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사실 주관적이고 정치적 인식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과학의 문제도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합의회의'나 '민관공동조사단' 등의 이름으로 감시/견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동강댐 문제가 거센 견제를 받아 김대중 대통령이 환경의 날에 백지화 선언을 한 일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새로 환경 조사를 했을 때 과학전문가집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낸 지점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일단 연구의 기획, 계획, 실험의 구성 부터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에 집중하여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도 실험자의 무의식적/의식적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요.
고려대X포스텍 <STS, 과학을 경청하다>독서모임
D-29
석희진
슈슈
@라다크아저씨 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에 매우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한 척도로 세상의 법 칙을 만들고 그것이 잘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것이 이 책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객관적 언어. 그것이 과학이 아닐까요.
슈슈
@김민홍 님, @조예리 님께서 말씀해주신 이러한 내용들이 3장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인 듯합니다. 과학이 분류라는 측면, 즉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객관성의 신화'에 균열을 가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생각이 3장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객관성'을 규정하는 지지선에 대한 이야기일텐데요. @조이태 님의 말씀처럼, 이 지지선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 지에 대한 논의와 담론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이 지지선의 설정 범위는 달랐지만,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기 위해 각각의 지지선을 조절하는 과정을 겪었으니..!)
슈슈
개인적으로 저는 이 지지선을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조예리 님이 지적해주신 대로 '과학'의 객관성이 신화화된다면, 한 사회집단의 정당성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학의 보편성에 대한 신뢰는 중요하지만, 그것의 한계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히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체계와의 교섭과 교차를 통해 '네트워크'를 조직한다면, 그 순간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객관적이고 깔끔한, "대리석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