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실> 함께 읽기

D-29
세종에게 정이 갑니다^^
미실이 궁궐의 암투에 휘말려 쫒겨나게 되었네요. 술술 읽힙니다^^
20년 전 초판 시절 어느 독자가 뭔가 분노에 차서 부들부들 했던 이유를 이제 보니 알 듯한... 생각보다 야하네요 ㅎㅎ
이번 한강 소설에 대한 반응을 보니 야한 것에 화를 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30대만 돼도.. 그런 묘사 자체는 별 생각이 안 드는데... 왜.. 성적 묘사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등장인물들이 아름다워서 읽기가 수월하고, 미를 숭상하는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인간의 삶은 한낱 먼지 같았다. 변치 않는 신령을 섬겨 모시기에도 버거울 만큼 미력하고 누추한 존재에 불과했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들이었다. 쓸면 쓸리는 대로 정처를 잃을 것들이었다. 41쪽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1억원 고료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신라시대 왕을 색으로 섬겨 황후나 후궁을 배출했던 모계 혈통 중 하나인 대원신통의 여인으로 태어나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를 섬기면서 신라 왕실의 권력을 장악한 미실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2장을 시작하는 이 문구와 궁에 들어가 세종전군과 사랑을 나누고도 지소태후에 의해 한낱 먼지처럼 궁에서 쓸려져 버려지는 장면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표현이군요. 2장은 인물들의 성격이며 애정 표현이며 줄거리며 힘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져 작가님이 이 글을 쓸 때의 에너지는 얼마나 굉장하셨을지 싶습니다.
2~3장은 미실의 이후 삶을 이해시키기 위한 밑밥?이랄까... 개연성을 위해 저조차 이해하기 힘든 주인공을 이해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네요😅
뒤늦은 질문이지만 1장에서 옥진이 겨우 10살의 미실에게 색에 대해서 묻는데... 저는 너무 어린 미실이 색깔에 대해 답할 줄 알았는데 '성'에 대해 말하는 것에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과연 고대에는 성교육이 이리도 빨리 이루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는 작가님의 상상이실까요? 아니면 사료를 근거한 것일까요?
고대의 시간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다르니까.. 성에 대한 관념 역시 그 속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양, 위생, 유아사망율, 전쟁과 기근 등의 외부환경에 의해 20대 중반을 당대 평균 수명으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으니.
미실은 궁인들에게 팔을 잡힌채 질질 끌려 나갔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처참한 몰골로 버림받아 내쳐져야 하는가, 미실의 머릿속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만이 파랑에 쓰리는 쪽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P96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미실은 탄생부터 자라는 과정에서도 극단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팔자죠 나중에 더 크게 변하겠지요
주인공이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험이 필수죠^^
세종은 반드시 진정만을 입으로 내뱉고, 내뱉은 대로 행하였다. 그는 거짓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거짓만이 그를 살리고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끝내 거짓 뒤에 몸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세종을 다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게 하면서, 종래는 그를 해할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P69, 김별아 지음
가장 큰 장점이 가장 큰 약점. 그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 부분은 세종의 내면 갈등과 그가 처한 딜레마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 보여요.진실만을 고집하는 그의 성격으로 현실의 복잡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지소태후의 명이 떨어졌다. 미실은 궁인들에게 팔을 잡힌 채 질질 끌려 나갔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처참한 몰골로 버림받아 내쳐져야 하는가. 미실의 머릿속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만이 파랑에 쓸리는 쪽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p.47) 당시 5-6세기에 절대 권력자의 결정은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 할건데 말입니다.. 미실이 그 일방적인 권력자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권력에 저항하거나 투쟁을 시작할 스토리 전개의 단초로 느껴 집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벌써 3일째! <불모지에 머물다>를 함께 읽어요. 드디어, 사다함 등장!^^
사다함과 미실의 사랑보다 사다함과 무관랑의 우정과 사랑이 더 마음에 들어차는 장이었습니다. 책읽으면서 오랜만에 눈물도 찔끔 흘렸습니다. 사다함은 어머니를 미워할만도 한데, 끝까지 좋은 아들인게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구요.
무릇 모든 사랑이 그러하다. 깨어지고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 그 정체가 가장 선명해진다.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비단옷이 바람을 얼싸안고 부풀어 올라 펄럭이었다. 왜 밀면 미는 대로 가지 못하고 맞받아 달려 오느냐고, 노한 바람이 철벅철벅 뺨을 갈겼다. 머릿결이 사납게 흩어져 눈을 가지고 모래가 입 안에서 자박자박 씹협다. 그래도 고삐를 돌려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쫓기는 듯 도망치듯 바람이 부는 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바람을 안고 달리면 눈물이 흘러 떨어지는 대신 뒤로 날아가 흩어졌다. 축축한 볼이 어느새 바람에 씻겨 감쪽 같았다. 애초에 울지 않은 것 같았다. 71쪽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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