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소설] 1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어요

D-29
1/14(화)에 읽었습니다. 원래는 쉬는 날 없이 쭉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책을 챙겨가는 걸 깜빡해서 며칠 건너뛰게 되었어요. 그래도 오늘부터 다시 쭉 읽어가보려고 합니다. 뒤로 갈수록 읽기가 수월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267쪽에 도시의 모든 것들이 정지하는 순간이 인상깊었어요.
이 도시가 어떻게 됐는지 말씀 좀 해보세요, 어디나 지긋지긋한 쓰레기 더미, 가로등마다 전구를 도둑맞아서 거리는 온통 깜깜해요, 어딜 가나 비닐봉지 수만 장이 끊임없이 바람에 날아다니죠, 저 알바니아 부장자들, 마피아 밑에서 일하는 거지 아이들, 다들 알지만 아무도 입도 벙긋 안 해요, 시장이 있고 경찰서장도 있지만 그 둘은, 그녀가 입꼬리를 뒤틀며, 그들이 분주한 건 남작을 위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뭐든 남작을 위해서예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머리커 이모, 더는 무엇도 바라지 않았요, 남작이 여기 올 수 있다고 헤도, 심지어 왕이 올 수 있다고 해도 여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그럴 것만 같아요, (후략)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74,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이번 장章은 우당탕탕 우왕좌왕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남작이 온다고 온갖 수선을 다 피우면서 그가 오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으며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것을 비롯해 머리커와 형제 지간인 도러의 아빠는 남작이 전 재산을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누이에게 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남작이 보낸 편지 때문에 TV에 나오게 된 머리커는 자신의 유명세를 떠벌리고 다닙니다. 도러는 이러고 있는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벵크하임'이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중세나 근대도 아닌데 한 가문의 이름만으로도 마을 전체가 이럴 수 있다는 게 의아합니다. 그리고 이토록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 왜 남미까지 갔으며 도박 중독자로 살았는지 갈수록 궁금증이 커집니다. 좀더 읽어봐야겠죠?
믿든 말든 그들은 이미 쓰고있어요, 진짜예요, 그의 돈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고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기 시작했으나 진짜 웃음은 아니었으니 바로 그때 입안이 음식으로 가득 찼기 때문만은 아니라, 아시겠어요, 아빠, 그들은 이미 남작의 돈을 쓰고 있는데, 그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어요, 대체 누가 그런 바보짓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아니라면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77,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아빠 마져 남작이어머어마한 전 재산을 정말로 우리에게 주려하다고 믿으시네요. 말도 안 돼요, 그가 여기 오는 건 단지 이모 때문이라고요, (...)믿든 말든 그들은 이미 쓰고있어요, 진짜예요, 그의 돈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고요, (...)그들은 이미 남작의 돈을 쓰고 있는데, 그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어요, 대체 누가 그런 바보짓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아니라면요,(,,,)말해보세요, 아빠, 진심으로요, 이곳이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에 불과한 것이아닌지 말이에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277~278,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지극히 개인적인 방문을 공중의 것으로 만드는 희화적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요즘, 우리나라의 지방정부들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어서, 각 지자체의 선출직 '장'들도 고심이 많은거 같더군요. 소설에서이 소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쇠퇴해가는 도시들이 선출직들의 임기대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기업유치나, 인구유입을 위해 시행하는 정책들도 한편으로는 이런 호들갑에 가깝지 않은가 싶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펌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302~400쪽
결과적으로 남작의 환영식은 엉망진창이었고 환영식 자리에 있었던 머리커와는 만나지 못했지만 남작이 직접 머리커 집에 찾아가 만나긴 하네요. 남작 옆에서 있어야 할 비서가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더니 넋이 나간 남작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애쓰는데 하필 카지노에 데려가네요..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도 또 도박하러 가는 남작을 보니 속이 탑니다. 도박할 돈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하루에 한 파트씩 읽기란 정말 쉽지 않네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보니 한 파트 완독하고나면 진이 빠집니다. 그래도 중간정도 온 거 같으니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아수라장같았던 환영 인파를 지나 호텔에 머물고 있는 남작은 자신을 찾아온 이렌의 하소연을 듣고 머리커(마리에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남작은 마리에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녀에게 젊은 시절 마리에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미소만이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을 살게 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데요, 이러한 그의 모습에 마리에타는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사진을 쥐고 그녀의 집을 나오는데, 아마도 그는 젊은 시절의 마리에타만을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무척 쓸쓸하게 느껴지고 서글펐습니다. 그리고 단테는 예상대로 사기꾼이더라고요. 그것도 악질 사기꾼. 단테가 남작을 당구장으로 데려가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작은 여기가 바로 그 카지노라고 하면서 생기를 되찾고 테라스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요, 저는 이 모습도 참 스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15~16일에 걸쳐서 이 장을 읽었습니다. 저도 남작이 머리커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이 슬프게 느껴졌는데요. 약간의 배신감까지 들더라고요. 머리커를 만나러 온 줄만 알았는데, 정작 그녀는 못 알아보고, 남작은 도대체 뭘 찾아 귀향한 걸까요?
그가 단테에게 묻길 지금 한 시간 가까이 빙빙 돌고만 있어, 그런데도 자네는 나보고 계속 가라고만 손짓하는군, 그건 좋아, 하지만 난 알고 싶어, 이 친구야, 이 여정의 목적이 뭔가, 어딜 가고 싶은 거야?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375,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별다른 설명없이 한문장이 끝나면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이 책의 독특한 구성때문에 집중하지않으면 이야기가 뒤죽박죽 되므로 정신차리고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장을 읽어보니 남작이 좋아한 것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닌 사진 속에 있는 마리에타이고, 도박 자체 보다는 카지노의 분위기와 그곳에서의 룰이 아닐까 싶네요.
현재의 소란스러움에 비해, 남작은 19세에 지역을 떠나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자세한 서술은 없다. 마리에타의 사진을 40년간 수도 없이 보았으며, 단 한 명의 연인으로, 사랑으로 여긴 그는 눈앞에 있는 마리에타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는 남작이 40년 시간의 흐름과 지금, 현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현실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명료하지 않고, 그 인식이 처리되는 속도도 그를 둘러싼 환경에 비해 지연처리 되고 있다. 오랜 시간 사회적 고립으로 현실인식 능력이 떨어진 인물처럼 여겨지니, 그를 둘러싼 저 무수한 소란스러움 속에 남작이 어떻게 될지. 사라졌다 나타난 솔노크의 단테는 검은 속내를 갖고 남작을 살핀다. 무력했던 남작은 중국인 당구장에 도착하자 생기가 돌며, 예전 카지노 테라스 앉아 강둑아래 흔들거리는 버드나무를 본다. 이후, 솔노크의 단테가 어떤 인물로 조망될지, 마리에타와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도대체 어떤 ‘귀향’으로 귀결될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펌 무한한 어려움 402~492쪽
17일에 이 장을 읽었습니다. 정말 제목대로 무한한 어려움이 느껴지는 장이었고요... 사실 나중에 좀 더 집중해서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초반에 등장했던 교수가 다시 등장해서 그를 쫓는 오토바이 폭주족과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데요. 왜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려고 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번 장은 도망다니는 교수와 그를 쫓는 오토바이족의 긴박한 상황을 서술합니다. 교수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형이상학적입니다. 교수가 전달하려는 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손에 딱 잡히지 않는 느낌입니다.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무한과 추상의 형상화, 실재, 정신, 탐구, 경험적 증거, 사물의 유한성, 일어나는 것으로써 이룩되는 현존, 그리고 두뇌와 앞서 언급한 것들을 통한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한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시선 정도로 납득하고 있는데요, 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혹은 뿌리가 되는 것)은 '두려움'이며, 여타 감정들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확장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좀더 깊숙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은 귀향하는 벵크하임 남작과 은신하고 있는 교수, 두 개의 서사가 별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또한 서문에 해당하는 「경고」에서 등장한 악장은 또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읽을수록 물음표입니다.
도망간 교수와 그를 잡으려는 경찰과 오토바이족의 추격전이 진헹되는 동시에 교수가 철학적 탐구를 이야기히는 거 같습니다.. 교수의 말을 이해하기엔 제 지식과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장에 오면 뭔가 명료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요.^^. 다시 읽으면 나이지겠지요... 교수의 '말'들은 글자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네요. 궁극에는 '두려움'에 닿았는데 "슬프고 슬픈세상. 어마어마하게 슬픈 세상" 혼란스럽습니다.^^ 이대로 다음 장을 읽어도 될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흠므므 조심하라 494~523쪽
이 장은 말미에 비극을 암시하고 끝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담고 죽을 자리를 찾아간 남작이 뒤늦게 마리에타를 찾아가 용서를 빌 결심을 하고 감정이 북받치는데요, 귀향의 이유가 오로지 마리에타였다고 이미 말했으나 사실 저에게는 그 간절한 마음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남작과 마리에타가 서로에게 품는 감정의 무게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앞서 서술된 내용 외에도 그들에게 또 다른 서사가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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