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

D-29
2024년에 읽는 보르헤스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본격적으로 여섯 권으로 이뤄진 논픽션 전집을 읽습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는 총 2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는 22개의 글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루에 하나의 글꼭지를 읽는 모임입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서문 15 ⏤내 희망의 크기 19 ⏤크리오요 『파우스토』 27 ⏤팜파스와 변두리는 신의 모습이다 33 ⏤카리에고 와 변두리의 의미 41 ⏤『보랏빛 대지』 47 ⏤끝없는 언어 53 ⏤시어 에 대한 장광설 60 ⏤형용사의 활용 66 ⏤우루과이의 나무 숭배 75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 79 ⏤모험과 규칙 87 ⏤토착화된 민요 93 ⏤《프로아》를 폐간하면서 보내는 편지 104 ⏤주석 108 ⏤분석 연습 126 ⏤밀턴과 그의 운율 비판 134 ⏤공고라의 소네트에 대한 검토 141 ⏤『리딩 감옥의 발라드』 149 ⏤아라발레로에 대한 비판 153 ⏤문학적 믿음에 대한 예언 162 ⏤추신 170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단편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단편별로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참여 인원이 없어도 24/12/8에 시작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부 서문] 모임이 열린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뒤늦게 모임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모임을 열었을 때만 해도 12월 3일 전이어서, 나라 안팎으로 이런 비극적이고도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뉴스들이 보도되는 현실이 뭔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서문은 ⟪내 희망의 크기⟫라는 보르헤스의 책에 마리아 코다마가 쓴 서문입니다. 마리아 코다마가 생전 보르헤스와 맺은 관계에 대해서는 제가 별로 첨언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뭔가 스캔들을 위한 스캔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서문에는 크리오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역사를 이해하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오요'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피지배 계급이 되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여러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신대륙은 유럽계 백인, 원주민과 흑인, 그리고 여러 인종이 섞인 다인종, 다문화의 장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신대륙의 스페인 사람'을 일컬어 크리오요라고 부릅니다. 크리오요라는 단어는 스페인계 백인을 의미하는 인종적인 함의만이 아니라, 정치계급적인 함의도 지닙니다. 크리오요는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업가나 대지주였지만,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지칭하는 '페닌슐라르'에 비해 정치적인 의사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크리오요는 훗날 아메리카 독립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본토에도 속하지 못하고 식민지에도 속하지 못하는 독특한 이민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로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체성에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모임에서 다룬, ⟪픽션들⟫의 마지막 단편인 ⟨남부⟩에서도 보르헤스의 크리오요로서 정체성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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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 희망의 크기] 이 글은 1926년에 쓴 글입니다. 당시로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세계적으로 그다지 조명받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고 이 글을 읽으면, 당시의 보르헤스가 견지했던 '희망'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희망은 현실을 단순히 윤색해서 별천지의 그것처럼 인식하거나 막연한 공상을 키워가는 것과 다릅니다. 초반부에서도 보듯, 보르헤스는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천형의 유배지로, 멀고도 낯선 것만을 동경하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이 19세기 독립 전쟁 이후 혼란하고 소요한 정치적 격랑기를 보낸 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뒤에 쓰여진 글임을 다시 한번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보르헤스는 1926년 당시의 아르헨티나에서 돈 후안 마누엘이라는 독재자의 독재 정권을 겪었으면서도, 아르헨티나인들이 그를 가장 멋진 남성으로 기억하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직까지도 몇몇 어른들은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을 향수하며 그 독재자들이 보여줬던 아집과 폭력에 가까운 독단성을 남성성으로 추켜올릴 뿐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나아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신비주의자나 철학자도 탄생하지 못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없음'에서 희망을 보며, 이 부재가 보르헤스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희망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말했지만 보르헤스는 그 누구보다 유럽적인 환경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크리오요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희망은 비단 유럽적인 것을 품고 있음에도 유럽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무언가, 이민자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이 지향하는 희망이란, 유럽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전통과 유구함이 있다는 환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는 기존의 크리오요주의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크리오요주의라는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보르헤스는 광활한 팜파스와 신념없는 텅 빈 신념 속에서 도래할 미래를 봅니다. 따라서 비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곧 채워질 미래를 견지하는, 그리하여 희망의 크기를 역설하는 장이 됩니다. 이 1926년 보르헤스가 가졌던 희망의 크기에서 저는 2024년 오늘 우리가 가져야할 희망의 크기를 봅니다. 희망은 언제나 급진주의적인 실천가가 말했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행위에서 비롯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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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1부 서문] 모임이 열린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뒤늦게 모임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모임을 열었을 때만 해도 12월 3일 전이어서, 나라 안팎으로 이런 비극적이고도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뉴스들이 보도되는 현실이 뭔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서문은 ⟪내 희망의 크기⟫라는 보르헤스의 책에 마리아 코다마가 쓴 서문입니다. 마리아 코다마가 생전 보르헤스와 맺은 관계에 대해서는 제가 별로 첨언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뭔가 스캔들을 위한 스캔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서문에는 크리오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역사를 이해하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오요'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피지배 계급이 되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여러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신대륙은 유럽계 백인, 원주민과 흑인, 그리고 여러 인종이 섞인 다인종, 다문화의 장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신대륙의 스페인 사람'을 일컬어 크리오요라고 부릅니다. 크리오요라는 단어는 스페인계 백인을 의미하는 인종적인 함의만이 아니라, 정치계급적인 함의도 지닙니다. 크리오요는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업가나 대지주였지만,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지칭하는 '페닌슐라르'에 비해 정치적인 의사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크리오요는 훗날 아메리카 독립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본토에도 속하지 못하고 식민지에도 속하지 못하는 독특한 이민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로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체성에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모임에서 다룬, ⟪픽션들⟫의 마지막 단편인 ⟨남부⟩에서도 보르헤스의 크리오요로서 정체성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우리의 신념 부족을 비난할지라도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신념이 없다는 것은 믿음의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루키아노스와 스위프트, 로런스 스턴, 조지 버나드 쇼 등의 작품에서처럼 신념 부족을 새로운 창작 원천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대하고 격렬한 불신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6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대화: [내 희망의 크기] 이 글은 1926년에 쓴 글입니다. 당시로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세계적으로 그다지 조명받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고 이 글을 읽으면, 당시의 보르헤스가 견지했던 '희망'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희망은 현실을 단순히 윤색해서 별천지의 그것처럼 인식하거나 막연한 공상을 키워가는 것과 다릅니다. 초반부에서도 보듯, 보르헤스는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천형의 유배지로, 멀고도 낯선 것만을 동경하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이 19세기 독립 전쟁 이후 혼란하고 소요한 정치적 격랑기를 보낸 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뒤에 쓰여진 글임을 다시 한번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보르헤스는 1926년 당시의 아르헨티나에서 돈 후안 마누엘이라는 독재자의 독재 정권을 겪었으면서도, 아르헨티나인들이 그를 가장 멋진 남성으로 기억하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직까지도 몇몇 어른들은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을 향수하며 그 독재자들이 보여줬던 아집과 폭력에 가까운 독단성을 남성성으로 추켜올릴 뿐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나아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신비주의자나 철학자도 탄생하지 못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없음'에서 희망을 보며, 이 부재가 보르헤스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희망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말했지만 보르헤스는 그 누구보다 유럽적인 환경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크리오요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희망은 비단 유럽적인 것을 품고 있음에도 유럽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무언가, 이민자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이 지향하는 희망이란, 유럽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전통과 유구함이 있다는 환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는 기존의 크리오요주의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크리오요주의라는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보르헤스는 광활한 팜파스와 신념없는 텅 빈 신념 속에서 도래할 미래를 봅니다. 따라서 비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곧 채워질 미래를 견지하는, 그리하여 희망의 크기를 역설하는 장이 됩니다. 이 1926년 보르헤스가 가졌던 희망의 크기에서 저는 2024년 오늘 우리가 가져야할 희망의 크기를 봅니다. 희망은 언제나 급진주의적인 실천가가 말했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행위에서 비롯할 테니까요.
역사적으로 침묵은 동의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이 경우, 동의는 현 체제에 대한 것이다. 조직가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해 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어떤 의미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우리의 바람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체제 내부에서 일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반양장) -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27쪽, 사울 D. 알린스키 지음, 박순성.박지우 옮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반양장) -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히피 선동가이자 미국 최대 노동조합의 창립자인 사울 알린스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절망의 늪에서 헤매게 되었을 때, 알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가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가난한 지역사회를 조직하는 데 전념했다.
russist님의 문장 수집: "역사적으로 침묵은 동의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이 경우, 동의는 현 체제에 대한 것이다. 조직가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해 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어떤 의미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우리의 바람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체제 내부에서 일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는 '선'이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가치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불가피하게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영원히 행복한 결말도, 영원히 슬픈 결말도 없다. 그와 같은 결말들은 환상의 세계, 우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세계, "그들은 그 뒤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동화의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는 죽음만이 유일한 종착역으로 갖고 있는 사건의 흐름이 영원히 계속된다. 지평선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지평선이란 영원히 저 멀리에 있을 뿐이며, 우리를 앞쪽으로 손짓해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삶 자체를 좇는 것과도 같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고, 당신의 출발점이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반양장) -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53쪽, 사울 D. 알린스키 지음, 박순성.박지우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크리오요 ⟪파우스토⟫] 여담으로 시작하자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지금 한국에 사는 내가 왜 지정학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의 언어를 알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합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각자 찾아야겠지만, 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 굉장히 친근한 무언가가 읽혀집니다. 그래서 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요. 제가 잘 모르는 구불구불한 형용사와 생소하게 음차된 명사형의 단어를 파헤치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우리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하는 행위는 언제나 두근거리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작품을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경유해서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보르헤스가 순간과 전체를 반복해서 대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 전체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짧은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인생 전체를 대체하고도 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흔히들 인생을 행불행으로 나누는 우리 사고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알다시피, 인생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그 와중에 행복은 음식에 치는 소금처럼 간혹 주어집니다. 이처럼 삶은 행복과 무관하지만, 종장에서 우리네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매우 드물게 주어졌던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에서도 비슷한 미덕을 봅니다. 작품 내외로 보아도 그러합니다.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는 인생 대부분을 군인으로서 야영지에서 보냈으며, 손에 총을 쥔 순간에 비하면 펜을 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르헤스에게 그의 인생은 총을 쥔 순간이 아닌, ⟪파우스토⟫를 쓰려고 펜을 쥔, 전체 인생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그 순간으로 규정될 겁니다. 농담과 같은 일장춘몽으로써 인생 전체를 각성하는 양소유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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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크리오요 ⟪파우스토⟫] 여담으로 시작하자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지금 한국에 사는 내가 왜 지정학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의 언어를 알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합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각자 찾아야겠지만, 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 굉장히 친근한 무언가가 읽혀집니다. 그래서 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요. 제가 잘 모르는 구불구불한 형용사와 생소하게 음차된 명사형의 단어를 파헤치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우리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하는 행위는 언제나 두근거리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작품을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경유해서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보르헤스가 순간과 전체를 반복해서 대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 전체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짧은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인생 전체를 대체하고도 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흔히들 인생을 행불행으로 나누는 우리 사고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알다시피, 인생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그 와중에 행복은 음식에 치는 소금처럼 간혹 주어집니다. 이처럼 삶은 행복과 무관하지만, 종장에서 우리네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매우 드물게 주어졌던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에서도 비슷한 미덕을 봅니다. 작품 내외로 보아도 그러합니다.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는 인생 대부분을 군인으로서 야영지에서 보냈으며, 손에 총을 쥔 순간에 비하면 펜을 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르헤스에게 그의 인생은 총을 쥔 순간이 아닌, ⟪파우스토⟫를 쓰려고 펜을 쥔, 전체 인생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그 순간으로 규정될 겁니다. 농담과 같은 일장춘몽으로써 인생 전체를 각성하는 양소유처럼요.
나는 아나스타시오 엘 포요가 호수의 신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건 알지만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행복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처럼 순수한 사내들은 항상 행운을 목표로 직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반 시간 동안 나눈 우정과 잡담이 의미 없이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신성하다고 믿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브라가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곳 호숫가에서 중국 골동품에 둘러싸인 채 오래된 마테 차를 마시며, 그토록 영원한 인간의 죽음과 기적들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비록 낡은 동전처럼 흐릿하게일지언정 그들의 위업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말이다. 예전에 나는 시야말로 인간에게 영원성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고 생각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2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russist님의 대화: [크리오요 ⟪파우스토⟫] 여담으로 시작하자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지금 한국에 사는 내가 왜 지정학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의 언어를 알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합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각자 찾아야겠지만, 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 굉장히 친근한 무언가가 읽혀집니다. 그래서 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요. 제가 잘 모르는 구불구불한 형용사와 생소하게 음차된 명사형의 단어를 파헤치고 들어가서, 그 안에서 우리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하는 행위는 언제나 두근거리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작품을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경유해서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보르헤스가 순간과 전체를 반복해서 대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 전체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짧은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인생 전체를 대체하고도 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흔히들 인생을 행불행으로 나누는 우리 사고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알다시피, 인생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그 와중에 행복은 음식에 치는 소금처럼 간혹 주어집니다. 이처럼 삶은 행복과 무관하지만, 종장에서 우리네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매우 드물게 주어졌던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보르헤스는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의 ⟪파우스토⟫에서도 비슷한 미덕을 봅니다. 작품 내외로 보아도 그러합니다.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는 인생 대부분을 군인으로서 야영지에서 보냈으며, 손에 총을 쥔 순간에 비하면 펜을 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르헤스에게 그의 인생은 총을 쥔 순간이 아닌, ⟪파우스토⟫를 쓰려고 펜을 쥔, 전체 인생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그 순간으로 규정될 겁니다. 농담과 같은 일장춘몽으로써 인생 전체를 각성하는 양소유처럼요.
군모에 오른손을 넣은 채 파본에서 처음으로 총을 맞은 군인이었던 에스타니슬라오 델 캄포! 수많은 세월을 보낸 야영 생활 전체보다 잠깐 깨어 있던 낮잠 시간만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다니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요! 이제는 신이 돼 버린, 상상 속의 두 친구가 낮잠을 자는 대신 반 시간 동안 털어놓은 그 불멸의 이야기 말입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3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팜파스와 변두리는 신의 모습이다] 흔히 변방성은 어떤 열악함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가능성으로 충만합니다. 중심된 공간의 구심력이 비교적 느슨히 작용하는 공간으로서 가능성을 열려 있는 곳, 바깥을 지향하는 원심력이 구심력을 이기려는 공간인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팜파스와 변두리야말로 "신의 두 가지 현존 양태"라고 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팜파스와 변두리는 필요한 인프라가 모두 모여 오밀조밀 구축된 도심지에서 가장 먼 자리입니다. 이는 보르헤스가 ⟨내 희망의 크기⟩에서 역설적으로 찬양했던 어떤 '텅 빔'과도 연결됩니다. 그때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에서 철학의 부재와 자연의 장엄함을 대비시키며 에머슨을 인용했습니다. "아메리카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하나의 시이다. 넓은 경관이 상상력을 현혹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시적으로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한편, "팜파스와 변두리는 신의 모습이다"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를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앞선 말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구원처럼 주어지는 신의 속성을 대변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흔히들 참혹한 비극 앞에서 "신은 있는가?" 묻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야말로 신에게서 인격을 요구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노출할 뿐입니다. 비극 앞에서 신의 존재를 물으며 울부짖는 사람들에게서 저는 신이 자신이 생각하는 인격에 부합해야 한다고 믿는 자의적인 해석과 오만함을 봅니다. 평상시에는 신의 속성이 불가해함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불행과 비극 앞에서는 신이 이해 가능하게 공감해주고 보살펴줘야 한다고 말하는 식인 것입니다. 신에게 그런 의무를 부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의 역전된 인식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외려 변두리와 고통받는 그 구체적인 표정이야말로 신의 증거라는 거죠. 행복과 쾌락과 웃음 속에서는 신이 깃들 자리가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의미에서만 변두리는 신이 존재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저는 보르헤스의 종교적 지향점을 알지 못하므로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신이 흔히 말하는 인격신이 아님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격신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비극적이지도 않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신과 공존하면서도 신에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russist님의 대화: [1부 서문] 모임이 열린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뒤늦게 모임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모임을 열었을 때만 해도 12월 3일 전이어서, 나라 안팎으로 이런 비극적이고도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뉴스들이 보도되는 현실이 뭔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서문은 ⟪내 희망의 크기⟫라는 보르헤스의 책에 마리아 코다마가 쓴 서문입니다. 마리아 코다마가 생전 보르헤스와 맺은 관계에 대해서는 제가 별로 첨언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뭔가 스캔들을 위한 스캔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서문에는 크리오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역사를 이해하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오요'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피지배 계급이 되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여러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신대륙은 유럽계 백인, 원주민과 흑인, 그리고 여러 인종이 섞인 다인종, 다문화의 장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신대륙의 스페인 사람'을 일컬어 크리오요라고 부릅니다. 크리오요라는 단어는 스페인계 백인을 의미하는 인종적인 함의만이 아니라, 정치계급적인 함의도 지닙니다. 크리오요는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업가나 대지주였지만,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지칭하는 '페닌슐라르'에 비해 정치적인 의사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크리오요는 훗날 아메리카 독립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본토에도 속하지 못하고 식민지에도 속하지 못하는 독특한 이민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로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체성에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모임에서 다룬, ⟪픽션들⟫의 마지막 단편인 ⟨남부⟩에서도 보르헤스의 크리오요로서 정체성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문학성과 아르헨티나성에 대한 고민이 밀물과 썰물처럼 번갈아 드러나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서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모시모시님의 문장 수집: "이 책에는 문학성과 아르헨티나성에 대한 고민이 밀물과 썰물처럼 번갈아 드러나 있다."
아직 초반 몇 개 읽었지만, 읽을수록 맞는말이라 다시 생각해보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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