 되니까. 조선의 독립투사도 그저 으악, 소리 한번 지르고 싶은 심정으로 총을 쏘았을 거야. 하얼빈은 그런 곳이야. 정말 춥고 외로워. 정신의 유형지라는 말도 사치야.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고 아무도 내 존재와 연결되지 않아.
>> 관이나 관이 어느 순간 사랑이었다고 확신 비스무리한 생각을 갖게 된 인물이자 마치 쌍둥이 같다고 느낀 재연의 성향을 자세히 보여준 대목은 이것입니다. 이 문장들에서 저는, 어느 하나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무관심병자, 까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가 떠올랐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잣대와 표현으로 뫼르소를 이 소설 속에서 빚어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치인이 아닌 독립운동가로서의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삼는 건.....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긴, 염세주의자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긴 합니다.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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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가멸사]
- 가멸은 순 우리말인데 부를 예스럽게 말하는 단어예요. 가멸다, 하면 풍부하다, 넉넉하다, 그런 뜻.
>> 순 우리말이 이렇듯 발음도 글자도 한자어 같은 건 처음입니다.
무장사지를 찾아가는 중년의 두 사람이 삶에서 얻은 상처와 배신과 조언에 대해 나누는 대화입니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온갖 나무와 꽃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식물에 관심 없는 이에게는 지루하고 심심합니다. 개울을 열두 개 지나야 하는 깊은 산골에 자리한 무장사지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앞으로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전쟁에 사용된 병기와 투구를 묻은 곳입니다. 이러한 장소를 소설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소설 속 두 주인공의 내면에서 세상을 향해 솟은 가시들을 묻기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이십오 년 전 이야기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껑충 큰 키와 치진 눈썹이 어디 한 군데 모진 데 없이 유순한 인상을 주는데 간첩이라니.
>> 라고 생각하는 하 과장이나,
- 난 A가 입은 싸다지만 사람이 악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웃을 때 가물가물한 그 눈을 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거예요...... 난 금방 잊어버려요. 천성적으로 사람을 경계할 줄 모르는 백치 같아서.
>> 라고 말하는 여자의 사람 보는 기준이 겨우 눈에만 보이는 외모라는 것이 제 맘엔 들지 않습니다. 또한, 제 경험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도 '금방 잊어버리고..... 경계할 줄 모르는' 이유는 어쩌면 관계에 대한 게으름과 무관심일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 혹은 그녀는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시인은 써야 할 어떤 생각이나 문장이 문득문득 떠오르잖아요. 나는 뭔가, 스스로 물아봐도 아무 답이 안 나와요.
>> 라는 여자의 말에 대한 답은 어쩌면 남자의,
- 젊은 날의 시간이 아까웠고 삭막한 현실에서 내면의 기록이나마 필요했어요. 그게 내 존재 이유니까.
>> 라는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 이러한 글을 쓰겠다 작정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쓰고 쓰고 또 쓰고 쓰다가 문득 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게 시인이고 소설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내 인생을 바꿔 줄 아니 적어도 내 수고 혹은 상처를 덮고도 남을 금맥이 어딘가에는 숨어 있을 거라 믿으며 작은 삽을 들고 매일 광산으로 향하는 광부처럼 말입니다.
제가 애정하는 화살나무는 이 소설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 커도 3미터를 넘지 않는 화살나무는 나뭇가지가 마치 화살촉처럼 생겼다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가을에 단풍나무보다 더 빨갛게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나무 이름 많이 나오길래 은근히 기대했는데 다 읽도록 없어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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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석양꽃]
[툰드라]의 단편 여덟 개 중 마지막에 실린 작품입니다.
소설집 맨 끝에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의하면 [석양꽃]은 1987년 작품으로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제일 나이가 많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스님과 보살과 그들이 지내는 절에 찾아온 여인 하나와 그 여인을 찾아온 손님 한 명과 해탈이라 불리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 각자의 눈짓과 움직임과 생각에 관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뒤집어 보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여덟 개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 스님 영명이 '잔에 술을 따르며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읇는'
[법구경] ' 사랑도 미움도 가지지 마라'가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 만나서 괴롭다.
(아래는 소설에 실리지 않은 나머지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생기나니
이미 그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은
사랑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
작가가 [법구경] 전체가 아닌 윗상단만을 인용한 것은,
~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우리는 죽을 때까지도 '그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우리
완독한 자신에게 주는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Nina
개인적으로 제일 마지막 단편 [석양꽃]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작가가 한창 작품 활동을 하던 1987년 작품입니다. 나머지 작품들은 2000년대를 훌쩍 뛰어넘는 것들입니다. 작가란 자신의 깃털을 뽑아 경험과 세상이라는 진흙과 섞어 무언가를 빚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가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가마에서 내어 놓을 때마다 그 작품에 조금씩 균열이 늘고 형태가 찌그러진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강석경 작가의 최근의 작품일수록 그런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읽으며 맘에 안 드는 부분들이 제법 있었는데 초창기 작품들은 어떠했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대체 작가의 작품 인생 어디에서 그리 막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온라인 수업도 시험도 끝나고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그믐의 싱글챌린지가 아니라면 그 기간 동안 책은 읽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받은 혜택에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어쩌면 곧 다시 시작할 싱글챌린지에 대해서도 미리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꿈꾸고 또 실행하는 모든 분들께 축복인 한 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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