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저도 이 대목 읽으면서 대단한 양반일세 했더랍니다. 무지막지한 채찍으로 300번 이상 맞으면 그냥 죽을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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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함께 읽기 마지막 3주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 했고 또 길을 잃기도 했던 율리아누스의 2부를 지나 다시금 닐의 시점으로 돌아왔는데요. 우리가 알지 못했던 EF의 개인사가 조금씩 드러나고, 그와 별개로 닐은 핀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혼란스러워하며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것이 제가 요약하는 것만큼 매끄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요. 날이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감상과 질문과 밑줄 기타 등등 마음껏 올려주세요!
제가 느낀 바는 아는 것과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었습니다. 3부에서 닐은 EF와 친구들에 대해 에상치 못했던 모습들을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알게 되잖아요. 유대인 얘기도 그렇고, EF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린다의 상담이나 EF가 수영을 즐겼다는 부분도 그렇고요. 저는 2장의 율리아누스에 대한 탐구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여지는 것들을 통해 아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염두해 둔, 이해를 동반한 앎은 다르고, 그래서 이해가 참 여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보원님이 쓰신 '슬픔'이 뭔지도 알 것 같고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슬픔은 어쩌면 그 낙차에서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약간 결은 다르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나는 세상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무력감인 것 같아요. 앎과 이해 사이의 격차에서는 슬픔 말고도 또 다른 감정들이 생겨나는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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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3부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어떤 슬픔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아요. 닐은 EF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닐이 점점 알게 되는 건 삶의 불가능성인 것 같기도 해요. "EF가 연필로 두 줄을 그어놓은 그의 주장은 삶에 대한 비난과 죽음에 대한 긍정이다.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삶은 그것을 믿는 사람을 속였고, 그것을 구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으며,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을 조롱했다. 삶은 아무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하고, 모두에게 거짓으로 드러난다.' 최선의 대응은 가능한 한 빨리 거기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두 형제는 자신들의 신앙을 더 강하게 내세워 말뚝에 묶인 채 창에 꿰뚫린다." (244) "인생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서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느낌 - 또는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서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269) 그리고 EF는 안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나는 인생에서 이를 수 없는 것이나 바랄 수 없는 것 전문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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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의 출처가 굉장히 미묘한데, 왜냐하면 단순히 '나는 EF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그건 실패했어'라는 데에서 오는 것 같지만은 않거든요(물론 그런 이유도 크긴 하겠지만). 그러면 이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EF의 삶이 불완전하고 슬픈 것인지, 아니면 율리아누스나 EF 같은 인물들이 비극(율리아누스는 죽고, EF는 여론 재판 같은 걸 당하고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세상 때문인지, 아니면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랄까, 그런 것이 기독교로 대변되는 일신교에 의해 패배했기 때문인지... 이것들이 다 조금씩 섞여 있을까요? 아무튼 '일관된 서사를 만드는 것의 불가능성'은 단순히 서사가 현실의 복잡성을 쫓아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온전히 재현할 능력이 없다는 것과 같은 층위에만 한정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뭔가 더 정서적인(?) 측면을 건드리는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나누며 힌트를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ㅎㅎ
우리가 아무리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 해도, 심지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깨달음은... 그 자체로 조금 쓸쓸한 것 아닐까요.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면 마음은 더욱 복잡하죠. 동시에 그런 현실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며 망신주며 가뜩이나 희미한 삶을 더욱 흐려놓으며 의기양양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근데 자신은 거기에 대해 별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만 ‘지진아’로서 아주 천천히 그녀의, 세상의, 스스로의 삶의 뒤를 한 발 늦게 따라가고 있다면............
말씀 굉장히 인상깊게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 슬픔에 대해서 좀 더 단순히 생각했었거든요. EF가 노트를 물려줄 정도로 닐을 가깝게 여겼다는 것에 닐은 어느 정도 자부심 - 나는 EF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 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이 하려던 것이 EF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또 받아들여야 하니 그 모든 과정이 충격이지 않았을까 싶어서...짧은 견해지만 남겨봅니다. 멋진 의견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이러한 미묘한 슬픔을 짚어주시다니. 좋은 생각거리가 돼요. 저는 EF를 고정하려는 닐의 노력이 정신적 의지처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근본적 불완전함에서 나온다고 봐요. 이제는 사라진 EF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구축하고자 율리아누스 에세이를 쓴 닐의 방식은 정제되어 있고 성숙해요. 그러나 그 속 자신을 깨쳐주고 기댈 기반이 되어줄 사람, 사상에 대한 갈망이 언뜻 비춰보여 슬프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EF가 과거 강의에서 히틀러의 책을 참고도서로 삼은 것이 대해 항의 받자 자신이 유대인이고 나치에게 많은 가족들을 잃은듯한 암시를 했던 것이 실은 의도적인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데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닐은 고민하죠. 왜 거짓말을? 학생의 코를 좀 눌러놓고 싶어서?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유대인인 척을 하고 있어서? 좀처럼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한 닐은 이 문제를 보류해 놓기로 합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이 문제는 더는 언급되지 않아요. 대체 핀치는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요??
소설 뒤부분에 가면 EF가 유대인이 맞고 크리스토퍼가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닐이 또 밝힙니다(227쪽). EF를 믿고 싶어하는 닐의 편형된 의견일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EF가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인척 했다면 그 이유는 닐이 유추해본 두 가지 가능한 이유를 포함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EF가 늘 진실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즉, EF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EF가 크리스토퍼에게 아무도 아니라고 대답한 남자가 사실은 그녀의 연인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따지자면 EF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제프에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알고 보면 히틀러는 학생 가족보다 내 가족을 훨씬 더 많이 죽였을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을 뿐이지요. 그 대답을 듣고 제프가 EF를 유대인이라고 속단했을 뿐입니다.
헉 그렇네요! 제가 깜박하고 있었어요. 말씀대로 EF 역시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본인 이외에 남겨진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어쩌면 EF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측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역시 지적해주신 것처럼 EF가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한 건 아니니,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EF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죠. 그렇다고 거짓말이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가족의 범주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EF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을테니까요.
저는 EF가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게 꼭 피를 나눠야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연대의 의미로 혹은 전쟁에 아빠가 죽은 것과 우리가 히틀러를 읽으며 배울 점은 배워야한다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네요. EF라면 그런 의도로 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연필로 적은 꺾쇠괄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들은 아마 죽었을 터인데, 그냥 이름에 줄을 긋는 것보다 다정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220,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 방식이 닐의 말대로 다정해서 문장을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EF는 과묵한 로맨티스트였음에 틀림없을 것 같아요.
과묵한 로맨티스트, 핀치에게 잘 어울리는 수식인 것 같아요.
나중에 -더 완벽한 사회에서- 나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다른 누군가가 틀림없이 나타나 자유롭게 행동하리라.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p 206,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작품 속에 있는 이 시를 보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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