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고전] 1월 『금각사』 함께 읽어요

D-29
저도 1장을 읽으면서 금각사=단검=우이코가 모두 주인공에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읽혀서 이런 것들이 잘 짜여져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도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나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내 수치의 입회인이 없어져버리기를 바랐다. 증인만 없다면 지상에서 수치는 근절되리라. 타인은 모두 증인이다. 그러나 타인이 없으면 수치라는 것도 생기지 않는다.
금각사 (무선) p.21,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배신행위로 인해 드디어 그녀는 나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 순간에야말로 내 것이다.
금각사 (무선) p.28,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 이후의 그녀는 온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단지 애욕의 질서에 굴복하여 한 남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금각사 (무선) p.28,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책을 펼치기 전에는 따분한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문장을 섬세하게 잘 써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주인공 미조구치의 성격과 외모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나타난 것 같아요.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금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금각의 미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금각사 (무선) p.31,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말입니다.
금각사 (무선) p45,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 48~78쪽
나는 단지 그 낙하를 기다렸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낙하를.
금각사 (무선) 72,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시체는 다만 보여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보고 있었다. 본다는 것, 아무런 의식도 없이 평소 하고 있는 대로 본다는 것이 이토록 살아 있는 자의 권리의 증명이며 잔혹함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참신한 체험이었다.
금각사 (무선) p.50,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나는 놀랐다. 시골의 거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이런 종류의 다정함을 몰랐다. 나라는 존재로부터 말더듬 증세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나일 수 있다는 발견을, 쓰루카와의 다정함이 가르쳐 주었다.
금각사 (무선) p.66,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아버지의 죽음과 쓰루카와라는 친구의 등장, 육군 사관의 이별의식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했습니다. 미조구치의 의식 속에서 금각은 '현상계의 덧없는 상징'이다가, 곧 나처럼 폭격을 받아 사라질 존재, 즉 나와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금각에 대한 미조구치의 생각 변화가 계속 이어지는데 주목하게 됩니다.
2장 앞 부분에 시골 주지의 죽음과 단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단가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는데, 단가 제도는 일본인 모두가 사찰에서 장례와 제사를 치르도록 강제한 제도라고 합니다. 그들의 사후를 위탁받은 사람이라는 문장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절이 계속 등장하니, 일본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 알면 작품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여자의 하얀 가슴과 그 가슴에서 나온 하얀 젖을 마시는 군인. 이 장면은 예전에도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기이하군요. 사귀는 사이라면 굳이 젖을 찻잔 안에 담아 마셔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기묘한 장면이 어쩌면 주술적인 의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충분히 더 에로틱한 장면으로 빠질 수 있음에도 군인이 찻잔에 든 젖을 마시는 것으로, 그리고 여자가 젖을 짜는 모습을 주인공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으로 처리하면서 절대적인 미에 지저분한 것이 들러붙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저마 1장에서는 우이코, 2장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라니. 작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아름다운 여인이 빠지지 않는 듯 싶습니다.
곤충 표본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곧잘 그러하듯이, 쓰루카와는 인간의 감정을 자기 방의 잘 정돈된 서랍에 가지런히 분류해놓고는 때때로 그것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살펴보는 따위의 취미가 있는 듯했다.
금각사 (무선) p.59,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기다란 속눈썹에 둘러싸인 쓰루카와의 눈은 말더듬 증세만을 여과해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그때까지 나는,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무시당할 때 나라는 존재를 말살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각사 (무선) p.66,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이 세상에 나와 금각에게 공통되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무했다. 미와 나를 연결하는 매체를 발견한 것이다. 나를 거절하며 소외시키고 있는 듯이 여겨졌던 것과의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고 느꼈다.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버리리라는 생각은 거의 나를 도취시켰다.
금각사 (무선) p.69,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장 80~117쪽
2장에서 3장까지는 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의 시기를 다룹니다. 이 소설이 일제의 지난 영광보다 패전의 기억이 더 큰, 또한 군에 입대하지 못하고 전쟁을 공습으로만 겪은 세대의 현상을 조명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들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금각사>는 너무 빤해지기는 합니다.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나 그의 작품이 언제는 안 빤했나 싶기는 합니다. 그는 그 시대에만 태어날 수 있는 작가였고 그 시대에만 쓸 수 있는 소설을 썼습니다(누구는 안 그렇냐만). 미시마는 상당히 파괴적인 면모를 가졌으나 저는 그의 소설이 꽤 현실과 타협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을 능가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저는 소설 <금각사>가 실제의 금각사 방화 사건을 뛰어넘거나 전복하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단지 윤색하고 덧붙였을 뿐이지요. 꽤 다른 예지만, 그래도 비교하자면, 진 리스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등장한 로체스터 저택 방화를 자기 소설에서 꽤나 완벽히 전복했어요. <금각사>를 평가 절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금각사>를 통해 그 시대의 질감과 심상을 상세하게 느낍니다. 진 리스와는 다른 솜씨죠. 미시마는 <금각사>에서 자신이 느낀 시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줄은 몰랐지만 시대의 외양을 철저히 미적으로 해부하여 재현할 줄은 알았습니다. 2장과 3장에서 여러 시간과 날씨를 배경으로 금각사의 외양을 묘사하는 그 디테일이 참 그래요. 미시마는 소설을 통해 낡은 금각사를 허물고 새 금각사를 짓기보다는, 기존에다 화려한 금박을 입히기를 선택했습니다. 마치 실제 금각사가 방화 전보다 복원 후가 더 화려한 것처럼, 이 소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 혐오감만큼은 어딘가 정확한 데가 있다. 내 자신이, 혐오해야 할 인간이기 때문이다.
금각사 (무선) 85,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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