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설 중에는 얼마 전에 <해변에서>를 읽었어요. 1957년 작품인데 시대로부터 가까운 근미래에 소련과 중국, 나토간의 핵전쟁이 일어나 북반구가 무인지대가 되고 남반구 국가들만이 살아남아 문명을 유지한다는 소재입니다. 북반구의 방사능이 서서히 바람을 타고 남반구로 내려와 적도 아래의 국가들이 서서히 무너지는 묘사를 통해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압박감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죽음의 실체를 접할 수 없는 이들이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면 어떤 풍경일지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재난재해 상황을 가정한 많은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폭동, 방화,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닌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처럼 문명을 유지한 채 사그라드는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시선을 잡아끌더라고요.
종말문학이나 방사능 아포칼립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해변에서'환상문학전집' 16권.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의 마지막 구절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에서 영감을 얻어 핵전쟁 후 방사능에 의해 멸망하는 세계와 최후에 이르는 인류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그린 네빌 슈트의 장편소설이다.
책장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