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3부 같이 읽어요

D-29
2025년에도 이어서 읽는 보르헤스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본격적으로 여섯 권으로 이뤄진 논픽션 전집을 읽습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는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2부와 3부는 28개의 글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루에 하나의 글꼭지를 읽는 모임입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2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단어의 탐구 177 ⏤알마푸에르테의 위치 193 ⏤글로 쓴 행복 201 ⏤또다시 은유 209 ⏤과식주의 216 ⏤돈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의 소네트 225 ⏤이미지의 시뮬레이션 232 ⏤호르헤 만리케의 『코플라』 240 ⏤문학의 기쁨 247 ⏤탱고의 기원 254 ⏤날짜 264 ⏤세르반테스의 소설적 행동 276 ⏤두 길모퉁이 282 ⏤에두아르도 윌데 288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94 [3부 에바리스토 카리에고] ⏤알리는 글 317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 319 ⏤에바리스토 카리에고의 어떤 삶 339 ⏤『이단 미사』 361 ⏤『변두리 동네의 노래』 382 ⏤[카리에고의 문학에 대한] 그럴듯한 개요 411 ⏤덧붙이는 글 414 ⏤마차에 쓰인 글귀들 423 ⏤말 탄 이들의 이야기 434 ⏤단도 443 ⏤에바리스토 카리에고의 시전집에 붙이는 서문 445 ⏤탱고의 역사 450 ⏤두 통의 편지 477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단편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단편별로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참여 인원이 없어도 25/1/8에 시작하겠습니다.
화법의 차이는 구문 습관에 따른 것이다. 한 가지 구의 골격 위에 여러 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은 달'에서 '모래 달'이 나왔음은 이미 언급했다. (문법의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 유사한 개념을 순서대로 정리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기에 그중 하나가 유일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개념은 유사하거나 유사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이 예술에서는 동의어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그 감정적 분위기나 온도는 공통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p.10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단어의 탐구] 이 글이 보르헤스가 스물아홉살 되던 해에 출간된 책에 담겨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방대한 독서 편력과 인용구를 오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앞서 다룬 1부의 ⟨분석 연습⟩에서처럼 ⟪돈키호테⟫ 속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도 사고를 이렇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법적으로' ⟪돈키호테⟫의 첫 문장("En un lugar de la Manch, 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한 문장을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선 보르헤스는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는 안드레스 베요를 위시한 문법학자들과 대중적인 사전이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모든 단어가 하나의 기호이고 독자적 의도를 나타낸다"(181쪽)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선 첫 문장은 열두 개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절해서, 그 독자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위 크로체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합니다. "동일한 개념이 다른 개수의 단어로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단어는 언어의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유일한 언어적 실재는 문장"(183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슈필러의 관점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단위가 되는 작은 통사적 집합으로 분리"(184쪽)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사고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언어간의 차이, 즉 영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느냐,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도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단어순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인 간의 편차는 있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텍스트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나 난독증 환자는 이 의미 단위가 비교적 좁게 인식된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를 연구한 메리언 울프의 책을 보면 잘 나옵니다. 울프는 아이들이 단어를 일종의 '시각적 덩어리'로 인식하면서 텍스트를 읽어가는 능력을 숙달해간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beheaded(참수당한)’가 ‘be(be동사)+head(‘머리’라는 명사)+ed(과거분사형)’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수록 보다 유창하게 단어를 식별하게 되고, 이런 단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독서를 해 나간다는 것이죠. 나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좌에서 우로 널브러져 있는 텍스트를 추수하듯이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구가 고정되는 와중에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안구가 눈이 아주 살짝 뒤로 돌아가서 과거 정보를 회수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단어를 봄과 동시에 약간의 예측도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을 줄 잇는다'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기지 속에서 미지를 예감하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서, 문법에 신경을 쓰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연성과 순간성에 몸을 맡기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문법의 가능한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191쪽)
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터프츠 대학에서 인지신경과학과 아동발달을 연구하는 매리언 울프는 말한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문학, 철학, 교육,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비판적 지성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강의 ‘창조적 글쓰기’를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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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알마푸에르테의 위치] 저도 처음에 알마푸에르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아마 각주로 설명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다른 인명은 각주가 있는데, 정작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각주가 없는 것은 편집상 아쉬운 점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알마푸에르테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 본명은 페드로 보니파시오 팔라시오스(Pedro Bonifacio Palacios)입니다. 청년기에는 화가로 활동했지만, 여러 이유로 유럽행이 좌절되자 진로를 바꿔 글쓰기와 교육에 전념했다고 알려집니다. 시인이자 교사였고, 기자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보르헤스처럼 사서와 번역을 겸한 적도 있고요. 이른 시기부터 시를 썼던 것으로 보이나, 책들이 주로 출간된 시기는 20세기 초입니다. 그는 무수한 필명을 갖고 있었는데요, '알마푸에르테'는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입니다. ⟨나아가라!(¡Piú avanti!)⟩라는 시를 보면 대충 어떤 시를 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Claude로 번역을 맡겨봤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패배했더라도, 노예처럼 느끼지 마라, 노예일지라도; 네 자신을 용맹하다고 생각하라, 공포로 떨면서도, 맹렬히 돌진하라, 이미 깊이 다쳤어도. 지녀라, 녹슨 못의 그 끈기를 낡고 보잘것없어도, 다시금 못으로 되돌아가는; 안 된다, 공작새의 비겁한 대담함처럼 작은 소리에도 깃털이 움츠러들어서는. 나아가라, 신처럼 결코 울지 않는; 혹은 결코 기도하지 않는 루시퍼처럼; 혹은 위대함을 지닌 참나무 숲처럼 필요로 하나 구걸하지 않는 물을······ 하여, 물어뜯고 외치게 하라, 복수하듯이, 먼지 속을 구르는, 너의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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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단어의 탐구] 이 글이 보르헤스가 스물아홉살 되던 해에 출간된 책에 담겨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방대한 독서 편력과 인용구를 오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앞서 다룬 1부의 ⟨분석 연습⟩에서처럼 ⟪돈키호테⟫ 속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도 사고를 이렇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법적으로' ⟪돈키호테⟫의 첫 문장("En un lugar de la Manch, 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한 문장을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선 보르헤스는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는 안드레스 베요를 위시한 문법학자들과 대중적인 사전이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모든 단어가 하나의 기호이고 독자적 의도를 나타낸다"(181쪽)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선 첫 문장은 열두 개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절해서, 그 독자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위 크로체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합니다. "동일한 개념이 다른 개수의 단어로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단어는 언어의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유일한 언어적 실재는 문장"(183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슈필러의 관점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단위가 되는 작은 통사적 집합으로 분리"(184쪽)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사고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언어간의 차이, 즉 영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느냐,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도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단어순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인 간의 편차는 있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텍스트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나 난독증 환자는 이 의미 단위가 비교적 좁게 인식된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를 연구한 메리언 울프의 책을 보면 잘 나옵니다. 울프는 아이들이 단어를 일종의 '시각적 덩어리'로 인식하면서 텍스트를 읽어가는 능력을 숙달해간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beheaded(참수당한)’가 ‘be(be동사)+head(‘머리’라는 명사)+ed(과거분사형)’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수록 보다 유창하게 단어를 식별하게 되고, 이런 단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독서를 해 나간다는 것이죠. 나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좌에서 우로 널브러져 있는 텍스트를 추수하듯이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구가 고정되는 와중에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안구가 눈이 아주 살짝 뒤로 돌아가서 과거 정보를 회수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단어를 봄과 동시에 약간의 예측도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을 줄 잇는다'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기지 속에서 미지를 예감하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서, 문법에 신경을 쓰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연성과 순간성에 몸을 맡기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문법의 가능한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191쪽)
읽기가 참 어렵네요 집중이 안 되는군요. 낯선 표현, 낯선 단어, 제목이 흥미 있어서 기대했는데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russist님의 대화: [알마푸에르테의 위치] 저도 처음에 알마푸에르테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아마 각주로 설명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다른 인명은 각주가 있는데, 정작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각주가 없는 것은 편집상 아쉬운 점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알마푸에르테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 본명은 페드로 보니파시오 팔라시오스(Pedro Bonifacio Palacios)입니다. 청년기에는 화가로 활동했지만, 여러 이유로 유럽행이 좌절되자 진로를 바꿔 글쓰기와 교육에 전념했다고 알려집니다. 시인이자 교사였고, 기자로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보르헤스처럼 사서와 번역을 겸한 적도 있고요. 이른 시기부터 시를 썼던 것으로 보이나, 책들이 주로 출간된 시기는 20세기 초입니다. 그는 무수한 필명을 갖고 있었는데요, '알마푸에르테'는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입니다. ⟨나아가라!(¡Piú avanti!)⟩라는 시를 보면 대충 어떤 시를 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Claude로 번역을 맡겨봤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패배했더라도, 노예처럼 느끼지 마라, 노예일지라도; 네 자신을 용맹하다고 생각하라, 공포로 떨면서도, 맹렬히 돌진하라, 이미 깊이 다쳤어도. 지녀라, 녹슨 못의 그 끈기를 낡고 보잘것없어도, 다시금 못으로 되돌아가는; 안 된다, 공작새의 비겁한 대담함처럼 작은 소리에도 깃털이 움츠러들어서는. 나아가라, 신처럼 결코 울지 않는; 혹은 결코 기도하지 않는 루시퍼처럼; 혹은 위대함을 지닌 참나무 숲처럼 필요로 하나 구걸하지 않는 물을······ 하여, 물어뜯고 외치게 하라, 복수하듯이, 먼지 속을 구르는, 너의 머리를!
알마푸에르테를 검색하니 알마 푸에르테라는 담배가 나오고 아래 내려가니 아르헨티나의 도시 이름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사람 이름 같은데 가상의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 모르겠네요 알마푸에르테보다 분량이 훨씬 짧지만 그래도 읽기가 쉽지는 않네요.
russist님의 대화: [단어의 탐구] 이 글이 보르헤스가 스물아홉살 되던 해에 출간된 책에 담겨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방대한 독서 편력과 인용구를 오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앞서 다룬 1부의 ⟨분석 연습⟩에서처럼 ⟪돈키호테⟫ 속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도 사고를 이렇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법적으로' ⟪돈키호테⟫의 첫 문장("En un lugar de la Manch, 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한 문장을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선 보르헤스는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는 안드레스 베요를 위시한 문법학자들과 대중적인 사전이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모든 단어가 하나의 기호이고 독자적 의도를 나타낸다"(181쪽)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선 첫 문장은 열두 개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절해서, 그 독자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위 크로체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합니다. "동일한 개념이 다른 개수의 단어로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단어는 언어의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유일한 언어적 실재는 문장"(183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슈필러의 관점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단위가 되는 작은 통사적 집합으로 분리"(184쪽)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사고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언어간의 차이, 즉 영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느냐,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도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단어순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인 간의 편차는 있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텍스트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나 난독증 환자는 이 의미 단위가 비교적 좁게 인식된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를 연구한 메리언 울프의 책을 보면 잘 나옵니다. 울프는 아이들이 단어를 일종의 '시각적 덩어리'로 인식하면서 텍스트를 읽어가는 능력을 숙달해간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beheaded(참수당한)’가 ‘be(be동사)+head(‘머리’라는 명사)+ed(과거분사형)’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수록 보다 유창하게 단어를 식별하게 되고, 이런 단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독서를 해 나간다는 것이죠. 나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좌에서 우로 널브러져 있는 텍스트를 추수하듯이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구가 고정되는 와중에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안구가 눈이 아주 살짝 뒤로 돌아가서 과거 정보를 회수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단어를 봄과 동시에 약간의 예측도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을 줄 잇는다'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기지 속에서 미지를 예감하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서, 문법에 신경을 쓰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연성과 순간성에 몸을 맡기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문법의 가능한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191쪽)
뭔가 번역이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어요; 어지러운 가운데에서도.. 좀 엉뚱하지만 언어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를 선취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중간에 스피노자와 비교되는 '라몬 율'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인공지능의 시조새 같은 기계를 만드신 분이라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이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보르헤스 읽기는 이런 이름 수집 재미도 큰 것 같아요
심슨님의 대화: 뭔가 번역이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어요; 어지러운 가운데에서도.. 좀 엉뚱하지만 언어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를 선취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중간에 스피노자와 비교되는 '라몬 율'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인공지능의 시조새 같은 기계를 만드신 분이라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이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보르헤스 읽기는 이런 이름 수집 재미도 큰 것 같아요
‘(예수의 선동이라고 하는데)율은 자칭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190p)’ 예수의 선동이 무슨 말이지 싶어서 라몬 율이 어떤 기계를 만들었는지 대충 찾아보고 나서야… 괄호의 뜻이 대충 ‘기독교 선전용 기계라고들 하는데’ 정도의 의미겠거니 추측하게 되네요ㅜㅜ
russist님의 대화: [단어의 탐구] 이 글이 보르헤스가 스물아홉살 되던 해에 출간된 책에 담겨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방대한 독서 편력과 인용구를 오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앞서 다룬 1부의 ⟨분석 연습⟩에서처럼 ⟪돈키호테⟫ 속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도 사고를 이렇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법적으로' ⟪돈키호테⟫의 첫 문장("En un lugar de la Manch, 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한 문장을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선 보르헤스는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는 안드레스 베요를 위시한 문법학자들과 대중적인 사전이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모든 단어가 하나의 기호이고 독자적 의도를 나타낸다"(181쪽)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선 첫 문장은 열두 개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절해서, 그 독자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위 크로체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합니다. "동일한 개념이 다른 개수의 단어로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단어는 언어의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유일한 언어적 실재는 문장"(183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슈필러의 관점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단위가 되는 작은 통사적 집합으로 분리"(184쪽)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사고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언어간의 차이, 즉 영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느냐,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도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단어순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인 간의 편차는 있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텍스트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나 난독증 환자는 이 의미 단위가 비교적 좁게 인식된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를 연구한 메리언 울프의 책을 보면 잘 나옵니다. 울프는 아이들이 단어를 일종의 '시각적 덩어리'로 인식하면서 텍스트를 읽어가는 능력을 숙달해간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beheaded(참수당한)’가 ‘be(be동사)+head(‘머리’라는 명사)+ed(과거분사형)’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수록 보다 유창하게 단어를 식별하게 되고, 이런 단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독서를 해 나간다는 것이죠. 나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좌에서 우로 널브러져 있는 텍스트를 추수하듯이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구가 고정되는 와중에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안구가 눈이 아주 살짝 뒤로 돌아가서 과거 정보를 회수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단어를 봄과 동시에 약간의 예측도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을 줄 잇는다'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기지 속에서 미지를 예감하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서, 문법에 신경을 쓰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연성과 순간성에 몸을 맡기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문법의 가능한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191쪽)
나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논제를 내세웠다. 하나는 품사나 문장의 부분을 부인하고, 이것들을 하나의 평범한 '단어' 또는 여러 단어로 된 표현 단위로 대체하는 것이다. (표현에는 문법적인 범주가 없다. 누군가가 내게 새가 날아가는 것과 날아가는 새를 혼동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길.) 다른 하나는 담화에서 구문의 연속성이 가지는 힘이다. 그 힘 혹은 권위는 별 볼 일 없는 것인데, 이미 우리는 구문법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 상호 모순은 골이 깊다.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찾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글쓰기의 보편적 비극이다. 나는 이 비극, 즉 말하는 것 사이의 위험한 편차,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9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대화: [단어의 탐구] 이 글이 보르헤스가 스물아홉살 되던 해에 출간된 책에 담겨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방대한 독서 편력과 인용구를 오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앞서 다룬 1부의 ⟨분석 연습⟩에서처럼 ⟪돈키호테⟫ 속의 문장 하나만 가지고도 사고를 이렇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법적으로' ⟪돈키호테⟫의 첫 문장("En un lugar de la Manch, 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한 문장을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우선 보르헤스는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는 안드레스 베요를 위시한 문법학자들과 대중적인 사전이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모든 단어가 하나의 기호이고 독자적 의도를 나타낸다"(181쪽)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선 첫 문장은 열두 개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절해서, 그 독자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위 크로체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박합니다. "동일한 개념이 다른 개수의 단어로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단어는 언어의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유일한 언어적 실재는 문장"(183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슈필러의 관점에서 "문장을 표현하는 단위가 되는 작은 통사적 집합으로 분리"(184쪽)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사고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 언어간의 차이, 즉 영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느냐, 스페인어처럼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오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은 것이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연구도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단어순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개인 간의 편차는 있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텍스트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나 난독증 환자는 이 의미 단위가 비교적 좁게 인식된다고 합니다.) 독서하는 뇌를 연구한 메리언 울프의 책을 보면 잘 나옵니다. 울프는 아이들이 단어를 일종의 '시각적 덩어리'로 인식하면서 텍스트를 읽어가는 능력을 숙달해간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beheaded(참수당한)’가 ‘be(be동사)+head(‘머리’라는 명사)+ed(과거분사형)’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수록 보다 유창하게 단어를 식별하게 되고, 이런 단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독서를 해 나간다는 것이죠. 나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좌에서 우로 널브러져 있는 텍스트를 추수하듯이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구가 고정되는 와중에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안구가 눈이 아주 살짝 뒤로 돌아가서 과거 정보를 회수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단어를 봄과 동시에 약간의 예측도 함께 일어납니다. 이를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멀리 있는 표적을 활로 쏘는 식으로 말을 줄 잇는다'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기지 속에서 미지를 예감하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서, 문법에 신경을 쓰면서도 거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연성과 순간성에 몸을 맡기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문법의 가능한 도움을 받아) 이렇듯 그저 단순한 변이 형태에서 자율적 표현으로 격상될 수 있다. (조금밖에 없는) 본래의 뜻보다는 변형과 우연성과 순간적인 재치가 언어, 즉 (굴욕적이게도) 사고를 풍요롭게 한다."(191쪽)
모든 개념은 유사하거나 유사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이 예술에서는 동의어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그 감정적 분위기나 온도는 공통된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분류의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사전이 주장하는 구성(또는 해체)은 속임수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9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산강처럼님의 대화: 읽기가 참 어렵네요 집중이 안 되는군요. 낯선 표현, 낯선 단어, 제목이 흥미 있어서 기대했는데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스페인어의 문법적 내용이라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반복해서 읽어보시면 아마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심슨님의 대화: 뭔가 번역이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했어요; 어지러운 가운데에서도.. 좀 엉뚱하지만 언어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를 선취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중간에 스피노자와 비교되는 '라몬 율'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인공지능의 시조새 같은 기계를 만드신 분이라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이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보르헤스 읽기는 이런 이름 수집 재미도 큰 것 같아요
실제 기계는 아니고 사고 모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 구글의 Gemini API의 프로젝트 이름도 '아르스 마그나 에트 울티마(Ars Magna et Ultima)'라고 해서 라몬 율의 이 사고 모델에서 이름을 따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다이어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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