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탕후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소설이라는 꼬챙이에 1부, 2부, 3부가 꽂혀 있는 거죠. 처음 먹고 두 번째를 먹으면 맛이 너무 달라서 이게 뭐지? 싶지만 세 번째 것까지 먹으면 앞서 먹었던 것들이 조화가 되면서 아 이런 거구나... 하는. 실제 탕후르는 그렇지 않지만요 ㅎㅎ
[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금정연
delispace
아이고고, 그저께가 되어서야 겨우 진도를 따라잡고 끝부분 작가님들 추천사까지 잘 읽고 마무리했습니다. 책을 다시 훑으면서 머릿 속을 정리하는 일이 남았지만... 이것저것 개인 일들이 생겨서 미루다가 이제 야 들어와보니 이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제때 못본 게 너무 아깝고 어디부터 어떻게 읽고 나눠야할지... 그래도 즐거운 고민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다시 열심히 따라가 보렵니닷!! ㅎ
금정연
연말연시에 이런저런 일들이 워낙 많아서 집중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방의 대화들도 천천히 읽어보시고 감상 올려주세요!
Alice2023
메마른 닐의 일상에 어떤 번뜩이는 통찰들을 주는 멘토같은 존재를 만나 그녀를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그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한 부장님이 나이가 들수록 공대생에게도 인문학이 중요해라고 했을때.. 이것은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인가 했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도 모르게 인문학 책을 찾아보고 있거든요. 2부 율리아누스 이야기가 공대생에게 조금 고비이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곱씩고 여기서 나누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오늘은 닐이 말한 "엘리자베스 핀치는 인간적 관심사의 정상적 대역폭과는 거리를 둔다"는 표현을 혼자 꼽씹어 보았어요. 분명 번역한 표현인데 "인간적 관심사의 정상적 대역폭"과 거리를 둔다는 표현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금정연
그런 멘토를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 같아요. 멘토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 그만큼의 영향을 미치는 사람--친구든 연인이든--을 만난다는 게. 그런 의미에서 닐은 행운아였던 것 같네요. "엘리자베스 핀치는 인간적 관심사의 정상적 대역폭과는 거리를 둔다"는 표현을 읽으며 무심히 넘겼는데, 말씀해주신 것을 보고 생각하니 과연 절묘하네요. 다른 이야기지만, 공대생에게도 인문학이 중요한 것처럼 인문대생에게도 과학과 공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강보원
앗...!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사람에 대한 완벽한 서사(이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존재라는 것이 어떤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사실 EF 역시 율리아누스를 'J'라고 쓰면서 그에 대한 어떤 동일시, 그리고 어떤 이해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금정연 작가님이 위에서 인용해주신 이언 해킹의 "무언가를 두문자로 지칭하는 것만큼 그 대상을 영구히,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게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비추어봤을 때, 닐이 EF를 EF로 쓰는 것처럼... EF 또한 율리아누스를 J로 표기하며 그를 자신에게 의문의 여지가 없는 무엇으로 만드려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완벽하고 철두철미해보이는 EF 역시 그런 취약함을 우리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EF를 더 생생한 인물로 만들어주면서 어떤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delispace
저도 @밥심 님처럼 줄리언 반스 책은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가 유일했고 무려 2018년도에 읽은 터라 역시나 기억도 가물합니다. 그래도 책장에 꽂혀 있어서 꺼내 보니 이리저리 밑줄 친 부분들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어요.
"역사는 일어난 일이 아니다. 역사는 역사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일 뿐이다. <...> 몇 가지 진짜 사실을 남겨 놓고 그 주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공포와 우리의 고통은 마음을 달래 주는 우화화에 의해서만 덜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한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332-33pg)
그 책 전반적으로 아이러니, 풍자, 유머가 많았던 게 기억나는데, 이 대목에서 역사에 대한 작가의 기본적인 사고가 잘 드러나지 않나 싶고... 그런 성찰이 1989년 작품에서 2022년 작품작품으로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다른 분들도 꼽아주셨던데,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실타래로 보는 아래 부분.
"인생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서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느낌 - 또는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서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268-69pg)
인생도, 삶도 그러한데, 더군다나 이 세계와 역사라면.. 흠...
굳이 두 책을 비교한다면 제 생각에는 이번 소설이 훨씬 매끈하고 세련스럽다는 느낌이고, 흡인력도 상당한 거 같습니다. 삶에 대한 속 깊은 통찰도 정말 돋보이고요. 특히 앞의 저 대목에서 계속 생각이 많아집니다.
금정연
멋진 구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인용문을 보니 오늘 펼쳐본 책에서 본 제사가 생각나네요. 시그리드 누네즈의 <그해 봄의 불확실성>이라는 소설 앞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서전의 한 구절을 인용해두었더라고요.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 우리가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Living to Tell the Tale>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특히 소설가들은 그걸 직업적으로 하는데, 어떤 소설가들은 그걸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편, 어떤 소설가들은 기질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소설가가 더 뛰어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향의 소설가가 있다는 의미에서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소설가들은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이야기할 수 없음(혹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게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 골몰하는 경향이 있고요. 반스도 어느 정도는 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세계 역사에 대한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전복을 시도한 '소설'이다. 박식과 아이러니, 유머와 서정이 결합된 작풍으로 1980년대 이후 영국 문단의 대표 작가로 부상한 줄리언 반스가, 역사를 어떻게 포착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 27개국에 번역되어 반스의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읽히는 대표작이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 마르케스 자서전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과 라틴 아메리카 토착의 환상적인 신화를 결합한 작품들로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받은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서전이다. 놀라운 기억력과 세심한 시선, 이야기를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으로 자신의 삶의 궤적과 문 학적 배경을 복원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뉴욕 타임스』21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된 『구』 저자이자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신작 장편소설. 버지니아 울프를 인용하며 〈불확실한 봄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감염병에 따른 봉쇄 조치로 인적이 뜸해진 뉴욕 맨해튼에서 우연히 지인의 반려 앵무새를 돌봐 주게 된 한 나이 든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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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모
좋은 책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책과 연관지어 읽어보면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지 저도 저만의 결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살짝 기대하게 되네요.
금정연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라면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강력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솔닛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그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독서 많이 하시길 바랄게요!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저자 리베카 솔닛은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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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오늘 '세계 석학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준비된 우연>이라는 책을 조금 읽었는데요, 말 그대로 한 순간에 나를 바꾼 사람, 말, 사건 등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어요. 뭐랄까, 다른 평행우주에서 닐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 이런 책에 "내 인생은 아무 생각 없이 수강했던 '문화와 문명'이라는 수업에서 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달라져버렸다"라는 이야기를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야기라는 건, 우리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일종의 '틀'이겠죠. 그리고 그것이 틀인 이상 무언가를 그 틀 속에 넣기 위해서는 변형이 불가피할 테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는 EF를 '추앙'이라는 틀 속에 넣었던 닐이 EF가 남긴 메모 속 율리아누스의 삶을 경유해 EF의 발자취를 쫓아가다가 과연 누군가를 그런 틀 속에 넣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맞닥뜨리고 혼란스러워 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한가지 분명한 건, 그런 혼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세계 석학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 순간'에 들어가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일단 '세계적인 석학'이 될 수 없을 테니까요... (농담입니다ㅠㅠ)
반스의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책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로 정리하고 거기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재미있는 병렬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준비된 우연 - 세계 석학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 순간78명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인생 이야기.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 인정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했을까? 그들의 운명을 지금 여기로 이끈 결정적 순간은 도대체 언제였을까? 이 책은 세계적 석학 78명의 웃음과 눈물, 고민과 통찰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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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아비현
저는 이책을 처음에 읽고 내용에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모임과 같이 다시 읽어보니 그제야 내용에 대한 이해가 되었네요 이 책 모임을 열어준 소전문화재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금정연
저 역시 많은 분들 덕분에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게 함께 읽기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elispace
1부가 아무래도 가장 두껍고 전체 골격을 이해하는 데 핵심 같아서 후루룩 다시 훑어 보다가 이제는 정이 들어 살짝 귀엽기까지 한 우리의 닐에게 이런 회고가 있네요.
"그녀의 말은 격식을 갖추었으며 문장구조는 문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쉼표, 세미콜론, 마침표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16-17pg)
재미 있는 건, <밀리의 서재>에서 이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EF의 또박또박한 말솜씨처럼 성우의 딕션도 엄청나게 탁월했는데.. 슬프게도 전 오디오만으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더군요. ㅎㅎㅎ 청력과 이해력의 문제겠지요. 책과 병행하면 어떨까 해서 들어본.. 예를 들어 그 다음 페이지 이런 문장.
"하지만 테크니컬러와 시네마스코프로, 카르파초가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그 테크닉으로...<...>" (19pg)
뜨헉.. 이런 문장을 듣기만 하고도 너끈히 이해한다면, 감히 천재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금정연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돌아와 앞부분을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랑 또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면서 새로운 감상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다시 돌아가서 앞부분 읽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동지를 만난 것 같아서 반갑네요!
오디오북이 있군요. 핀치가 강의하는 걸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강의를 듣는 것과 유사한 느낌일 거라는 걸 상상도 못해봤는데 저도 한 번 들어봐야겠네요. 좋은 팁(?) 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푸라비다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가 유난히 잘 안 다가왔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소설책보다는 철학책 같다는 느낌이 초반에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율리아누스에 대한 E.F의 강의를 따라 가는 것이 저에게는 좀 버거웠습니다.
리더님의 말에 따라가며 발 맞춰 걷다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처음부터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전문화재단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금정연
사실 소설보다는 철학이나 인문학에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알 것 같아요. 소설의 구성이 강연과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구성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다시 읽어보시면 전과는 조금 다른 감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 내용을 모르는 상태로 쫓아가며 읽는 것과 이미 아는 상태에사 보는 건 또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걸 좋아해요. 한 달 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지
현재의 과제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과거를 교정할 수 없을 때 더 긴요하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90p,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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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성공에 대한 자족과 마찬가지로 실패에 대한 자족도 있을 수 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94p.,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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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금정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생각해보면 한 책을, 그것도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처럼 두깝지 않은 책을 이렇게 오래 읽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은 분들과 함께 읽으며 저와는 다른 관점과 해석과 감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 직업은 책을 읽는 거라 빨리 읽어버리고, 읽고 나면 잊어버리는 일이 많은데요. 여러분들과 함께 읽은 시간 덕분에 EF와 핀치는 제 안에 오래도록 남아 기억될 것 같아요. 그동안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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