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 문장]
<작가의 말>
‘산업’이 될 수 없는 문화가 날로 퇴행해 가는 척박한 현실에서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큰 상을 만들어주신 세계일보사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아직도 미련스레 믿는다.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물앵두, 사라지다>
하지만 허방을 향해 한 손을 뻗을 때, 온몸과 함께 생애까지도 기우뚱거리는 순간의 아찔한 쾌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깊은 곳으로부터 절로 몸이 젖고 영혼마저도 울울함을 떨치고 동실 떠올랐다. 어찌 이 가벼운 비상의 충동을 멈출 수 있겠는가. 부박한 생이여, 손아귀 가득 움켜잡은 치맛자락을 놓아라.
뿌리치는 비단 천에 미끄러져 더욱 붉어진 알몸뚱이로 그녀는 간다. 끝까지 오직 아득한 끝만을 주시한 채로.
어린 미실에게 세상의 전부를 가르친 그녀. 처음이자 끝이고, 부드럽고도 완고하며, 깊고도 높아 그 온 데와 가는 바를 헤아릴 수 없는 지고의 세계를 가르치는 데 그녀만큼 훌륭한 여스승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승과 제자, 외조모와 손녀의 관계를 떠나 더 높은 곳으로부터 맺어진 사이였다. 손을 뻗어 마음대로 매듭을 풀거나 엮을 수 없는 그 높은 곳의 이름만은 옥진이 부러 가르쳐 이르지 않았다. 그것은 미실이 스스로 깨달아야 할 몫이었다.
“저와 함께 가시옵소서.”
어리둥절해진 제가 쳐다보노라니, 옥진은 잠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간잔지런한 눈매에 머리는 헝클어져 부스스한 모습으로 손목을 이끌며 채근하고 있었다. 제가 헛웃음을 날리며 옥진을 향해 물었다.
“어디로? 대체 무슨 일인가?”
“좋은 꿈을 꾸었사옵니다. 지금 합을 이루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옳습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환희불(歡喜佛)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불현듯 양기가 솟구쳤다.
놀라 일어난 옥진이 묘도의 침실로 다가가 엿보니, 때마침 묘도와 미진부는 격렬하게 서로를 탐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여자로서 자신감을 잃고 사그라져가던 묘도는 사랑을 얻은 순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미진부는 그런 묘도를 지극함으로 아껴 다루었다. 참으로 신령이 기뻐하실 모습이었다.
미실이 진정으로 즐긴 것은 살림살이를 흉내 낸 소꿉놀이가 아니라 장난질을 핑계 삼아 거듭 맛보는 간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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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실>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페북을 하면서 '내가 우리나라 현대 문학에 너무 무지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고등학생 시절까지 읽은 근대 문학이 제가 아는 거의 전부이고, 그 밖에는 이외수, 공지영 등 특별히 이름이 많이 알려진 몇몇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었을 뿐이니까요. 우리나라 소설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쁩니다.
"신라 시대의 여성들은 훌륭한 사람의 씨를 받아서 훌륭한 아이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소설의 첫 장부터 그 글귀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환한 대낮에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뛰쳐나와 축구(?)게임을 하다 쉬고 있는 황제의 옷자락을 잡아 끌며 좋은 꿈을 꿨으니 빨리 나랑 아기를 만들러 가자는 옥진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성교를 통해 불심이 깊어지고.. 처녀의 몸을 통해 환희불을 만난다는 생각도.. 자유롭고 유쾌하네요. 현재의 정서와는 너무 다른 그 시대의 솔직함이 순수하면서도 이국적으로, 또 신화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미실과 옥진의 관계, '더 높은 곳으로부터 맺어진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요? 질문을 갖고 뒷부분을 읽어보아야겠어요.
또 딸인 묘도의 외도(?)를 엿보게 된 옥진이 그 외도를 단지 추하고 타락한 것으로 보지 않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사에서의 두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미진부가 묘도를 지극히 아껴 다루는 모습을 보고 묘도가 여성으로서의 기쁨을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는 것.. 흡족한 마음을 갖고 조용히 돌아서는 엄마로서의 옥진. 그 시선이 사회 규범과 정해진 규범으로서의 도덕이 다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범을 떠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선악을 볼 수 있는 마음이요.
소설 <미실> 함께 읽기
D-29
조주연
소설가김별아
유불선이 확립되기 전의 어떤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민했던 장입니다. 작가의 말에 쓴대로, 사실 미실이라는 여인이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캐릭터였기에 최대한 개연성을 확보하려 분방한 어린시절과 그에 맞는 교육/훈련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실제로는 제가 아들을 기르며 대안교육을 시켰는데 그곳의 자연친화적 교육이념을 얼마간 변형 활용해 보았습니다ㅎ
조주연
미실이 숲에서 하루를 보내는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 봐요. 불국토의 이상을 꿈꿨던 신라인의 종교성과 고대의 자유로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기대가 됩니다.
JPJ
선배님 반갑습니다. 덕분에 그믐이란 독서 플랫폼을 처음 접하게 되어 새롭고 20년 만에 작가님과 함께 미실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게 멀리 칠레에서 살고 있는 저에겐 감동입니다. 얼마 전 교회 도서관에 기증했던 이 소설책을 보물 찾기 하듯 찾아 제 품에 다시 안고 왔답니다. 생애 처음 작가 님과 함께 읽는 보물책이 되었네요.
한 때는 소설에도 도전도 했었는데 선배님의 달력에 빼곡이 채운 사전조사 자료들 보며 다시 소설 쓰기를 배우게 됩니다. 더불어 이곳에서 소설 읽기도 여러 독자님들과 작가님과 함께 배우며 따라가 보려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소설가김별아
아 호주에 계시군요. 그곳은 여름이겠어요^^ 이방에서 모국어를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조계골뚝저구
옥진 묘도 미실로 이어지는 대원신통을 읽으며 모계 혈통의 부계 혈통 보다 진솔한 면을 보게 됩니다
소설가김별아
고대에는 모계사회의 전통이 더 많이 남아 있었겠지요. 제도나 통치이념을 넘어선 본능과 욕망을 모계 혈통을 통해 표현해 보았습니다.
장맥주
“ 지소태후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은 반드시 정도를 넘는 악을 가 지고 있다’는 옛사람의 말을 다시금 상기했다. 극명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파괴와 광기의 불온한 징후가 도사리고 있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기 마련이었다. ”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94쪽, 김별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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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안뇽하세요~ 달려가는 미실의 치맛자락을 잡고 올라탔습니다~ 반갑습니다. 전 미실 읽기 전에 가계도를 먼저 그려놓고 읽으니 더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소설가김별아
자기주도학습이 대단하십니다 ㅎ 그냥 모르신 채 보셔도 큰 서사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spring
실은 승질이 급해서 막 넘겨가며 읽는데 어.. 저자가 어디에 나온 자더라.. 갸우뚱... ㅋㅋㅋ 그래서 바로 가계도 그리고 아.. 요렇게 요렇게 연결 되는 군화~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장맥주
이 가계도(및 책에 실린 가계도)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해한 뒤에 '아... 진짜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하고 얼이 빠진 1인입니다. ㅎㅎㅎ
spring
제가 일단 따라그리기는 좀 잘 하니까..ㅎㅎㅎ 무작정 따라 그린 후 인터넷 검색도 좀 하고.. 그렇게 하고 읽으니, 와.. 뭐.. 요샛말로 하면 막장 드라만데.. 싶더라고요. 장소가 궁궐이고 왕족 이야기일 뿐... 족보가 완전 개족보(혈연이 최고구나 싶은..)드만요.
장맥주
막장 드라마, 개족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spring 님이 그려주신 가계도는 책에 나온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린 건 아니던데요? 김유신 부분도 있고.)
spring
홋, 꼼꼼도 하셔라~
새벽서가
개족보라는 말이 정말 더할나위없이 딱 맞는 표현이네요! ^^;
spring
ㅎㅎㅎㅎㅎㅎㅎㅎ
하뭇
어우.. 저도요.
아무리 지금과 다른 세계관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대체 이게 뭐지? 했네요.ㅋ
소설가김별아
지금의 윤리도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지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생산력이 낮은 환경에서 왕조를 이어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노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것이 근친혼 등으로 드러난 것인데, 유불선 이전에 원시적 에너지가 책에 쓴대로 가장 척박한 나라였던 신라가 삼한통합을 달성하게 하지 않았나...
하뭇
당시의 그런 제도(?) 풍습(?)이 현재와는 물론 다르지만 그 시대라고 해서 그게 당연한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게 당연한 거라면, 당사자들이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정말 당연한 거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데, 진심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았기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가졌던 거 아닐까요. 자신의 사랑이 제에게 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까 참아야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배력을 높인다는 거대 목적하에 희생양과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감수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세종이 너무 불쌍했고....
(진도를 넘겨 책을 다 읽었습니다.)
마지막 사랑이 ㅇㅇㅇ이었던 건 정말 반전에 가까웠네요.
세종과 ㅇㅇㅇ 너무 안타까워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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