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 와인은 아직도 지하 창고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은 아직도 어두운 현관에 앉아 있다. 불 풍선은 아직 잊혀지지 않은 여름 밤하늘을 떠다니며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내가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민들레 와인』 p.16,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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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에는 잔잔하게 여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유령 고래 같았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초록색 심연을 지나쳐가는 고래.
『민들레 와인』 p.23,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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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책의 문장을 읽을 때 단어보다 이미지가 먼저 심상에 떠오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전 문장에서 묘사하는 마을과 자연의 풍경이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 전에 머릿속에 계속 남아 이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책을 읽는다기보다 풍경을 본다는 감상이 계속 강렬하게 남네요.
위의 바람에 대한 문장처럼 상황을 묘사하되 구체적으로 단어를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으로 풍경을 머릿 속에 그려보게 하는 서술이 재밌네요. 마치 최소한의 밑그림만 그린 스케치북을 주고 독자가 각자 빈 공간을 채색하고 채워가라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음의 생각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2장에서 더글러스는 가족과 숲에 들어갔다가 '그것이 이리로 오네!' 라거나 '그것'이 사라지거나 자신의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계속 묘사하는 부분이 있 습니다. '그것'은 무엇 또는 뭘 표현한 거라고 보시나요?
2. 이 책에서 민들레 와인은 여름을 쭉 짜놓은 농축액처럼 묘사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민들레 와인처럼 계절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꼭 여름이 아니라 다른 계절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책읽을맛
1. 나는 살아있다는 그 느낌 아닐까요? 여름의 시작에서 숲 속에서 고양감을 느낀 끝의 깨달음 나는 살아있다. 그 충만한 느낌.
2. 메타세콰이어 열매. 가을 겨울이면 동네 길에 많이 떨어져 있어요. 몇개 주어다가 리본으로 묶어서 책장 위에 얹어 두거나 하죠. 발끝에 채이는 조그만 열매에서 한 계절이 지나감을 느낀답니다.
그런데 민들레 와인 맛은 어떨까요? 민들레 즙에 물을 넣고, 와인을 넣는지 안넣는지... 넣어서 와인이라고 표현하는 건지... 여튼 쓸 것 같은데.... 여름이 아닐 때 여름의 생명력을 빌리 듯 약처럼 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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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책읽을맛님의 대화: 1. 나는 살아있다는 그 느낌 아닐까요? 여름의 시작에서 숲 속에서 고양감을 느낀 끝의 깨달음 나는 살아있다. 그 충만한 느낌.
2. 메타세콰이어 열매. 가을 겨울이면 동네 길에 많이 떨어져 있어요. 몇개 주어다가 리본으로 묶어서 책장 위에 얹어 두거나 하죠. 발끝에 채이는 조그만 열매에서 한 계절이 지나감을 느낀답니다.
그런데 민들레 와인 맛은 어떨까요? 민들레 즙에 물을 넣고, 와인을 넣는지 안넣는지... 넣어서 와인이라고 표현하는 건지... 여튼 쓸 것 같은데.... 여름이 아닐 때 여름의 생명력을 빌리 듯 약처럼 쓰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IDXyfmBbyJM
민들레 와인(Dandelion Wine)을 찾아보니 소 설에서만 나오는 소재가 아니라 실제로도 사람들이 만들어 먹는 와인이더군요. 색깔도 정말로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영롱한 황금빛이네요. 민들레의 노란 꽃이 개화한 동안에 채집해서 노란 꽃잎 부분만 떼어내 설탕물과 라임/오렌지/레몬즙, 효모를 섞어 만든다고 하네요. 6개월에서 1년 동안 숙성시킨 뒤 꽃잎과 침전물은 걸러내고 와인만 마시는데 코로는 민들레의 향이 처음에 다가오고 혀로는 은은한 단맛과 과일의 새콤함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면 민들레는 워낙 여기저기 피는 꽃이다보니 서구권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흔한 술의 느낌으로 친숙한 이미지가 있나 보네요.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되살려서 만든 소설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작가의 가족이나 마을에서도 실제로 민들레 와인을 만들던 기억이 있었나 봅니다.
책읽을맛
은화님의 대화: https://www.youtube.com/watch?v=IDXyfmBbyJM
민들레 와인(Dandelion Wine)을 찾아보니 소설에서만 나오는 소재가 아니라 실제로도 사람들이 만들어 먹는 와인이더군요. 색깔도 정말로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영롱한 황금빛이네요. 민들레의 노란 꽃이 개화한 동안에 채집해서 노란 꽃잎 부분만 떼어내 설탕물과 라임/오렌지/레몬즙, 효모를 섞어 만든다고 하네요. 6개월에서 1년 동안 숙성시킨 뒤 꽃잎과 침전물은 걸러내고 와인만 마시는데 코로는 민들레의 향이 처음에 다가오고 혀로는 은은한 단맛과 과일의 새콤함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면 민들레는 워낙 여기저기 피는 꽃이다보니 서구권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흔한 술의 느낌으로 친숙한 이미지가 있나 보네요.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되살려서 만든 소설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작가의 가족이나 마을에서도 실제로 민들레 와인을 만들던 기억이 있었나 봅니다.
오~~~ 그렇군요. 와인은 포도만 연상해서... 유튜브 찾아 볼 생각은 못 했어요.
그래 그렇군요...
책에 묘사된 데로 만들면 이건 쓴 물일 뿐이에요. 민들레 꽃은 못 먹어봤지만. 뿌리와 잎은 먹어봤거든요. 써요 써~~ 위장약 이나 알러지 약으로 다려서 먹거나, 잎파리는 김치도 담가 먹긴 하시던데, 쓰더라구요.
작가가 민들레 와인에 대해 향수를 갖는 이유를 이해 할 것 같아요. 설탕이 들어가고 효모로 발효된다면, 달짝지근 해지겠죠. 그리고 그 노란색~~~ 한 여름의 노란 햇빛을 다시 보는 듯할 거에요.
작품을 이해하기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꽃에는 꿀이 있어서 달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 여름에 한 번 따 먹어 봐야겠어요.
은화
1. 저는 2장에서 더글러스가 묘사한 '그것'이 처음에는 숲의 악령이나 정령처럼 무언가 초자연적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뒤의 장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아마도 더글러스가 숲에서 느낀 것은 청소년의 나이로 진입해가며 자의식이 형성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로서의 동심이 남아있는 중첩 상태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숲'이라는 말은 포괄적이고 그 자체로 여러가지를 담고 있는 함축적인 말이라고 봐요. 거기에는 생태계도 있고 다양한 동식물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숲에 대한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보통 그런 생각이나 감정은 경험과 자의식이 형성되면서 떠올릴 수 있는 개념들이라고 봅니다. 더글러스는 숲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흰 도화지가 물감을 빨아들이듯 모든 감각기관과 머리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숲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풍경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숲 속에 있는 '나'와 자신 안의 '숲'의 연결을 인지했다고 해야 하려나요.
2. 전 여름이 올 때,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매미가 떠오르네요. 걷다가 매미소리가 들릴 때 즈음이면 '정말로 더운 계절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자주 스쳐갔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습한 날에는 매미소리가 안 들리지만 햇빛이 내려쬐는 날에는 매미소리가 항상 들리더군요. 그리고 가을이 되면 매미는 안 보이고, 매미들이 나무 줄기나 잎 위로 올라와 벗어놓은 유충 껍질들이 눈에 띕니다. 그 껍질들은 가을까지는 여기저기 붙어있다가 어느 순간이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집니다. 저절로 떨어지는건지, 장마와 태풍이 쓸어가는지, 아니면 겨울이 오면서 배고픈 새들이 그 껍질이라도 먹는지 모르겠지만 말끔하게 모습을 감추더라고요. 지금도 언제나 매미껍질들의 행방이 항상 궁금합니다.
은화
“ 꽃들이 압착기 속으로 들어가는 지금 떠오르는 그 단어를, 온 세상이 하얀 겨울이 되어도 되풀이할 것이다. 입속에서 그 단어를 자꾸자꾸 되풀이할 것이다. 미소처럼,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햇빛처럼.
민들레 와인. 민들레 와인. 민들레 와인. ”
『민들레 와인』 p.37,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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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음, 그는 일년 내내 운동화를 신는 캘리포니아 소년들을 동정했다. 그런 아이들은 발에서 겨울을 벗어 버리는 느낌, 눈과 비로 가득 찬 투박한 가죽 구두를 벗어 버리고 하루 종일 맨발로 달리다가 그 다음에 새 운동화를 신는 느낌, 맨발보다 훨씬 더 좋은 그 느낌을 모를 것이다. 새 운동화 속에는 언제나 마술이 있었다. ”
『민들레 와인』 p.44,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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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2024년이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년에도 각자 원하는 목표,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어제랑 오늘에 걸쳐서 1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특히 5장의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그해 들어 처음 신발을 벗고 풀밭 위를 뛸 때 여름이 느껴지기 때문에 새 운동화가 필요했다. 새 운동화의 느낌은 두꺼운 겨울용 가죽 구두를 벗고,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을 쐰 후 오랫동안 그렇게 있다가 다시 가죽 구두 속으로 발을 넣을 때의 느낌, 눈을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p.44)
여름의 생기와 생명력을 느끼기 위해 새 신발의 산뜻함이 필요한 더글러스의 생각이 '청소년에 근접한 아이'가 댈법한 이유라 재밌었어요. 자기 나름대로 세상과 사물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랄까요. 이후에도 신발가게 노인과의 대화에서 주인보다 더 신발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갖고 오히려 손님이 주인을 설득하는 상황도 흥미로웠습니다. 신발을 받아 신고 한낮의 마을을 내달리는 더글러스를 보며 가게 주인이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가젤 영양을 떠올리는 장면은 여러 의미가 담긴 것 같습니다.
더글러스를 통해 여름과 생명의 의미를 깨달은 것일 수도 있고, 늙어버린 자신과 달리 미래가 창창한 소년을 보며 다시 어릴 적 기억과 동심이 살아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파는 신발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표현이 아닐까 해석해봅니다.
여러분들은 1장부터 10장까지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이 어디였나요?
은화
독감에 걸려서 한동안 힘들었네요. 요즘 인플루엔자가 유행이라는데 다들 조심하세요.
20장까지 다 읽고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느낀 게 작중 시간대인 1930년대의 미국 소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본 미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모습은 아무리 멀리가도 1950~60년대가 제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계더군요.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러 소재나 묘사들이 계속 궁금했어요.
가령 12장에서 잔디깎이 기계가 나오는데 이 시대의 잔디깎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이 당시의 잔디깎이들은 이미 기름을 넣고 작동하는 제품들도 있었지만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힘으로 작동하는 수동방식들도 있었나 봅니다.(push reel mower) 그리고 현재에도 디자인만 좀 바뀔 뿐 이런 수동 잔디깎이들이 계속 제품으로 나오고 있고요. (https://youtube.com/shorts/UFPt89lo-Q8?si=OZHjS_v4nRRHxfAg)
책에서는 어떤 잔디깎이인지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왠지 작품의 분위기나 스폴딩 할아버지가 늘어놓는 잔디 예찬(?)을 생각해보면 이쪽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신아
저는 이제 10장까지 다 읽었습니다.
솔직히 어떤 맥락에서 SF소설로 분류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직 이야기 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니 좀더 두고 봐야 겠습니다.
여름에 읽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 같아요. 여름의 공기, 온도, 대기, 바람, 태양, 소리 등등의 여름 묘사가 너무너무 탁월한데… 이 책을 읽고 있는 저의 현실은 너무 춥네요. ㅠㅠ 푹푹 찌는 여름이 오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었을 때도 똑같이 느꼈던 부분인데, 극작가로서의 특징이 여기서도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소설의 문장이라기 보다는 대본의 지문을 읽는 듯한 서술방식이 종종 등장합니다. 연출이 더해지면 완성도나 독자의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앞서 말한 여름을 묘사한 문장들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장면이 그려짐으로서 독자 스스로 연출이 가능한데, 2장에 나오는 ‘그것’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작가 본인은 분명 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게 어려울 때도 있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는 각자의 상상으로 그려가야 하는 영역을 많이 남겨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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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
“ 민들레 와인.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곧 여름이 되었다. 와인은 병에 가둔 여름이었다.
여름을 유리잔, 물론 아주 작은 유리잔에 따른 후, 아이들에게는 입만 축일 정도로 아주 조금만 줘 보라. 입에 유리잔을 가져다 대고 여름을 기울인 순간 혈관 속에서 계절이 바뀌리라. ”
『민들레 와인』 3장,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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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
“ 그랬다. 여름은 의식이었다. 의식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
여름밤 현관에 앉아 있으면 아주 좋았다. 더할 수 없이 마음이 놓이고 편안했다. 그래서 현관 없는 여름밤은 상상할 수 없었다. ”
『민들레 와인』 7장,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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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을맛
책은 벌써 다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라서... 성장소설도 좋아하고요.
결론적으로는
SF 장르는 아닌 것으로... 환상 문학이라고 하기에도 분위기만 그런 듯하고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아무도 어른이 되지않는다 라는 책과
분위기가 참 비슷합니다.
마법적인 여름을 배경으로하는 소년의 성장기 라는 면에서 민들레와인과 공통점을 갖습니다.
아무도 어른이 되지않는다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뚜렸한 스토리 라인이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은화
신아님의 대화: 저는 이제 10장까지 다 읽었습니다.
솔직히 어떤 맥락에서 SF소설로 분류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직 이야기 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니 좀더 두고 봐야 겠습니다.
여름에 읽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 같아요. 여름의 공기, 온도, 대기, 바람, 태양, 소리 등등의 여름 묘사가 너무너무 탁월한데… 이 책을 읽고 있는 저의 현실은 너무 춥네요. ㅠㅠ 푹푹 찌는 여름이 오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었을 때도 똑같이 느꼈던 부분인데, 극작가로서의 특징이 여기서도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소설의 문장이라기 보다는 대본의 지문을 읽는 듯한 서술방식이 종종 등장합니다. 연출이 더해지면 완성도나 독자의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앞서 말한 여름을 묘사한 문장들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장면이 그려짐으로서 독자 스스로 연출이 가능한데, 2장에 나오는 ‘그것’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작가 본인은 분명 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게 어려울 때도 있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는 각자의 상상으로 그려가야 하는 영역을 많이 남겨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다 읽지는 않았지만 20장까지 읽고 보니 SF는 아니고 작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에 약간의 환상과 상상력을 가미한 것 같네요. 레이 브래드버리 본인의 문체와 묘사력 덕인지 아니면 1930년대라는 거리감 있는 시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편으로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의 숲을 보는 것처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걷는 느낌이 계속 느껴지더군요.
여름에 겪게 되는 사건과 거기서 느끼는 감상과 기억을 매 장마다 중복된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풀어 쓰는 걸 보며 확실히 작가들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게 느껴졌어요. 살면서 기록이나 사진을 찍더라도 자신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잊혀지거나 왜곡되기 마련이고, 그 당시에 느낀 감정들도 희미해지죠. 작가가 24살부터 36살까지 쉬지 않고 매일 할아버지의 집에 찾아가 기억을 되새겼다는 서문의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더 깊이 다가오네요.
신아
사람들이 석양을 좋아하는 건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 석양이 사라지지 않아 지겨워진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슬픈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