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두꺼워서 놀랐네요. 근래에 받은 벽돌책 중 디자인적으로 뛰어납니다🤩
[이 계절의 소설_겨울] 『해가 죽던 날』 함께 읽기
D-29
강츄베베
금정연
표지가 아주 강렬하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저도 프롤로그 형식이 재미있게 느껴지네요. 소설의 초반부가 생성하는 극적 긴장감이 바로 이 서문에서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누군가가 대뜸 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간청, 호소로 시작된다는 것, 또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그날 밤”이라고 지칭되는 어떤 사건이 자꾸만 실체를 드러내길 미루는 방식으로 등장하다 보니 어딘가 굉장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며 긴장을 하게 되는 거죠. 화자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지칭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유일한 관찰자로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이기에, 독자는 그 ‘바보’에게 점점 기댈 수밖에 없게되는 과정도 재미있고요.
금정연 샘이 짚어주신 것처럼 저도 작가 옌렌커가 이웃집 친척 아저씨로 등장하는 것이 다소 뜬금없긴 했는데요. 옌렌커의 작가로서의 좌절과 리녠녠의 호소가 겹치게 되면서 “그날 밤”을 서사화하는 일이 옌렌커의 <<그 사람의 밤>>이 완성되는 일과 동일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 ... 1주차 분량만 읽고 난 지금은 리녠녠의 아버지인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글쎄요.. 그리고 옌렌커의 작품 속 구절이라 말해지는 인용문들이 서술 중간 중간 끼어드는 것도 아직 그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포인트 같아요.
리키
프롤로그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부분을 읽으며 너무나 절실한 화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감정 몰입+공감 상위 1%에 속하는 INFJ라 그런지 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마을에 사는 소설가 옌렌커 선생이 제발 소설 좀 잘 써주기를 함께 기도라고 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ㅋㅋ
녠녠이라는 어리고 바보스러운 (소설 속 표현, 저의 의견 아님) 소년 화자를 내세운 이유는?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이 말을 하면 그다지 절실하게 들리지 않아서일까요? 오히려 약자로 보이는 사람의 말에 더 공감이 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날 밤으로 묘사되는 그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P13~14에 보면,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이 마을은 곧 세계의 중심이다. 소설가 옌 삼촌이 자기 책에서 한 말」이라고 묘사되는 부분 (제가 중국 작가들의 소설 읽을 때 매의 눈으로 살피는 부분인데요.) 중국인들의 이런 세계관에 대해 조금 염려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ㅎㅎ 그냥 슬쩍 지나가는 표현인지 뒷부분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그의 전작, 그간의 소설들을 두로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중국 소설가들이 체제 안에서 작품을 써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만, 중국을 넘어? 선 소설을 만나고 싶은 독자의 마음 이것은 한국의 최근 젊음 작가들의 소설에도 공통적으로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본격적으로 본문이 시작되고 나서는 부제에 시간(이를테면 17:00~18:00)이 뜨는데요. 언뜻 “그날 밤”의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작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과거 이야기가 서술되기도 해서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알쏭달쏭하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서술되자, 화자가 두려워하며 언급하려고 하는 그날 밤, 그 사건이란 마을 사람들의 “대규모 공유”인 것으로 드러나요. 흔히 몽유병이라고 말하는 어떤 상태가 마을 전반을 점차 지배해가는 상태처럼 보이는데요. 이것이 특정 원인에 의한 질병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기보다 오히려 마을 전체가 무엇에 씌인 것 같은 ... 마을에 걸린 거대한 저주처럼 서술되는 것 같아요. 몽유 상태에 있는 이들은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자고 있는데, 깨어 있는 이들의 상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48-48)처럼 묘사됩니다. 흡사 좀비가 된 것 같기도 한데요. 마을의 장씨 아저씨와, 화자의 엄마에게 발생한 몽유 상태를 보고 있자니 저는 이들이 몽유 상태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좀 궁금해지더라고요. 화자의 말로는 이들은 주변 풍경은 의식하지만 주변의 인물들은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니까요. 몽유 상태로 꿈을 꾸면서 기껏 하는 일은 평소 자신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고요.(밀 털기, 종이 오리기)
금정연 선생님께서 후각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소설에선 땀냄새와 탄냄새가 번갈아 등장하고 그것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왜냐하면 이 마을에는 죽음이 애초부터 매우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땀냄새와 탄냄새가 그 죽음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그와 같은 감각 체계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전반적으로 화자의 서술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마을에서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딘가 굉장히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화자의 독특한 풍경 묘사가 은근히 일러주고 있는 것 같거든요.
엄마의 몽유 상태를 마주한 화자가, 그 모습을 묘사하는 구절을 가져와보겠습니다.
“제가 갔을 때 엄마는 점당 안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쓰러져 있었고 눈앞에는 오색 종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전지공예에 쓰이는 크고 작은 가위들이 점당 바닥과 엄마 발밑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큰길은 원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달빛은 청명하기만 했습니다. 등불은 누런 진흙 빛이었지요. 누런 진흙 빛과 청명한 빛이 한데 섞인 모습이 마치 깨끗한 물에 쌀뜨물을 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깨끗한 물도 쌀뜨물 같은 구정물이 되지요.
무척 고요했습니다. 죽은 것 같았습니다,
죽음처럼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53)
여기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은 엄마의 몽유 상태인데, 화자는 엄마 자체보다 엄마를 둘러싼 기묘한 분위기를 여러 배경 묘사를 통해 서술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청명한 달빛과 누런 진흙 빛의 등불 간 대비, 쌀뜨물 같은 구정물의 고요함과 죽음 등이 이상하게 겹치면서 독자에게는 이 암마의 ‘몽유 상태’라는 것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운틴 님께서 짚어주신대로 1주차의 후반부는 매장에서 화장으로 넘어가는, 이른바 ‘풍속’의 정책적 변화 속에서 인간의 죽음이라는 주제가 진지하게 다뤄지는데요. 이 죽음의 문제와 범상치 않은 “대규모 몽유”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지 다음 읽기가 무척 기대됩니다.
여러분은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엘데의짐승
와... 이 책 도입부 부터 몰입이 되기 시작합니다.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1주차 분량까지 읽으면서도 엄청난 이야기를 읽어낸 느낌입니다.
1. 제목 일식(日熄)의 우리말 제목은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해가 죽던 날이라니.. 아직 이 '해'의 의미를 유추해 보기는 어렵지만 대략 미래에 대한 희망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해가 하룻밤의 해프닝을 통해 사라지는 이야기를 옌렌커는 하려나 봅니다.
2. 남미 환타지 문학의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위에 @stella15 님은 사라마구의 소설이 생각났다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최근 드라마화 된 '백년 동안의 고독'이란 소설도 생각이 났습니다. 집단 몽유병이라니? 전염병인가? 환경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여러가지 추측을 해 보던 중 알게 된 정보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관련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 문체가 뭐랄까? 차분하면서도 뭔가 임팩트가 있습니다. 구구절절 ~니다 라며 설명하는 문체로 끝을 맺습니다. 아무래도 이 화자의 수준?으로 묘사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단순한 묘사나 혹은 반복되는 문장들이 주는 느낌이 가볍기 보단 저에게 무겁고 힘겹게 느껴집니다.
1주차로 일단 몸풀기?는 끝난 것 같네요..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과연 새들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금정연
문체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 같아도 묘한 리듬이 있어서 몰 입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오히려 무게감을 더하게 되기도 하고요. 외국에서는 후안 룰포를 연상시킨다는 평이 있던데, 말씀하신 마르케스의 소설과 이어지는 지점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자꾸 '같다'라고 쓰게 되는데, 결국 감상이란 늘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서 조심스럽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백년 동안의 고독>과 달리 하룻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본격적인 독서 감상이 기대됩니다!
지혜
저는 문체적으로 볼 때 그리스 비극이 연상되었습니다. 동일한 혹은 앞뒤 어휘만 바꾼 짧은 문장들이 반복되는 것도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가 담당하는 부분처럼 들리는 것 같았고요.
금정연
정말 그렇네요. 말씀한 부분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의 묘사(얼굴색이나 냄새 등에 대한)가 반복되는 부분들도 그렇고요.
아린
중국 문학은 한손으로도 셀수 있을 만큼 ...몇권 안되게 읽었는데.. 그 책들이 다 이런식으로 반복적인 설명을 하는 거 같더라고요.(원래 중국 문학의 특징인지? 몇권 안 읽은 책이 하필 그런 책 유형이었는지...)
요즘 숏폼이다 어쩌다 해서인지 책도 문장이 간략하고 속도감 있게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인데.. 제가 읽은 몇권 안되는..그 책들은 뱅글뱅글 돌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예요..
뭔가 나중에 다 읽으면 풍성한 느낌이 드려나? 싶지만.. 지금은 속도가 앞으로 빠르게..!!안 나가져서 약간..답답해요.
....
금정연
모든 중국 소설이 다 그런 건 물론 아니겠지만 그런 경향성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짧고 빠른 형식들이 대세이고 소설에서도 가독성과 속도감이 중요하지만(물론 가독성과 속도감은 다르고 옌롄커 소설은 조금 느릴 순 있어도 가독성은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굳이 비유하자면 속도감이 빠른 요즘 소설들이 현란란 비트를 자랑하는 k-pop이라면 옌롄커 소설은 비록 빠르진 않지만 익숙해지면 흥겹게 리듬을 탈 수 있는 재즈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stella15
아, 그래서 이 책 덕분에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 볼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오래 전에 사 놓고 안 읽고 있었거든요. 영화 참 괜찮았는데 말이죠. 제가 이렇습니다. ㅎㅎ
주무니
아! 그래서 후각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군요. 코가 왜 비중을 많이 차지하나 궁금했는데 덕분에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일경에서는 본격적인 몽유가 시작됩니다. 최가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한 원인이 있다기보단 마을 전체가 거대한 저주에 씌인 것 같은 느낌이지요. 좀비 같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건 이런 몽유가 처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대규모 몽유는 무척 드문 일이긴 하지만 몽유 자체는 종종 있어 왔고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겪는 일이라는 식으로 서술 되죠.
한 가지 중요한 건, 몽유는 분명 소설적이고 환상적인 사건이지만 뜬금없이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일경의 첫 번째 장 마지막 부분에 화자 특유의 어투로 그날 있었던 일을 서술하고 있지요.
“용포절인 이날 저녁 무렵 장사가 폭발적으로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장례용품이 전부 팔려나갔으니까요. 사람들은 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면서 일제히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습니다. 사람들은 은행 금고가 텅 비도록 돈을 찾았습니다. 거리의 모든 상점의 물건이 남김없이 팔려나갔습니다.” (23쪽)
이건 명백한 인플레이션이고 뱅크런이고 사회 불안으로 인한 생필품 사재기이지요. 그렇다면 몽유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저녁 무렵 장례용품이 전부 팔려나간 이유는, 사람들이 몽유와 상관없는 다른 요인 때문에 죽어나갔다는 것이고, 그건 아무래도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화자는 어린아이이자 ‘바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서술이 소설에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가듯 언급되는 초반의 이런 서술을 생각한다면, 몽유에는 사회경제적인 이유가 있거나 혹은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발생한 무언가를 ‘몽유’라는 주술적인 명칭으로 서술하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겠죠.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둔 채 소설을 읽는다면 감상이 더욱 풍부해질 것 같아요!
리키
장례용품점 이름이 '신세계'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ㅎㅎ
P.29의 사람들은 꿈을 믿으면서 현실은 믿지 않는다라는 문장.
그리고 죽은 것 같았다. 죽음처럼 ~~ 등, 죽음과 관련된 문장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생각해봅니다 ㅎㅎ
우리 삶 바로 옆에는 죽음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있고 다만 사람들은 한순간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죠 ㅠ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른바 몽유는 대낮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게 뼈에 새겨지며 골수에 사무치도록 생각하다가 잠들어서도 깨어 있을 때의 생각들을 이어가고 꿈속에서도 그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32
(몽유가 이런 것이라면 저도 몽유에 빠질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ㅠㅠ)
♧위에 독자님들의 주제 사라마구 작가님의 #눈먼자들의도시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제게는 그 책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거의 제가 읽은 디스토피아 중에 고난이도 레벨이었던 재독할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
대규모 몽유가 시작되는 장면, 마치 팬데믹을 연상케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냥 두렵다는 느낌보다는 신비로운 느낌도 있습니다 ㅎㅎ
금정연
책을 읽으며 제가 만약 몽유에 빠진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고 이치에 닿지도 않는 글들을 끊임없이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흔히 우리는 삶과 죽음을 단절의 형태로 이해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이 이어져 있고 또 순환하는 것이기에(녠녠의 출생과 할머니의 죽음이 마치 교대 근무처럼 그려지는 등) 그렇게 많은 죽음이 언급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stella15
그렇죠. 영화도 좀 음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끝에 가선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거 원 괜히 아는 척 하는 것 같습니다. ㅎ
근데 전 실제로 몽유병에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과연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요. 말에 의하면 밤에 멀쩡히 할 거 다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뭘 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이 책은 워낙 광범위하고 집단적이어서 환상문학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지혜
저에게는 사람들의 죽음이 몽유가 아닌 그리고 도둑질과 강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전부터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무척 신선하네요.
금정연
녠녠은 전지적인 화자가 아니고 아직 어린 아이인만큼 그의 눈으로는 미처 보이지 않는, 혹은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고, 거기에 대한 힌트를 작가가 초반에 주었다고 생각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주인공 가족이 “죽은 사람들에 의지해 생활”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장례용품점인 ‘신세계’를 운영하며 어머니는 장례에 쓰이는 종이꽃 등을 만드는 ‘전지의 대가’이죠. 외삼촌은 화장장을 운영하는데, 여기에는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매장이라는 풍속을 화장으로 바꿀 것을 강제하는 국가 권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외삼촌은 아버지에게 시신을 태우고 남은 사람기름을 넘기기도 하고요. 심지어 아버지는 과거 국가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시신을 매장한 사람들을 밀고하는 일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집행자들이 몰래 매장된 시신을 무덤째로 폭파해서 태우는(천등형이라고 하네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밀고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 과정에서 화장장에서 생활하던 어머니와 결혼을 해서 주인공 이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어두운 비밀을 지닌 주인공 가족은 과연 몽유의 밤에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3장(실제 목차는 ‘제3권’이지만 그냥 장이라고 할게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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