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모시님의 대화: 전 다시 읽으면서 첫 문장에서 또 멈칫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답은 없지만 첫문장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것 같아요.
민음사는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문학사상사는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 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민음사 번역이 맥락이 더 맞는것같은데(얼음을 굳이 찾아나섰기보다 구경하러 갔다는 면에서) 시제는 문학사상사가 더 이해하기 쉬운것 같기도 해요.
영어로는 찾아보니 (무슨 판본인지는 모르겠지만) "Many years later, as he faced the firing squad, Colonel Aureliano Buendía was to remember that distant afternoon when his father took him to discover ice." 라고 나오네요.
원문은 "Muchos años después, frente al pelotón de fusilamiento, el coronel Aureliano Buendía recordaría aquella tarde lejana en que su padre lo llevó a descubrir el hielo."
첫 문장부터 엄청 여러가지 과거(이런 표현이 맞다면)가 중첩되면서 작품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해야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첫 문장이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이 문장 하나로 1장의 처음과 끝이 순환을 연상시키며 잘 연결이 되죠.
그리고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수십년의 시간과 엄청난 차이의 공간을 뛰어넘는 상황설정이 이루어지는 거고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드라마 트레일러에서도 이 장면과 대사로 시작을 하더군요.
소설 시작에 바로 '얼음'이라는 소재를 등장시킨 것도 처음 볼 때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화려함으로 세상에서 제일 신기한 물체같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 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덧없음을 나타내어 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바로 그런 점에서 '멜키아데스'의 죽음을 알려주던 집시가 액체웅덩이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도 이와 상통하고요.
1장에서부터 작가가 고심하여 설정한 많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듯 하네요.