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겨울]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함께 읽기

D-29
힐러리맨틀이 케이트 미들턴 관련 발언으로 난리가 난 게 무엇인가 찾아봤는데 다이애나와 비교는 좀 그렇지만 그 외에는 공감이 가네요. 이 사건이 소설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려질지~ 셋이 더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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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로 시작해서 좋은 말이 없다는 EF의 말과 관련해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비슷한 문장을 발견했어요. “나는 테크놀로지적 사물들로는 이런 종류의 복잡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테크놀로지적 사물들의 단일성은 정신을 편집광에 처하게 만든다. 즉 미니멀 예술, 로봇, 컴퓨터와 같은 것들.” <현대미술관, 독수리실>이라는 가상의 미술관을 만든 작업으로 유명한 마르셀 브로타스의 말인데요, 물론 EF는 테크놀로지가 중립적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단일성을 경계하는 정신에는 맞닿는 면이 있는 것 같아서 눈에 더 띄었던 것 같아요. 특히 편집광이라는 단어가 EF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던 제프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요. 참고가 될까 하여 브로타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 사이트를 첨부합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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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넘어갈 때 약간의 충격이었던 건, '보고서/에세이 형식을 이런 방식으로 소설에 집어넣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그렇게 닐이 에세이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틀림없이 일시적일 거예요"라는 말이 다시 회수되는 방식이 좋았어요. 처음에 닐은 그것이 자신의 이혼으로 인한 혼란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죠. 그런데 EF가 그 말로 의미했던 것은 그런 혼란으로 인해 '에세이를 쓰지 못한 상태'가 틀림없이 일시적일 거라는, 그러니까 닐이 분명히 그 에세이를 쓰게 될 것이라는 예언 혹은 믿음이었으니까요. 닐이 처음에 왜 EF가 자신에게 이런 자료들을 맡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EF가 자신에게 전기를 써주기를 바랐나' 같은 생각을 할 때 닐은 여전히 EF와의 관계를 자기중심적으로, 일종의 '로맨스'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길을 찾기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보다 학문적인 교류, 그리고 교사-학생의 신뢰와 관련된 부분에 생각이 미쳤을 때 닐은 자신이 써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요. 사실 소설을 읽는 저 역시도 은연중에 EF와 닐의 숨겨진 로맨스가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만 하며 읽고 있었으니 닐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부분에서 저 역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후에도 깊어지고 발전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거죠...ㅎㅎ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쓰인 에세이,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는 소설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더 EF에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이 되었다는 점 같아요. 닐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혹은 반쯤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원하던 관계를 포기함으로써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가장 정확하게 성취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EF가 남긴 기록과 장서가 닐이 쓰지 못한 에세이로 연결될 때, 과장 보태서 소름이 살짝- 이게 이렇게 연결되다니! 하면서요. 예전에 무슨 시나리오 작법 책에서 ‘씨뿌리기’와 ‘거둬들이기’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개념이 탁 떠오르더라구요. 닐이 그 에세이를 쓰면서 율리아누스를 통해 EF에 가까이 간다는 말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도 2장에서는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2장을 다 읽고 나서는 오히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닐의 시선를 빌려 에세이의 형태를 취한 2장에 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의 형태를 취한 인문학 책을 읽는 기분이에요 계속 느끼지만 일신교에 대한 맹신에 의문을 던지고 일부러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부르지만 도대체 어떤 종교에 대한 배교일까요. 그 신을 믿는 신자들이 더 이상 없어지면 그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신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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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 2권에 율리아누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율리아누스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몇 부분 옮겨봅니다. (페이지수는 기재하지 않았어요. 전자책이라...) "유배지에서 학자의 교육만 받은 율리아누스는 무기보다는 책을 더 잘 다루었고,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과 더 친했다. 그런 만큼 전쟁과 행정이라는 실제 기술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 그가 꼭 배워야 하는 군사 지식을 어색하게 암기할 때에는 한숨과 함께 탄식했다. "아, 플라톤, 플라톤, 철학자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실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이 사변 철학은 율리아누스의 마음에 고상한 원칙과 빛나는 모범을 심어주었다. 그는 철학을 깊이 연구한 나머지 용기를 사랑했고, 명성을 원했으며, 죽음을 경시했다. 철학 학파들이 강조하는 절제의 습관은 군영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덕목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연적 욕망을 잘 절제했으므로 간소한 식사와 짧은 잠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말단 병사에게 지급되는 것과 똑같은 거칠고 맛없는 식사를 들었다. 갈리아의 매서운 한겨울 추위에도 침실에 화로를 들여놓지 않았다. 짧은 시간을 숙면한 후에 한밤중에 바닥에 깔아놓은 카펫에서 일어나 긴급한 업무를 보았고, 군영을 순찰했으며, 짬을 내어 평생 좋아해온 학문인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여태껏 이론적인 주제를 가지고 배워온 웅변의 기술을 잘 활용하여 병사들의 열정과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나르본 주에서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한 주지사를 엄하게 징벌하려는 판관 델피디우스의 무절제한 열광을 율리아누스가 제지하자 델피디우스가 말했다. -폐하, 그런 식으로 봐주는 근거만 찾다 보면 누가 죄인으로 지목되겠습니까. -판관, 뒤집어씌우기로 마음먹고 나선다면 과연 누가 죄인이 아니겠나?" "신하들이 휴식을 취할 때에도 이 통치자는 쉬는 법이 없었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황급히 마친 뒤에는 서재로 물러가 오후 결재 시간이 될 때까지 철학 공부에 몰두했다. 저녁 식사는 점심보다 한결 간소했다. 그는 소화 불량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적이 없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제국의 정책에 따라 이루어진 짧은 기간의 결혼 생활 이외에, 정갈한 율리아누스는 다른 여자와 침대를 같이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날이 밝으면 전날 밤 숙직을 선 비서들이 결재를 받으러 황제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 지칠 줄 모르는 황제는 하던 일을 다른 일로 바꾸는 것 ㅣㅇ외에는 별다른 오락을 알지 못했다." "그가 배교자가 된 결정적 원인은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되어 살해자의 가문에 남겨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변 환경의 인상을 생생하게 받아들이던 어린 율리아누스에게 그리스도와 콘스탄티우스, 노예제도와 기독교는 이름만 다를 뿐 서로 같은 것이었다."
로마제국 쇠망사 2로마 제국이 쇠퇴하는 과정을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룬다. 서기 2세기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 창건, 신성로마 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년간의 역사를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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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누스가 남긴 유언도 있습니다. (너무 길고 괄호도 있는 걸 보면 진짜 유언이 맞나 싶지만...) "친구들이여, 그리고 동료 군인들이여. 내가 떠나야 할 좋은 시간이 이제 다가왔습니다. 나는 지불 준비를 마친 쾌활한 채무자처럼 자연의 요구에 응하려 합니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여 영혼이 육체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압니다.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것은 즐거워할 일이지 번뇌할 일은 아닙니다. 나는 종교를 공부했고, 그래서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은 경건함의 보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미덕과 용기로써 내 성품을 뒷받침해왔는데, 그런 성품을 더럽히지 말라며 내밀어진 죽음의 손길을 신들의 은총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죄책감 없이 살아왔듯이, 아무런 가책 없이 죽습니다. 내 개인 생활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나는 신성한 힘의 유출이 내 손 안에서 흠 없고 깨끗하게 보존되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패하고 파괴적인 전제주의를 혐오했기 때문에 나는 백성의 행복이 정부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행동을 신중, 정의, 절제의 법칙에 맡기면서, 모든 사건이 신의 섭리에 따라 처리되기를 바랐습니다. 평화와 공익이 일치되는 한 평화가 내 생각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위급한 목소리가 나에게 무기를 들라고 외치면 나는 전쟁의 위험에 몸을 맡기면서 내가 칼에 의해 스러질 운명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했습니다(나는 이런 지식을 복점술로부터 얻었습니다). 나는 이제 영원한 존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내가 폭군의 잔인함이나 음모의 은밀한 칼이나 오래 끄는 질병의 완만한 고문에 내 목숨을 잃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명예로운 교전의 한가운데에서 이 세상을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물러가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운명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많이 했더니 이제 힘이 부칩니다. 나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여러분이 신임 황제를 선출하는 데 영향을 미칠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신중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일입니다. 만약 나의 지명이 군대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내가 추천한 사람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로마인들이 덕성 높은 황제를 옹립하기를 바랍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2로마 제국이 쇠퇴하는 과정을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룬다. 서기 2세기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 창건, 신성로마 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년간의 역사를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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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 중 율리아누스에 대한 평가를 옮겨봅니다. "그러나 여든여덟 명에 이르는 비잔티움의 모든 황제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후세 사람들ㅡ4세기의 그레고리우스 나치안주스로부터 20세기의 고어 비달에 이르기까지ㅡ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인물을 바로 율리아누스일 것이다. 중세의 학자들은 그를 악마, 뱀, 심지어 적그리스도라고 묘사했으며, 르네상스 학자들은 그를 비극적인 영웅으로 보았다. 또한 18세기 사람들은 그를 철학자-군주의 원형, 이성과 계몽의 선구자로 여겼고, 낭만주의자들은 특유의 주변인과 반역의 관점에서, 그를 고결하고 용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패배한 자로 간주했다. 이 가운데 아마 마지막 해석이 가장 사실에 근접했다고 여겨진다(하지만 율리아누스의 삶이 역사에서 보기 힘든 낭만적 관점으로 윤색되었다는 문제점은 있다)." p.146-147 율리아누스의 짧은 재위기간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율리아누스를 자세히 다룬 책을 보고 싶었는데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서 갈증을 풀고 있네요. 소설의 맥락과 다를지 모르겠지만 율리아누스에 대한 관심 때문에 '둘' 장을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진도를 생각하니 이제 그만 아껴야되겠다 싶네요.^^;;;;
비잔티움 연대기 1 - 신이 보낸자, 콘스탄티누스<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 <아토스산>, <베네치아의 역사>등의 저술한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방대한 비잔티움 연대기. 천년제국 비잔티움을 다스린 88명의 황뿐 아니라 수십 개의 이민족을 다스린 성군과 폭군,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를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좋은 자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만약 율리아누스가 더 길게 재위했다면 과연 역사가, 아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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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터뷰를 언급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반스의 인터뷰 중에서 함께 읽으면 좋을 법한 부분들을 찾아봤습니다. 번역기로 번역해서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적당히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각 인터뷰 하단에 있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Q: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꽤 대담한 생각이 있는데, 바로 문명이 아주 오래전에 심각한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는 제안입니다. 그 장면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A: 그 장면은 363년 페르시아 사막에서 시작됩니다. 제 이름과 같은 율리아누스, 후에 '배교자 율리아누스'로 알려진 로마의 마지막 이교도 황제가 살해됐을 때입니다. 페르시아 창에 가슴을 맞고 죽어가면서, (물론 영어로 한 말은 아니지만) "창백한 갈릴레아인이여, 그대가 이겼도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창백한 갈릴레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군사적, 신학적 패배를 모두 의미하는 것이었죠. 물론 이 말은 실제로 하지 않았을 겁니다. 50-100년 후에 기독교 작가가 쓴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때가 이교도가 최종적으로 패배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 특히 일신교가 매우 위험하고 대개는 극도로 억압적이며 큰 부패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나쁜 일이었다고 봅니다. Q: 소설의 중심인물인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는 학생들에게 'mono'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monotony(단조로움), monogamy(일부일처제), monotheism(일신교). 그리고 그녀는 'mono'로 시작하는 것들 중 좋은 것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엘리자베스 핀치가 보는 일신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A: 그녀는 일신교가 불관용과 박해로 이어진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살았던 다신교는 훨씬 더 관대하고 관용적인 종교였습니다. 로마인들이 골을 정복하고 독일로 진출했을 때, 그들은 모든 정복자들이 그렇듯 자신들의 군사적, 정치적 체제를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달랐죠.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종교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종교가 있다. 우리는 우리 신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 원한다면 우리 신들을 숭배해봐도 좋다. 하지만 원한다면 당신들의 신들을 그대로 믿어도 된다"고 했죠. 하지만 일신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Q: 이렇게 대화를 계속하면서 우리가 고대 이교도들을 너무 호의적으로만 봐온 것 같아서 제가 끼어들어보겠습니다. 계몽된 율리아누스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을 낭만적으로만 보기 쉽죠. 하지만 소설에서도 지적했듯이, 그 율리아누스도 자신의 군사 원정이 어떻게 될지 점을 치기 위해 도살된 동물의 내장을 뒤적이고 다녔잖아요. 항상 건전하지만은 않았다는 거죠. A: 그 당시에는 그게 표준이었죠... 그가 데이비드 애텐버러는 아니었으니까요... [웃음] 동물을 해부하는 것이 별로 성공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성공을 매우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그리스와 로마라는 모델을 보면, 건축에서 군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업적을 이룬 문명이 있었고, 거기에 종교가 붙어있었거든요. 하지만 기독교도들은 그가 보기에 갑자기 나타났고 진정한 문명도 없었습니다. 종교만 있었죠. 마치 "우린 종교가 있으니, 기독교 문명을 세우는 건 나중 일이야. 그건 나중에 걱정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기독교의 엄청난 약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적이지 않은 어떤 업적도 없다는 것이요. 하지만 물론 이것이 그들의 큰 강점이었죠. 종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유일한 것, 그게 바로 문제죠.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유일한 것. https://www.cbc.ca/radio/tapestry/writer-julian-barnes-asks-what-the-world-would-look-like-if-paganism-had-won-1.659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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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의 책 'Elizabeth Finch'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이 책은 3분의 2는 소설이고 3분의 1은 논픽션입니다. 소설 부분은 성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명하고 똑똑한 여교수인 주인공과, 그녀가 남자 화자의 삶과 사고방식에 미친 영감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간의 논픽션 부분은 엘리자베스 핀치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흥미로운 역사적 인물에 대해 다룹니다: 로마의 마지막 이교도 황제인 배교자 율리아누스입니다. 그가 363년 페르시아 사막에서 사망한 후, 기독교는 이후 약 15세기 동안 거의 도전받지 않고 승리를 구가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좋지 않은 결과였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습니다. Q: 이 소설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왜 이 책을 쓰는 것이 중요했나요? A: 두 부분은 따로 시작되어 천천히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저는 약 15년 전에 시인 스윈번의 유명한 구절을 처음 들었습니다: '창백한 갈릴레아인이여, 그대가 이겼도다' - 여기서 갈릴레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이 말은 율리아누스가 임종 시에 기독교의 승리를 인정하며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스윈번의 관점에서 이것은 유럽 역사가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 시점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인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하지 않은 - 어떤 면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 여성으로, 그녀가 가르치는 사람들보다 더 멀리 보고 사물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는 인물입니다. https://www.waterstones.com/blog/a-uk-exclusive-qanda-with-julian-barnes-on-elizabeth-f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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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자베스가 왜 율리아누스와 이런 연관성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몇 번 읽어서 이해는 하고 있지만, 당신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A: 그 연관성은 자신의 시대에 대한 반항 정신이라고 봅니다.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에 대해 말하길, 그녀는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시대적이지도 않았죠. 마치 고대의 여신처럼 시간을 초월한 존재 같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고, 그녀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지만요. 그녀는 시대에 속하지 않았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졌습니다. TV 시리즈나 스포츠 같은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사소한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죠. 로마의 마지막 이교도 황제였던 배교자 율리아누스도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시대에 저항했던 사람입니다. 책에서 그녀가 언론의 공개적 질책을 받는 것처럼, 율리아누스도 사후 1300년 동안 기독교회에 의해 악마화되었습니다. 당시 '배교자'는 종교를 바꾼 사람이 아니라 악마를 의미했습니다. 기독교 교황과 제국에게 그는 최악의 악과 이교도의 상징이었죠. 그는 363년 페르시아 사막에서 18개월간의 짧은 재위 후 사망했습니다. 마지막 말로 전해지는 "창백한 갈릴레아인(예수)이여, 그대가 이겼도다"는 군사적, 신학적 패배의 인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구절은 사후 수십 년 뒤에 만들어졌지만, 제가 10-15년 전 스윈번의 시에서 처음 접했을 때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16세기 이후의 스윈번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율리아누스를 잃어버린 지도자, 위대한 영웅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박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도들은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기에 더 강한 박해를 바랐다고 합니다. Q: 역사와 우리가 그것을 보는 방식, 그리고 역사가 우리를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많은 대화가 있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우리를 따라다니는 건조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이 닐에게는 계시와 같았습니다. 그는 그저 배운 대로만 생각했었거든요. A: 네, 맞습니다. 역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자국의 역사만 배우면 그렇게 됩니다.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가 수업에서 인용한 말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르낭의 말인데요, "역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 국가가 되는 일부"라는 심오한 말입니다.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라고 한 점이 중요합니다. 국가로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계속 잘못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영국의 식민지 역사와 노예무역 관련 역사가 수백 년간 미화되어 왔듯이요. 독일처럼 과거를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나라도 있지만, 영국의 보수파들은 노예무역상이었던 사람의 진실을 밝히는 것조차 역사 파괴로 여깁니다. 엘리자베스 핀치는 닐에게 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만약 율리아누스가 18개월만에 죽지 않고 로마제국을 기독교에서 이교도로 되돌렸다면 어땠을까요? 초기 기독교도들의 폭력과 파괴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기독교도들은 로마인들보다 300배나 많은 동료 기독교도를 죽였고, 그리스 로마의 문화유산 98%를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헬레니즘 문명을 완전히 지우려 했던 것입니다. Q: '엘리자베스 핀치'를 읽으면서 역사가 물밑에 흐르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또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죠. 엘리자베스가 죽은 후 닐에게 문서와 도서관을 남긴 것도 의미심장했습니다. A: 그녀의 노트 5-6권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율리아누스에 대한 글이었을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 국가가 되는 일부"라는 말은 종교나 가족,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믿을 만한 화자라고 확신하면서도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가죠. https://www.barnesandnoble.com/blog/poured-over-julian-barnes-on-elizabeth-finch/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관점으로 신화를 쓴다는 말이 다 읽고난 뒤에 정말 와닿는 것 같습니다. EF와 닐은 신화 쓰기를 그만 두었지만 질문하기나 대상에 대한 애정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게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마음 속에서 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그래도 독자들이 생각해보길 바라니 작가분이 공을 던지신 거겠지만...많은 자료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콕 짚어 인용하기 애매한 구성이라서 여기에 소개하진 않았는데, 가디언과의 인터뷰도 재밌으니 나중에 한 번 읽어보세요!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3/sep/16/julian-barnes-life-in-writing-loss-martin-amis
와!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보니 지금까지 여기서 오간 여러 대화들과 연관성이 느껴지네요- EF와 율리아누스의 관련성 등 여기 계신 분들이 짚어주신 내용을 작가의 말을 통해 들으니 뭔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유일한 것, 그게 바로 문제죠.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유일한 것.” 이 문장이 특히 울림이 있네요, 저에겐. 가디언 인터뷰도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인터뷰까지 링크해주시고.. 고맙게 읽겠습니다.
우와 인터뷰 기사까지 공유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당 🙂
감사합니다. 소설을 읽는 데 참고가 되었습니다. '다른 것에 대한 가능성'은 그 자체로 애잔하다 싶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저는 사실 ‘여담’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독자이자 작가인데요, 2부는 여러 여담들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새뮤얼 존슨(우리가 아는 ‘박사’ 새뮤얼 존슨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데요. “존슨은 이 소책자 때문에 ‘율리아누스 존슨’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 책에 자극받아 다른 사람들도 ‘요비아누스’나 ‘배교자 콘스탄티우스’ 같은 소책자를 썼다. 또 존슨은 이 소책자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의 후원자인 로드 러셀이 처형당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로드 러셀은 1683년 링컨스 인 필즈에서 잭 케치의 손에 참수당했는데 목이 쉽게 잘리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 존슨 자신은 두 번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는 1683년 선동적 중상 혐의였는데, 이때는 교수형 집행인이 그의 책을 불태웠다. 두 번째는 1685년으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심각한 비행” 혐의였다. 이때는 칼을 쓰고 대중 앞에 네 번 서고, 벌금 200마르크를 내고, “뉴게이트에서 타이번까지” 채찍을 맞으며 가라는 선고를 받았다. 이제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는 선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답했다. “미스터 존슨은 순교의 정신을 지녔으므로 고난을 겪는 것이 어울린다.” 존슨은 “매듭을 지은 줄 아홉 개로 만든 채찍으로” 317번 맞았다. 그래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의사의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교황교와 이교의 비교>를 3천 부 다시 찍었고 재판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p.178-179 그 시절에 가톨릭을 비판하면서도 죽지 않았다는 게 일단 신기하고, 죽지는 않았지만 책이 불태워지고 채찍을 맞는 수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고 3천 부를 중쇄하고 재판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는 게... 심지가 아주 약하고 게으른 작가로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었네요. 특히 3천 부를 중쇄했다는 부분에서는 존경심마저... 선처해 달라는 요청에 대한 제임스 2세의 대답도 걸작인데요. “미스터 존슨은 순교의 정신을 지녔으므로 고난을 겪는 것이 어울린다”니, 영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영국 사람들이었네요...
저도 이 대목 읽으면서 대단한 양반일세 했더랍니다. 무지막지한 채찍으로 300번 이상 맞으면 그냥 죽을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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