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st님의 대화: [이미지의 시뮬레이션]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에서 '이미지'라는 것을 깊이 살펴보는 글입니다. 보르헤스는 기존의 문학에서 '이미지'가 시각적인 것에만 국한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그 "시각적인 것의 무분별한 남용 사례"를 하나씩 살핍니다.
(234) "어둠이 아니다. 즉 빛나는 밝음, 눈부신 밝음이자 내면의 밝음, 깊은 밝음이다. 번쩍이는 바다는 파란 크리스털이다.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또는 태양이 타원을 그리며 횡단하는 무결점, 사파이어색 하늘."
보르헤스는 은유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시각적인 무절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기존의 표현들이 얼마나 정확하지 않은지, 최상급의 과장된 표현으로 가득한지, 그리고 그러한 게으른 과장법이 독자의 부주의와 어떻게 공모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생각해보면, 과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자신이 설득하려는 이미지에 닿지 못하는 궁색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닿지 않기 때문에 수식어를 주렁주렁 다는 것인데, 계속해서 수식을 달수록 애당초 닿으려는 이미지와는 더욱 멀어지고마는 역설에 봉착합니다. 좁아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오판하는 일이 그렇게 왕왕 벌어집니다.
그 점에서 '이미지'를 설득하려는 사람은 휴리스틱 이론에서의 '교집합의 오류', 혹은 '결합 오류(conjunction fallacy)'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할 확률이 얼마인가'를 물으면 그럴 확률이 거의 없을 거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바꿔서, '제삼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하게 될 확률이 얼마인가'를 물으면 오히려 전쟁이 벌어질 확률을 높게 책정한다는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왜냐면 전자의 질문이 후자의 질문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설득하기 위해서 수사적 장치를 동원하는 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결국 수식어는 한정하는 역할을 하고, 더 많은 수식어를 쓸수록 더욱더 그 이미지는 한정적인 것이 되어서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데도, 이상하게도 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듯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글에서 인용된 ‘무절제한 표현들’을 읽다보니 보르헤스가 러브크래프트를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로 패러디(?)했던 단편이 생각났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