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읽기 시작했는데, 먼저 책이 너무 얇아서 놀랐습니다. 1장과 2장 중 1장을 읽은 상태인데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소수의 부자들이 잘 사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보다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낫게 해 주는 것이 첫번째 우선순위이고,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그 다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도 상속세가 없고, 전체적인 복지 수준은 높지만 상위 계층이 소유한 부의 비중도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고 들은 것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평등이 그 자체로서는 가치가 아니고 다른 가치를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주장에 일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중간에 평등이 그 자체로서 가치라는 주장의 근거를 반박하기 위해서 부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것을 부정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것에는 반대입니다. 주관적인 효용곡선이라는 것을 정확히 그려낼 수도 없고 저자가 드는 여러 사례처럼 다양한 경우들이 있겠지만, 소득과 부의 한계효용이 체감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거든요. 10억의 부를 가진 한 사람의 재산을 10명에게 1억원씩 나누어준다면 전체 효용은 늘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정당한 일인지, 다른 부작용이 없는지 하는 것을 논외로 하고 당장의 공리 측면의 효과만 본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직관에 부합하는 일 같습니다. 1억원의 부를 가진 사람이 1억원을 더 갖게 되었을 때 느끼는 효용이 100억원의 부를 가진 사람이 101억원을 갖게 되었을 때 느끼는 효용보다 대체적으로 클 것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만한 전제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리주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평등은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명이 다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자원이 부족하면 2명을 버리고 8명에게만 자원을 배분하는 불평등한 방식이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보다 나을 수 있다는 식의 논의는 맬더스의 이론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
D-29

오도니안

장맥주
네, 저도 칼럼에도 썼지만 <평등이 없다> 읽고 많이 헷갈리더라고요. 저는 아직 @오도니안 님처럼 제 의견을 정리할 수준도 못 되고 '뭔가 잘못된 주장인 거 같은데 쉽게 반박하지 못하겠다'는 정도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서 저런 논리에 설득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개소리에 대하여>도 엄청 얇습니다. <개소리에 대하여>가 꽤 팔려서 <평등이 없다>도 나올 수 있었던 듯해요.)

오도니안
철학자들, 특히 현대철학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는 좀 이상한 이야기도 꽤 많은 것 같아요. 깊이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중국어 방이나 메리의 빨간색이나 게티어 문제 같은 것들 보면, 예전 철학에 비하면 약간 장난감 놀이 느낌도 나구..
분량이 짧다면 <개소리에 대하여>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

장맥주
제가 좀 변태라서 그런 장난감 놀이 같은 사고실험을 좋아해요. 7장에 ‘인도교 문제’라고 나오는 사고실험은 ‘트롤리 딜레마’라는 번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꽤 최근에 제기된 문제이고 아주 흥미로워서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저도 제 소설에서 나름의 답을 제시한 적이 있고요.
‘메리의 빨간 색’ 문제는 최근에 @borumis 님이 독서 모임에서 읽으셨다는 토머스 네이글의 논문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와 내용적으로 같은 사고실험이지요. 공교롭게 제가 내년 즈음에 쓰려는 에세이에서도 이 문제를 인용할 예정이네요. 동물권과 채식에 대한 에세이인데, 과연 갑각류 같은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걸 인간이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이어질 수 있는 사고실험 아닌가 해요.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는 고통을 느끼는 거 같은데, 정말 갑각류가 고통을 느낄까요? 바퀴벌레도 살충제를 뿌리면 괴로워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바퀴벌레도 고통을 느끼는 걸까요? 갑각류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 고통을 얼마나 느끼는지 저희가 정말 알 수 있을까요? 그 사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서 갑각류 조리법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걸까요?
(이런 질문 좋아하는 저는 변태...)

오도니안
저도 그런 질문들 좋아해요. 다만 존 설의 중국어 방이나 메리의 빨간 색 문제 같은 경우엔 인간의 정신과 인공지능 사이에 벽을 만들려고 너무 억지를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전 동물 뿐 아니라 인공지능도 향후에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바퀴벌레를 죽일 때 되도록 단호한 내리침으로 즉사시킨다는 방침입니다. 랍스터도 되도록 고온의 물에 담가 빨리 사망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

장맥주
바퀴벌레를 단호하게 내리쳐서 잔해가 바닥에 붙으면... 제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최대한 약물로 제거하고 싶습니다. ㅠ.ㅠ

borumis
ㅋㅋㅋ 저희 남편은 바퀴벌레를 너무 무서워해서 아주 멀찍이서 아주 한참동안 에프킬라 스프레이를 무슨 소화기처럼 방사하는데 거의 익사를 시키더군요;; 그냥 한방에 죽이는 게 덜 고통스럽고 덜 지저분하지 않을까? 저도 생각했다는;; 제게 맡겼다면 전 즉사시킵니다;; 랍스터도 꽃게처럼 고온의 물에 담그는 게 아니었나요? 제가 랍스터 요리하는 건 몰라서;;

borumis
안그래도 저도 footbridge problem이 뭔가 했더니 trolley dilemma;; 사춘기 아들냄과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라는 만화를 보면서 공리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이 얘기도 한참 했다는;;

오도니안
이 문제 9장에도 등장하던데. 기분이 좋으면 옆에 있는 사람을 내던져도 된다는데 찬성하기 쉬워진다니 재밌는 결과 같아요.

borumis
그쵸 ㅎ 자기 기분 좋아지면 남들 신경을 안 쓰는 건지;;

YG
제가 찾아봤더니, 말콤 글래드웰이 『블링크』에서 폴 에크먼의 표정 연구를 비중 있게 인용했었는데, 심리학계의 비판 +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강력한 반론 등을 염두에 두고 에크먼을 『타인의 해석』에서 길게 비판하면서 자기 성찰을 했었더라고요. @오도니안 님 참고하세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는 의학, 법률 제도, 자녀 양육, 명상, 심지어 공항 보안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감정과 마음과 뇌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밝혀낸 연구 성과와 함께 감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장 바로가기

오도니안
감사합니다. 블링크 내용도 좀 가물가물해서. 잠깐 찾아봤더니 에크먼이 당시 통념을 반박했는데 이제는 반박을 받는 처지군요. 리사 펠드먼 책은 예전에 읽다가 멈춘 상태인데, 다시 봐야겠어요. 이 논란들이 정확히 어떤 차이이고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아직은 잘 이해를 못하는 상태입니다.^^

YG
아, 에크먼은 사람의 감정 변화가 표정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았고 그 맥락에서 표정 변화를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의 미묘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죠. 『블링크』에서는 이런 에크먼의 연구를 호의적으로 인용했고요. 리사 펠드먼 배럿은 그런 에크먼의 주장 자체를 부정합니다. 특정 감정에 고유하게 매칭되는 표정 같은 건 없고, 사실 감정이라는 것도 에크먼 식의 기본 감정 같은 게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이죠. (한때 에크먼에 호감을 가졌었던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 와서는 리사 펠드먼 배럿에게로 완전히 기운 듯해요.)

오도니안
'본질적으로'라는 말이 좀 애매한 것 같아요. 감정이 무척 다양하고 미묘한 변이가 많고 문화적인 영향이나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일괄적인 분류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형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대상을 MECE 기준에 맞게 명확하게 분류해 내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은 빠지는 것도 있고 서로 중복도 되면서 대략적으로 구분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 유형이 16가지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잘못일지 몰라도, 분노, 슬픔, 애착, 질투 등 여러 가지 보편적인 감정 유형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하지만, 우리가 보통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들이 실제로는 일종의 '구성물'일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은 흥미롭긴 합니다. 예를 들어 중세 기사들이 느꼈을 법한 명예의식, 오셀로의 질투심, 스크루지의 탐욕, 중동 지역 부족민들의 복수심 같은 감정들은 그들에게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고 여겨졌겠지만 문화와 개성이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는 잘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 패턴일 것 같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인간 본성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의 역사와 문화의 영향에 따라 무척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겠죠.
리사 펠드먼이 말하는 맥락과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시사점들은 책 뒷부분에 많이 나올 것 같으니 다시 읽기 시작해봐야 되겠어요.
그런데 추천해 주신 책들도 있고 너무 책이 많아요 TT

오도니안
그런데 책에서 공감되었던 부분은,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과 자기의 형편을 비교하면서 그 상대적 평가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질투심과 부러움이 가져오는 해악이나, 자신과 남의 비교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하는 것은 경험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라서. 그런 비교를 덜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평등주의의 지향일 터인데, 그 지향이 상대적 비교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역설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더 비약을 해서 말하자면, 공정이라고 하는 가치도 절대적으로 맞는 정답이 없고 기준과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수십가 지 그림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공정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도 부작용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분주의(?)적 접근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충분이고, 어디부터가 불충분인지, 그런 게 궁금해지긴 하지만..
다른 책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죄송하고, 노이즈 책 읽기 시작했으니 저도 제대로 참여하겠습니다~~

Nana
[우리는 평등이 뭔지 잘 모르면서 그것을 열렬히 소망한다. 사랑·행복·구원과 마찬가지로……
공정 개념은 평등과 상당 부분 겹친다. 우리는 공정을 실현하는 과정과 그 결과가 평등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평등 개념 자체가 모호하므로 공정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요구한다. 아마 그런 감각과 욕구는 인류보다 더 오래됐을 것이다. ] 역시! 저도 아직 공정과 평등이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점점 더 모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다들 잘 따라오시고 계시나요? 오늘 12월 11일 수요일에는 2부 7장 '상황 잡음'과 8장 '집단은 잡음을 어떻게 증폭시키나'를 읽습니다.
7장, 8장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사례가 있어서 훨씬 흥미롭게 읽으실 겁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이어서 오늘 7장과 8장을 함께 읽습니다.

도원
조금 늦게 출발해서 이제 1부를 읽었습니다. 1부는 설렁설렁 잘 읽히네요.
p.15에 특허 심사자에 따라 심사 결과가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짧게 나옵니다. 저는 특허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잘 아는데요. 특허 심사관마다 특허 등록율에 큰 차이가 있어서, 업계에서는 "심사관 성향에 따른 심사 전략에 관한 세미나"가 종종 이루어지기도 하고, 심사관의 성향을 분석하는 솔루션을 제공하여 돈을 버는 회사도 있습니다. ㅎㅎ

도원
“ 내과 의사들이 시간의 압박을 받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데도 즉효약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높게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날이 저물어갈 때 내과 의사들은 항생제를 처방할 가능성이 높고, 독감 예방주사를 처방할 가능성이 낮았다. ”
『노이즈 : 생각의 잡음 -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p.131,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안서원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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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
이제 병원 갈 일 있으면 날씨 좋은날 오전에 가는걸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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