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st님의 대화: [또다시 은유] '은유'에 대해서 달리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뭣보다, 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려고 하다 보면 다르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은유를 데려오게 된다고 봅니다. 은유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결과물임과 동시에 새롭게 사고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하지만 시 자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며, 때때로 그 위험성도 있습니다. (잠시 샛길로 새면, 한 시대를 풍미한 은유에는 그 시대의 한계가 녹아 있기도 합니다. "국가 수뇌부"라는 표현이 군주를 중심으로 신체라는 국가를 일사분란하게 조종하는 이미지를 은연중에 그려내고, "사회의 암덩어리" 같은 은유에 암환자를 향한 은근한 멸시와 그 방종한 생활을 비난하는 함의가 담겨있는 것을 보면 그러합니다.) 반복하지만 은유는 달리 생각하기입니다. 따라서 은유로써 달리 생각하지 못하고, 기지를 기계적으로 재생산할 뿐이라면, 그 은유는 (혹은 그 은유에 대한 생각은) 쇄신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보르헤스가 211쪽 괄호 속에 겸손하게 숨겨놓은 문장은 빛납니다. "나는 진심으로 은유는 시를 지을 때보다 오히려 시를 지은 후에, 문학적이고 이미 잘 꾸려진 시를 원할 때 필요하다고 본다. 은유로 인해 뒤섞인 어휘로 구성된 시는 제약을 가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실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은유를 모르고서 시를 읽을 수는 없지만, 시의 모든 것을 은유로 보면 우리는 시를 즐기지 못합니다. 시는 수수께끼가 아니고 은유는 수수께끼의 힌트 따위가 아닙니다. 시를 수수께끼로, 은유를 수수께끼의 힌트로 좁게 보기 시작하면, 시는 낱말 맞추기처럼 시시하고 피곤한 것이 되며, 시인은 살인 현장을 밀실로 만들려는 범죄 추리극의 시시한 범인이 되고 맙니다.
"동굴(grata)에서 파생되었다는 이유로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은유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10이라는 숫자에 있는 0이라는 상징으로 인해 ‘절대 무(無)’의 개념이 개입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12쪽.
글의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은유가 장식이자 호화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장식'과 '호화로움'이라는 단어가 오해될 뉘앙스를 갖고 있음에도 보르헤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결국 장식도 '다르게 보이기(말하기)' 위함이니까요. 이때 '장식'이란, 내면이 텅 비어 있음을 가리는 겉치레를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때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중한 것과 중하지 않은 것 사이를 일순 반전시킬 힘을 지닙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생크림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피처럼 붉은 체리 한 알을 생각했습니다. 그 체리 한 알은 케이크 시트와 그 위에 덧발릴 생크림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장식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생크림케이크의 맛과도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생크림케이크는 이미지적으로 너무 둔탁하거나 옹졸해 보일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새하얀 생크림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붉은 체리는 사소하지만 중한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생크림케이크 위에 올라가지만, 이미지적으로는 생크림케이크가 작은 체리 한 알 위에 올라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보르헤스가 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너무 멋집니다. 저에게는 생크림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핏빛 체리를 연상케 합니다.
“ (내 생각에)사물은 본질적으로 시적이지 않다. 이를 시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과 사물을 연관시키고 혼신을 다해 이를 궁리하는 데 길들 필요가 있다. 별들은 시적이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의 눈이 이를 보아 왔고 그 영원성에 시간을, 그 가변성에 불변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10p,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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