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X포스텍 <STS, 과학을 경청하다>독서모임

D-29
흥미로운 이야기들 감사합니다. 특히 저는 @라다크아저씨 님이 2번에서 말씀해 주신 "지금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논리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 그것이 언젠가 수정될 것이라고 믿는 것. 그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신뢰"가 곧 "과학의 객관성"을 만든다는 생각에 크게 공감합니다. 위에서 제가 말한 내용과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과학의 객관성을 그대로 인정하되, 또 다른 객관성을 지향하기. 그것이 곧 과학의 객관성만이 전부가 아님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요.
객관성의 신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는 219쪽의 사례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에 대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관점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떠셨을까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물은 100도에서 끓지 않지만, 18~19세기를 거치면서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이 이야기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사회과학자들은 공유한 근본 개념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반면에, 자연과학자들은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에서, 앞서 논의했던 '객관성의 신화'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읽으면서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라는 명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는 "물이 1기압에서 끓는 온도를 100도씨로 하고, 어는 온도를 0도씨로 한다." 그리고 그 간격을 100등분 한 것이 온도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만든 온도계들로 우리는 온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현상보단 정의에 가깝고 그렇게에 의심의 대상보다는 약속이라고 보는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척도에 대한 약속인것이죠. 그래서 책에서 설명한 것 처럼 섭씨 100도는 물을 금속용기에서 1기압에서 끓일때 증기의 온도..등등 많은 조건이 붙은 것이죠. 저는 작가가 이 부분을 신화로 해석한건(234쪽) 무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히려 책에서 소개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음바페효과, 기전력 차이와 같은 것들을 함부로 정의내리려 하지 않고 그럴싸한 가설과 근거가 나올때 까지 남겨두는 것이 과학의 신뢰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위 내용을 쓰다보니 우리가 정의한 온도, 시간과 같은 정의가 잘 못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서 소개한 잔지바르 효과처럼 얽히고 설킨 네트워크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채 우리의 과학을 지탱하고 있다면, 살아가는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좀 찝찝한 느낌이 들긴하네요... 이 생각이 과학은 완벽해야한다는 과학의 신화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1초, 1도씨라는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정의한 척도로 세상의 법칙을 만들고 잘적용된다는걸 확인하고 있으니, 우리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본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3주차) 안녕하세요 포항공과대학교 전자과 하현우입니다. 온도계의 철학을 비롯하여 3장에 실린 여러 사례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는 '분류'가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명왕성의 행성 지위 탈락에 다수결이라는 투표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사례가 책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명왕성의 행성으로 유지되거나 혹은 왜소행성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해서 과학 이론, 학설, 원리, 사실들은 그다지 뒤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분류는 보다 편리하고 용이하게 개념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서 인간이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도구일 뿐인 분류에 대한 사례를 들어 과학이 다수결에 의할 수 있고 민주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하는 것은 조금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류는 과연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분류가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언급해주신 것처럼 명왕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다수결의 원리가 개입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부분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과연 분류가 과학적인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제시될 수 있으며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수결은 언제나 옳은 판단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로 히틀러도 민주적 방식을 통해 다수결로 당선된 인물이었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알듯 비참했습니다. 물론 동일한 예는 아니지만, 다수결이 그 결과에 대한 보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분류가 과학이느냐에 대한 답은, 그렇다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분류가 과학인지에 찬성하는 정도는 100%가 아닌 50%에 더 가깝습니다. 완벽한 과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과학이라 생각한 것은, 분류가 과학서 담당하는 역할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에서 읽었듯 과학이라고 주어진 것은 절대적 원리가 아니며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결정의 순간들이 있어야 합니다. 분류를 과학적이지 않다고 분석한다면 과학에 있어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무엇이든 미결정 상태로 남아 추가적 논의가 어려울 것입니다. 과학의 영역서 분류가 일정 영역을 담당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이 걸어온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류는 일어날 수 있지만, 충분한 검토에도 오류가 생겼다면 추후 언제든 수정의 기회가 열려있기에 분류는 과학이라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거리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의견 감사합니다. 우선 @집중호우 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객관성'이 아무런 지위도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면 과학이라는 학문은 설 자리가 없게 되겠죠. 저 역시 지표로서의 객관성, 즉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는 지지선"인 객관성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신화화'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 과학을 '분류'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셨는데요. 지적해주신 대로 이론을 정립할 때 사용되었던 도구적 방법론일 뿐인 '분류'가 민주주의적 측면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를 과학이라고 보는 관점에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이과생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 매우 궁금했는데, 책 전반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잘 알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편으로, 이 책에서는 과학 자체를 그대로 쓰여져 있는 자연, 혹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진 법칙이 아니라, 여러 "변수들 사이의 연관관계(246)"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과학적 사실'들을 발굴하거나 발견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같이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 사실들과 변칙들이 공존하는 그 관계를 '분류'라고 칭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과학이라는 학문을 온전히 '분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각각의 요소들과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듯 합니다!
@슈슈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자연과학에서 XX, XY라는 두 개의 성별을 주장하더라도 주디스 버틀러를 비롯한 사회학적이고 (혹은 철학적인) 관점에서는 성이라는 것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라다크아저씨 님께서 말씀해주셨듯이 진실을 섞은 가짜가 과학을 신화화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제시되는 정보가 객관적이라고, 그러므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생각하여 실제로 다원적으로 나타나는 성별을 두 개로 묶어버리려는 논의의 경우, 과학이 객관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에도 ”해석의 한계“가 있기는 해야할 것입니다. 그 어떤 객관성도 없다고, 어떤 정보도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은 음모론을 비롯하여 허무맹랑한 주장들로 이어질 위험성을 가집니다.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는 지지선“ 즉 ”해석의 한계선“이 필요하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보편성에 대한 신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한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어디부터 ”객관성의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는 지지선“이고, 또 어디가 ”허무맹랑한 음모론”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위한 논의와 담론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3주차)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예리입니다. 그동안 사정때문에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저는 3강을 읽으면서 객관적이라고 여겨졌던 과학이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책에서 제시된 빈혈의 진단이나 4대강 사업 후 녹조량의 변화는 과학과, 과학이 속해있는 사회가 상호작용한 예시입니다. 앞서 다른 학우분들께서 발언하신 것처럼 저 또한 과학이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언제나 자연의 사실, 진리만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도 어쨌거나 하나의 사회 속에 존재하기에, 사회문화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지점도 있지만, 사회의 변화나 압력에 따라서 과학도 바뀌는 부분이 있고, 따라서 과학과 사회는 상호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전자의 경우는 사실 너무나 예시가 많습니다. 정보 과학의 발달로 인해 정보화 시기가 촉발되었다는 최근의 사례부터 먼 옛날 뉴턴의 만유인력 발견과 같은 과거의 사례까지 다양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우생학의 악용 사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전자를 개량하여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과거의 생각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이용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과학은 이처럼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는 학문인데, 객관성을 추구해야 하는 과학이 사회에서 어떤 집단의 정당성과 명분, 목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과학은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회에서의 쓰임은 주로 과학의 해석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을텐데, 해석마저 객관성을 추구해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더 크게 보자면, 과학의 객관성은 어느 부분까지 적용이 되어야 하냐 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객관성은 연구 부분에만 한정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해석까지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흥미로운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사실 주관적이고 정치적 인식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과학의 문제도 정책결정의 과정에서 '합의회의'나 '민관공동조사단' 등의 이름으로 감시/견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동강댐 문제가 거센 견제를 받아 김대중 대통령이 환경의 날에 백지화 선언을 한 일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새로 환경 조사를 했을 때 과학전문가집단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낸 지점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일단 연구의 기획, 계획, 실험의 구성 부터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에 집중하여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도 실험자의 무의식적/의식적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요.
@라다크아저씨 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에 매우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한 척도로 세상의 법칙을 만들고 그것이 잘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것이 이 책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테크노사이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객관적 언어. 그것이 과학이 아닐까요.
@김민홍 님, @조예리 님께서 말씀해주신 이러한 내용들이 3장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인 듯합니다. 과학이 분류라는 측면, 즉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객관성의 신화'에 균열을 가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생각이 3장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객관성'을 규정하는 지지선에 대한 이야기일텐데요. @조이태 님의 말씀처럼, 이 지지선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담론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이 지지선의 설정 범위는 달랐지만, "최소한의 토론"을 가능케 하기 위해 각각의 지지선을 조절하는 과정을 겪었으니..!)
개인적으로 저는 이 지지선을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조예리 님이 지적해주신 대로 '과학'의 객관성이 신화화된다면, 한 사회집단의 정당성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학의 보편성에 대한 신뢰는 중요하지만, 그것의 한계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상당히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체계와의 교섭과 교차를 통해 '네트워크'를 조직한다면, 그 순간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객관적이고 깔끔한, "대리석 조각"같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대리석에 금을 가하게 하고 "이것저것 혼종적인 콜라주"를 만들어간다면 더욱 더 튼튼하고 유용한 학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만이 행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분명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4주차) 여러분, 그동안 활발히 토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로웠던 3장을 뒤로 하고, 이제 이 책의 4장으로 넘어갈 시간인데요. 12.2(금)~12.8(목)까지는 4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됩니다. 세계와 과학, 인간과 비인간.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책의 내용도 좋고, 이 주제와 관련한 단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장에서는 시작부터 우리 생활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해서 더 눈길을 끌었는데요. 현재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대학에서부터 "경계를 넘고 지식과 경험을 합치는 융합"(269)이 회자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융합 내지 통합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신가요. 저는 사실 이러한 융합・통합 교육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요. 이 토론을 통해 여러 전공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융합이라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 소통의 장(場)이 마련되었기 때문일 테지만, 이러한 공간을 제대로 만든다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대신 단순한 융합이 아닌 "협동 연구"(271)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겠죠.
안녕하세요! 고려대 언어학과 박유진입니다. 저는 융합 내지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자유정의진리라는 다양한 과의 학생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질문하고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1학년 필수교양 수업이 있는데요. 솔직하게 고백하면 처음에는 깊이 없이 수박겉핥기식으로만 배우는 느낌이라서 이것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 수업인가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바뀌면서 전공 위주의 수업들을 듣다보니 그때 들었던 자유정의진리 수업이 꼭 필요했던 수업이었구나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만큼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쪽 분야의 지식만 배우다보면 그 방향으로 사고의 흐름이 고정되기 쉬운데, 그 당시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과 많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 나누다보니 생각의 폭이 확장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이나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많이 복잡하고, 많은 부분이 간학문적으로 얽혀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융합,통합의 수업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박유진입니다. 저는 이번 4강을 읽으면서,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파트가 많아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갔던 분야는 요즈음이 조별 과제 기간이어서인지 리더십 부분이었는데요, 확실히 이제는 과거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리더들이 등장하고, 그룹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리더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리더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은 통제형 리더가 아닌 다른 유형의 리더도 많이 나타나는 만큼, 팀원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조직을 이끌 리더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팀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역시 많을 것이기에 팀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팀원의 자질 혹은 역할이 무엇인가요?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덧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한 곳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공간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자정진>과 같은 교양수업을 통해 각기 다른 학문의 교차점을 마련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쩌면 그러한 교양수업이, 현재 우리가 꼭 필요로하는 융합・통합교육의 가능성을 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애플, 구글, 인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에서는 인문-기술 융합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계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도 집중한다는 취지에서였죠. 책에서는 이 융합의 사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사례들은 대학에서의 융합보다는 기업과 우리 사회에서의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입니다. 물론 연구자들 사이의 연구가 짧게 언급되지만 한국에서 연구라는 것은 학부생들보다 대학원생들에게 더 익숙한 느낌이여서요. 기업 부분의 마지막 사례는 레고사였는데, 저는 어쩐지 그 이야기의 끝 부분("요즘 레고는 최고의 상종가를 올리고 있습니다"(288))을 읽으면서 조금 꺼림칙해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기획과 움직임이 '더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기 위한 일 같아서요. 인문학은 거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의 경계를 지워야 하겠지만, 왜 여전히 저는 인간이 비인간 속에 삼켜진다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너무 인간/비인간을 구분짓고, 인간이라는,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이러한 융합이라는 것이 꼭 대학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는, 대답을 조금 망설이게 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평소에 정말 겉으로만 보고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고자 로봇공학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진정한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관계를 살펴보고, 기술과 인간의 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어야하며, 때로는 기술이 인간을 배제하기도 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술과 인간의 네트워크 자체가 인간을 만들어가기도 한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습니다. "과학기술학" 수업과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과학도로서 본질적으로 고찰 해나가야할 것 같은 융합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서야 진정한 사람을 위한 "따뜻한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마케팅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은 점점 더 사람을 진짜로 위한 기술이 되어가고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과학과 기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계속해서 개발만 되어간다면, 인간의 본질이 사라진 채, 그저 기술에 의해 의미 없이 살아가고만 있는 영화 "월E"의 미래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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