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알고리즘이 이러한 차별을 영속시킨 사례가 여러 번 보고됐다. 이것이 알고리즘의 의사결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이즈 : 생각의 잡음 -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안서원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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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7장에서 ‘군중의 지혜 효과’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이 책 추천합니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 글 잘 쓰시는 유쾌한 물리학자의 책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능 - 최상의 해답은 대중 속에 있다현대의 복잡성 과학이 대자연에서 발견한 규칙들을 다중지성 혹은 집단지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규칙들을 활용하여 생활 속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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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그룹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의견을 듣는다면, 그들의 생각은 그룹의 지배적인 경향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 결과 그 그룹의 결속력은 강화되고, 자신감은 높아지며, 극단주의는 심화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룹 내 자신의 평판에 신경을 쓴다면, 그 들의 생각 역시 그룹의 우세한 경향 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집단 극화가 일어난다. ”
『노이즈 : 생각의 잡음 -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8장,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안서원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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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 1974년 도스는 예측 과제를 단순화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놀라웠고, 거 의 이단에 가까웠다. 그는 각 예측 변수의 정확한 가중치를 결정하기 위해서 다중회귀를 사용하는 대신, 모든 예측 변수에 같은 가중치를 줄 것을 제안했다. 도스는 동일 가중치 공식을 부적절 선형 모델improper linear model이라 불렀다. 그의 놀라운 발견은 동일 가중치 모델은 ‘적절한proper’ 회귀 모델만큼이나 정확하고 임상적 판단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었다. ”
『노이즈 : 생각의 잡음 -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10장,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안서원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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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책이랑 또 다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한데, 사실 이런 문제에 관심 가진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요.
네이글이 이야기한 박쥐의 의식 문제랑, 메리의 빨간 색 주제에 대해서 제 견해를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스킵하셔도 되요~
보면 이런 논제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연구만으로 알 수 없는 주관적 의식의 세계가 있다라는 것인데, 제 생각에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다'는 것이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의식은 그 인과관계를 낱낱이 밝혀 예측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을 이유는 특별히 없죠.
그런데 '안다'는 것을 일종의 경험이라고 보면, 빨간색을 알기 위해서는 빨간색을 실제로 경험해 봐야죠.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 뇌 안에 특정의 방식으로 전기신호가 흘러간다는 것이고, 빨간색을 안다는 것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빨간색에 해당하는 뇌세포가 자극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간색을 보지 않고 빨간색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렇지만 객관적인 인과관계를 연구하면 빨간색을 보았을 때 일어날 객관적 현상들을 미리 다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경험으로서의 '앎'과 예측 능력으로서의 '앎'을 구분하지 않는 것에서 혼란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메리는 빨간색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빨간 색을 처음 보면 일어나 5분 동안 춤을 출 거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춤을 출 거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과 실제로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건 다른 일이라고 하겠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박쥐의 의식이 어떤 것인지는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 그 객관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거나 박쥐의 의식과 비슷한 어떤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같은 종에 속하긴 하지만 우리 뇌가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타인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도 있으니까 노이즈를 품은 채로 타인의 경험을 부정확하게나마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이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박쥐의 의식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공감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장맥주
이렇게 파생되는 이야기 나누는 게 독서 모임의 재미죠!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지금 <노이즈> 10장을 읽고 있는데 그렇게 썩 재미있지는 않아서... ^^;;;;;; (이 부분이 재미가 없는 걸까요? <생각에 관한 생각>은 엄청 재미있었는데...) 이런 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제 생각은 좀 이따가 적어볼게요.
오도니안
이 주제에 대한 생각 정리해 주실거죠? ^^
장맥주
어... 사실은 정리가 안 돼서 그냥 넘어가고 싶었는데... ^^;;;
떠오른 생각들 숫자 붙여서 적어 봅니다. 내년에 쓰려는 동물권 에세이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활용하게 될 거 같아요. 생각할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메리의 방’은 흥미로운 사고실험이고, 파고들다 보면 물론 앎이나 의식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통찰도 있습니다. 제 관심사는 ‘인간은 다른 존재의 고통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예요. 동물권뿐 아니라 다른 윤리의 확장 문제, 예를 들어 정체성 정치 이슈에도 ‘메리의 방’이 꽤 유용한 사고 도구인 것 같습니다.
1.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예측도 가능해질까?
이 말씀은 좀 순진한 결정론 아닐까요?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를 낱낱이 밝힐 수 없거나, 밝힌다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은 많습니다. 동전을 하늘로 던지면(원인) 떨어져서 앞면 혹은 뒷면이 나오고(결과) 그 인과관계는 명확합니다. 하지만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죠.
이 운동과 관련한 모든 입자의 정보를 알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요? 동전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그 동전 속 구리원자 중 몇 개가 방사성 붕괴할지 알 수 없습니다(양자역학). 회전하는 동전 주변 공기 분자들의 불규칙한 운동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복잡계 이론). 태양, 지구, 달뿐 아니라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의 중력이 이 동전에 작용할 텐데, 고작 세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도 예측할 수 없음이 증명되어 있습니다(삼체문제).
생명체의 의식을 복잡계로 보려는 학자들이 있고, 심지어 양자역학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도 있지요(로저 펜로즈).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 생각에 의식 활동은 동전 던지기보다는 더 복잡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박쥐의 의식과 동일한 인공의식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말장난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박쥐와 동일한 인공의식을 만든다면 그 인공의식은 저희와 소통을 할 수 없겠지요. 세상에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박쥐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희와 소통할 수 있는 인공의식을 만든다면 그 의식은 박쥐의 것과 동일하지 않겠지요. 마찬가지로 세상에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박쥐는 없으니까요. 갑각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 뇌에 대한 외부 관찰은 의식세계 내부와 얼마나 일치할까?
3. 부분적인 공감은 윤리의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까?
제가 지금 나가봐야 해서 2, 3번은 내일 올릴게요. 죄송합니다~. ^^;;;
오도니안
너무 감사드리고, 2번 3번도 기대됩니다. ^^
약간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예측 가능성은 이론적 가능성으로 말씀드린 것이지 현실적 가능성과는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라플라스의 악마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가 아래에 링크한 책에서 본 내용인 것 같긴 한데, 결정론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는 유물론이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즉, 다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불확정성의 원리라든지 여러 논거로 그렇지 않다고 반박을 받더라도 음, 내가 말하려는 본질은 그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하고 생각해 보면, 실제 주장하고 싶었던 건 주관적 의식은 물리적인 원인들에 의해 파생되는 현상이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같습니다. 존재한다는 건 뭐냐 하는 식으로 들어가자면 제 능력이 되지 않고 그냥 느낌 정도 공유하는 걸로 ^^
박쥐 문제로 돌아간다면, 현실적인 기술과 지식의 한계 때문에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몰라도 박쥐를 연구하고 박쥐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론적으로'(이 말도 뜻이 애매하군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굳이 박쥐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튜링머신이 구현되었을 때 이 기계가 고통이나 다른 감정들을 느낄 것인지를 판단해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느끼는 고통과 감정들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기계라고 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진짜 고통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학 논쟁두 철학자의 실제 논쟁을 담은 책. 대니얼 데닛과 그레그 카루소가 자유의지, 처벌, 응분의 대가를 주제로 벌인 격론이 가감 없이 담겼다. ‘논쟁’은 TV 토론, 인터넷 게시판, 서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화의 한 형식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한 없이 끝장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TV 토론의 참여자들은 시청자를 의식하며 말하고,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학회의 토론장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정해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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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아... 말씀하시려는 내용은 결정론이라기보다는 심신일원론인 것 같습니다. 물질세계와 따로 떨어진 영혼의 존재나 정신의 세계는 없으며, 모든 의식 활동은 물질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입니다.
심신일원론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생명체의 정신과 다르지 않은 인공의식을 만들 수 있지요.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마도 결정론에는 찬성하지 않으면서 심신일원론에는 찬성할 텐데, 저도 그렇습니다. 심신일원론의 최대 장점은 반대편에 있는 심신이원론이 증거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아무도 입증하지 못했지요.
심신일원론의 최대 약점은 ‘그래서 물질세계에서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처리하는 네트워크가 충분히 복잡해질 때 의식이 어느 순간 떠오른다(창발한다)는 말은 따지고 보면 신비주의적 주장과 그리 멀지 않은 거 같습니다.
장맥주
제가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내용이라서, 글타래로 엮어서 적어봅니다.
2. 뇌에 대한 외부 관찰은 의식세계 내부와 얼마나 일치할까?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심신이원론을 믿는다면 ‘뇌를 아무리 관찰해도 의식세계 내부는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심신일원론을 믿는다 해도 반드시 그 반대의(뇌를 관찰하면 의식세계 내부를 알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관측할 수 없는 대상도 많습니다. 아예 물리학적 한계가 있는 경우도 있지요. 미시세계가 그렇고 620억 광년 바깥 우주,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블랙홀 안쪽 등이 그러합니다. 의식에 대한 정밀 관찰이 그런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의식 관찰에 대한 물리적 한계를 논하기 전에 지금의 기술적 수준이 처참할 정도로 낮은 거 같습니다. 달의 뒷면보다 의식에 대해서 더 관측을 못하는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분명히 뇌 안에 어딘가가 잘못되어서 생기는 질병이고, 증세도 흔하디흔한데 환자의 자기보고에 진단을 의존해야 합니다. 환자는 굉장한 통증을 호소하지만 외부에서는 아무리 관찰해도 알 수 없어서 꾀병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질병도 많습니다.
현재의 뇌스캔 기술 같은 건 ‘7층에 밤늦게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인사팀이 요즘 일이 많은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수준도 못되는 거 같습니다. 인사팀이 일이 많은 걸 수도 있지만 청소업체가 야간 청소 중인 걸 수도 있고 그냥 불 끄는 걸 잊었을지도 모르죠. 박쥐나 갑각류의 의식에 대해서라면 불이 켜진 곳이 과연 7층이 맞는지, 거기에 인사팀이 있는 건지도 확신할 수 없는 거 같고요.
그리고 약간 딴 얘기지만 저는 생명체의 의식을 외부 관찰로 다 파악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이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맞출 수 있는 독심술 기계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borumis
ㅎㅎㅎ 밤늦게 불켜져 있는 빌딩의 인사팀으로 표현한 게 참 재미있네요. 맞아요. 안그래도 요즘 fMRI 등 여러가지 영상기술로 의식을 관찰하거나 엿보려는 시도가 과연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지 너무 피상적이고 원시적인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너무 그런 걸 획기적이고 확실한 발견으로 몰고 가는 게 좀 섣부른 김치국 마시기 같아서 걱정되요. 예를 들어서 얼마 전 fMRI를 통해 호기심이 발현되는 과정을 뇌에서 직접 관찰했다고 말이 많았죠. 그런데 문제는 fMRI도 뇌파도 기타 이런 실험들도 결국에는 correlation을 보는 것이지 causation을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 책 12장에서도 나왔지만 correlation 과 causation을 구분할 줄 알아야하는데 요즘 의학 과학 기사들을 보면 correlation과 causation을 거의 같은 것으로 해석해버리는 게 많아서 전 일단 이런 결과들을 좀더 의심하고 더 깊게 들여다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소피아
헉, 의학 과학 기사라면 상관성이 인과성이나 방향성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ㅠㅠ
장맥주
3. 부분적인 공감은 윤리의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이 3번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쓰기 어렵네요. 책을 낼 때까지 좀 더 생각을 다듬어보겠습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사실 의식 없는 좀비 아닐까?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이 보는 빨간색과 같을까(다른 사람도 나처럼 고통을 느낄까)? 어릴 때 종종 했던 생각인데, 많이들 하는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질문에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어느 시점에서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기각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며, 나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여겨야 내가 겪기 싫은 일을 그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의 기반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검증불가능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남성은 분만통이나 생리통을, 백인은 유색인종의 괴로움을, 조현병 환자가 아닌 사람은 조현병 환자의 삶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우 괴로울 것으로 간주하고 그 고통을 경감하는 방향을 한 사회의 윤리적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끼리는 언어라는 놀라운 도구를 통해 고통을 표현할 수 있고, 그 표현을 보고 타인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성은 여성의 고통에 대해, 백인은 유색인종의 고통에 대해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하는 정체성 정치 계열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저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한 사회의 윤리적 목표에는 합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의 고통은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동물은 인간의 언어보다 해석하기 어려운 신호를 보냅니다. 영장류는 신경계가 인간과 상당히 닮았고, 우리가 그들의 표정을 대체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개도 몇몇 감정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얼굴이나 꼬리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고등 포유류라 해도 고래나 돌고래, 코끼리의 얼굴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입 꼬리 양쪽이 올라가 있으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감정 상태인지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명확치 않죠. 인간은 그냥 입 꼬리 양쪽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사물을 보면 ‘웃는 인상’을 읽어내니까요.
포유류가 아닌 동물의 감정 상태는 더 알기 어렵습니다. 까마귀와 악어, 상어, 문어는 상당한 지능을 갖춘 동물인데 사람 눈에는 그들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파충류나 양서류, 어류, 무척추동물들의 얼굴로 감정 상태를 가늠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표현법이 있고 신호를 내보냅니다만 우리는 그 신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기에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물고기에 바늘을 찔렀을 때 모르핀을 투여하면 아가미를 퍼덕거리는 횟수가 줄어든다든가, 갑각류가 전기 충격을 피한다든가 하는 실험 결과를 보고 ‘물고기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고 해석하는 건 얼마나 제대로 된 해석일까요? 아가미를 퍼덕거리는 횟수가 줄어드는 게 통증이 줄어든다는 뜻일까요, 단순히 운동신경이 느려져서 그런 걸까요? 전기 충격을 피하는 갑각류는 속으로 ‘아악! 저 전기 충격은 죽을 것처럼 괴로워!’라고 비명을 지르는 걸까요, 아니면 ‘썩 내키지는 않더라고’ 하고 투덜거리는 중일까요?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하면 의구심을 표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식물 역시 화학물질을 포함한 외부 자극에 느리지만 분명하게 여러 방향으로 반응합니다. 갑각류가 전기충격을 피하는 걸 보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저는 미신을 믿는 것, 무지, 무사유가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믿음은 잘못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우리는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지적 엄밀성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적 엄밀성을 어느 정도나 억제해야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가 합리적인 해석이고, 어디서부터가 근거가 불충분한 상상일까? 저는 분만통이나 조현병 환자의 고통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공장식 사육을 당하는 가축들의 고통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류나 갑각류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런 의심을 해소하지 못할 때 어류와 갑각류의 권리나 그들에 대한 복지를 주장하는 게 오히려 비윤리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복지에 대해 쓸 자원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이 더 윤리적일 수 있으니까요.
도원
쓰신 글 읽다보니 '동물권력'이란 책에서 돌고래들이 조련사에 대해 반항하고 태업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돌고래의 표정을 읽기는 어렵지만 이런 행동을 통해 이들이 싫어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구요. 그 책에서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고 했던 걸로 기억나네요(산천어 축제 비판의 맥락으로 기억합니다).
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동물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한때 인간 문명 밖의 야만적 존재로 취급당했다가 이제는 고통받는 피해자로 끝없이 소환되는 동물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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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이 책 좋았죠! 저도 산천어 부분 기억 납니다. 저도 산천어 축제 반대하는 편이고, 돌고래들의 표정을 바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는 소통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동물의 고통이라는 문제에 제가 좀 더 회의적인 입장인 거 같네요. ^^
큰목소리
흰금, 파검 드레스 문제를 볼 때 인간도 같은 사물을 같은 색으로 보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 나오는 움벨트 개념이 신기하더라구요.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 극단의 시대,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의 과학저자가 2020 미국 대선에 활용된 ‘딥 캔버싱’을 비롯하여 심리 치료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동기 강화 상담’, 설득력 높은 메시지를 분석한 ‘정교화 가능성 모델’ 등 심리학 최신 연구를 망라하고,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설득 전문가 등과 협업한 끝에 분열과 갈등을 이기는 과학적 설득법을 밝혀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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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저는 22장을 읽다가 작가님이 쓰셨던 이 문장이 떠올라 다시 답글을 달고 싶어졌는데요.
"예를 들어 우울증은 분명히 뇌 안에 어딘가가 잘못되어서 생기는 질병이고, 증세도 흔하디흔한데 환자의 자기보고에 진단을 의존해야 합니다. 환자는 굉장한 통증을 호소하지만 외부에서는 아무리 관찰해도 알 수 없어서 꾀병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질병도 많습니다."
이 문장이요.
저도 과거에 정신과를 총 세 곳 정도 방문해 봤고, 시기가 달라서 그런지 의사 선생님들마다 처방하는 약도, 소견도 다 다르시더라고요. 전적으로 제 이야기와 검사지로만 진단(?)을 하시는데,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약 투여량을 늘리시는 것도 괜히 막 무섭고. 특히 항불안제를 처방받았을 때는 내성이나 의존성이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 더 무섭고. 저는 상담을 바란 게 아니라 처방을 바라고 갔던 건데(그냥 약을 주세요), 자꾸 막 마음으로 위로를 하시려는 분도 계셔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장맥주
처음 정신과에 갔을 때 어떤 객관적인 검사도 없이 오직 자기보고에 의해서만 진단을 한다는 게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제 상태가 5점 척도 중 어느 것인지 알기 어려웠고요. 우울증은 뇌파로 조금 진단은 가능한가 본데 그리 널리 쓰이지는 않나 봐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이상합니다. ㅎㅎㅎ
연해
제 생각도 그래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정신과를 방문한 것인데, 그런 저를 너무 믿고 진단을 맡기는(?) 느낌이라서... 약을 처방하실 때도, 전적으로 제 이야기만 듣고 "그럼 이 약을 더 넣어봅시다" 혹은 "그럼 이번에는 이 약을 더"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러다 부작용 생기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러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정신과 약만 먹으면 뭔가 한템포 느려진 느낌이에요. 삶이 0.75배속으로 흘러가는 것 같달까요. 특히 오전에는 되도록 약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루는 약 먹고 출근했다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한 박자 늦게 반응하더라는...(쩝)
저도 차라리 뇌파로 딱 찍어서 증상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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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탐험단 다섯 번째 여정 <시나리오 워크북>스토리탐험단 네 번째 여정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북킹톡킹 독서모임] 🖋셰익스피어 - 햄릿, 2025년 3월 메인책[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봄은 시의 세상이어라 🌿
[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송진 시집 『플로깅』 / 목엽정/ 비치리딩시리즈 3.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3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서리북 아시나요?
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