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3부 같이 읽어요

D-29
russist님의 대화: [날짜] 네 가지 주제에 대한 짤막한 글 모음처럼 읽힙니다. 제목이 왜 '날짜(Fechas)’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렴풋이 네 편의 짤막한 글에서 '시간과 그 흐름'을 쓰고자 했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정확히 그런 의도로 썼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가장 재밌게 봤던 글만 말하면, 레예스의 애넥도트(anecdote)를 엮은 ⟪해시계⟫를 논한 두 번째 글입니다. 애넥도트는 흔히 '일화'로 옮겨지는데, 각주에서 설명하듯 한국적인 맥락에서는 이 장르를 지칭하는 마땅한 단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애넥도트는 희랍어 ‘anékdota’에서 유래한 말로,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발표되지 않은 이야기’, ‘미공개 이야기’라고 합니다. 부정접두사 “an-”과 ‘출판된’을 의미하는 “ékdotos”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며, 이것이 현대 영어에서 ‘anecdote’로 옮겨왔다고 전해집니다. 애넥도트는 특정한 이유 때문에 출판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감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애넥도트는 "모든 시적 현실이자 우리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애넥도트는 핵심적인 요소만 진술했고, 또 교훈적인 요소가 반드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레예스의 애넥도트는 항상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핵심과 교훈이 드러나는 기존의 '일화주의자'들의 결과물과 달랐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말입니다. "레예스는 우리에게 작은 세계를 소개하고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만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끝에 기막힌 반전이 숨겨진 영화가 한때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가 금세 사그라든 것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책과 영화는 기막힌 반전, 스포일러와 무관하게 접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책은 꾹 참고 끝까지 읽고 나서야 좋은 이유를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에서 좋은 점을 꼭 하나는 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요.) 한편, 이전에 했던 모임에서 제발트의 ⟪전원에서 머문 날들⟫를 읽으면서, 잠시 애넥도트의 한 사례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달력 이야기꾼 요한 페터 헤벨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참고로 2010년대 음악의 명반 계열에 오른 ESENS의 앨범 제목도 애넥도트입니다.
“‘일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우리로 하여금 잠시 동안이라도 살도록 도와주고 망각하도록 도와준다. 이보다 큰 자비가 있는가? 이는 식물의 꽃과 같아서, 중요한 미덕인 손으로 잘라서 가슴에 꽂고 다닐 수 있는 따뜻하고 가시적이며 조화로운 조합이다. 우리에게 풍차가 제공하는 밀가루와 추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66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세르반테스의 소설적 행동] 먼저, 보르헤스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기존의 두 관점에 내재한 오류를 비판합니다.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보는 관점입니다. 나머지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합리주의과 이상주의의 대립으로 읽는 겁니다. 첫 번째 오류에 대응하여, 보르헤스는 일반적인 패러디나 알레고리가 진정한 예술의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패러디는 다른 것의 이면에 지나지 않고, 패러디가 있으려면 원전이 필요하다"(277쪽)고 그 이유를 듭니다. 그러나 ⟪돈키호테⟫에는 이러한 패러디의 결핍이 없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주장입니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오늘날 우리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아주 흥미로운 단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오류는 훗날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지적한 바와 동일합니다. 쿤데라는 소설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애매성과 불확실성으로 이해해야 하며, 거기서 하나의 절대 진리를 뽑아내려는 모든 시도는 무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아래 인용구를 참고하세요. 나아가 보르헤스는 ⟪돈키호테⟫에게서 유일한 고독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마지막 순간에 세상의 동정을 얻고, 햄릿이 독백으로 사람들을 지적으로 설득하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둘러싼 모든 순간이 소설화되는 반면,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스스로 미쳤다고 고백하게 만들고 나서 죽게 함으로써 침묵시켰다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을 성인들이 황홀경에 빠지는 명상, 그것의 고요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돈키호테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동정과 눈물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말하자면 죽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돈키호테가 산초 판자에게 충고하는 내용보다 충고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돈키호테의 '질투'를 읽으며, 그것이야말로 영웅적이거나 반영웅적인 캐릭터를 넘어선 '정직함'을 담보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세르반테스 자신의 진실을 직접 폭로하거나 증언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뛰어난 소설적 캐릭터를, 정직한 인물을 창조해낸 겁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픽션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권.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주요 현대 사상을 견인한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작. 1941년 발표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1944년 발표한 '기교들'에 수록된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일생 동안 단 한 편의 장편 소설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단편 전문 작가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수를 보여 준다.
소설의 기술쿤데라의 에세이들과 대담, 그리고 연설문들을 엮은 작품. 책에 수록된 글들은 '여러 특정한 정황에서 쓰였지만 언젠가는 소설의 기술에 대한 생각들이 결실을 이루게 될 한 권의 평론집으로 묶일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에 따라 구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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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세르반테스의 소설적 행동] 먼저, 보르헤스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기존의 두 관점에 내재한 오류를 비판합니다.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보는 관점입니다. 나머지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합리주의과 이상주의의 대립으로 읽는 겁니다. 첫 번째 오류에 대응하여, 보르헤스는 일반적인 패러디나 알레고리가 진정한 예술의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패러디는 다른 것의 이면에 지나지 않고, 패러디가 있으려면 원전이 필요하다"(277쪽)고 그 이유를 듭니다. 그러나 ⟪돈키호테⟫에는 이러한 패러디의 결핍이 없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주장입니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오늘날 우리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아주 흥미로운 단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오류는 훗날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지적한 바와 동일합니다. 쿤데라는 소설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애매성과 불확실성으로 이해해야 하며, 거기서 하나의 절대 진리를 뽑아내려는 모든 시도는 무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아래 인용구를 참고하세요. 나아가 보르헤스는 ⟪돈키호테⟫에게서 유일한 고독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마지막 순간에 세상의 동정을 얻고, 햄릿이 독백으로 사람들을 지적으로 설득하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둘러싼 모든 순간이 소설화되는 반면,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스스로 미쳤다고 고백하게 만들고 나서 죽게 함으로써 침묵시켰다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을 성인들이 황홀경에 빠지는 명상, 그것의 고요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돈키호테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동정과 눈물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말하자면 죽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돈키호테가 산초 판자에게 충고하는 내용보다 충고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돈키호테의 '질투'를 읽으며, 그것이야말로 영웅적이거나 반영웅적인 캐릭터를 넘어선 '정직함'을 담보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세르반테스 자신의 진실을 직접 폭로하거나 증언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뛰어난 소설적 캐릭터를, 정직한 인물을 창조해낸 겁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위대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주제에 관해서는 수많은 글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이 소설에서 몽롱한 이상주의에 대한 돈키호테의 합리주의적 비판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다. 또 다른 글들은 이 소설에서 바로 이상주의 자체의 환호를 보기도 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소설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편향을 찾아보려는 것이기에 모두 다 낡아 빠졌다.
소설의 기술 16쪽,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russist님의 대화: [세르반테스의 소설적 행동] 먼저, 보르헤스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기존의 두 관점에 내재한 오류를 비판합니다.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보는 관점입니다. 나머지 한 가지 오류는 ⟪돈키호테⟫를 합리주의과 이상주의의 대립으로 읽는 겁니다. 첫 번째 오류에 대응하여, 보르헤스는 일반적인 패러디나 알레고리가 진정한 예술의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패러디는 다른 것의 이면에 지나지 않고, 패러디가 있으려면 원전이 필요하다"(277쪽)고 그 이유를 듭니다. 그러나 ⟪돈키호테⟫에는 이러한 패러디의 결핍이 없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주장입니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오늘날 우리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아주 흥미로운 단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오류는 훗날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지적한 바와 동일합니다. 쿤데라는 소설의 세계란 기본적으로 애매성과 불확실성으로 이해해야 하며, 거기서 하나의 절대 진리를 뽑아내려는 모든 시도는 무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아래 인용구를 참고하세요. 나아가 보르헤스는 ⟪돈키호테⟫에게서 유일한 고독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마지막 순간에 세상의 동정을 얻고, 햄릿이 독백으로 사람들을 지적으로 설득하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둘러싼 모든 순간이 소설화되는 반면,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스스로 미쳤다고 고백하게 만들고 나서 죽게 함으로써 침묵시켰다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을 성인들이 황홀경에 빠지는 명상, 그것의 고요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돈키호테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동정과 눈물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말하자면 죽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돈키호테가 산초 판자에게 충고하는 내용보다 충고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돈키호테의 '질투'를 읽으며, 그것이야말로 영웅적이거나 반영웅적인 캐릭터를 넘어선 '정직함'을 담보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세르반테스 자신의 진실을 직접 폭로하거나 증언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뛰어난 소설적 캐릭터를, 정직한 인물을 창조해낸 겁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돈키호테의 정직한 캐릭터가 질투를 느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돈키호테가 들판에 쓰러져 있고 돼지 떼가 그 위로 지나가는 험한 장면보다 질투에 대한 이 작은 암시가 오히려 더 가증스럽지 않은가? 나는 모욕과 과잉이, 자신의 영웅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세르반테스만 그런 유의 용기를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8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두 길모퉁이] 이전 글들과 굉장히 톤이 다릅니다. 이전의 글이 외형적으로는 논증이나 비평 구조를 띠고 있다면, 이 글은 보르헤스가 느끼는 길모퉁이에 대한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묘사들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문학이 향수하는 '아르헨티나의 길모퉁이'에 대한 인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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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두 길모퉁이] 이전 글들과 굉장히 톤이 다릅니다. 이전의 글이 외형적으로는 논증이나 비평 구조를 띠고 있다면, 이 글은 보르헤스가 느끼는 길모퉁이에 대한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묘사들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보르헤스의 문학이 향수하는 '아르헨티나의 길모퉁이'에 대한 인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그 근처, 단어의 의미로는 모두 가졌지만 실제로는 조금만 소유한, 이웃인 동시에 신화적인 경계를 뜻한다. 아는 곳의 반대편, 그 끝에서 두 번째 거리, 우리 집의 감춰져 있는 시멘트나 우리 몸의 보이지 않는 뼈대처럼 실제로는 잊힌 거리들이다. 산책의 여정은 어느 골목 길모퉁이에 나를 남겨 두었다. 나는 고요히 생각에 잠긴 채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복잡하지 않은 풍경이 피로감 때문에 더 단순해 보이는 것 같았다. 전형적인 풍경이 오히려 그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낮은 집들이 늘어선 거리는 처음에는 가난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행운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 가장 가난한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어떤 집도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지 않았다. 팔각정 위의 무화과나무가 드리워 있고, 대문은 끝없는 밤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산책로는 가파르게 뻗어 있었다. 길은 진흙, 아직 정복되지 않은 아메리카의 진흙으로 되어 있다. 동시의 바람은 이미 좁은 길을 지나 말도나도를 향해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탁하고 혼란스러운 지면 위의 분홍빛 담벼락은 달빛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내면의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분홍빛보다 다정다감함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으리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8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에두아르도 윌데] 에두아르도 윌데(Eduardo Wilde, 1844-1913)는 아르헨티나의 의사이자 정치가이자 작가로, 아르헨티나 현대화 세대의 저명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생전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에두아르도 윌데가 쓴 작품을 보르헤스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인생에서 모험이라고 해 봐야 작품 속 모험이 전부인,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거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치열한 삶의 주인으로, 작품이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이자 순간을 반영하는 작가들도 있다. 윌데가 그랬다."(289쪽) 이 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에두아르도 윌데를 평가한 리카르도 로하스의 의견(290쪽)을 보르헤스가 다시 재평가하는 대목입니다. 리카르도 로하스가 윌데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기법'과 '작가의 인격'을 인위적으로 구분했던 것을 두고 보르헤스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는 작가의 기법에 어떤 고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인간의 심리를 고발하지 않는 작가의 기법을 대체 누가 좋아한단 말인가?” 나아가, 한 언어의 특수한 통사론이 사고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그럴싸한 주장이 사실로 호도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이걸 읽고 있으면, 예전에 한 기자가 '한국어 문장은 자주 주어가 생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주체성이 없다'고 비판했던 어이없는 사건이 떠오릅니다. 비슷하게, 한때 정치권에서 '주어 없음'이 법기술자의 미꾸라지 같은 법해석으로 호도되던 것도 떠오르고요. 오히려 보르헤스의 말대로, 통사론이 우리 사고를 지배한다기보다는, 통사론이 사후적으로 안일하고 부패한 정치 의식을 정당화해주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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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에두아르도 윌데] 에두아르도 윌데(Eduardo Wilde, 1844-1913)는 아르헨티나의 의사이자 정치가이자 작가로, 아르헨티나 현대화 세대의 저명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생전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에두아르도 윌데가 쓴 작품을 보르헤스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인생에서 모험이라고 해 봐야 작품 속 모험이 전부인,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거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치열한 삶의 주인으로, 작품이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이자 순간을 반영하는 작가들도 있다. 윌데가 그랬다."(289쪽) 이 글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에두아르도 윌데를 평가한 리카르도 로하스의 의견(290쪽)을 보르헤스가 다시 재평가하는 대목입니다. 리카르도 로하스가 윌데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기법'과 '작가의 인격'을 인위적으로 구분했던 것을 두고 보르헤스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는 작가의 기법에 어떤 고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인간의 심리를 고발하지 않는 작가의 기법을 대체 누가 좋아한단 말인가?” 나아가, 한 언어의 특수한 통사론이 사고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그럴싸한 주장이 사실로 호도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이걸 읽고 있으면, 예전에 한 기자가 '한국어 문장은 자주 주어가 생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주체성이 없다'고 비판했던 어이없는 사건이 떠오릅니다. 비슷하게, 한때 정치권에서 '주어 없음'이 법기술자의 미꾸라지 같은 법해석으로 호도되던 것도 떠오르고요. 오히려 보르헤스의 말대로, 통사론이 우리 사고를 지배한다기보다는, 통사론이 사후적으로 안일하고 부패한 정치 의식을 정당화해주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목소리나 발음, 말투에 과하게 집중한다면 정작 우리가 하는 말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온전한 효율성과 온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든 형식을 완벽히 구성할 것이다. 감정이나 사고를 어법과 짝짓는 것, 내용과 형태를 동일시하는 것은 모두가 추천하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 가치이다. 어떻게 실행하라는 것인가? 의식의 현상과 언어의 통사론 사이에 미리 정해지고 항상 지켜지는 평등한 관계가 존재하기나 하는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영국인들은 갈색 말을 반드시 ‘a brown hores’라고 말하며 우리는 의무적으로 형용사를 뒤에 둔다. 이런 관습에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가? 영국인들은 (항상) 갈색 얼룩을 먼저 본 후에 그것이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우리는 (항상) 그것이 말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후 털의 색을 정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90-29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표제작입니다. 말 그대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적는 그 특수함에 대한 글입니다. 먼저,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언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글을 엽니다. "한쪽은 악인의 말투를 흉내 내고, 다른 쪽은 사전이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문제적 스페인어를 흉내 낸다."⏤304쪽. 아르헨티나의 언어는 변두리나 교외의 사투리를 뜻하는 아라발레로(arrabalrero)에서 탄생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어의 '순수한 완벽함'을 믿고서 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순수 언어주의자들의 그것도 아닙니다. 즉, 아르헨티나의 언어는 아르헨티나의 '지역색'으로 환원되지도,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고유함'으로 환원되지 않는단 겁니다. 전자의 오류를 간략히 짚어보면, 아라발레로는 소통되고 교환되기보다는 소수의 무리짓기에 봉사하는 언어, 기호로 전락한 언어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 다룬 ⟨아라발레로에 대한 비판⟩에서 이미 한번 다룬 적 있습니다. 후자도 오류이긴 매한가지입니다. 스페인어 순수주의자들은 스페인어 사전의 풍요로움을 언급하지만, 그것이 문학적 풍요로움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단어 수의 우월성은 쓸모없는 비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1부에서 다룬 ⟨끝없는 언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성은 어떤 억압이나 구경거리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소명 의식이어야 한다."⏤306쪽. 나아가, 보르헤스는 유럽의 남서쪽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의 스페인어"와 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의 차이를 살핍니다. 거기에 건너가지 못할 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언어라고 해서 어느 시공간 속에서나 다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가 속한 시공간과 조응한 결과물이고,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즉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도 마찬가집니다. 보르헤스는 "어조의 다른 분위기, 특정 단어에 우리가 부여하는 모순적이거나 애정이 담긴 가치, 동일하지 않은 온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약간 다른 의미의 청출어람,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과는 또 다른 빛깔을 입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잘 쓰인 문학 작품은 고유한 뉘앙스를 포착해내기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스페인어를 쓰는 한 토론은 스페인적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시와 유머는 아르헨티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내용 역시 1부의 ⟨토착화된 민요⟩에서 한번 다룬 바 있습니다. 곱씹어 읽어 보면 1부와 2부를 아우르는 멋진 글, 과연 표제작이라고 할 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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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표제작입니다. 말 그대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적는 그 특수함에 대한 글입니다. 먼저,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언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글을 엽니다. "한쪽은 악인의 말투를 흉내 내고, 다른 쪽은 사전이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문제적 스페인어를 흉내 낸다."⏤304쪽. 아르헨티나의 언어는 변두리나 교외의 사투리를 뜻하는 아라발레로(arrabalrero)에서 탄생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어의 '순수한 완벽함'을 믿고서 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순수 언어주의자들의 그것도 아닙니다. 즉, 아르헨티나의 언어는 아르헨티나의 '지역색'으로 환원되지도,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고유함'으로 환원되지 않는단 겁니다. 전자의 오류를 간략히 짚어보면, 아라발레로는 소통되고 교환되기보다는 소수의 무리짓기에 봉사하는 언어, 기호로 전락한 언어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 다룬 ⟨아라발레로에 대한 비판⟩에서 이미 한번 다룬 적 있습니다. 후자도 오류이긴 매한가지입니다. 스페인어 순수주의자들은 스페인어 사전의 풍요로움을 언급하지만, 그것이 문학적 풍요로움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단어 수의 우월성은 쓸모없는 비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1부에서 다룬 ⟨끝없는 언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성은 어떤 억압이나 구경거리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소명 의식이어야 한다."⏤306쪽. 나아가, 보르헤스는 유럽의 남서쪽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의 스페인어"와 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의 차이를 살핍니다. 거기에 건너가지 못할 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둘은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언어라고 해서 어느 시공간 속에서나 다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가 속한 시공간과 조응한 결과물이고,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즉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도 마찬가집니다. 보르헤스는 "어조의 다른 분위기, 특정 단어에 우리가 부여하는 모순적이거나 애정이 담긴 가치, 동일하지 않은 온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약간 다른 의미의 청출어람,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과는 또 다른 빛깔을 입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잘 쓰인 문학 작품은 고유한 뉘앙스를 포착해내기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스페인어를 쓰는 한 토론은 스페인적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시와 유머는 아르헨티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내용 역시 1부의 ⟨토착화된 민요⟩에서 한번 다룬 바 있습니다. 곱씹어 읽어 보면 1부와 2부를 아우르는 멋진 글, 과연 표제작이라고 할 만한 글입니다.
선대 사람들은 이보다 나았다. 그들의 문체는 말의 어조와 같았다. 입이 손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품위를 갖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었다. 스스로를 크리오요로 칭한 것도 변두리 출신의 자존심이나 불쾌함에 기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상의 평범한 사투리를 글로 표현했다. 스페인 사람들을 흉내 내거나 시골뜨기로 퇴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 그들은 용도 폐기된 아르헨티나어로 멋지게 표현했다. 글을 쓰기 위해 치장하거나 새로운 이민자인 척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0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문장 수집: "선대 사람들은 이보다 나았다. 그들의 문체는 말의 어조와 같았다. 입이 손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품위를 갖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었다. 스스로를 크리오요로 칭한 것도 변두리 출신의 자존심이나 불쾌함에 기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상의 평범한 사투리를 글로 표현했다. 스페인 사람들을 흉내 내거나 시골뜨기로 퇴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 그들은 용도 폐기된 아르헨티나어로 멋지게 표현했다. 글을 쓰기 위해 치장하거나 새로운 이민자인 척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
그러나 우리는 대중들의 열정적인 성격, 우리 마을의 끝없는 달콤함, 우리의 멋진 여름과 우리의 비와 공공의 믿음을 잘 포용하는 온순하고 무난한 스페인어를 원한다. 바울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했다. 나는 미래로부터 오는 기억이라고 번역하겠다. 희망은 우리의 친구이고 스페인어를 순수한 아르헨티나 억양으로 말하는 것이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확증의 하나이다. 각자 내면을 표현하기만 해도 그것을 가질 수 있으리라. 다른 철학적 간계는 필요 없으니, 가슴이라고 말하고 그 안에 있는 상상을 말하라.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다. (가장 좋은 이름은 희망인 그것인) 미래가 우리 가슴을 끌어당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09-31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문 & 알리는 글(Advertencia)] 3부입니다. 서문은 생략했지만 각자 읽어보면 됩니다. 3부는 한 시인에 관한 전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각 장이 일관되게 한 인물을 다루고 있지는 않고, 파편집처럼 구성되어 있기는 합니다. 또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대상 인물을 간략히만 소개하면, 에바리스토 카리에고(Evaristo Carriego, 1883-1912)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관한 시와 탱고 가사를 썼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9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그는 "변두리의 시인", "팔레르모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에바리스토 카리에고라는 시인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보르헤스가 유년을 보낸 바리오(barrio), 즉 교외 지역이 팔레르모(Palermo)이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에게는 이 변두리 지역이야말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이 '보존된' 장소임과 동시에 자기 이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수를 간직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팔레르모는 보르헤스 개인사와 역사가 상이한 방식으로 교차하는 특수한 공간입니다. 유년 속에서 팔레르모는 '보호된' 공간이었지만, 당시 역사적 맥락에서 팔레르모는 "단검과 기타가 난무하는" 음험한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이 독특한 시차에서 보르헤스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태동합니다. 따라서 "팔레르모의 시인"으로 불렸던 카리에고를 연구한다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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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서문 & 알리는 글(Advertencia)] 3부입니다. 서문은 생략했지만 각자 읽어보면 됩니다. 3부는 한 시인에 관한 전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각 장이 일관되게 한 인물을 다루고 있지는 않고, 파편집처럼 구성되어 있기는 합니다. 또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대상 인물을 간략히만 소개하면, 에바리스토 카리에고(Evaristo Carriego, 1883-1912)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관한 시와 탱고 가사를 썼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9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그는 "변두리의 시인", "팔레르모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에바리스토 카리에고라는 시인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보르헤스가 유년을 보낸 바리오(barrio), 즉 교외 지역이 팔레르모(Palermo)이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에게는 이 변두리 지역이야말로 자신의 유년의 기억이 '보존된' 장소임과 동시에 자기 이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수를 간직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팔레르모는 보르헤스 개인사와 역사가 상이한 방식으로 교차하는 특수한 공간입니다. 유년 속에서 팔레르모는 '보호된' 공간이었지만, 당시 역사적 맥락에서 팔레르모는 "단검과 기타가 난무하는" 음험한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이 독특한 시차에서 보르헤스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태동합니다. 따라서 "팔레르모의 시인"으로 불렸던 카리에고를 연구한다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외 지역, 그러니까 위험한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훤히 보이는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쇠창살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놀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어 책이 꽂혀 있는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1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문장 수집: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외 지역, 그러니까 위험한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고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훤히 보이는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쇠창살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놀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어 책이 꽂혀 있는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
나는 단순한 추측이나 가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념과 정의에 따라 논의를 전개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이는 스스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가령 온두라스 거리라고 말하고 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이름이 입 안에 맴도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괜히 장황하게 개념을 정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오류의 가능성이 훨씬 적은 (그리고 훨씬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1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비록 완전 참여는 못하지만, russist님 해설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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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D님의 대화: 비록 완전 참여는 못하지만, russist님 해설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Palermo de Buenos Aires)] 개인적으로 멀리서 긴 연휴를 보내고 푹 쉬다 왔습니다. 한번 쉬면 그냥 쭉 쉬는 게으른 타입이라 늦었습니다. 어느덧 모임이 이틀 남았는데, 오늘내일 해서 부지런히 다뤄 보겠습니다😅 그리고 3부의 각 장은 원제를 병기해 놓았습니다. 구글로 검색해보시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엣지Copilot과 DeepL과 Claude로 번역시켜서 책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 잘 답변해줍니다. 어떻게 번역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한번 저처럼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이전과 이후를 살핍니다. 자신의 이전 시간에 대해서는 늘 그래왔듯이 책을 참고하는데, 도입부부터 보르헤스답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 연보⟫ 3권 360쪽 주석”이나 “⟪노소트로스⟫라는 잡지 242호”에서 인용구를 뽑아올리는 협소한 취향과 세밀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위대한 고전에서 뽑아올린 문구들이 아니라서 더 좋았고, 아무도 안 볼 법한 책을 펼쳐서 더 아무도 안 볼 법한 각주를 구부정히 들여다보았을 그 모습이 떠올라서 웃기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저자의 유명세에 업혀 있지 않은 구절들, 오래된 도서관 구석에서 지금도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을 오래된 책들을 펼치면 나올 구절은 너무 많을 테고, 또 꼭 그만큼 무한히 매력적일 겁니다. 반복하지만,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역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쓰고 있습니다. 자기 이전의 시간은 책에서, 자기 이후의 시간은 개인적인 상상력과 유년의 인상을 바탕으로 씁니다. 독재자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축출되고 이후 연방제 국가의 대통령인 호세 데 우르키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팔레르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한 뒤에,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고 있는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르헤스는 자기 이전의 시간을 불완전한 형식인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고, 자기 이후의 시간인 유년마저도 망각되고 있음을 알고서 이 글을 썼으리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몰이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누추한 명예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개인으로서 역사와 대면하고 역사에 동참하니까요. 그 점에서 보르헤스가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개인적이며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서술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억과 서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저에겐 읽혀집니다. 용기의 상징인 단검과 결투,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경찰들과 싸우던 불량배들, 어디서나 들리던 기타 소리, 어둔 골목을 걸을 때면 들려오던 의미를 알 수 없는 휘파람 신호까지, 매력적인 디테일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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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Palermo de Buenos Aires)] 개인적으로 멀리서 긴 연휴를 보내고 푹 쉬다 왔습니다. 한번 쉬면 그냥 쭉 쉬는 게으른 타입이라 늦었습니다. 어느덧 모임이 이틀 남았는데, 오늘내일 해서 부지런히 다뤄 보겠습니다😅 그리고 3부의 각 장은 원제를 병기해 놓았습니다. 구글로 검색해보시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엣지Copilot과 DeepL과 Claude로 번역시켜서 책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 잘 답변해줍니다. 어떻게 번역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한번 저처럼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이전과 이후를 살핍니다. 자신의 이전 시간에 대해서는 늘 그래왔듯이 책을 참고하는데, 도입부부터 보르헤스답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 연보⟫ 3권 360쪽 주석”이나 “⟪노소트로스⟫라는 잡지 242호”에서 인용구를 뽑아올리는 협소한 취향과 세밀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위대한 고전에서 뽑아올린 문구들이 아니라서 더 좋았고, 아무도 안 볼 법한 책을 펼쳐서 더 아무도 안 볼 법한 각주를 구부정히 들여다보았을 그 모습이 떠올라서 웃기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저자의 유명세에 업혀 있지 않은 구절들, 오래된 도서관 구석에서 지금도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을 오래된 책들을 펼치면 나올 구절은 너무 많을 테고, 또 꼭 그만큼 무한히 매력적일 겁니다. 반복하지만,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역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쓰고 있습니다. 자기 이전의 시간은 책에서, 자기 이후의 시간은 개인적인 상상력과 유년의 인상을 바탕으로 씁니다. 독재자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축출되고 이후 연방제 국가의 대통령인 호세 데 우르키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팔레르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한 뒤에,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고 있는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르헤스는 자기 이전의 시간을 불완전한 형식인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고, 자기 이후의 시간인 유년마저도 망각되고 있음을 알고서 이 글을 썼으리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몰이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누추한 명예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개인으로서 역사와 대면하고 역사에 동참하니까요. 그 점에서 보르헤스가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개인적이며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서술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억과 서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저에겐 읽혀집니다. 용기의 상징인 단검과 결투,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경찰들과 싸우던 불량배들, 어디서나 들리던 기타 소리, 어둔 골목을 걸을 때면 들려오던 의미를 알 수 없는 휘파람 신호까지, 매력적인 디테일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팔레르모를 묘사한 글에는 언제나 멋진 농장과 불결한 도살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야음을 틈타 부들이 늘어져 있는 하구로 조용히 다가가는 네덜란드 밀수선도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것이 거의 멈춰 선 듯한 기원의 세계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미세한 과정, 다시 말해 오래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팔레르모를 향해, 그것도 조국이 모르는 사이에 자주 물바다로 변하곤 하던 텅 빈 땅을 향해 미친 듯이 진군해 오던 과정을 경솔하게 연대기로 엮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2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Palermo de Buenos Aires)] 개인적으로 멀리서 긴 연휴를 보내고 푹 쉬다 왔습니다. 한번 쉬면 그냥 쭉 쉬는 게으른 타입이라 늦었습니다. 어느덧 모임이 이틀 남았는데, 오늘내일 해서 부지런히 다뤄 보겠습니다😅 그리고 3부의 각 장은 원제를 병기해 놓았습니다. 구글로 검색해보시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엣지Copilot과 DeepL과 Claude로 번역시켜서 책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 잘 답변해줍니다. 어떻게 번역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한번 저처럼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이전과 이후를 살핍니다. 자신의 이전 시간에 대해서는 늘 그래왔듯이 책을 참고하는데, 도입부부터 보르헤스답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 연보⟫ 3권 360쪽 주석”이나 “⟪노소트로스⟫라는 잡지 242호”에서 인용구를 뽑아올리는 협소한 취향과 세밀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위대한 고전에서 뽑아올린 문구들이 아니라서 더 좋았고, 아무도 안 볼 법한 책을 펼쳐서 더 아무도 안 볼 법한 각주를 구부정히 들여다보았을 그 모습이 떠올라서 웃기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저자의 유명세에 업혀 있지 않은 구절들, 오래된 도서관 구석에서 지금도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을 오래된 책들을 펼치면 나올 구절은 너무 많을 테고, 또 꼭 그만큼 무한히 매력적일 겁니다. 반복하지만,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역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쓰고 있습니다. 자기 이전의 시간은 책에서, 자기 이후의 시간은 개인적인 상상력과 유년의 인상을 바탕으로 씁니다. 독재자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축출되고 이후 연방제 국가의 대통령인 호세 데 우르키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팔레르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한 뒤에,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고 있는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르헤스는 자기 이전의 시간을 불완전한 형식인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고, 자기 이후의 시간인 유년마저도 망각되고 있음을 알고서 이 글을 썼으리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몰이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누추한 명예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개인으로서 역사와 대면하고 역사에 동참하니까요. 그 점에서 보르헤스가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개인적이며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서술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억과 서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저에겐 읽혀집니다. 용기의 상징인 단검과 결투,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경찰들과 싸우던 불량배들, 어디서나 들리던 기타 소리, 어둔 골목을 걸을 때면 들려오던 의미를 알 수 없는 휘파람 신호까지, 매력적인 디테일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나는 1889년 당시의 팔레르모에 관해 글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쓸 생각이다.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글을 쓰겠다는 것은 우선 삶이 범죄만큼이나 부끄러울 뿐 아니라 하느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 팔레르모는 가난에 찌들었을지언정 한가로운 곳이었다. 무화과나무의 그늘이 토담 위로 드리우고, 수수한 건물의 발코니가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일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땅콩 장수의 뿔피리가 애절한 소리를 내며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26쪽, 32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Palermo de Buenos Aires)] 개인적으로 멀리서 긴 연휴를 보내고 푹 쉬다 왔습니다. 한번 쉬면 그냥 쭉 쉬는 게으른 타입이라 늦었습니다. 어느덧 모임이 이틀 남았는데, 오늘내일 해서 부지런히 다뤄 보겠습니다😅 그리고 3부의 각 장은 원제를 병기해 놓았습니다. 구글로 검색해보시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엣지Copilot과 DeepL과 Claude로 번역시켜서 책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 잘 답변해줍니다. 어떻게 번역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한번 저처럼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이전과 이후를 살핍니다. 자신의 이전 시간에 대해서는 늘 그래왔듯이 책을 참고하는데, 도입부부터 보르헤스답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 연보⟫ 3권 360쪽 주석”이나 “⟪노소트로스⟫라는 잡지 242호”에서 인용구를 뽑아올리는 협소한 취향과 세밀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위대한 고전에서 뽑아올린 문구들이 아니라서 더 좋았고, 아무도 안 볼 법한 책을 펼쳐서 더 아무도 안 볼 법한 각주를 구부정히 들여다보았을 그 모습이 떠올라서 웃기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저자의 유명세에 업혀 있지 않은 구절들, 오래된 도서관 구석에서 지금도 조용히 먼지를 먹고 있을 오래된 책들을 펼치면 나올 구절은 너무 많을 테고, 또 꼭 그만큼 무한히 매력적일 겁니다. 반복하지만,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난 해인 1889년을 기점으로 팔레르모의 역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쓰고 있습니다. 자기 이전의 시간은 책에서, 자기 이후의 시간은 개인적인 상상력과 유년의 인상을 바탕으로 씁니다. 독재자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축출되고 이후 연방제 국가의 대통령인 호세 데 우르키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팔레르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한 뒤에,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고 있는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르헤스는 자기 이전의 시간을 불완전한 형식인 책으로밖에 접하지 못했고, 자기 이후의 시간인 유년마저도 망각되고 있음을 알고서 이 글을 썼으리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몰이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누추한 명예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개인으로서 역사와 대면하고 역사에 동참하니까요. 그 점에서 보르헤스가 유년의 팔레르모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개인적이며 역사와 동떨어져 있는 서술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억과 서술은 역사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저에겐 읽혀집니다. 용기의 상징인 단검과 결투,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경찰들과 싸우던 불량배들, 어디서나 들리던 기타 소리, 어둔 골목을 걸을 때면 들려오던 의미를 알 수 없는 휘파람 신호까지, 매력적인 디테일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겁니다.
회반죽을 바르지 않은 납작한 집들도 있었다. 그런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쓸쓸하고 황량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인간들의 간섭 없이 홀로 자식을 기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3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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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같은회사 직원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주세요.수험생이 시집이 읽고 싶대요. 스무살 청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을 추천해주세요.[책처방] 5.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추천받고 싶어요.
독서모임에선 책만 읽는다? 댓츠 노노!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2월 8일(토) 달오름극장에서 만나요.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2월 26일(수), 함께 낭독해요 🎤
[그믐밤X그믐클래식] 32. 달밤에 낭독, <일리아스>
2월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이달의 고전] 2월 『제5도살장』 함께 읽어요[이달의 고전] 2월 『양철북』 함께 읽어요[그믐밤X그믐클래식] 32. 달밤에 낭독, <일리아스>
책도 벽돌, 독자들의 대화도 벽돌!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작품 말고 작가가 더 궁금할 때!
[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
illef의 깊이 읽기
AI 교과서(AIDT)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왕의 목을 친 남자 - 사형집행인 샤를 앙리 상송의 이야기
매달 만나는 젊은 작가의 달달한 로맨스 🧁
[북다] 《정원에 대하여(달달북다08)》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달달북다07)》 함께 읽어요! (1/23 라이브 채팅!)[북다] 《지나가는 것들(달달북다06)》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빛처럼 비지처럼(달달북다05)》 함께 읽어요! (+책 나눔 이벤트)[북다]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달달북다04)》
📩 닫히지 않는 편지 가게 글월
편지가게 글월 / 백승연 지음 (2024 런던 국제 도서전 화제작)[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편지 가게 글월] 서로 꿈을 이야기하며 안부를 전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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