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D-29
노벨문학상 기념, 계엄령 이후 혼란한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참! 사실 전 최근에 책이 너무 안 읽히는데요.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고... 그럼에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더 강하게 들어요. 오랜만에 싱글챌린지 시도합니다. 이번엔 잘 해볼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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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리님의 대화: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읽은 지는 좀 됐으나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은 당시에 제 마음을 뒤흔들어서 여운이 길게 남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큰 상의 벅참만 느끼고 한강 작가님 다른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을 또 읽거나 하진 못하고 있었어요. 연말이라 헛헛한지 책은 안 읽고 자꾸 핸드폰으로 유튜브만 보더라고요. 그래서 강제성을 만들기 위해 독서모임에 참여했고요. 권인걸님이 진행하시는 독서모임이 너무 좋아서 더 열심히 읽고 참여하고 남겨두려고 싱글챌린지로도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아, 시국 관련해서 더더욱 이 책의 기록을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17, 어린 새, 한강 지음
어떻게 몰래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그때 너는 궁금했다. 저렇게 조그만 등으로, 참고서를 펼치면 가려지기나 할까, 두평도 안되는 단칸방에서. 정대도 일찍 자는 게 아니라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는데. 그렇게 잠깐 궁금했을 뿐인데, 그후로 자꾸 떠올랐다. 잠든 정대의 머리맡에서 네 교과서를 펼칠 통통한 손. 조그만 입술을 달싹여 외울 단어들. 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끝을 감싼 것 같은 노크 소리. 그것들이 가슴을 저며 너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그녀가 걸어나오는 기척, 펌프로 물을 길어 세수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너는 이불을 둘둘 말고 문 쪽으로 기어가, 잠에 취한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였다.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39, 어린 새, 한강 지음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p.45, 어린 새, 한강 지음
청소년 시기 때 <소년이 온다>를 울면서 읽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읽을 때도 울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킨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 분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정치 성향에 대한 정보가 더 생기고 (진보와 보수) 그믐에서 <바른 마음>을 읽고 나서는 그럼에도 내 상상 밖의 이유들이 사람에겐 있구나 싶다. 그럼에도 모르겠긴 하다. 이해할 수 없어서 쉽게 미워지기만 해서 걱정이다. 어떻게 분노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이 뭉뜩하다. 어떻게 더 날카롭게 만드는 건지... 작은 거에 빗대서 섣불리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다가 크고 뻔한 말로 퉁치게 된다. 공부머리는 없는 듯. 어떻게 더 생각이 깊어지는지 자꾸 답답하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 작가님 노벨 문학상 연설문 中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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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리님의 대화: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책이 예쁜 걸 좋아하지만 한정판이나 리커버로 책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요. (제 집이 아니라 짐이 많아지는 게 부담이라 실물 책을 잘 안 갖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는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리커버판에 현혹되어버렸답니다. 짙은 초록색의 양장본이 단정하다고 느꼈고, 안개꽃이 틀 바깥에 몇 송이 빠져나와 있는 것도 섬세하다고 느꼈어요. 금색 명조체로 쓰여진 제목이 아름답다고도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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