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

D-29
평원은 바다와 유사하다. 설령 자주 넘칠지라도 항상 자신의 본모습을 곧 복원하기에 크리오요들은 집 앞의 황량한 평원을 해변이라고 불렀고, 평원을 거의 덮어 버린 숲에는 섬의 이름을 부여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76-7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 천사는 한자로 (天)에 부릴 사(使) 자를 씁니다. 막연히 선하고 이로운 존재에 대한 은유로 쓰이고 있지만 성서적인 세계관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종교적인 개념입니다. 신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보다는 우월한 존재로서 신과 인간을 오가는 중개자, 메신저인 겁니다. 범동아시아 문화에서 Angel에 적확히 대응하는 존재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보르헤스는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천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한편, 그것이 인간 세상에서 경이로움으로서 신이 구현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저에게 천사는 존재라기보다는 열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는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존재라지만, 오늘날에는 반대로 인간이 이해 불가능한 것의 총체로서 '신'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중개자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오늘날은 신성과 말씀을 마냥 받아 섬기는 시대는 아니므로 그 중개 과정이 한 방향은 아닐 것 같아요.
변두리나 들판에 해가 질 때면 나는 항상 천사들을 상상한다. 떨어지는 태양 빛에 어울리는 사물의 색조로 인해 각기 다른 색깔이 다른 시절의 기억이나 전조를 떠올리게 만드는 길고 적막한 순간에 천사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천사들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면서 아마도 높이 날고 있는 마지막 신의 모습일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8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험과 규칙]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성어를 아르헨티나식으로 풀어쓴 글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너무 진부한 말입니다만, 지금 규범인 것은 한때 모험이었던 것들입니다. 에머슨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화석이 된 시"입니다. 마찬가지로 보르헤스는 아폴리네르를 인용하면서, 작가를 모험하는 작가와 규칙을 연구하는 작가로 나누었지만, 이러한 구분은 임시적인 것이며 본디 하나입니다. 게다가 작가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확보된 형식과 규칙 안에서 고도의 정밀성을 더해가는 사람이 있고, 기존의 확립된 형식과 규칙을 모두 습득한 뒤에 그것과 정반대의 대척점을 상상하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전자를 가리켜 장인 정신이 있다고 말하고, 후자를 가리켜 모험적이라거나 전위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도 말했듯이, 미적 작품은 그 독특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등장한 시대의 일부이며, 역설적이게도 일부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역시 그 일부입니다. 전자와 후자는 어느 지점에 이르면 만나는 겁니다. 제대로 가기만 했다면요. 규범은 앞서가던 전위가 성글게 밟고 지나간 미지를 다시 밟으며 땅을 공고히 하고, 전위가 밟은 땅은 어느덧 후위가 밟고 있는 땅이 되는 겁니다.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어떤 것을 두고 '새롭다'고 말하지만, 실상 무언가가 왜 새로운지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다단한 일입니다. 새롭다고 말하려는 사람은 무엇이 새롭지 않은지를, 자신이 강변하는 '새로움'으로써 규정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반드시 기지인 것, 새롭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규범적인 앎을 자기 테이터로 축적해 놓았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내가 보기에 흥미롭고 좋은 것을 '새롭다'고 말하게 되면, 실상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먼저 했거나 이미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새롭다'고 말하는 식의 무지를 토로하게 됩니다. 최고로 개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로 보수적인 사람일 필요가 바로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고요. 단맛과 쓴맛과 짠맛과 똥맛을 모두 맛본 사람이 돌아와서 구현해낸 단맛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 구현해낸 단맛은 그 깊이가 같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한편, 이 글이 비교적 보르헤스의 초창기 작품 경향을 대변하고 있음을 미루어볼 때, 보르헤스는 어떤 의미로 자신의 전위성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듯 과거로의 지향은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모험과 규칙. 길게 보면 모든 개별적 모험은 결국 사람들의 규칙을 풍성하게 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혁신적인 행위들이 공인받고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8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모험과 규칙. 사실 나는 두 가지 수련 방식을 모두 좋아한다. 하나의 방식이 다른 방식과 너무 붙어 있지 않기를 바라고, 새로운 무모함이 낡은 장식의 대가(代價)가 아니기를 바라며, 많은 재주를 한꺼번에 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9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오래된 목소리는 사회와 사람을 알리고, 다른 모든 우정처럼 우리 모두가 똑같다고 느끼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고통을 느끼기에 적합하다. 사랑하고 걷고 죽는 사소한 행위야말로 아주 중요하고 영원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9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토착화된 민요] 첫 문단부터 매혹적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복잡하고도 특수한 역사와 문화와 언어를 이보다 잘 보여주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아르헨티나는 지정학적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지만, 그 역사와 문화와 언어는 상당수 유럽적인 것, 그중에서도 특히 스페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이 자신들의 선조를 죽인 정복자의 언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한편으로는 비극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민요에는 당연히 스페인적인 것이 있지만, 단순히 유럽의 스페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아메리카 대륙,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지역적인 특색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스페인의 근엄한 민요는 토착화되면서 오만함을 잃었다"고 평합니다. 보르헤스는 이 지점에서 자신이 '크리오요성'이라고 부르는, 스페인적인 독성이 제거된 아르헨티나 특유의 익살을 봅니다. 이는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의 경향성과 궤를 같이 합니다. 유럽에 근친한 독특성을 보여주면서도 거기에는 아르헨티나적인 색채가 묻어납니다. 우리나라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되면서 지난 20세기 일방적으로 일본을 배격한 것과 비교해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이를 우리는 여태 "일색", "왜색"이라고 하며 배격합니다). 유럽에서 출발한 스페인어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면서 닮은 듯 다른 노정을 밟은 끝에 문학적 결과물을 탄생시킨 것을 보고 있자면, 보르헤스가 ⟪픽션들⟫에서 삐에르 메나르를 앞세워,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필사했던 것이 연상됩니다. 약간의 부연을 하자면, 전통적인 스페인의 민요는 잔혹하고 사색적인 톤으로 전개되었지만, 크리오요 민요는 그것을 받아와서 특유의 익살맞음과 엉뚱한 현실로 번역해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메리카의 민요는 스페인의 민요에서 출발했다는 일종의 본토 콤플렉스를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해내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스페인을 배격하고 그와 다름을 보여주려고 지역색을 과장하거나 '우리 것'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식으로 편협해지지 않았습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크리오요성은 스페인적인 것, 유럽적인 것에 출발했지만, 단순히 자신의 뿌리에 콤플렉스를 가지기 보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우주에 관한 것"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과감히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이 "피해자"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피해 사실을 없는 셈치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를 넘어선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정체성은 '기필코 무엇은 아닌 것', '무엇을 당한 것'으로 졸아들 수 없으며, '한사코 무엇인 것', '무엇을 행하는 것'으로써 확장되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푸르트가 쓴 사랑의 속삭임부터 부재에 대한 불평, 오만, 관능의 구절들이 모두 스페인에 뿌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뿌리부터 줄기, 장작, 나무껍질, 낙엽, 열매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메리카에서 기인했다. 나는 정원사에서 시작해 동전 지갑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구리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동전이 됐다가 아직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사자 문양을 지우지 못한 동전이다. 그 창조적이지 않은 행위야 반쯤 실망스럽지만 민요를 익살이나 허풍쯤으로 간주함으로써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그것들은 아르헨티나의, 아주 전형적인 아르헨티나의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스페인어로 사랑하고 스페인어로 고통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크리오요성을 주장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9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본질적 특성은 제쳐 두고 지엽적 특성을 취하는 행위는 죽음을 배태시키는 암흑일 뿐이다. 지방색의 힘으로 크리오요 예술을 고양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어둠에 기대는 것이다. (···) 잉카의 싸구려 그릇이나 울부짖는 여인을 그린다고 '물론이지'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스페인어 'claro' 대신 케추아어 'velay'를 쓰는 것은 애국이 아닙니다. 크리오요 정신은 내재적이며, 그 넓은 시야는 우주에 관한 것이리라. 이미 반세기 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 있던 선술집에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던 흑인과 농민이 아주 긴 시간 동안 논쟁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곧바로 형이상학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랑과 법률에 대해 논하고 시간과 영원성에 대해 토론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02-10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프로아⟫를 폐간하면서 보내는 편지] 한 시절 보르헤스 자신이 힘을 쏟았던 잡지를 폐간시키면서 소회를 밝히는 글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지향하는 태도가 강하게 밴 글입니다. 보르헤스는 "실패하거나 홀로 걷거나 고통받는" 것을 인간된 '권리'로 표현합니다. 이런 역전된 인식을 보면서, 저는 우리 선조들이 인생을 네 글자로 요약한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이 글자처럼 우리네 인생을 짧고 간결하고 심오하게, 또 겸손히 요약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생로병사라는 네 글자 중 일견 세 글자(老病死)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늬앙스를 풍깁니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며 순리이자 우리가 빚어진 원리라는 겁니다. 여기엔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주 거룩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하거나 홀로 걷거나 고통받을 우리의 권리를 말합니다. 신비롭게도 나 자신에게서 아주 거룩한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까지도 우리의 연약함을 질투했지요. 신 또한 스스로 인간이 됨으로써 고통을 더했고, 그래서 포스터 속의 십자가처럼 다시 빛나게 됐습니다. 저 역시 이제는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프로아⟫에서 저를 배제하라고, 이제는 종이로 된 왕관을 옷걸이에 걸어 두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변두리에 있는 수백 개의 거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달과 고독과 가끔은 달콤한 술을 들고서 말입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06-10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석] 보르헤스가 꼽은 다섯 개의 작품에 대한 짤막한 각주입니다. 각주는 말마따나 그 위치상 발에 채일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동시에, 언제든 우리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해당 작가와 작품을 칭송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개선할 점을 보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다들 자기만의 선구자를 창조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때 선구자는 스승임과 동시에 스승의 반대편, 즉 반면교사입니다. 생각해보면 자기만의 안목으로 자기만의 위대한 작가들로 서재를 꾸리려는 욕망, 이 선구안을 가지려는 욕망이야말로 좋은 작가의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거기에는 남들이 특정 작품을 상찬하건 폄훼하건 자신이 거기서 위대함을, 장차 위대해질 수 있는 씨앗을 보았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마음가짐도 포함될 겁니다. 와글거리는 땅에서 이미 있는 기념비에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장차 있게 될 건축물을 보려는 야망 말입니다. 내가 언급하고 알아보고 말하려는 타인의 독창성은 그 순간 나의 독창성으로 전환됩니다. 지금으로서는 보르헤스가 여기서 언급한 작품들을 한국어로 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재밌습니다. 보르헤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 다섯 작품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때로 구체적인 책을 직접 읽을 때보다, 그 책에 흠뻑 빠졌다면서 눈을 반짝이면서 그 책을 설명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커다란 매혹감을 느낍니다. 저에게 이 글을 읽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건 아마 검지 끝으로 달을 가리키는 누군가를 앞에 두고, 달을 보기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행위에 가까울 겁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는 안 보고 영화에 흠뻑 빠진 옆 사람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따금 달을 보기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데서도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주석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나는 사실 정신적 가치 없이 형태의 유사성만을 단순하게 강조하는 시각적 비교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바 발데스의 작품에는 나를 매혹시키는 시각적 형상이 참 많다. 그 시각적 형상들에 삶이자 모든 행위의 전제 조건인 드라마틱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즉 시간이 살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1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그의 인물들은 매우 도식적이다. 영웅적 인물들이 미리 정해진 틀을 벗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그의 모든 시는 인습적이고 상징적이다. 그의 시에서 2인칭 '너'는 항상 연인을 암시하고, 여명은 충실하게 행복을 뜻하며, 별이나 낙조 또는 초승달은 마지막 3행시의 끝에 등장해서 다시 빛난다. (···) 그가 사용한 시간 역시 서양의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포함한 영원성의 시간이다. 느릿하고 풍요로운 시간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18-11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태양을 과거에 그랬듯 황금으로 덧씌우고, 새가 지저귈 때는 진주로 변화하며, 불쌍한 밤 개구리에 대해서는 "달이라는 피아노의 유리 건반"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귀한 은유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잡동사니로 떨어뜨리는 이러한 은유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2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분석 연습]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뽑아 올린 두 줄의 짧은 시를 분석합니다. 시는 물리적으로 짧습니다. 자연히 시집도 책 중에서 꽤 얇은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물리적인 얆음이 정신적으로는 어떠한 산문집보다 두껍습니다. 그 일면을 이 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잘 쓰인 한편의 글은 표면적인 내용과 그 부피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정신의 육중한 거동 과정과 그 숨은 의미를 환기할 수 있습니다. 약간 딴 얘기를 하자면, 저에게 하루종일 시를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집니다. 일반적인 논증 구조로 짜여 있는 글이나 하루종일 읽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게 여겨지는 반면에 말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만약 누군가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답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모른다." 나 역시 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26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지금까지 분석한 세르반테스의 두 행에는 어떤 창조적 행위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에 만약 창조적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능력이 아니라 언어의 능력이다. 세르반테스의 행의 유일한 미덕은 사용한 단어들이 지닌 허위의 능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언어에 대해 "우상의 광장"이자 대중의 속임수라고 일컬었다. 시란 바로 그런 곳에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케베도와 브라우닝, 휘트먼, 우나무노의 몇몇 시행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시는 모두 서정시일 뿐이다. 어제의 시, 오늘의 시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미래의 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정시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3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밀턴과 그의 운율 비판] 흔히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모국어인 한국어의 특성상 이런 논쟁을, 더군다나 번역한 글을 통해서 이해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고요. 한국어는 주어-목적어-서술어 순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특별하게 도치 구문을 쓰거나, 필요에 의해서 문장을 끝맺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문장을 "-(이)다"의 형태로 마무리합니다. 그에 반해 인도유럽어족의 많은 언어는 주어-서술어-목적어 순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문장의 마지막이 명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형시에는 각운을 일부러 맞추어서 그만의 독특한 운율과 음악성을 만들어왔습니다. 과거에는 입말과 글말을 나누고 입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이해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인들은 음악성에 과도하게 경사되기도 했습니다. 보르헤스의 언급처럼, 심지어는 시가 "상상력과 영혼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채, 각운을 맞추는 식의 엄격한 형식성에 천착하였고 시를 "청각에 종속된 사물로 강등"시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쇼펜하우어와 밀턴 같은 이들의 주장도 비슷합니다. 시쓰기가 각운을 맞추어 음악을 얻고 새로운 이미지를 환기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이미지가 너무 많이 생겨났고, 그 압축성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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