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에고와 변두리의 의미] 에바리스토 카리에고라는 당대의 시인에 대한 보르헤스의 짤막한 감상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카리에고라는 시인은 당시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변두리'라는 단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변두리는 단순히 좌절의 공간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는 거칠고 무질서한 건달들이 활보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어떤 가능성이 부글거리고 있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오늘날의 탱고에는 비속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거기에는 변두리의 생활을 무기력하거나 게으르게 묘사하는 식으로 좌절의 레퍼토리만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반면, 과거의 카리에고가 노래한 탱고에서는 어떤 뻔뻔함과 무식하지만 용기만 과시하는 내용이 있지만 그 속에는 좌절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요절한 카리에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미국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였던 XXXTENTACION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험한 생활을 겪었고 그 속에서 돈을 벌게 되었는지를 뻔뻔하고 무식할 정도로 과시하는 노래를 들으면, 20세기의 엔트레리오스에서 탱고를 노래했던 시인들이 자연히 연상됩니다. 20살의 나이로 요절한 XXXTENTACION의 일견 우울하고 파괴적인 음악에는 이상한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그의 반항적이고 우울한 과거 이력과 범죄 행위를 보면 XXXTENTACION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음악에서 보여준 자기 인식, 반성, 죽기 전에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했던 의지는 저에게 어떤 영감을 줍니다. 아마 보르헤스도 비슷한 것을 카리에고에서 느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의 범죄 이력이 청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죽기 전에 보여줬던 음악 속의 슬픔 이면의 어떤 의지와 희망은 진실한 것이라고 봅니다. 20세기의 엔르레리오스 거리가 보여주는 변방성은 이렇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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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카리에고와 변두리의 의미] 에바리스토 카리에고라는 당대의 시인에 대한 보르헤스의 짤막한 감상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카리에고라는 시인은 당시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변두리'라는 단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변두리는 단순히 좌절의 공간이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는 거칠고 무질서한 건달들이 활보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어떤 가능성이 부글거리고 있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오늘날의 탱고에는 비속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거기에는 변두리의 생활을 무기력하거나 게으르게 묘사하는 식으로 좌절의 레퍼토리만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반면, 과거의 카리에고가 노래한 탱고에서는 어떤 뻔뻔함과 무식하지만 용기만 과시하는 내용이 있지만 그 속에는 좌절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요절한 카리에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미국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였던 XXXTENTACION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험한 생활을 겪었고 그 속에서 돈을 벌게 되었는지를 뻔뻔하고 무식할 정도로 과시하는 노래를 들으면, 20세기의 엔트레리오스에서 탱고를 노래했던 시인들이 자연히 연상됩니다. 20살의 나이로 요절한 XXXTENTACION의 일견 우울하고 파괴적인 음악에는 이상한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그의 반항적이고 우울한 과거 이력과 범죄 행위를 보면 XXXTENTACION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음악에서 보여준 자기 인식, 반성, 죽기 전에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했던 의지는 저에게 어떤 영감을 줍니다. 아마 보르헤스도 비슷한 것을 카리에고에서 느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의 범죄 이력이 청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죽기 전에 보여줬던 음악 속의 슬픔 이면의 어떤 의지와 희망은 진실한 것이라고 봅니다. 20세기의 엔르레리오스 거리가 보여주는 변방성은 이렇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정원에는 하늘도 잠깐 쉬었다 가는 미개간지가 있고, 파란 하늘과 포도 덩굴을 벗 삼아 소녀들이 뛰어놀았다. 달빛이 더욱 외로워 보이는 해질 무렵에는 가게 뒷방에서 강한 맥주 냄새와 함께 불빛이 새어 나왔고, 동네 어디에서나 늘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가 '불의 땅'이라고 불리고 건달들이 칼을 휘두르며 팔레르모데산베니토의 핏빛 신화를 계승하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당시에는 콤파드리토들이 많았다. 사내들은 천박한 소리를 내뱉으며 휘파람을 불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41-4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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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대지⟫]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 허드슨이 쓴 ⟪보랏빛 대지⟫라는 영문 소설을 아르헨티나 작품이라고 추켜올립니다. 왜냐하면 ⟪보랏빛 대지⟫에서는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크리오요주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독재자 로사스의 철권통치 이후에 등장한 사르미엔토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구도를 정립함으로써, "통치는 교육"이라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확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우초 문화는 유럽적인 것에 밀려나서 축출될 처지에 놓인 '야만'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가 유럽적인 것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크리오오주의는 구체적인 무엇으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비유럽적인 것', '유럽이 아닌 모든 것'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야만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죠. 야만이란 단어를 자세히 보면 정확히 무엇을 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문명의 부재일 뿐인 것이죠.
그러나 보르헤스가 보기에 "가우초는 문명에 소탈하고 충동적이고 규칙이 없는 자유분방한 삶"(49쪽)을 살았을 뿐이며, 그것은 한갓 '야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 될 집단이었습니다. 크리오요주의야말로 문명의 '없음'이 아니라 유럽적인 것의 사각에서 존재하는 엄연한 문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르헤스의 생각에 잘 부합하게 가우초를 묘사한 소설이 바로 ⟪보랏빛 대지⟫였던 겁니다. 기존의 문학 작품에서 야만으로 대변되는 가우초들이 끝끝내 집과 학교, 교회, 법률로 규정되는 어떤 사회와 제도 속에 편입되면서 길들여지는 결말을 맺었다면, 영문 소설인 ⟪보랏빛 대지⟫에서 가우초들은 일시적일지라도 자신들만의 행복한 운명을 찬양하면서 끝내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마르케즈의 ⟪백년의 고독⟫을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로 공개된 걸 아시나요? 공개되기 전만해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만, 결론만 말씀드리면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비슷한 충돌을 잘 살려내고 있거든요. 마술적이고 연금술적인 세계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적인 정치 상황이 서로 얼키고설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한번 보시면 좋을 겁니다.
백년의 고독 1중남미 문학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첫 출간하자마자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고, 마르케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번역판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출판된 판본(1967)을 바탕으로 스페인어 전공자인 조구호 씨가 완역한 것이다.
백년의 고독 2중남미 문학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첫 출간하자마자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고, 마르케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이번 번역판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출판된 판본(1967)을 바탕으로 스페인어 전공자인 조구호 씨가 완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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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보랏빛 대지⟫]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 허드슨이 쓴 ⟪보랏빛 대지⟫라는 영문 소설을 아르헨티나 작품이라고 추켜올립니다. 왜냐하면 ⟪보랏빛 대지⟫에서는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크리오요주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독재자 로사스의 철권통치 이후에 등장한 사르미엔토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구도를 정립함으로써, "통치는 교육"이라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확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우초 문화는 유럽적인 것에 밀려나서 축출될 처지에 놓인 '야만'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가 유럽적인 것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크리오오주의는 구체적인 무엇으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비유럽적인 것', '유럽이 아닌 모든 것'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야만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죠. 야만이란 단어를 자세히 보면 정확히 무엇을 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문명의 부재일 뿐인 것이죠.
그러나 보르헤스가 보기에 "가우초는 문명에 소탈하고 충동적이고 규칙이 없는 자유분방한 삶"(49쪽)을 살았을 뿐이며, 그것은 한갓 '야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의 독특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없어서는 안 될 집단이었습니다. 크리오요주의야말로 문명의 '없음'이 아니라 유럽적인 것의 사각에서 존재하는 엄연한 문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르헤스의 생각에 잘 부합하게 가우초를 묘사한 소설이 바로 ⟪보랏빛 대지⟫였던 겁니다. 기존의 문학 작품에서 야만으로 대변되는 가우초들이 끝끝내 집과 학교, 교회, 법률로 규정되는 어떤 사회와 제도 속에 편입되면서 길들여지는 결말을 맺었다면, 영문 소설인 ⟪보랏빛 대지⟫에서 가우초들은 일시적일지라도 자신들만의 행복한 운명을 찬양하면서 끝내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마르케즈의 ⟪백년의 고독⟫을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로 공개된 걸 아시나요? 공개되기 전만해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만, 결론만 말씀드리면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비슷한 충돌을 잘 살려내고 있거든요. 마술적이고 연금술적인 세계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적인 정치 상황이 서로 얼키고설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한번 보시면 좋을 겁니다.
“ 가우초는 소탈하고 충동적이며 규칙이 없는 자유분방한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사르미엔토가 언급한 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사르미엔토가 유일하게 크리오요성을 구현했다고 비난한 마소르카 부대의 건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4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용호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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