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2.민들레 와인 - 레이 브래드버리

D-29
전 소설 중에는 얼마 전에 <해변에서>를 읽었어요. 1957년 작품인데 시대로부터 가까운 근미래에 소련과 중국, 나토간의 핵전쟁이 일어나 북반구가 무인지대가 되고 남반구 국가들만이 살아남아 문명을 유지한다는 소재입니다. 북반구의 방사능이 서서히 바람을 타고 남반구로 내려와 적도 아래의 국가들이 서서히 무너지는 묘사를 통해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압박감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죽음의 실체를 접할 수 없는 이들이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면 어떤 풍경일지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재난재해 상황을 가정한 많은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폭동, 방화, 아비규환의 상황이 아닌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처럼 문명을 유지한 채 사그라드는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시선을 잡아끌더라고요. 종말문학이나 방사능 아포칼립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재밌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해변에서'환상문학전집' 16권.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의 마지막 구절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쿵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에서 영감을 얻어 핵전쟁 후 방사능에 의해 멸망하는 세계와 최후에 이르는 인류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그린 네빌 슈트의 장편소설이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다들 성탄절은 즐겁게 보내셨나요? 일정 공지대로 오늘부터 독서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편한 속도대로 책 진도를 나가되 감상을 적거나, 책 내용과 감상을 공유하고 나누는 건 읽기 일정에 맞춰 진행하도록 할게요.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어주셔도 되고, 인상깊은 대목이나 사건을 같이 얘기해봐도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화씨451이 유명해지기 전에, 우연히 그 책을 읽고 이 작가에게 빠진 뒤로 단편집들을 모아오기 시작했는데요. 이 모임 덕분에 <민들레 와인>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네요ㅎㅎ 읽어보려 책도 주문해뒀습니다ㅋ
민들레 와인은 아직도 지하 창고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은 아직도 어두운 현관에 앉아 있다. 불 풍선은 아직 잊혀지지 않은 여름 밤하늘을 떠다니며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내가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민들레 와인 p.16,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에는 잔잔하게 여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유령 고래 같았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초록색 심연을 지나쳐가는 고래.
민들레 와인 p.23,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책의 문장을 읽을 때 단어보다 이미지가 먼저 심상에 떠오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전 문장에서 묘사하는 마을과 자연의 풍경이 다음 문장이 이어지기 전에 머릿속에 계속 남아 이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책을 읽는다기보다 풍경을 본다는 감상이 계속 강렬하게 남네요. 위의 바람에 대한 문장처럼 상황을 묘사하되 구체적으로 단어를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으로 풍경을 머릿 속에 그려보게 하는 서술이 재밌네요. 마치 최소한의 밑그림만 그린 스케치북을 주고 독자가 각자 빈 공간을 채색하고 채워가라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음의 생각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2장에서 더글러스는 가족과 숲에 들어갔다가 '그것이 이리로 오네!' 라거나 '그것'이 사라지거나 자신의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계속 묘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또는 뭘 표현한 거라고 보시나요? 2. 이 책에서 민들레 와인은 여름을 쭉 짜놓은 농축액처럼 묘사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민들레 와인처럼 계절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꼭 여름이 아니라 다른 계절이어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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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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