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

D-29
2024년에 읽는 보르헤스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본격적으로 여섯 권으로 이뤄진 논픽션 전집을 읽습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는 총 2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는 22개의 글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루에 하나의 글꼭지를 읽는 모임입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서문 15 ⏤내 희망의 크기 19 ⏤크리오요 『파우스토』 27 ⏤팜파스와 변두리는 신의 모습이다 33 ⏤카리에고 와 변두리의 의미 41 ⏤『보랏빛 대지』 47 ⏤끝없는 언어 53 ⏤시어 에 대한 장광설 60 ⏤형용사의 활용 66 ⏤우루과이의 나무 숭배 75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 79 ⏤모험과 규칙 87 ⏤토착화된 민요 93 ⏤《프로아》를 폐간하면서 보내는 편지 104 ⏤주석 108 ⏤분석 연습 126 ⏤밀턴과 그의 운율 비판 134 ⏤공고라의 소네트에 대한 검토 141 ⏤『리딩 감옥의 발라드』 149 ⏤아라발레로에 대한 비판 153 ⏤문학적 믿음에 대한 예언 162 ⏤추신 170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단편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단편별로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참여 인원이 없어도 24/12/8에 시작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부 서문] 모임이 열린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뒤늦게 모임 시작합니다. 공교롭게도 모임을 열었을 때만 해도 12월 3일 전이어서, 나라 안팎으로 이런 비극적이고도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뉴스들이 보도되는 현실이 뭔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서문은 ⟪내 희망의 크기⟫라는 보르헤스의 책에 마리아 코다마가 쓴 서문입니다. 마리아 코다마가 생전 보르헤스와 맺은 관계에 대해서는 제가 별로 첨언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뭔가 스캔들을 위한 스캔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서문에는 크리오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역사를 이해하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오요'는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피지배 계급이 되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에서 여러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결과적으로 신대륙은 유럽계 백인, 원주민과 흑인, 그리고 여러 인종이 섞인 다인종, 다문화의 장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신대륙의 스페인 사람'을 일컬어 크리오요라고 부릅니다. 크리오요라는 단어는 스페인계 백인을 의미하는 인종적인 함의만이 아니라, 정치계급적인 함의도 지닙니다. 크리오요는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업가나 대지주였지만,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지칭하는 '페닌슐라르'에 비해 정치적인 의사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크리오요는 훗날 아메리카 독립 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본토에도 속하지 못하고 식민지에도 속하지 못하는 독특한 이민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로서,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체성에서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모임에서 다룬, ⟪픽션들⟫의 마지막 단편인 ⟨남부⟩에서도 보르헤스의 크리오요로서 정체성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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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 희망의 크기] 이 글은 1926년에 쓴 글입니다. 당시로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세계적으로 그다지 조명받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고 이 글을 읽으면, 당시의 보르헤스가 견지했던 '희망'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희망은 현실을 단순히 윤색해서 별천지의 그것처럼 인식하거나 막연한 공상을 키워가는 것과 다릅니다. 초반부에서도 보듯, 보르헤스는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천형의 유배지로, 멀고도 낯선 것만을 동경하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이 19세기 독립 전쟁 이후 혼란하고 소요한 정치적 격랑기를 보낸 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뒤에 쓰여진 글임을 다시 한번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보르헤스는 1926년 당시의 아르헨티나에서 돈 후안 마누엘이라는 독재자의 독재 정권을 겪었으면서도, 아르헨티나인들이 그를 가장 멋진 남성으로 기억하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직까지도 몇몇 어른들은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을 향수하며 그 독재자들이 보여줬던 아집과 폭력에 가까운 독단성을 남성성으로 추켜올릴 뿐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나아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신비주의자나 철학자도 탄생하지 못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없음'에서 희망을 보며, 이 부재가 보르헤스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희망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 말했지만 보르헤스는 그 누구보다 유럽적인 환경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크리오요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희망은 비단 유럽적인 것을 품고 있음에도 유럽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특한 무언가, 이민자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이 지향하는 희망이란, 유럽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전통과 유구함이 있다는 환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는 기존의 크리오요주의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크리오요주의라는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보르헤스는 광활한 팜파스와 신념없는 텅 빈 신념 속에서 도래할 미래를 봅니다. 따라서 비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곧 채워질 미래를 견지하는, 그리하여 희망의 크기를 역설하는 장이 됩니다. 이 1926년 보르헤스가 가졌던 희망의 크기에서 저는 2024년 오늘 우리가 가져야할 희망의 크기를 봅니다. 희망은 언제나 급진주의적인 실천가가 말했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행위에서 비롯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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